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의 싸움꾼 대니 에인지도 겁먹을 때가 있네요
1993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입니다. 7차전까지 가는 격전이었죠.
대니 에인지가 마이클 케이지와 맞장 떴다고 해서 봤더니 그런 건 아니었네요.
상황을 이해하려면 마이클 케이지가 누구인지 아셔야 합니다.
케이지도 사나운 선수였지만, 저보다 3년 전 시애틀에는 아마도 nba를 통틀어 제일 터프하고 사나운 쌈꾼이 하나 있었죠. 재비어 맥대니얼이라고... 제가 90년부터 뉴욕에 살았었는데, 92년 닉스로 온 이 맥대니얼은 뉴요커들이 'mad dog(미친개)' 라고 부를만큼 엄청나게 사납고 싸움을 잘하는데다 싸이코끼까지 있어서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없다시피했죠. https://www.youtube.com/watch?v=7rl30h9jCII 천하의 찰스 오클리마저 맥대니얼 앞에서는 시비가 붙어도 확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쭈뼛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도리어 맥대니얼이 먼저 들어가죠. 맥다니엘의 성격이 거칠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오클리와 정말로 붙으면 사망 직전까지 갈 겁니다. 마이클 케이지도 성격이 거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싸움꾼이었다면 리썰 웨폰이 따로 없었겠지요. 오클리 영상을 올려주셔서 마이클 케이지와의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오클리와 케이지는 조던이 MVP를 차지하던 1988년에 리바운드왕을 놓고 시즌 종료까지 경쟁했습니다. 오클리는 전년도 리바운드 왕이었죠. 그런데 불스가 하루 먼저 시즌을 끝냈고, 오클리가 가까스로 리바운드 타이틀을 방어하는 듯 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마이클 케이지가 리바운드왕이 되기 위해서는 2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야 했습니다. 득점과 달라서 리바운드는 팀원이 몰아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케이지의 클리퍼스는 플옵 탈락이 확정된 뒤였기에 케이지는 그날 다리가 풀릴 정도로 미친듯이 뛰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케이지는 30개의 리바운드를 잡았고 경기 직후 탈진했습니다. 오클리에게는 미치도록 억울한 순간이었죠 |
케이지가 어떤 선수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