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이 진심으로 좋아했던 선수
찰스 오클리는 시카고 불스에서 86~87 시즌과 87~88 시즌에 전 경기를 소화하며 경기당 13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낸 파워 포워드였고, 불스 팀에서의 위상은 마이클 조던 다음가는 2인자였습니다. 87~88 시즌에 마이클 조던은 시즌 MVP, DPOY, 올스타 MVP, 슬램덩크 챔피언을 휩쓸었고 불스는 정규시즌 50승을 거둬 센트럴 디비전 2위에 올랐습니다.
87~88 시즌이 끝난 직후 구단 운영의 전권을 가지고 있던 제너럴 매니저 제리 크라우스는 보조코치 필 잭슨을 불러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견을 타진했습니다. 크라우스는 주전 백인 센터 데이브 코진의 공격과 수비 능력으로는 불스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기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몸의 힘만을 이용하는 찰스 오클리의 플레이 스타일은 발전의 한계가 있어, 스피드가 뛰어나고 기량도 발전하고 있는 호레이스 그랜트가 장기적으로 오클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보조코치 필 잭슨은 크라우스에게 선수들의 장단점을 평가해서 보여줬는데, 크라우스는 잭슨의 평가능력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크라우스와 잭슨은 오클리를 뉴욕 닉스의 백업 센터 빌 카트라이트와 트레이드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잭슨은 뉴저지 네츠에서 선수 말년을 보내면서 뉴욕 닉스에 신인으로 들어온 빌 카트라이트의 플레이에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두 차례의 큰 부상을 당하면서 공격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카트라이트의 수비 능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크라우스와 잭슨은 생각했습니다. 근래에 닉스에서 패트릭 유잉의 백업센터로 활약하면서 카트라이트는 얼마나 큰 부상을 당하든 간에, 자신이 막아야 할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수비할 때는 자신의 몸뚱이를 상대방에 던져 왔습니다. 상대방을 쬐려보는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카트라이트와 대적하는 상대팀 센터는 기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스의 공격 전술을 담당하던 보조코치 텍스 윈터도 코진-오클리의 조합보다 카트라이트-그랜트의 조합이 자신이 전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 트레이드에 찬성했습니다. 뒤늦게 트레이드 사실을 통보받은 덕 콜린스 감독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습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중요한 결정을 함부로 해대는 크라우스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고, 오클리의 부재가 당장의 전력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오클리의 트레이드 소식을 뒤늦게 접한 마이클 조던은 경악했습니다. 분노가 폭발한 조던은 자신도 팀을 떠나겠다고 크라우스에게 소리쳤습니다. 사실 크라우스가 오클리를 트레이드한 또 다른 이유는 오클리와 조던이 너무 가까운 사이여서 팀 전체의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오클리를 조던의 동생이라고 불렀고, 그는 디트로이트의 릭 마혼이나 빌 레임비어가 조던에게 거친 파울을 할 때마다 그들과 주먹다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던의 보호자임을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고, 오클리의 터프한 보복 때문에 상대팀 선수가 마이클 조던에게 거친 파울을 범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제리 크라우스-필 잭슨-텍스 윈터는 팀이 마이클 조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을 바꾸고 싶었고, 당장의 성적보다는 팀의 밸런스를 더욱 중요시 했습니다. 반면에 덕 콜린스 감독은 수십가지의 다양한 작전을 구사했지만,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팀이 조던에게 더욱 의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오클리와 카트라이트의 트레이드 이후 88~89 시즌이 열렸는데, 시카고와 뉴욕은 상반된 트레이드 효과를 봤습니다. 오클리는 유잉과 호흡을 맞춰 뉴욕 닉스를 강팀으로 이끌었지만, 카트라이트는 코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센터처럼 보였습니다. 주전 파워포워드 자리를 맡은 그랜트는 오클리의 공백을 메꾸지 못했습니다. 덕 콜린스는 마이클 조던에게 포인트 가드를 맡기는 비책을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팀내 조던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고, 성적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한달동안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았던 조던은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해서, 플레이오프 막판에 기력이 소진되는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정규시즌이 마무리 되었을 때 뉴욕 닉스는 52승 30패로 애틀랜틱 디비전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전년도의 38승 44패와 비교해서 일취월장의 성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시카고는 전년도의 센트럴 디비전 2위에서 5위로 수직 낙하했습니다.
뉴욕 닉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식서스를 3-0으로 완파하고 컨퍼런스 준결에 올랐습니다. 시카고는 강팀 클리블랜드와 1라운드에서 맞붙었으나 조던의 The Shot으로 캡스에 3-2 승리를 거두고 컨퍼런스 준결에 올라 닉스와 맞대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결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고,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펼쳐진 1차전에서 조던은 34득점(야투율 64.7%) 10리바운드, 12어시스트의 맹활약을 펼친 반면에, 오클리는 크게 부진했습니다. 시카고는 1경기를 잡았고 뉴욕은 2경기에서 이겨 1-1인 상황에서 시카고로 옮겨 3차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3차전 시작에 앞서 시카고 관중들은 상대팀 선수로 소개된 오클리에게 큰 환호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3차전은 양팀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나와서 매니아에 소개합니다. 뉴욕 닉스 진영에서 닉스의 가드 마크 잭슨 공을 잡았을 때 그랜트가 그 공을 쳐내서 밖으로 흘렀고 양팀의 여러 선수들이 그 공을 쫓아 몸을 날렸습니다. 오클리는 자신이 공을 잡은 줄 알았는데 조던이 그 위를 덮쳤고 심판은 점프볼을 선언했습니다. 오클리는 화를 내며 자신이 파울을 당했다고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자신을 덮친 선수가 조던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뒤얽힌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양 선수는 마치 연인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조던이 상대팀 선수에게 저런 미소를 보낸 적은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조던는 너무 까다롭고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어느 누구와도 오래 친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찰스 오클리입니다. 그가 뉴욕 닉스에 트레이드 된 이후 불스와 닉스의 라이벌 관계는 더욱 심화되었고, 조던이 은퇴한 1993년까지 두 팀이 만나면 험한 분위기 속에서 전쟁과도 같은 육탄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던과 오클리는 대놓고 얼굴을 붉히지 않았습니다. 오클리는 닉스에서 한번 올스타에 선정되었지만 크라우스의 예언대로 스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오클리의 한계점을 간파한 팻 라일리는 그를 대신하기 위해 찰스 스미스와 앤써니 메이슨을 주전으로 기용했습니다.
오클리와 조던은 지금도 서로 철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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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리형님도 너무 너무 터프하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