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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명예전당 입성 스타플레이어의 특이한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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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12:27:39

1943년에 미주리 주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남. 본명 William Warren Bradley


농구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9살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고등학생 시절 전국적인 스타플레이어로 이름 날림.


농구 장학금을 받고 듀크대에 입학했지만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김.


당시 프린스턴은 운동선수에게 주는 장학금제도가 없었으나 부자집 아들인 그는 4년간 전액 등록금을 지불하고 스윙맨 포지션의 선수 생활을 함.


시합이 있는 날마다 가방에 책을 잔뜩 넣고 팀 버스에 올라탐. 시합이 끝나면 샤워 후 가방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열공함.


프린스턴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1962~1965, 4년 동안 경기당 평균득점 30점, 리바운드 11.8개.


1964년 도쿄 올림픽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에 선발되고 팀의 주전 가드로 금메달을 획득함.


1964년 방학 때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중 민권법의 통과에 감명을 받음.


농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각종 정치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함.


1964년과 1965년에 전미 최우수 대학선수로 선정됨. 1965년에는 만장일치 College Player of the Year 로 선정됨. (1965년 프린스턴 대학을 NCAA Final 4에 진출시킴)


1965년 프린스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함. 뉴욕 닉스는 드래프트에서 연고권 지명을 행사에 그를 선택함.


그는 뉴욕 닉스에 입단하는 대신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에 유학가서 정치, 경제, 철학을 공부함. 옥스퍼드 학생 시절 이탈리아 1부리그 프로팀인 올림피아 밀라노에 입단해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합장으로 날아감.


그는 1965–66 시즌 올림피아 밀라노가 유럽 챔피언컵에서 우승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함.


옥스퍼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67~68 시즌 뉴욕 닉스에서 프로 농구선수 생활을 시작함.


1977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동안 그는 뉴욕 닉스 주전멤버였고, 올스타에 1회 선정됨.


프로농구 선수 시절 그는 정치행사에 단골로 참여했고,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하기도 함. 프로농구에도 독점금지법을 적용시키기 위해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증언을 함.


그가 주전으로 뛴 뉴욕 닉스는 1970년과 1973년에 NBA 챔피언에 오름. 뉴욕 닉스가 우승!!


1977년에 은퇴 후 정치가의 길을 감. 맨 밑바닥부터 다져나가라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1978년 뉴저지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함.


35살인 1978년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됨.


연방 상원의원 임기 중이던 1983년에 농구 명예전당에 입성함.


정치인으로 제3세계 부채 탕감, 인종차별문제 극복 등 소수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섬.


18년 동안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후 2000년 민주당 대선후보에 도전함.


민주당 경선에서 앨 고어 부통령에게 패배함. 정계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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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9-14 12:49:24

빌 브래들리 인가 봅니다. 농구를 대충 한 선수가 아니네요
아마추어 커리어는 역대급이군요. 그것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WR
2016-09-14 12:59:39

필 잭슨이 1990년대 중반 어느 잡지에서 말하길 자신은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지닌 사람을 두명 만났는데, 마이클 조던과 빌 브래들리라고 했습니다. (브래들리의 경우 농구적인 재능만을 말한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2016-09-15 23:06:13

프린스턴 대학이 모션 오펜스로 유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아이비 리그이고 엘리트 운동 유망주들이 가는 곳은 아니기에 NCAA 1부 리그라도 다른 컨퍼런스 메이저 대학들과는 차이가 확연한데...


그 프린스턴 대학을 전국 랭킹 Top3로 이끌었죠. 뭐 엄청 대단한 거긴 한데, 인디애나 주립대를 준우승까지 이끈 래리 버드가 쬐끔 더 대단해보이긴 합니다.


브래들리의 프린스턴이든, 버드의 인디애나 주립이든... 진짜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수준의 팀들인데 단 한 선수의 힘으로 전미 탑 랭킹 팀들이 된거죠.

WR
2016-09-16 02:14:44

79년도 인디애나 스테이트는 정말 막강한 팀이었습니다. 버드의 역할이 단연 크지만 칼 닉스라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2016-09-14 13:48:12

대학때는 대단하긴한데 프로는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명전에 가긴하네요
이런거보면 팬들의눈높이보다 후한면이 있는듯합니다

Updated at 2016-09-14 15:28:03

NBA 명예의 전당이 아니라 농구 명예의 전당이기 때문입니다. NCAA 커리어로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거라고 봐야죠. 비슷한 케이스로 랄프 샘슨이 있구요. 이때문에 MLB 명예의 전당인 야구와는 기준차이가 확연하게 날수밖에 없습니다. 팬들은 그래서 NBA 명예의 전당이 따로 있으면 좋을텐데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죠.

WR
2016-09-14 16:02:07

네~ 그래도 뉴욕 닉스를 두번 우승시킨 것은 지금 보면 대단합니다. 최근 몇년을 보면 드림팀으로 선수를 구성해도 뉴욕 닉스는 우승 못할 거 같아서요. 73년에 우승할 때는 브래들리가 파이널 MVP를 받아도 됐을 만큼 활약이 좋았습니다. 그 해에 올스타에도 선정되었구요.

2016-09-15 23:02:18

솔직히 정치적인 후광이 전연 없다고 보긴 힘든 케이스라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 남겨진 스탯에 비해, 그의 플레이를 직접 보았던 선수들의 평가는 단연 높구요, 스탯 이상의 임팩트를 지닌 농구 천재라고 볼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아마추어 커리어로 명전 갔다고 한다지만, 뭐 그렇게 치면 크리스챤 레이트너도 명전 보내줘야죠. 농구 명예의 전당은 후하다 박하다를 떠나서 기준이 좀 오락가락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WR
2016-09-16 02:19:18

레이트너도 결국은 명전에 갈거라 생각합니다. 프로 커리어는 크게 저평가된 선수입니다.

그 친구 대학시절에 제가 엄청 싫어했는데(정말 못된 선수였죠), 은퇴 후 커리어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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