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이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이유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데는 그의 스탯, 각종 수상실적, 우승회수 뿐 아니라 그 이전까지 지속되어 오던 NBA의 통념을 모조리 깨부수고 연속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깨부순 기존의 통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NBA에서 우승하려면 반드시 올스타 센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득점왕을 보유한 팀은 NBA 우승을 할 수 없다.
세 번째, 가드의 득점에 크게 의존하는 팀은 NBA 우승을 할 수 없다.
1. 당대의 명감독 팻 라일리는 우승을 위해서는 팀의 중심이 되는 빅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NBA에서 우승하려면 반드시 올스타 센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라일리 뿐 아니라 당시에 모든 전문가들과 구단 감독의 공통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센터라는 것은 현재 기준으로 말하면 공격 주도형 파워포워드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 NBA 역사에서 올스타 센터를 보유하지 않고 우승한 팀은 1975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유일했습니다. 프로농구가 NBA와 ABA로 나눠져 있던 시절이었는데, 시즌 48승을 올린 워리어스는 릭 배리의 맹활약으로 NBA 파이널에서 워싱턴을 완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워싱턴은 시즌 60승을 거둔 팀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똑같이 시즌 60승을 거둔 셀틱스를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지만 워리어스에 업셋 당하고 말았습니다.
1979년에 우승한 시애틀은 잭 시크마라는 걸출한 센터를 보유했습니다. 시크마는 시대를 대표하는 백인 센터였고, 7년 연속 올스타에 선발되는 활약을 펼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 살짝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시카고가 우승을 이어가기 직전에 백투백 챔피언에 오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빌 레임비어라는 올스타 센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레임비어는 4차례 올스타에 선정된 리바운드왕 출신 센터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올스타급 센터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공격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피스톤스가 세 번 파이널에 올라 두 번 우승했을 때, 공격에서 센터 역할을 제임스 에드워드가 주로 맡았습니다. 상대 수비가 손을 쓸 수 없는 페이드 어웨이 슈팅 능력을 보유한 에드워드는 공격을 주도한 피스톤스의 빅맨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그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팀입니다. 공격과 수비에서 Eight men rotation을 구사했는데, 첫 번째 선수와 여덟 번째 선수의 경기장에서의 비중이 역사상 모든 팀들 중에서 가장 차이가 나지 않았던 팀입니다. 누가 첫 번째 선수이고, 누가 여덟 번째 선수인지 구별조차 안 갈 정도였습니다. 토머스, 듀마스, 존슨 3명의 가드가 동시에 플레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레임비어-마혼-샐리-로드맨-듀마스라는 극단적인 수비 라인업을 세우는 경우도 아주 가끔씩 있었습니다.
2. 공룡시대였던 1950~51 시즌 이후 조던이 우승하던 1991년까지 시즌 득점왕을 보유한 팀이 우승한 것은 루 알신도어(카림 암둘 자바)의 1971년 밀워키가 유일했습니다. 그때도 프로농구가 NBA와 ABA로 나눠져 있던 시절입니다. 오스카 로버트슨과 알신도어의 찰떡 궁합으로 밀워키 역사상 유일한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그 이후 득점왕을 보유한 팀은 NBA 우승을 할 수 없다는 통념이 굳어진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런 팀은 공격 루트가 단조로워서 쉽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규시즌보다 템포가 느리고 타이트한 플레이오프에서는 공격 루트의 다양성이 더욱 요구됩니다. 시카고의 필 잭슨 감독 조차도 팀이 우승하려면 마이클 조던이 득점왕을 내려놔야 된다고 생각했고, 조던을 설득해서 그가 득점 타이틀 포기를 마음먹게 했습니다. 실제로 1990~91 시즌은 그렇게 진행이 되었고 시즌 중반까지 조던은 득점 3위에 머물었고 4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시즌이 끝나자 조던은 또 다시 여유 있게 득점 1위에 올랐고 팀도 역사상 처음으로 60승 고지를 넘었습니다. 팀의 우승을 위해 조던의 다득점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조던은 여섯 번 우승하는 동안 여섯 번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3. 위에서 가드의 득점에 크게 의존하는 팀은 NBA 우승을 할 수 없다고 썼지만 당시 NBA의 통념은 이보다 훨씬 강해서 가드가 팀의 중심인 팀은 우승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믿음이었습니다. 87년과 88년 매직 존슨의 중심이 된 레이커스가 백투백 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 레이커스는 가드 중심의 팀이 아니라 갈락티코에 가까웠습니다. 제리 웨스트가 이끄는 프론트진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데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LA를 동경했기 때문에, 레이커스에는 항승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습니다. 87년과 88년 우승팀에는 전무후무하게 역대 넘버1 드래프트 출신이 네 명(카림, 탐슨, 매직, 워디)이나 있었고 이들은 모두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1985년 우승 당시에는 카림, 매직, 워디와 함께 밥 맥아두, 자말 윌크스를 보유했고 이들 5명은 훗날 모두 명예전당에 입성했습니다. 80년대에 레이커스와 식서스 또는 레이커스와 셀틱스가 파이널에서 맞붙을 때면 마치 올스타전을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레이커스 말고도 극단적으로 화려한 멤버를 보유한 대표적인 팀은 85~86년 셀틱스입니다. 당시 주전은 버드, 맥헤일, 패리쉬, 데니스 존슨, 대이 에인지였고 빌 월튼은 해당시즌 식스맨상 수상자였습니다. 이들 여섯 중에 에인지를 제외한 다섯 명이 명예전당에 올랐습니다. 그런 이유로 85~86년 셀틱스가 역대 최강팀에 반드시 꼽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해 래리 버드는 팀에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와 스틸 모두 1위였습니다. 근래 르브론과 달리 볼과 공격이 버드에게 쏠리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여섯 번 우승할 때 시카고 불스는 진정으로 가드(조던) 중심의 팀이었습니다. 독설로 유명한 어느 전문가는 시카고 불스의 팀 성격을 두 명의 올라운드 플레이어(그중 한명은 역대급 슈퍼스타)와 10명의 롤 플레이어로 구성된 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랜트가 롤 플레이어였는지는 의문스럽고 로드맨이 롤 플레이어인 것은 맞지만 그 롤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토니 쿠코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에 가까웠다는 게 저의 생각이지만, 그 전문가는 불스의 핵심을 찌른 것이 분명했습니다. 1995년 시즌 막판에 조던이 불스에 합류한 후 시카고는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떠오르는 강팀인 올랜도를 만났습니다. 기자들이 필 잭슨에게 올랜도의 시킬 오닐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고 물었을 때, 잭슨 말하길 “우리는 오닐을 막을 18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의 뜻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불스의 센터였던 롱리, 웨닝턴, 퍼듀가 범할 수 있는 파울 개수의 합이었습니다. 그 시리즈에서 불스는 패했지만 다음해 퍼듀를 로드맨과 바꾼 이후에 올랜도를 다시 만났을 때는 모든 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91년에 처음 우승했을 때 파이널에서 팩슨이 맹활약했고, 92년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는 조던이 빠진 사이 벤치멤버들이 승리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93년에는 팩슨의 역전 삼점슛에 이은 그랜트의 블락으로 불스가 우승했고, 96년에는 로드맨의 맹활약이 있었고, 97년에는 스티브 커의 결승골이 있었습니다. 불스는 여러모로 참 특별한 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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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의 조건은 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