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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슈퍼스타, 스카티 피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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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23:16:32

*마이클 로젠버그 씨의 칼럼입니다.
이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를 함께 나누고 싶어 매니아에 올립니다.
평어체 양해 바랍니다.


만일 피펜이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부디 놀라지 말라. 이것은 또 다른 그의 커리어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그의 커리어 마지막 때에는 눈물을 흘려왔다.

그 첫 순간은 1987년 그가 뛰던 센트럴 아칸사스 대학이 NAIA District 17 Tournament에서 하딩에 88-87로 패했을 때였다.
피펜은 그게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의 마지막임을 확신했고 그에 눈물을 흘렸다.

사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 조차도 모두의 기대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는 센트럴 아칸사스에서 선수로 시작하지 않았다. 선수로 들어온게 아니라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매니저로 들어와서 팀의 주전으로 마지막 순간을 장식한 것이다.
그러나 피펜은 NBA 드래프트 예비캠프에 초대되면서 팀메이트 들을 놀라게 했고, 그 곳의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최신 붐박스를 부상으로 들고 화려하게 아칸사스로 돌아왔다. 돌아온 직후 피펜은 그의 어린시절 친구이자 아칸사스 팀원이었던 로니 마틴에게 비밀을 하나 털어 놓았다:
그는 충분히 NBA에서 통하는 실력이었던 것이다.

"피펜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죠.
'로니! 나 아마도 드래프트 될 것 같아. 그것도 TOP 10에 말이야. 나 다른 녀석들에 비해서 전혀 꿇리지 않더라고!'
저는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피펜은 1987년 5번 픽으로 시카고 불스에 합류하게 되고 팀과 함께 여섯 번의 챔피언쉽을 차지한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가 되었고 이제 아무도 그를 고등학교 졸업 후 아무데도 갈 수 없었던 선수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펜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피펜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순간은 아마도 미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놀랍고도 믿기 어려운 성공스토리 중 하나로 기억 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조던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팀에서 잘렸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 성공스토리에 놀라워하곤 한다.
그러나 피펜의 처지에 비하면 조던은 아역 대스타였다. 마치 르브론과 마이클 잭슨, 셜리 템플이 하나로 뭉친 정도로 말이다.

피펜은 아칸사스 입장에서는 강백호가 닦아 놓은 마루바닥에서 찾아야만 하는 먼지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나는 단지 아칸사스 대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칸사스 주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아칸사스 몬테첼로 대학도 그를 원하지 않았고 써던 아칸사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피펜의 고등학교 코치였던 도널드 웨인이 그의 코치중 하나였던 센트럴 아칸사스의 돈 다이어 코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선수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자네가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봐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웨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다이어는 피펜이 농구부 매니저 일로 장학금을 얻을 수 있도록 추천해 주었다.

그 해 10월, 팀에서 한 선수가 떠났고 그로 인해 피펜이 뛸 수 있는 로스터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 직후 일어났던 일은 30년이 지난 후에도 다이어의 기억에 생생하다.
어느날 다이어는 팀원들에게 인덱스 카드 하나씩을 돌렸고 거기에 자신의 선수 또는 학생으로서의 목표를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카드에 이제 막 팀에 합류한 피펜이 어이없게도 'NBA Player'라고 썼던 것이다.

피펜은 11명의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불구였고 어머니는 직장이 없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는 어떤 꿈도 커다란 꿈이 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 그의 키는 간당간당한 6 ft이었고 졸업시즌이 될때까지 덩크를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특별한 점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는 한 눈치채기 힘든 것들이었다.
하나는 그가 언제나 상대팀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수비하고 싶어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변함없이 항상 농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로니의 말이다.
"우리는 항상 농구를 하고 있었어요. 하다 보면 밤 12시가 되곤했죠. 그러고 보니 피펜과 다른걸 했던 기억이 거의 없네요."

그러던 피펜에게 행운이 따랐다:
그가 6-8 ft이 된 것이다.

1년 후, 2학년이 된 피펜은 센트럴 아칸사스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피펜의 포지션 미스테리가 시작된다.
로니는 피펜을 팀의 포인트 가드로 기억하고 있지만, 미디어 기록에는 3년 내내 센트럴 아칸사스 팀의 주전센터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둘 다 진실이다. 그는 상대 팀의 누가 되었든간에 베스트 플레이어를 상대했던 것이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는 그렇게 드래프트 되었고, 그 후 조던과 함께 불스 왕조를 이끌었다.

코치 다이어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가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 전화거는 횟수는 점점 줄어갔죠. 그러나 그의 발전을 보면서 아주 자랑스러웠어요."
그런 그의 어투에 섭섭함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피펜은 은퇴 후에 더 여유로워졌고 그를 도왔던 사람들을 찾아 고마움을 표시하기 시작했죠."

피펜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국제적 스타가 되었고, 다이어는 피펜이 그 명성에 어떻게 대처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펜은 변함없는 사내였다.
웨이트룸에서 미친듯이 역기를 들었고, 팀 연습 후에도 100개의 자유투와 1000개의 점퍼를 성공시키지 않으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리그에서는 종종 선수들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비난받지만, 피펜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원했기에 비난을 받곤 했다.
유명한 경우가 조던의 1차 은퇴 후, 닉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그 경기를 결정할 마지막 플레이가 다른 선수의 차지가 되자 경기에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한 사건이었다.
조던이 떠난 후의 첫 플레이오프에서 그 순간의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불스에서 플레이 하는 동안
수비면에서, 피펜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수비 범위는 포인트가드에서 파워포워드를 망라했다.
공격면에서, 그는 아주 다양한 공격기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던에게 양보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완벽한 세컨드 옵션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피펜은 간신히 NAIA팀에 들고 NBA에 가기를 꿈꾸던 그때에 비해 전혀 변함없는 사내였다.
그는 항상 더 원했다.

1999년 겨울, 그는 오직 한가지 의심을 잠재우려는 미션을 가지고 휴스턴에 왔다.
그는 이미 6개의 NBA 챔피언쉽을 차지했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단골 올스타였으며, 1994년 MVP 후보 중 하나였다.
그가 증명해야 할 단 하나의 남은 임무는 그가 리더로서 한 팀을 NBA 챔피언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찰스 바클리,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로케츠로 갔고 이것은 그의 기회였다.
로케츠는 그가 미션을 이루기를 원했고 그 또한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것을 이룰수 없었다.

그는 휴스턴에서도 여전히 아칸사스에서 플레이 하던 소년 그대로였다.
여전히 상대 팀의 베스트 플레이어를 수비하기 원했고, 다른 선수의 득점을 도왔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아마도 그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테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1년 후 피펜은 포틀랜드로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서 다시 그 자신이 될 수 있었다. 피펜은 포틀랜드에서 그의 7번째 챔피언쉽을 차지할 뻔 했지만 Shaq-Kobe의 LA에 의해 그 꿈은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Shaq. Kobe. LeBron, Carmelo, Dominique, Isiah.
이들은 전형적인 NBA 슈퍼스타들이다. 어린 나이부터 슈퍼스타의 재질을 지녔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서서히 채워나가야 했던 선수들 말이다.
코비는 좋은 팀메이트가 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르브론은 수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이버슨은... 아이버슨은 배울게 많았지만 결국 끝내 배울 수 없었다.

피펜은 달랐다.
그는 게임의 작은 스킬들을 모두 마스터 한 후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마지막에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스카티는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But he came damn close.

http://sportsillustrated.cnn.com/2010/writers/michael_rosenberg/08/13/pippen.hof/index.html#ixzz0wZdAD8w3

* 수평농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8-14 23:40)
11
Comments
2010-08-14 23:29:39

좋은 글 감사해요
커리어 동안의 피펜은 알았지만

힘든 과거기 있는 줄은 몰랐네요

읽고 나니 더욱 맘이 가는 선수네요

2010-08-14 23:35:20

잘읽었습니다


매니아진에 올리셔도 될꺼같은데요?
2010-08-14 23:37:16

아~ 역시 위대한 선수는 노력과 재능과 운이 필요하군요~ 감동적인 피펜의 인생이네요

WR
2010-08-15 00:40:01

생각지도 못했던 매니아진 입성이네요.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피펜의 당연한 명전입성을 축하합니다.
기회가 되면 명전 때의 피펜의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2010-08-15 00:54:57

휴스턴에갔을때 피펜은어땟나요??
그리고 그떄의 바클리랑 하킴은 전성기가지난시기였나요???

그리고 휴스턴의성적은 어느정도???

2010-08-15 02:51:19

휴스턴의 성적은..기대이하였죠

유기적인 공수전술보다는..그냥 속공 몇개..거의..죽은듯한 공격력 정도였습니다..

급조된 팀이..좋은 성적을 낼수 없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죠

핍 하킴, 바클리가..절친도 아니구요..저마다..한 칼하는..캐릭들이라..


그래서 전 보스턴 빅3의 가치나 평가는 나중에..더더욱 좋아질거라고 봅니다..

2010-08-16 21:50:54
아... 피펜.. 멋진 선수죠.
피펜의 당연한 명전입성을 축하합니다. (2)
2010-08-17 03:03:07

늦었지만 피펜의 명전입성을 축하합니다.


제가 절 축하하는 것같네요.
2010-08-17 08:37:56
사랑합니다 피펜
2010-08-17 11:07:24

아이버슨은 배울게 많았지만 끝내 배울 수 없었다...

2010-08-28 22:47:06

으억, 중간에 강백호가 보이네요. 역시 유명한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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