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2 19:36:01
87년 데이빗 로빈슨
93년 크리스 웨버
┏Penetration┓ from mobile
2012-02-22 19:36:45
그리핀도 그렇지 않았나요?
2012-02-22 19:37:33
그리핀도 나름 독보적이었죠.
2012-02-22 19:38:09
로즈때도 존월때랑 비슷하지 않았나요?
2012-02-22 19:41:10
08년도 당시에는 비즐리가 워낙 NCAA를 학살하고 다녀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죠
2012-02-22 19:41:12
제 기억으로는 메요, 비즐리랑 Top3로 묶어서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막판에야 시카고가 로즈 뽑겠다는걸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면서 로즈 1픽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요.
2012-02-23 00:01:02
 그때 로즈는 비즐리랑 꽤 말이 많았습니다. 
2012-02-22 19:38:09
절때적 -> 절대적
2012-02-22 19:45:05
2012-02-22 19:44:36
르브론제임스...........데뷔하기전부터 난리였었죠....
2012-02-22 19:50:55
96 아이버슨도 나름 아이버슨 드래프트였다고 어디서 들은거같은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ㅜㅜ
2012-02-22 19:54:48
그당시 분위기가어떗는지는 몰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박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던걸로기억하는데 독보적인 1픽 후보엿을까요 아이버슨이. 아무래도 사이즈가 너무작아서..궁금하네요
2012-02-22 20:06:45
아이버슨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미식축구 쪽으로 진로를 잡을지 아니면 농구로 갈지에 대한 관심이 굉장했었죠. 드래프트에서도 1픽은 당연히 아이버슨이라는 식이었고요.
2012-02-22 19:53:03
르질라요
2012-02-22 20:41:34
제독과 웨버가 빠지다뇨...
Edited at 2012-02-22 20:51:54
확실치 않지만 케년 마틴때도 워낙에 인재가 없어서 나름 독보적 1픽 아니었나요? 그리핀때도 그리핀이 1픽 나머진 모름이라고 되어 있던 거 같았어요
그렉오든때는 오든이 압도적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포틀의 경우는 로이가 있었기 때문에 듀란트를 안 뽑았지만, 팀 사정에 따라서 확고한 1픽은 아니었다고 봐요..
2012-02-22 21:07:30
아마 포틀랜드가 로스터에 신인 D.하워드를 가지고 있었어도, 1픽으론 오든을 뽑았을 겁니다.
당시 언론의 집중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빌 러셀의 재림이니, 샤크의 뒤를 잇는 차세대 센터 재목이
될거라느니 주목이 대단했었죠.
[V11]MVP♣내쉬 from mobile
2012-02-23 00:11:49
오든은 확고한 1픽이었죠.
당시 언론 주목도는 굉장했습니다.

로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어느 팀이 1픽을 쥐든 무조건 오든이었다고 봅니다
2012-02-23 00:12:39
마틴도 당시엔 나름 독보적이었죠. 뎁스가 얇은것도 있지만 그해 대학무대에서 워낙 인상적인 활약 펄쳐서...  

오든은 압도적이었죠. 저는 오히려 듀란트가 오든 1픽을 정말 위협할 정도로 주목받았나란 인상이었는데 말이죠.
2012-02-26 23:01:57
제 기억에 의하면 '듀란트는 향후 몇 년 안에 득점왕 타이틀을 따낼 것이고, 커리어 동안 득점왕을 몇 번이고 따낼 것이다. 그리고 1픽은 오든이다.'라는 분위기가 농후했었죠.
Edited at 2012-02-27 09:45:02
답글이 엄청 많았네요.. 오든을 낮출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전 그 때 오든과 듀란트가 잡지 표지에 같이 나와있는 것을 몇 번 본거 같기도 해서요.. 그리고 몇년안에 득점왕 타이틀을 따낼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 자체가 보통 해면 1픽 아닐까요.. 그래도 강한 센터가 있으면 고민할만한 사항일 거 같은데..  
오든의 엄청난 포텐과 그때 센터의 부족함이 함께 모이고 최후로 부상이 짬뽕으로 믹스되면서 생겨난 비운의 스타네요..
2012-02-27 12:41:36
오히려 제 코멘트에 기분이 상하시지 않았을지 걱정되네요. 그랜트힐33님께 태클을 걸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ps. 듀란트의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오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과적으론 역사상 최악의 1픽이 되어버렸지만 그 때만 해도 역대 센터 중 톱 5 정도로 맥시멈을 잡았으니까요. 아마 오든만 없었다면 그 해는 당연히 '듀란트 드래프트'였을거라 확신합니다.
Edited at 2012-02-27 12:55:40
저도 괜히 신경쓰실까봐 다시 댓글을 남겨요.. 전 위의 댓글이 5개나 달려서 기쁜 뜻이 더 담겨있었어요 내 댓글에 이렇게 꼬리 물리긴 처음이거든요.. (이런 기분 처음이야)
그런데 제가 꼭 집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듀란트 지금도 하이라이트 받는것에 약한데 그때 드랲때 듀란트도 나름 엄청 하이라이트와 기대를 받았다고요..(왠만한 다른 해 1픽과 비슷하게) 물론 오든에 비하면 약하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끝없는 답글은 제가 또 답글남기게 되테니 여기서 끝~)
2012-02-22 21:07:26
던컨과 르브론.
2012-02-22 22:02:24
미국에서 농구를 배운 선수가 아니라 그렇지 야오도 독보적이지 않았을까요?
당시 가장 강력한 1픽 후보로 꼽히던 (실제로도 2픽으로 뽑혔던) 제이 윌리엄스가
2픽으로 뽑힌것도 '야오니까 그럴만하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구요
제가 기억이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제독의 경우에는 군대를 다녀오겠다는 본인의
의지와 맞물려서 1픽이 당연시되는 상황은 아니었었다고 들은것 같은데 아닌가요?
2012-02-22 23:52:42
랄프 샘슨이나 매직 존슨, 빌 월튼 등도 그 해의 절대적 1픽이었지만, 역시 이 분야의 본좌는 카림입니다.

당시 카림이 NBA로 갈 지 ABA로 갈 지를 놓고 양 단체 간에 극심한 경쟁이 벌어졌는데, NBA에서 1픽을 뽑은 밀워키 벅스는 역대 최고 연봉(당시엔 루키 스케일 없음)을 제의합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ABA는 카림에게 아예 백지수표를 제시합니다. 알아서 받고 싶은 만큼 쓰라고요. 그리고 만약 1픽을 뽑은 팀이 그 금액을 부담하지 못할 때는 ABA의 모든 팀이 함께 부담해 주기로 합니다. 

카림은 NBA행을 택했고 ABA는 훗날  NBA에 합병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 루키 한 명을 영입하려고 리그 전체가 대동단결해 백지수표를 내민 것은 제가 아는 한 이때가 유일합니다. 글자 그대로 '절대적 1픽'이었던 거죠.
2012-02-23 13:01:02
엠제이사마 팬이라그런지 79년 매직이랑 82년 워디가 생각나네요. 
근데 그러고보니 82년 드랲트에 도미닉 윌킨스가 있지 않았나요? 그 당시 분들의 대학성적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몰라서 이건 확고한 1픽이라고 단정짓진 못하겠네요..

분위기상으론 90년도 픽도 데릭콜먼이 뭔가 상당한 영향력이었던거같은데..(게리페이튼2픽시절..)
야오밍의 경우는 실력뿐만이 아니라 경기외적인 요소도 추가되어서 1픽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