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가치는 결코 과대평가되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조던/코비)
요근래 한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데 있어 우승의 가치가 과대평가된게 아니냐는 얘기가 자주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 근거부터 주장의 골자까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1. 우승횟수로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면 로버트 오리가 2000년대 최고 선수가 되는 민망한 사태가 발생한다?
자꾸 이런 유치한 이야기가 잊을만하면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 우승 중시한다는 미국 방송국에서조차 로버트 오리>>>>샤크/코비/던컨이라는 얘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우승여부가 별것 아니라는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지구상 어디에서도 내세우지 않는 이런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오는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애초에 한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할때 정규시즌의 성적은 당연히 고려되는 것입니다.
아니, 단순히 고려되는 정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커리어를 평가하는 최우선 요소는 정규시즌의 활약과 팀내 기여도입니다.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은 모두 정규시즌/플옵을 가리지 않고 한 팀의 공수 양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거나,
아니면 공격이나 수비 한쪽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팀 전력의 핵심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팀내 1인자나 다름없는 수준의 비중을 가진 조력자였습니다.
그처럼 이미 정규시즌에 대단한 활약을 한 선수들간의 커리어 우열을 논할때나 우승횟수니 더맨우승이니 논하는 것이지,
스티브 커, 데릭 피셔, 로버트 오리처럼 팀내 비중이 적은 선수가 반지만 많다고 역대급으로 올라서는게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왜 이런 무리한 비교를 끊임없이 꺼내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야구와 축구는 커리어에서 우승횟수를 농구만큼 크게 고려하지 않는데, 농구는 유독 우승을 과대평가한다.
이건 특성이 다른 스포츠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오류를 범하는 주장입니다.
야구는 모든 장면장면이 분절화되어있습니다.
한 선수의 타격이나 수비는 다른 제반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공격과 수비는 오로지 투수vs타자의 1대1 대결이고, 팀의 수비는 자기만의 명확한 담당구역과 역할을 정해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한 선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계로 정리하기가 무척 쉽습니다.
따라서 한 선수의 비율/누적스탯. 그리고 그 선수 관련 세이버매트릭스가 곧 그 선수의 커리어가 되고, 후대의 평가요소가 됩니다.
또한 야구는 게임 안에서 한 선수가 맡는 롤에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푸홀스! 니가 카디널스의 The Man이니까 넌 한타순에 두번씩 타석에 들어서도록 해라.'
'사바시아! 니가 양키스의 The Ace니까 넌 무조건 5일에 두번씩 등판해라.'
이런건 불가능하죠.
한 개인이 시즌성적. 나아가 플레이오프 성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있고, 또한 그 모든 것이 수치화되어있는 보기 드문 스포츠가 야구입니다.
그렇기에 한 선수의 커리어에 우승이 큰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이고,
우승반지가 고작 한개뿐인 월터 존슨이 역대 최고 투수로 불리는 것이며,
우승반지 하나 없는 테드 윌리엄스가 역대 세손가락에 꼽는 좌타자 소리를 듣는것입니다.
축구의 경우는 야구보다는 개인의 커리어에 중요 컵대회 우승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야구에 비해 개인이 한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 팀에 메시나 호날두같은 소위 '크랙'이 있느냐 없느냐는 팀의 공격력을 크게 좌우하고,
또한 실력있는 홀딩형미드필더나 풀/윙백이 있느냐 없느냐가 팀의 수비력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공격이나 수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월드컵우승, 리그우승이나 챔스우승같은 위대한 성취를 견인한 선수들은 훗날 커리어를 평가받음에 있어 상당한 메리트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농구의 경우는 에이스롤을 맡은 한 개인의 영향력이 그 축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축구의 경우,
'메시. 너는 지금부터 팀의 공격을 혼자서 프리롤로 주도하면서 동시에 상대편 에이스 공격수를 봉인해라.'
'이니에스타. 너는 지금부터 우리팀의 골문앞 최후방 수비를 진두지휘함과 동시에 공격시 볼운반을 전면적으로 담당하고, 최전방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해라.'
이런거 때려죽여도 안됩니다. 한 선수가 최후방 수비부터 최전방 공격까지 모두 아우르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런건 사이어인이지 지구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농구의 경우는 에이스급 선수 한명이 팀의 공격과 수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아예 팀의 중심을 맡는 1옵션선수의 성향에 맞춰서 팀 구성과 전술 자체가 갈아엎어집니다.
에이스의 성향에 따라 팀 전체의 공격과 수비스타일이 판이하게 갈라질 정도입니다..
한 선수가 팀의 공격을 전면적으로 주도하면서, 동시에 수비 전반에서도 팀의 핵심이 되는것이 가능한게 농구입니다.
농구의 플레이오프는 그렇게 구성된 30개의 팀 중 정규시즌을 거쳐 걸러진 16개의 상위팀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략과 지모를 총동원하여 우승을 향해 달리는 총력전입니다.
그 과정에서 쟁취한 우승은 곧 '에이스를 중심으로 짜여진 팀. 그리고 그 팀의 전술과 전략'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승팀 에이스의 평가가 크게 상승하는 것이고,
2번, 3번, 4번, 5번, 6번으로 우승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평가는 더욱더 상승하는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핵심이 된 전술과 팀 구성을 가지고 팀을 우승까지 견인했다는 의미니까요.
어디까지나 혼자서 우승할 수 있는것은 아니고, 팀원들이 받쳐줘야 하지만
타 스포츠에 비해 한명의 재능있는 선수가 가져가는 팀내비중 및 부담이 압도적으로 크며,
그렇기에 우승으로 인한 커리어상의 가점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끔은 04년 디트로이트처럼 확고부동한 에이스가 없이 팀의 짜임새만으로 우승하는 보기 드문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만,
그 경우에도 배드보이즈를 구성했던 중핵인 라쉬드, 빅벤, 프린스, 천시 등의 리그 내 평가가 크게 상승한 바 있습니다.
또한 04년 디트로이트처럼 절대적 팀내 비중을 가진 에이스가 없이 우승한 사례가 손에 꼽을만큼 적다는 사실이야말로
한명의 에이스급 선수가 팀의 정규시즌 성적과 우승 여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입증하는 사례가 아니겠습니까?
3. 어쨌든 농구선수는 스탯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스탯이 알파요 오메가다.
일단 정규시즌의 퍼포먼스나 스탯이 받쳐주지 않는 선수는 논란이 되는 역대급 선수순위에 들지도 못하니까,
어찌보면 참으로 중복되고 하나마나한 주장입니다. 스탯은 이미 한 선수를 평가하는데 있어 참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스탯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선수의 플레이가 분절되어있어서 모든 것을 수치화할 수 있는 야구에서조차 아직까지 한 선수의 퍼포먼스를 100% 통계화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물며 10명의 선수들이 정신없이 뒤엉키고 통계로 측정할 수 없는 연계전략이나 팀플레이가 한경기에서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단순히 득점-리바-어시-스틸-블락-FG%-FTA-FT%를 포함한 1차통계 몇개를 더하고 곱하고 나눠서 만든 세부스탯만으로 평가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발전된 통계는 높은 참고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통계가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으니 우승횟수가 에이스급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데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스탯이나 더맨우승 여부/횟수나 다 한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 중요한 하나의 평가요소입니다.
4. 우승만으로 선수의 우열이 가려지는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우승못한 선수가 실력적으로 더 못할것도 없는데.
이런 얘기도 자주 나오던데,
우선 우리는 한 선수의 절대적 실력에 대해 논하는게 아니라 커리어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칼 말론이나 팀 던컨이나 실력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습니까.
매직 존슨이나 오스카 로버트슨이나 실력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습니까.
선수의 절대적 실력을 재는것과 커리어상의 평가는 다른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역대급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끼리 실력이 아니라 '커리어'상의 우열을 가릴때
앞서 밝혔듯이 파이널에서의 우승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승여부는 자신이 절대적 역할을 맡는 전술로 리그 전체를 장악했느냐 하지 못했느냐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깟 16~28경기로 커리어 우열이 정해지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의 혈전은 정규시즌에 +16~28경기정도 추가적으로 치르는 단순한 보너스매치가 아닙니다.
그 어떤 선수도 정규시즌 우승한것만으로 펄쩍펄쩍 뛰며 만족하고 주저앉아버리지 않습니다.
선수들 인터뷰할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말이
'플레이오프에 대비하기 위해서......'
'파이널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입니다.
선수들도 하나같이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팀이 시즌 후반부 플옵을 대비해서 주전들을 쉬게 하고, 모든 팀이 플옵에 돌입하면 정규시즌과 비교도 안될만큼 전투적으로 경기에 임합니다.
심지어 정규시즌에는 선수들의 대처능력을 키우기 위해 작전타임조차 잘 안부를 정도로 플옵에 초점을 두고 시즌을 운용하는 감독도 있습니다.
플레이오프는 한 팀이 보여줄 수 있는 전력의 MAX를 뽑아내야 하는 최종적 경연의 장이고, 거기서 승리한 것은 단순한 정규시즌 16경기 더 이기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물론 우승하지 못한 선수에게도 각자 사정은 있습니다.
미네소타시절 가넷처럼 팀이 자신에게 맞는 구성원들을 맞춰주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조던시절의 피해자들처럼 올타임 넘버원급 팀과 자웅을 겨루어야 하는 불행을 겪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클러치타임에 누구누구의 슛만 들어가지 않았어도,
같은팀 동료 누구누구의 부상만 아니었어도,
팀원들만 좀 좋았어도,
종목을 불문하고 모든 스포츠의 '위대한 무관의 제왕'들은 천추에 남을 한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스포츠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수 1점. 문제 하나. 득표 1표 차이로
낙선자와 당선자. 합격자와 탈락자가.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게 세상입니다.
돌이켜보면 너무 아쉬운게 많은데, 현실은 냉혹하게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습니다.
이처럼 냉정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정상의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분들의 아쉬움과 한탄은 더더욱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큰 롤과 부담을 짊어지고 우승을 쟁취한 다른 위대한 선수들을 손가락질하며
'우승반지 저거 별 의미도 없어. 솔직히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동료만 좋았어도. 뭐만 어떻게 했어도.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한 커리어를 쌓지는 않았을거야.'
하고 비하하는 행위는 참으로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IF, IF, IF.... 가정은 누구나 할 수 있죠. 하지만 무수한 불안요소를 딛고 실제로 팀을 우승으로 견인하는건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승자들이 지나온 길을 살펴보면 다 쉬워보입니다.
하지만 그 승자들도 돌이켜보면 다 똑같은 한명의 도전자였습니다.
그 어떤 역대급 선수도 프리시즌부터 우승을 확신하며 뛰지는 않았습니다.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의외성이기에, 다들 가슴 한켠에 불안과 걱정, 그리고 고뇌를 안고 정상에 도전한 것입니다.
하여 우승의 가치가 별것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우승팀의 에이스를 폄하하는 것뿐 아니라,
우승에 도전했다가 안타깝게 실패한 다른 위대한 선수들의 도전마저 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도전자들은 커리어상으로 우승팀의 에이스에 비해 낮게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추억과 감동을 안겨줍니다.
우승 여부로 인해 갈린 커리어는 커리어대로 평가하면 되는 것이고,
가슴에 간직한 추억과 감동은 그대로 간직하면 되는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것은 인간사 모든 것에 통용되는 것입니다만,
패배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것은 스포츠만이 심심치 않게 보여주는 매력이 아니겠습니까?
승리로 인한 환희와는 또다른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준 위대한 도전자들을 애써 미화하기 위해
그들이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우승의 가치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던/코비 논쟁이 우승의 가치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과 연결되는것도 이해가 안갑니다.
삼척동자가 봐도 조던이 코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력과 커리어를 가졌다는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언론에서 코비를 끊임없이 조던과 비교하는 것은,
우승반지 갯수만 가지고 코비가 조던에 적은 차이로 근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코비를 제외하면 동포지션에서 조던과 그나마 비교가능한 선수를 찾을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코비가 조던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고,
코비팬들 중 그 누구도
'코비가 반지 5개고, 조던이 6개니까 하나만 더 따면 조던=코비'라고 말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비가 조던에 근접했다'는 표현 자체를 좀스럽게 문제삼으면서
'코비의 우승보다 르브론의 파이널진출이 더 가치있다'와 같은 기괴한 논리로 코비를 악착스럽게 비하하는 것은
코비의 팬이 아닌 저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참으로 눈살 찌푸려지는 행위입니다.
코비는 코비대로 역대급으로 위대한 커리어를 쌓았고,
조던은 역대 최고의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것으로 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