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90년대-2000년대 빅맨들의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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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3 12:13:27
캠프 같은 곳에서 포지션 별 기본기를 볼 때 가드는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동료에게' 패스할 수 있느냐, 포워드는 스크린을 활용하여 수비수를 떨구고 볼캐치 이후 연속동작을 이어갈 수 있느냐 빅맨은 리바운드와 로포스트 피니쉬, 스크린을 제대로 서느냐를 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박스아웃, 로포스트 피니쉬(포스트업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죠. 골밑에서 볼을 캐치하고 마무리 하는 능력), 스크린 서주기..이 세가지는 어느 시대건 빅맨의 기본기로 통용된다고 봅니다. 다만 트렌드에 따라 기타 기술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구요. 어느 기술에 비중을 두느냐..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게임들을 보다보면 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페이스가 빠름을 느낄 수가 있죠. 당장 득점의 횟수도 그렇고...레이커스가 유명하지만 라이벌인 보스턴 게임만 봐도 지금의 소위 런앤건 게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팀 속공과 얼리오펜스가 많이 나옵니다. 24초를 풀로 활용한다는 개념은 보이지도 않고 웬만한 오펜스는 10초 대에서 끝내려고 하죠.
왜 그러느냐...개인적으로는 아직 3점슛이 보편화되지 않아서 수비의 스페이싱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니 에인지니 스캇 울리지니 하는 보스턴 외곽슛터들..6-7M거리의, 지금같으면 미드레인지로 볼 법한 곳에서 슛을 성공시켜도 해설자들은 From Downtown이라고 칭합니다. 3점슛은 굉장히 예외적인 무기에 가까왔고(버저비터 상황에서나 쏠법한) 대개 외곽슛하면 6-7m거리를 칭하던 시절입니다. 데니스존슨 같은 가드들은 하이포스트에서도 슛이 안들어가 래리버드의 더블팁을 전혀 풀어주지를 못하죠.
슛의 정확도는 높지만 슛의 레인지는 아주 짧았던 시절입니다. 심지어 엔트리패스도 3점 라인 안에서 넣어주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 수비의 스페이싱이 뻑뻑하고 맨투맨 룰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한 두명 정도는 사실상 지역방어를 서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들여서 셋팅을 해본들 수비가 점점 뻑뻑해지기만 합니다. 여기에 지금처럼 1:1 기술을 가진 선수도 많지 않습니다.(보스턴의 세드릭 맥스웰 정도나 지금 기준의 1:1 해결사에 가깝습니다) 그결과 상대 수비가 정돈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제 1목표가 되고 팀속공과 얼리 오펜스가 공격의 제 1옵션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빅맨들의 공격방식도 우리가 본 90년대 센터들의 포스트업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오늘날 드와이트 하워드의 공격 방식..골밑에서 기습적인 포지셔닝 이후 드리블 없이, 혹은 원드리블 이후 점프슛이나 훅슛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패리쉬나 자바나 골밑 좌우 1-2m 정도 거리에서 포지셔닝을 한 뒤 드리블 없이 곧바로 올라갑니다. 마무리 스킬은 보통 자바는 훅슛, 패리쉬는 두팔을 높이 치켜든 점퍼.... 미들 슛은 정말 간헐적으로 나오고 오늘날과 같은 센터의 3점슛은 당연히 꿈도 꾸지 않습니다. 소위 4대센터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보여준 현란한 1:1 기술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입니다.
고로 이 시기 센터들은 팀속공의 기점이며 동시에 얼리오펜스의 빠른 마무리 무기였습니다. 질질 끌어본들 수비만 빡빡해지니 재빠르게 센터들에게 찔러주어서 최대한 신속하게 골밑으로 접근한 뒤 피니쉬하는 것이 이 시기의 하나의 흐름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런 빠른 농구의 흐름을 바꾼 것이 바로 피스톤스와 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끈적끈적한 수비로 페이스를 늦추고 팀내 가장 확률이 높은 강력한 해결사(토마스, 조던)에게 공격을 몰아주는 방식...토마스는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 프리하게 1:1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조던은 상대적으로 그 정도로 자유롭지는 않은 관계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통해 미들레인지에서 페이스업, 포스트업 공간을 확보하고 자유자재의 풀업점퍼와 페이다웨이로 상대를 농락했죠. 즉 강력한 수비를 통한 페이스 다운+팀내 최강 1:1 옵션을 활용한 확률농구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이 시기 시작했다고 느껴집니다.(그리고 여담이지만...조던 이전에 이미 피스톤스가 블루워커형 빅맨만 데리고 우승한 경험이 있죠. 레임비어니 마혼이니 하는 선수들이나 그랜트니 카트라이트니 로드맨이니 하는 선수들이나,,,기량은 둘째치고 서브 유닛, 블루워커 유닛이라는 점에서 자바, 패리쉬와는 다른 선수들이죠)
90년대 센터들은 바로 이러한 트렌드에 충실하여 과거의 센터들과는 다르게 강력한 1:1 머신으로서 팀 내내 공격옵션들을 독식하면서 공수 양면의 핵으로 떠오르게 되었죠. 특히 3점슛 라인이 짧아지면서 3번, 더 나아가서 4번까지 3점 가능한 선수들로 채울 수 있게 되면서 테크닉이 좋은 센터들을 위한 1:1 공간을 자유롭게 확보가능하게 되었고...느린 센터들을 배려하며 24초룰을 충분히 활용해 가면서 공격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스페이싱도 쉬워졌죠..나중에 3점이 다시 길어지지만 일단 맛들인 3점슛은 사라지지 않았고 과거와는 달리 훨씬 보편화된 옵션이 되었습니다.
이 트렌드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올라주원입니다. 극강의 유연성과 스텝, 최강의 1:1 기술을 갖추었고 2번째 우승 때에는 3번에 드렉슬러, 4번에 오리가 들어가 전포지션이 3점 가능자로 채워지면서 자유자재의 테크닉으로 상대 빅맨들을 농락하며 우승을 차지했죠. (물론 올라주원이 룰에 의해 만들어진 챔피언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올라주원의 압도적인 1:1 스킬과 그리 키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블록슛 1위를 기록한 그의 수비력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환경이 유리하게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유리함은 당대 모든 선수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기도 하니까요)
2000년대 이후 파포가 중심이 되고 센터가 서브가 된 현상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시구요...이건 지역방어의 영향이 있기도 하고..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로테이션 수비가 엄청나게 좋아지면서 오닐을 제외한 타 센터들은 고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역방어까지 들어오니 센터의 사양화는 급속도로 가속화되었죠.
2000년대 선수들이 90년대에 가면 통할 것이냐?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사실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경기가 하나 기억이 나는데..샤크가 아직 마이애미에 있고 벤 월러스가 피스톤스에 있던 시절 이 두팀이 붙은 시합이 있었습니다. 전반은 피스톤스는 맨투맨, 후반은 1-2-2 지역방어를 구사했는데요.
전반 벤 월러스는 이미 노쇠화했다는 샤크에게 탈탈 털리면서 20득점을 헌납했지만 후반에는 단 2점으로 샤크를 묶었습니다. 이것이 지역방어의 위력이기도 하고..
아마 맨투맨 시절이었다면 벤 월러스는 센터로 뛰지는 못했을 겁니다. 뛸 생각도 안했을 것이고. 대신 오클리나 로드맨 같은 블루워커형 파워포워드가 되어 리바운드, 스크린 머신으로 활약했겠죠.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올라주원이나 유잉, 로빈슨이 2000년대에 오면 과연 90년대와 같은 스탯을 찍어댈 수 있겠는가...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아마 어려울 겁니다. 센터로 뛸 경우에는 수비형 선수가 되거나 운이 없으면 그렉 오든같은 파울 머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올라주원이나 로빈슨은 파포로 변신이라도 하지 유잉은 참 애매할 것 같고..
지역방어의 시대에는 벤월러스의 파워와 기동성의 조화...1번부터 5번까지 커버할 수 있는 놀라운 기동력과 헬프 범위가 장신센터의 높이보다 더 가치가 있을수도 있는거죠. 포스트업에서는 조금만 버텨주어도 금방 헬프가 들어오고, 대신 놀라운 기동력을 바탕으로 장신 센터가 절대 커버할 수 없는 전방위적인 수비력을 보여주고..특히 NBA는 3초룰이 있어서 골밑에 그냥 버티고 있는 장신센터는 파울 머신이 되기 싶상이죠. 위크사이드에서 순식간에 달려와 찍어버릴 수 있는 벤의 기동력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센터상이었던 것이죠.
결론적으로 말하지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의 센터들은 완전히 다른 전술적 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센터들이 약하니 유잉이 오면 초토화된다고 이야기하기도 모하고..하워드가 지금 최강 센터이지만 90년대에 가면 신장의 약점이 도드라질 수도 있고..80년대 자바는 굉장한 선수였지만 2000년대에 오면 파워에 밀려나갈 수도 있습니다.(패리쉬, 자바옹 굉장히 가늘어요. 지금 기준에서 보면...) 반대로 하워드가 80년대에 가도 쉬지않고 이어지는 팀속공에 지쳐서 나자빠질 수도 있죠.
그리고 대별 비교는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지만, 기계적인 스탯 비교보다는 전술적인 트렌드까지 포함한 관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가끔 90년대 센터들은 무적, 90년대 센터들이 정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선수들이 더 정통적이라면 80년대 센터들이 더 정통적일 것이고..올라주원이나 로빈슨은 사실 플레이를 보면 지금 파포 천국 시대의 플레이를 예비하고 있는 선수들이거든요. 그들의 동선이나 스타일은 자바나 패리쉬보다는 제임스 워디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도 등장 시점에서는 매우 유니크한 이단아들이었는지도 모르고.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드와이트 하워드가 가장 '정통' 센터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도 정답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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