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어 허용, 그 후 10년
지역방어에 대한 규정은 그 허용수준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역방어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는 경우입니다. FIBA 주관의 공인 국제대회와 일반적인 아마추어 농구가 이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지역방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경우인데, 1961년부터 2001년까지의 NBA가 이에 해당하지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지역방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NBA와 KBL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NBA는 지난 2001-02시즌부터 일리걸 디펜스, 이른바 부정수비조항을 폐지했습니다. 부정수비가 없어졌으니 당연히 지역방어가 허용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일반적으로는 지역방어가 도입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지역방어가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일리걸디펜스 조항의 폐지로 지역방어에 대한 제한이 풀렸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합니다. 일리걸디펜스 조항이 있던 시대에도 헬핑디펜스가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했었으니까요. 예전에 이와 관련된 글을 한 번 썼던 적이 있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좀 더 편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리걸디펜스와 피펜 아저씨)
다만 완벽한 지역방어를 허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비자 3초룰이라는 규칙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의 유무가 지역방어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는 일반적인 리그/국제경기와 NBA/KBL 간의 차이를 불러왔습니다. 수비자 3초룰은 페인트존에서 수비팀 선수가 3초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예전에 일리걸디펜스가 있었던 시절에 이 규칙이 필요없었고, 대신 공격자 3초룰만 존재했었죠. 공격자가 3초 이상 페인트존에서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수비수도 3초 이상 존 안에 머물 수 없다는 이 추가적인 조항으로 인해 NBA에서는 변형적인 지역방어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역방어가 완전히 허용되는 리그에서는 마치 축구에서 포메이션에 따라 미리 자리를 잡고 서있는 것처럼 수비수들이 자유롭게 진영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방어인 2-3지역방어를 생각해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NBA에서는 이 수비자 3초룰 때문에 정석적인 2-3지역방어가 불가능합니다. '3'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선수(일반적으로는 수비팀의 센터)가 꾸준히 페인트존 바깥으로 나와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범 당시부터 NBA를 모델로 삼았던 KBL은 NBA에서 이 규정을 제정한지 1년만인 2002-03시즌부터 동일한 규정을 신설해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이제 수비자 3초룰을 피하기 위한 수비전술들도 상당히 체계가 잘 잡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의 수비전술은 볼 때 마다 감탄하곤 하는데, 어지간한 NBA팀들에 비교해봐도 전술적 완성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지요. (역설적으로, 지도자와 선수들 모두 이러한 변형 지역방어에 익숙해지다보니 대표팀의 국제경쟁력 약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FIBA룰에 익숙하지 않다'는 미국 대표팀의 약점이 압도적으로 약한 우리 대표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죠.)
이처럼 NBA의 지역방어는 수비자 3초룰이라는 새로운 규정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완벽한 지역방어가 허용되는 유럽농구나 NCAA를 비롯한 아마추어 농구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NBA 리그 자체의 변화를 촉진하게 되었죠.
2001년 봄, 리그 사무국에서는 NBA 전체 판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새로운 룰 개정을 발표했습니다.
1. 일리걸 디펜스 폐지
2. 수비자 3초룰 도입 (※ 오늘날엔 이 규칙을 '일리걸 디펜스'라 칭하기도 합니다. 혼동에 유의!)
3. 공격팀의 하프라인 전진 시간이 10초에서 8초로 단축
4. 가벼운 신체접촉 허용
이 4가지 규정 중 1,2번항이 바로 지역방어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규정들입니다. 3번은 공격페이스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였고, 4번은 수비에게 좀 더 재량을 부여하기 위함이었죠. 이 4번 항목의 경우에는 핸드체킹룰의 변화와도 관련이 깊은데, 본래 핸드체킹룰은 94-95시즌에 이미 한 번 변경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아직 80년대의 거친 농구의 잔재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리그에서는 마이클 조던 은퇴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고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좀 더 힘을 불어넣기 위해 공격자에게 유리하도록 룰을 개정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로고 계속해서 리그에 '마이클 조던 키드'들이라 할 수 있는 특급 슈팅가드/스윙맨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당시의 핸드체킹룰과 맨투맨 디펜스로는 이들을 막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비수들에게 다시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시도 중 한가지가 바로 2001년 룰 개정의 4번째 항목인 셈이죠.
(물론, 이 규정은 얼마지나지 않아 다시 공격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개정되긴 합니다. 지역방어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핸드체킹까지 느슨해지자 슈파스타들의 득점이 급격히 감소해버렸거든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05-06시즌에 다시 핸드체킹을 강화했는데, 지역방어와 깐깐한 핸드체킹에서 단련된 각 팀 에이스들의 득점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시즌이 코비의 81점 게임과 마이클 조던 이후 19년만에 35+ ppg 득점왕이 배출된 시즌이었습니다. 득점랭킹 1,2,3위가 모두 30ppg를 넘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었죠. 결국 이 규정은 상대적이고 시대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리걸 디펜스 폐지와 지역방어 도입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2001-02시즌부터 2009-10시즌까지의 9년은 현재의 농구를 과거의 농구와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Yu-Na KIM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8-04 18:45)
한참 재미있게 읽어나가다가 글이 갑자기 끝나서 아쉽네요.
후속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