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조력자였던 그에게 바치는 찬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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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5 12:11:56
*평어체 양해바랍니다.
최고의 조력자..
제목을 저렇게 적어놓아도..
누구인지 알아맞출 정도의 선수..
그렇듯 누구든 알만한 그런 대단했던 선수..
최고의 조력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그런 선수..
오늘의 생일 시리즈에서 잠깐 언급했었던 선수..
그를 표현할수 있는 말들
시카고의 33번..
토나오는 수비의 대명사..
그 분의 최고의 조력자..
시카고의 수호신..
그렇다..스카티 피펜..
그의 생일을 맞이하여..
왜 갑자기 이런 글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생일인 그에 대한 축하글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를 추억하며 책상속에 묻혀놨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1.대학 생활
대학에서부터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다.
그분,월트옹이라던지 그 외에도 많은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이
대학에서 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저 위에 같은 대단했던 선수와는 다르게..
피펜,그가 대학에 올라간 첫 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대단한 선수로 발전한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그의 키는 6-1이 다였기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대학에 들어가서 활동한 것은 선수생활부터가 아닌 매니저 생활부터였기 때문이다.
1965년 9월 25일..
함부르그의 아칸사스에서 11형제중 막내로 태어난 피펜은
아칸사스 대학을 다니며 농구에 대한 꿈을 이어나갔다.
위에도 말했듯이 그가 처음 대학으로 들어갈 때는 키도 큰 편이 아니었으며
선수로서 재능이 뛰어났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도 고등학교 코치의 부탁으로
선수가 아닌 매니저로서 장학금을 받으며 아칸사스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6피트가 겨우 왔다갔다 하는 이 선수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끈기를 가지며 자신이 할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 보다 수비에 대한 이해를 가지며 자신의 커나가야 할 목표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런 그의 노력을 어여삐 여기셨는지..
그에게 키를 선사해주셨다.
6피트에 왔다갔다 하던 그의 키가
6-8인치까지 커지게 된 것이다.
1학년때에 4.3득점 3.0리바 0.7어시를 기록하던 이 청년이..
매니저로서 들어와 주전자를 나르는게 일이었던..
그런 그가 2학년때부터 아칸사스 대학의 에이스로 발돋움 하게 된것이다.
사실 아칸사스대학이 농구에서 엄청난 명문이라고 볼수 없지만
그의 수비,그리고 활약등은 스카우터 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해준것이다.
그리고 그는 4학년까지 아칸사스에서 대학생활을 보내고 nba에 입성하게 된다.
(4학년때의 성적 23.6득점 10.0리바 4.3어시)
이 때 그의 나이는 21세..
그렇게 nba는 또 한 명의 다재다능했던 레전드를 받게 되었다.
2.nba라는 무대에 등장
예전 피펜에 대한 칼럼을 읽어보고 다른 자료를 찾아봤지만..
처음 예비캠프가 진행되기 전에 피펜이 그렇게 높은 픽으로 nba에 입성할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예비캠프에서 덩크 컨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각종 수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때서야 조금씩 가능성을 보였지만 탑 10안에 들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87드래프트의 1라운드 5픽으로 시애틀에 뽑히게 되지만 당일
스카티 피펜,89년 1라운드 픽olden polynice, 88년 2라운드 픽,89년1라운드픽
이라는 트레이드로 시카고에 합류한다.
당시 시카고는 다들 아시다시피 블랙캣이었던 그분이 활약하고 있었다.
루키 시즌 7.9득점 3.8리바 2.1어시 1.2스틸을 기록하면서 처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한다.
루키 팀에도 들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카고도 2라운드에서 라이벌이었던 디트로이트에게 무너지고 만다.
이 해에 신인상을 타나갔었던 선수는 다름아닌 1라운드 18픽이었던 마크 잭슨.
87드래프트에서 1픽이었던 데이비드 로빈슨은 89-90시즌에 신인상을 수상한다.
피펜은 그렇게 첫 시즌을 보내게 된다.
그의 첫시즌은 약간 실망스러웠을지 모르지만
그의 강점은 늘 끈기와 독함,그리고 성장해 나가는 것에 있지 않았는가?
소포모어 시즌인 88-89시즌
14.4득점 6.1리바 3.5어시 1.9스틸을 기록하며 성장해 나가더니..
3번째 시즌에 드디어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성적은 16.5득점 6.7리바 5.4어시 2.6스틸을 기록하며
sf로서 보여줄수 있는 리바운드와 어시,그리고 스틸까지..
그의 능력이 꽃피워 지기 시작한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이 커지는 데 있어서 그분과의 연습이 주효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 분의 곁에서 묵묵히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간 피펜..
그리고 90-91시즌..
그에게는 잊지 못할시즌이 될 시즌..
첫 올스타에 뽑힌 것이다.
아칸사스 대학에서 매니저 생활을 하던 이 작았던 선수가..
nba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올스타 경기를 뛰게 된 것이다.
이 해에 그는 디펜시브 세컨드에도 들며 첫 수상경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승컵을 들게 된것이다.
그의 능력이 꽃을 발하면서 드디어 시카고는 우승컵을 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쓰리핏을 알리는 첫 걸음이었다.
91-92시즌
그의 성적 21.0득점 7.7리바운드 7.0어시스트 1.9스틸 1.1블럭
이 아름다운 스텟과 함께..
그리고 피펜은 디펜시브 퍼스트 팀과 올 nba 세컨드 팀에 뽑힌다.
그리고 첫 쓰리핏의 마지막 시즌..
올스타와 디펜시브 퍼스트팀,올nba팀 서드 팀을 받았으며
그의 성적은 18.6득점 7.7리바 6.2어시 2.1스틸을 기록한다.
그후 갑작스럽게 맞이한..
2옵션으로서 그분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그는 하루 아침에 리더로서
동부의 강팀 시카고를 이끌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것이다.
93-94시즌..
디펜시브 퍼스트팀과 올nba 퍼스트 팀을 차지하였던 피펜..
가끔 피펜이 이 시절에 시카고를 우승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평가가 좋지 않는 걸 봤는데
시즌 mvp급의 최고의 선수가 빠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리더로서 20.7득점 8.2리바 5.3어시 2.0스틸을 기록하며
시즌 7위라는 기록을 올리기 쉬울리가 있었겠는가?
1라운드 클블에 맞서 이겼었던 그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일것 같다..
물론 다음 2라운드에서 만난 뉴욕과의 플옵
3번째 경기에서 마지막 1.8초를 남긴 상황에서
필 잭슨이 쿠코치에게 인바운드 패스를 하라 지시했을 때
리더로서의 자존심이 상하여 한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을만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때의 피펜은 리더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저번 시즌 챔피언이었던 시카고를 이끌었으며
뉴욕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이 시즌 이후 갑자기 들려왔던것은 시애틀과의 트레이드 루머..
켐프와의 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쿠코치를 스타팅 sf로 붙박이 시킬거라는 루머도 돌았었다.
하지만 이 루머는 시즌 중후반 쯤 그분이 복귀하면서 사라지고 만다.
그분의 가세와 함께 플옵에 올라 당시 모닝-래리-보그스로 이어지는 호넷츠를 꺽고
2라운드로 향하나..
페니와 샥이 이끄는 올랜도에게 발목이 잡히며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쓰리핏을 위한 행보는 다시 가동된다.
3. 두번째 쓰리핏과 72승10패..그리고..
그분과 피펜에 좋은 롤플레이어로 식스맨상급 쿠코치, 스티브 커,론 하퍼등이 있는 시카고에
재밌는 선수가 한 명 들어오게 된다.
바로..
'더 웜'
데니스 로드맨이다.
로드맨의 합류로 더욱 토나오는 수비가 가능해진 시카고는 그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90년후반 시카고 또 한번의 쓰리핏의 서막을 올렸다.
피펜의 성적
19.4득점 6.4리바 5.9어시 1.7스틸..
이 때의 시카고는..
전무후무한 기록..
72승 10패라는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워버리고 만다.
그리고 96-97 시즌도 유타에게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만인의 적으로서 최정상에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쓰리핏 시즌이었던 97-98시즌..
아직도 드라마의 최고 절정이자 클라이 막스였던 더샷..
그리고 유타와의 파이널에서의 승리..
피펜은 시카고를 떠나 휴스턴으로 가게 된다.
4.리더로서의 우승을 원했던 마지막 행보..
당시 휴스턴에는 바클리와 올라주원이라는 엄청난 선수들이 있었다.
드렉슬러가 은퇴를 결정한 자리에 피펜이 합류하여
빅3가 완성되었고 이 때의 기대감은 엄청났다.
단축시즌이었던 98-99시즌..
그들은 기대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이미 나이도 많이 들었을뿐 아니라 시너지도 거의 없는 듯한 플레이로
당시 플옵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던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만것이다.
그리고 불거졌던 바클리와 피펜의 불화로 인해
포틀랜드로 트레이드 되어 가게 된다.
당시 포틀은 올스타 군단으로 불리며
라쉬드,스타더마이어,사보니스,본지 웰스,슈렘프,스티브 스미스등의 좋은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런 포틀에 피펜이 합류하면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당시 워싱턴 복귀했던 그분과 매치업중인 피펜..
참 이 둘이 이렇게 만나게 될지 시카고때에는 상상도 못했었던 일이였다.)
하지만 99-00시즌부터 02-03시즌까지 포틀에서 활약할동안..
밀레니엄 레이커스,산왕의 그림자에 가려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있던 시카고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미 우승을 했고 많은 것을 이뤄냈었던 그가 우승권 팀으로 갔던 이유는..
마지막으로 원한것은..
예전 그분이 은퇴한 후에 받았었던 수많은 비판과 비난들..
리더로서는 우승할수 없을것이다라는 편견을 깨보려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리더로서 활약하여 우승에 이바지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가져본다..
5.부족한 글을 끝맺으며
2010년과 더불어 거행된 명전..
이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두 선수가 눈에 보인다.
피펜..그리고 그 옆의 그 분..
은퇴를 결정한 후 드디어 명전에 오르는 그를 보면서
예전 시카고가 아닌 저런 곳에서 그들을 보니 마음이 색달랐다.
뭐라할까..감동적이면서도 아련한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느낌이라할까?
그저 짠한 마음이 들었다.
피펜을 보면 참 안타까웠던 점은..
늘 항상 그 분과 함께였기에
그 분 옆에서 명예..그리고 비판도 그와 관련되어 받을수 밖에 없었던 것..
그렇기에 조력자라는 이름이 안타까웠었다.
난 이 분 만큼 저 최고의 조력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도..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전등 밑에 있는 반딧불은 빛을 발하지 못하며
달 옆에 있는 별들은 제 색과 빛을 비춰지지는 못한다.
그 분이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
그 대단했던 선수의 옆에서..
아직도 이렇게 찬란하게 그를 기억하며 회상할 수 있는 것은..
피펜이라는..
그분 옆에 있어도 그의 빛을 낼수 있을 정도의 그 또한 엄청난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농구는 스텟으로 나타낼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라고 하지만..
피펜 만큼 그 용어가 잘 맞는 선수가 있을까?
그저 아름다웠던 수비..
2옵션으로서의 최고의 모습들..
시카고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그분이 은퇴한 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그림자로 인해 리더로서의 평가가 박하며
1옵션으로서의 그의 가치에 대해 과소 평가 받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분과 피펜은..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이자..
분신..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 분과 피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끔씩 나오는 말이
그 분은 다른 선수들에게 혹독하게 대하여 좋은 친분관계를 잘 맺지 못하였지만
피펜만은 특별했다고 이야기 되고 한다.
그 분에게 피펜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있을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 분에게 피펜은 조력자,
그 이상의 분신,동료,친구였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예전에 피펜이 복귀할거라는 루머가 퍼진 적이 있었다.
그것도 레이커스에 복귀한다는 루머가 퍼졌을 때..
나는 얼마나 흥분과 기대를 했던지..
이렇게 그의 존재에 대해서 흥분하고 기대하며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소년기 로망을 채워줬던 인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감사한다..
그의 뒷모습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할수 있었던..90년대를 지켜볼수 있어서..
그와 같은 인물이 나올수 있을지없을지 모르지만..
그와 같이 가슴이 뛸만한 수비를 보여주며 나의 감정샘을 자극할만한 선수는
등장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최고의 조력자였던 스카티 피펜..
그러나..동시에 최고의 조력자라는 이름만으로는 표현할수 없었던 그..
그러기에는 너무나 대단했었던 그..
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를 추억한다.
HAPPY BIRTH PI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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