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스탯은 세이버 매트릭스가 아닙니다.
스포츠에 있어서 통계학적 요소를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객관적이기를 원하지만 주관이 완벽하게 빠질 수 없고 객관적인 관점을 취하더라도 애당초 데이터를 제대로 뽑아낼만한 능력이 있는가는 또 다른 얘기니까요. 통계학은 이러한 인간의 약점들을 어느정도 정확하게 채워줍니다. 객관적인 숫자와, 주관이 들어가지 않은 데이터를 가지고 수치로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대중화된 인기 스포츠 거의 모두에서 이러한 통계적인 요소는 더이상 어색한 요소가 아닙니다.
제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NBA에서 PER나 WS로 시작된 2차 스탯이 주목되기 시작한건 07-08 시즌 언저리였을 겁니다. 옆동네 야구에서는 세이버 매트릭스가 나날이 발전해가듯이 이와 같은 통계적 요소를 스포츠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농구는 야구만큼 기본적으로 기록되는 스탯들이 적지 않았기에 축구에 비해 이러한 노력이 수월했고,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은 이러한 클래시컬한 1차 스탯을 가공해서 뽑아내는 방식의 PER나 WS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2차 스탯, 더 넘어서 단순 스탯이 이 선수의 기량을 정확히 나타내는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1) 선수의 기량은 스탯으로 정확히 반영되는가 / (2) 기록된 스탯으로 가공된 2차 스탯은 선수의 기량을 제대로 나타내는가 정도로 요약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1)같은 경우는 주로 스탯 무용론나 강팀/약팀에서의 스탯 허상론 등이 얘기될 수 있겠고 (2)같은 경우에는 애당초 가공된 PER나 WS, BPM 등의 도구가 스탯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등이 얘기될 수 있습니다. 매니아에서의 2차 스탯 논쟁을 보면 이것들이 엉켜서 얘기되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번에 주로 중점을 두고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2) 쪽이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통계적인 요소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세이버 매트릭스로 대표되는 야구입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농구, 축구와 다르게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타자와 투수와의 승부로 기본적인 플레이가 진행됩니다. 야수들은 수비라는 요소로 간접적이게 이러한 대결에 관여하긴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그 공을 받아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존재하더라도 극히 미약한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타자는 어느 상황이든지 장타를 때려내어 루 상에 있는 주자를 더 많이 진루시키고 자신 역시 더 많은 베이스를 자주 진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야구에서도 수비적인 요소, 포지션 적인 요소, 주루 플레이 등을 고려하여 타순을 고정하고 선발 라인업을 짜기는 하지만 이들이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은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투수의 공을 승부하여 더 많은 베이스를 진루하는 것. 1번 타자든 9번 타자든, 포수든 유격수든 이것은 항상 동일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자에게는 안타보다는 홈런이 나으며 어떠한 상황이든 2루타보다는 3루타가 유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을 한줄로 늘여세워 평가하기에 매우 편리할 뿐더러 신뢰성도 담보합니다. 이것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OPS에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이고, 타격을 넘어서 전 포지션을 이러한 하나의 수치로 늘여세우는 WAR가 선수평가에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농구는 야구와 매우 상황이 다릅니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더 많은 베이스를 진루하는 것이 목적인 타자와 달리 농구는 포지션에 따라 자신이 맡아야하는 롤 자체가 매우 상이합니다. 이것은 포지션 뿐이 아니라 그 선수의 특성이나 감독의 전술적 판단에 따라, 혹은 경기마다 자신의 매치업 상태에 따라 자신의 팀 동료 특성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바뀝니다. 브루스 보웬과 카멜로 앤써니는 같은 스몰포워드지만 그들이 경기 내에서 보여주어야 할 경기 내용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크리스 보쉬는 토론토에서나 마이애미 초기에서나 같은 파워포워드로 플레이 했지만, 토론토에서 기대되는 그의 역량과 히트에서 기대되는 그의 역량은 매우 다릅니다. 보스턴 이적 직후의 케빈 가넷은 미네소타 시절에 비해 모든 스탯이 거의 감소하는 추세에 이르렀지만 그가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미네소타 시절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경기 내에서도 앤드류 보거트가 팀 던컨을 상대로 보여주는 플레이와 데이비드 웨스트를 상대로 보여주는 플레이는 매우 달라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같은 카테고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어 제리 웨스트가 그의 전성기 때 보여주던 야투율과 드웨인 웨이드가 그의 전성기 때 보여주던 야투율을 단편적으로 비교하는 것 조차 오류 투성이일 경우가 많습니다. 스티브 내쉬가 아마레, 조 존슨과 함께하던 그의 첫 MVP시절의 어시스트 수치와 아마레가 시즌 아웃되고 조 존슨이 이적한 후에 디아우나 라자 벨 등과 플레이하면서 기록한 어시스트 수치를 동일선 상에서 바라보는 것 역시 힘들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야구에 비해 농구는 셀 수도 없는 많은 변수에 의해 선수들의 플레이가 변하기 때문에 야구에서의 OPS와 같은 일률적인 평가 방법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이러한 통계적인 기술이라던지 아니면 더 효율적인 새로운 평가 기준이 등장하여 OPS나 WAR에 버금가는 신뢰도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수치가 나타날 수는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불완전성이 많아서 편리성으로 대강 사용되는 OPS의 신뢰도 조차도 따라갈 수 있는 농구에서의 2차 스탯은 단연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구에서 세이버 매트릭스가 전통적인 야구 가치관을 깨부수는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만, 농구에서 이러한 2차 스탯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도는 애당초 전통적인 가치관을 깨부술만큼 아직 강력하지도 못합니다. 이것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겠지요. 물론 같은 논리를 가지고 글 서두로 넘어가서 1차 스탯을 포함한 (1)에서의 스탯 무용론을 들고나온다면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름 PER나 WS, WS/48, VORP, BPM, RPM 등의 수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선수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고 그것은 스포츠를 참고하고 즐기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야구에서의 세이버 매트릭스와 같이 선수들을 일률적으로 평가하고 구분하면서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아직 너무 이를뿐더러 그러한 도구 자체의 신뢰성 자체가 아직은 떨어집니다. 게다가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이러한 통계적인 수치는 지나치게 변동성이 심하고 관련 변수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야구를 기반으로 발전한 세이버 메트릭스와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 성격의 것들이죠. 단순히 2차 스탯으로 뭉뜽그려서 야구의 2차 스탯과 비슷한 시선으로 농구의 2차 스탯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분명 오류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들에 너무 매몰되어서 시즌을 되돌아보거나 선수를 평가하게 된다면 분명 그것 자체의 오류에 빠져서 정확성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ps. 사족으로 이것은 축구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는 말이긴 합니다. 기본적인 클래식 스탯 수가 농구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축구는 더더욱 그렇지요. 경기당 슈팅수나 유효 슈팅 전환률 등의 수치를 개인적으로 별 신경 안쓰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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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치화된 자료만큼 '객관성'을 보유하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스탯에 눈이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탯을 되도록 배제한 평가는 사람마다 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