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T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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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18 04:27:26
최근 돈 넬슨감독의 달라스를 보면서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골든스테이트 워
리어스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메버릭스의 내시 핀리 노비츠키가 있었다면 워
리어스에는 티미와 리치몬드 그리고 멀린이 있었고. 돈 넬슨 농구는 런 앤 건
농구였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필라델피아의 레리 브라운과 상극이라 보면 되겠죠. 그리고 필
잭슨의 트라이엥글 오펜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공격옵션의 다양화를 추
구 합니다. 그만큼 수비에서의 약점이 있고
그리고 그는 볼핸드링이 좋은 선수를 좋아합니다. 이는 주완 하워드의 트레이
드를 통해서 증명되고 숀 브래들리의 밴치워머로의 썩히면서까지 라프란츠를
기용하는 이유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돈 많고 열성적인 구단주의 지원으로 앞으로 어떠한 하려한 맴버를 구
축 할지 기대됩니다.
최근 골든스테이트의 농구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너무 많지만 가장 아쉬운 점
은 리그 최하위의 백코드진입니다. 설명 할 필요도 없죠. 덩크 잘 하는 제이슨
리차드슨 만으로는 같은 지구의 백코드진에게는 한마디로 밥이라고 생각됩니
다. 슈라라는 괜찮은 6맨도 있지만 슈팅능력이 떨어지고. 래리 휴즈 제이슨
리 차드슨 3점 라인에 있으면 수비 안 해도 될 정도니 과거의 화려한 백코트농
구는 사라진지 오래죠. 래리휴즈. 제이슨 리차드슨. 안트완 제미슨으로는 제2
의 TMC 농구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워리어스 농구를 알리기 위
해서 전 골든 스테이트에서 뛰었던 3명의 명선수를 소개하고자합니다.
이들은 워리어스 팬들로 부터 TMC로 불리면서 최고의 런 앤 건 농구를
선보였습니다.
1. Score Machine
크리스 멀린
신장: 6' 7"
몸무게:215lbs
포지션: 포워드, 가드
출신학교: 세인트 존스
멀린은 1985년에 일라운드 7번 픽으로 워리어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
는 세인트 존스를 NCAA 파이널4로 이끌었다.
그리고 멀린은 그리고 211개의 자유투를 시도해서 189개를 성공시켜서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쟈유투성공률이 .896퍼센트를 마크한다.
멀린은 1987-88시즌 동안 부상으로 22경기를 빠지고 난 다음 44경기에
서 20.5포인트를 득점한 선수가 된다.
그리고 1988-89시즌에서 (월트 쳄벌레인 과 릭 베리) 다음으로 세 번째
로 높은 2000 점과 400리바운드 그리고 400어시스트를 한 시즌에 올리
는 세 번째 선수가 된다.
그리고 5년 동안 25점을 넘는 고득점으로 워리어스의 득점기계로 명성
을 쌓는다.
1978년 릭 베리에 이어서 1991년 올스타 게임에 스타팅 출전합니다.
"아마 지금일 꺼에요. 술을 마실 때는 행복할 수 없었어요. 전 항상 위험
했고, 죄의식에 빠져 있었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요. 하지만 전 대신 술을 마셨어요.
난 지금 평온해요. 내 가족은 건강하구요. 맑은 정신이라는 건 정말 대
단해요."
크리스 멀린의 은퇴 후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는 코너를 위해서 인터뷰
한 내용이다.
멀린 하면 생각나는 것은 옆집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인상과 창백하리 만
치 하얀 피부와 옆을 밀어버린 군발이 머리가 생각납니다.
제가 엔비에이를 처음 접했던 91년도 멀린은 정말 득점기계라는 별명처
럼 고 감각 득점을 터트리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바클리
와 조던의 열광적인 팬이었기 때문에
항상 득점면에서 그들의 경쟁상대였던 멀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
습니다. 전 멀린이 백인이라는 것도 몰랐고 그 당시 엔비에이를 접하기
위해서는 에이에프케이엔을 통한 통로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
리나라에 집중적으로 관심이 쏠렸던 때는 아마도
92년도 후반 93년 초였던 것으로 기역 되는군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는 afkn을 통해서 농구가 방영됐고 엘에이와 시카고 불스, 유타, 셀틱
스, 포틀랜드, 피스톤스 등 식서스 경기도 접할 수 있었죠 아마 멀린을
처음 봤었던 때는 92년도였고 그가 백인이란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
죠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엔비에이 역사의 한 획이라고 할 수
있는 드림 팀에 선발됩니다. 피펜, 멀린, 페트릭 유윙, 칼 말론, 바클리,
조던, 레리 버드, 대학생으로는 크리스챤 레이트너 등으로 구성된 드림
팀 1에 뽑힐 정도로 멀린은 슈퍼스타였습니다.
레리버드 은퇴 이후 멀린은 버드를 이을 백인선수로 믿었고 그때만 하더
라도 버드를 이을 충분한 실력도 있었죠 92~93시즌 25.8이라는 자신 생
애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죠 이해를 끝으로 멀린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
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멀린의 하락(무릅부상으로 인해서 58경기를 결장하면서)과는 다
르게 골든스테이트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기존의 팀 하더웨이와
92~93시즌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스프리 웰의 활약과 함께 93~94시즌
에 크리스 웨버가 합류합니다. 이 당시는 골든스테이트에 대한 기대는
정말 지금의 토론토나 워싱톤을 압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일단 라인업
을 보면
pg 하더웨이 - sg 스프리웰 - sf 크리스 멀린 - 파워포드 크리스 웨버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최강라인업이죠
그러나 이 시절은 1년도 못되어서 웨버의 돌출행동으로 워싱톤
으로 트레이드 당하고 멀린은 고질적인 무릎과 관절 부상으로서 거의 5
년 동안 부상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1995년도에 하더웨이가 마이에미로 떠나면서 6년 동안 멀린과
함께 워리어스를 이끌던 동료가 없어집니다. 돌출행동을 일으키는 라트
엘 스프리엘 만 남고요
엔비에이 인사이트 스텁에서 하더웨이 멀린 크리스 웨버가 함
께 나와서 인터뷰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정말 웨버라는 신인
은 센세이션이었거든요
나이키에서 신인을 바로 상품화했으니까 전 아직도 웨버로고가 있는 셔
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멀린은 96-97시즌 구단에게 트레이드
요청을 하지만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문에 못하고 97년 12월 인디에나
페이서스로 트레이드 됩니다.
인디애나에 트레이드 된 멀린은 정작 별다른 활약을 올리지 못하고 99-
00시즌에는 고작 5.1점으로 평균득점이 하락합니다. 후배인 제일
린 로즈의 성장으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말죠 그리고 마지막 엔비에
이우승 기회를 엘에이에게 무릎을 끓으므로서 자신의 케리어를 접습니
다.
저에게 있어서 멀린이 기역에 남는 이유는 농구를 처음 접하던 시절부
터 보아왔던 슈퍼스타 크리스 멀린이 너무나 초라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한때는 제2의 레리버드로 칭송받던 멀린도 부상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
고 은퇴하는 시즌까지 자신의 전성기때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죠
하지만 팬들에게는 워리어스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늙은 17번 노병
은 영원히 기억될겁니다.
2. Killer Crossover
팀 하더웨이
Height 6 Feet
Weight 195 lbs
Born September 1, 1966 in Chicago
College UTEP
1989년 1라운드 14번 픽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드레프트 됐었고
1996년 워리어스는 팀 하더웨이 와 크리스 게틀링으로 케빈 윌리스와
빔보 콜과 트레이드 됐다.
나이키광고에서의 "I got skillz"라는 문구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시카고의 농구장에서 기술을 연마하여
카버 고등학교의 스타플레이됐다.
UTEP의 학교 최다득점기록을 세웠다.
네이스미스를 우승해서 베스트 컬리지 플레이어로 선정됐었고
히트로 트레이드 된 후 96/97 디비젼 1위를 했었고
그 누구 보다 빨리 오스카 로버트슨의 5000포인트 2500 어시스트를 돌파했다.
"그는 너무 강압적입니다. 선수들이 마음대로 하게 놔두질 않죠. 이제 더 이
상 선수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일리도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는 더이상 또다른 타이틀을 따내지 못할 것 같군요.
그가 언제나 잘되길 바랄 뿐입니다."
달라스로 트레이드 됐을 때 가자인터뷰에서의 티미의 말이다.
자신의 선수생명 절반을 보낸 마이에미에서 방출 당한 티미는 시즌 초반에
엄청난 슬럼프를 겪었고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도미네이트 플레이어가 아니었
습니다.
달라스에서의 그의 위치는 내쉬의 백업 포인트가드였죠.
티미의 전성기시절은 워리어스에서 보낸 6년 동안이라고 생각합니다. TMC중
에서
가장 나중에 합류한 티미는 NBA 역사상 가장 화려한 백코트 농구를 만들어낸
팀의 일원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불과 2년 동안 함께 뛰면서 티미 23점 리치몬드 23점 멀린
25점이라는 가공할 득점력을 선보입니다.
빠른 탬퍼 농구로 과거의 센터농구의 틀을 부셔버리는 혁신적인 플레이스타일
로서 팬들에게 어필하면서 그 당시의 여타 다른 콤비들 보다 많은 팬 층의 지지
를 얻고있습니다.
물론 조던의 등장으로 가드 농구가 탄생했지만 열매를 얻기 위한 밑거름이 됐
다고 생각되어 지는군요 이들은 짧은 기간동안 플레이를 펼쳤지만 랜 엔 건이
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화끈한지를 알리는 매신져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화려하면서 빠른 티미의 속공은 이들 농구의 감초였고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3
점과 클러치 슛은 그를 가장 다이나믹한 포인트가드로 만듭니다.
그리고 클로스 오버
"클로스오버는 버디 프린스와 함께 UTEP 2학년 때부터 연습했어 그리고 점퍼
를 쏠 때나 어떤 상황에도 클로스오버를 썼지.
클로스오버는 내게는 정말 쉬웠어 마치 클로스오버를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은 클로스오버가 아니야 모든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기술
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난 그냥 농구골대로 가기 위해서 즐기면서 다리사
이로 드리블을 하지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게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
그리고 난 클로스오버를 할 때는 클로스오버를 한다는 생각을 안 한고 경기에
몰입했을 때 자연스럽게 발휘가 돼
만약 너가 클로스 오버를 해야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클로스오버가 아니야 "
클로스오버 시티에서 발취
이처럼 티미는 클로스오버를 그냥 드리블하듯이 하는 클로스오버의 달인입니
다. 아마도 클로스오버 만큼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록될 것입니
다. 그리고 그의 핑거롤과 체공시간을 이용한 골 밑에서의 점퍼는 그를 NBA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들죠.
암튼 티미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난 생각합니다. 덴버에서 제 기량
을 찾기를 기원하며
이 인형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to be continued ..............
리치몬드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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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NBP에서 제가 썼던 크리스 멀린의 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