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NBA Maniazine
/ / / /
Xpert

포틀랜드의 2000년대 - (1) Slipping from Glory

 
2
  1766
2010-05-12 16:39:49


원문


Blazer's Edge의 Dave씨가 지난 10년간의 포틀랜드를 간략하게 회고한 글입니다.

포틀랜드 팬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번역을 해봤습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과 본문의 평어체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1999-2000


Record : 59승 23패,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레이커스에게 3-4로 패배)


감독 : 마이크 던리비


IN : 안토니오 하비, 조 클라인, 스카티 피펜, 데틀리프 슈렘프, 스티브 스미스


OUT : 켈빈 케이토, 존 크로티, 짐 잭슨, 아이재이아 라이더, 월트 윌리엄스


드래프트 : 로베르토 버거슨 (52번픽)


Leading Scorer : 라쉬드 월러스 (16.1 득점)


Leading Rebounder : 아비다스 사보니스 (7.8 리바운드)


Most Minutes : 라쉬드 월러스 (35.1분)



새천년의 첫해는 포틀랜드에서 밥 윗싯 시대의 정점을 알렸다.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그 자신이 시대를 대표했던 드렉슬러를 1995년에 트레이드한 이후부터, 윗싯은 팀에 영광을 되찾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우승을 위한 마지막 움직임은 고득점 가드인 아이재이아 라이더와 짐 잭슨을, 유능한 팀플레이어이자 전성기의 끝자락에 있는 전(前) 슈퍼스타 2명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스티브 스미스는 오프가드 포지션에서 안정성과 슈팅을 제공했다. 스카티 피펜은 SF로서 수비, 플레이메이킹, 우승 경험을 제공했다. 그들은 이미 재능으로 넘치는 라인업에 합류했다. 라쉬드 월러스는 만능 PF로서 막 재능을 펼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장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중앙에서 공간을 장악하고 공격에서 패싱과 슈팅을 제공했다. 브라이언 그랜트는 PF건 C건 코트 위에서 리바운드와 포스트 플레이, 터프함을 보강했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는 신인상 수상 시절의 폼을 되찾지 못했지만, 새로운 영입은 플레이메이킹과 수비 부담을 덜어줘서 좀더 자유롭게 뛸 수 있을 것이었다. 데틀리프 슈렘프는 벤치에서 포워드로서 경험을 제공했고, 본지 웰스는 약간의 몸빵과 득점을, 그렉 앤소니와 스테이시 오그먼은 수비를 제공했다. 팀은 완성되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서부를 제패할 것으로 지목되었다.


베테랑들로 가득 채워진 팀은 거의 즉각적으로 융합했고, 첫 15경기 중 13경기, 36경기 중 28경기를 승리했다. 시즌에서 가장 긴 연패는 3연패였고, 3월 초에 딱 한번 있었다. 포틀랜드는 느린 페이스의 효율적 공격, good position defending, 리바운드로 성공했다. 프론트코트의 수비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포틀랜드는 곧잘 상대팀을 질식시키곤 했다. 스타들은 포틀랜드를 상대로 득점을 할 수는 있었지만, 포틀랜드는 나머지 모두를 묶어버렸고 '한명의 스타로 라쉬드 월러스와 5명의 괜찮은 스코어러들을 이길 수는 없다'는 확률을 가지고 플레이했다. 포틀랜드는 상대가 어떤 유리함도 갖게 하지 않았다. 포틀랜드는 너무 많은 곳에서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팀은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최소한 48분 내내는 할 수 없었다. 어느팀도 장기적으로 유리함을 가져가기에는 이팀에 훌륭하고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상대팀은 포틀랜드보다 먼저 실수를 저지르고 굴복했다.


포틀랜드는 서부 패권의 최대 경쟁자인 레이커스와 정규시즌 시리즈를 동률로 마쳤다. 양팀은 홈경기와 원정경기를 한경기씩 승리했다. 맞대결에서는 동률이었으나, 이전의 샤킬 오닐-코비 브라이언트 듀오의 부진을 뒤로 하고 첫번째 우승을 노리는 레이커스는 리그 최고인 67승 15패로 시즌을 마쳤다. 포틀랜드는 리그 2위인 59승으로 마무리했다. 두팀은 같은 디비전에 속했고, 충돌은 예정되어 있었다.


포틀랜드는 2라운드까지 미네소타와 유타를 가볍게 물리쳤다. 다가올 운명을 예견하듯, 레이커스는 1라운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새크라멘토에게 고전했고, 마지막 5차전까지 가서야 물리칠 수 있었다. 피닉스는 전년도 우승팀 샌안토니오를 탈락시켰지만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물리칠 수는 없었다. 최강팀끼리의 대결이 도래했다.


시리즈는 포틀랜드에게 어려운 분위기로 시작했다. 샤킬 오닐은 1차전에서 a one-man wrecking crew였다. 포틀랜드는 이제는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전략을 들고나왔다. 포틀랜드는 가능할때마다, 특히 경기 막판 샥이 공과 멀리 있을 때 샥에게 파울을 했다. 샥의 유일한 약점인 자유투에서 이점을 얻기 위함이었다. '핵어샥'은 샥이 48%의 자유투 성공률을 보이면서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샥의 기록은 수직상승했다. 샥은 1차전에서 27개의 자유투를 얻어서 13점을 벌었고, 최종적으로 41득점 11리바운드 7어시스트 5블락을 기록했다. 포틀랜드는 15점차로 패배했다.


2차전에서 포틀랜드는 원정에서 29점차의 대승을 거두며 반격에 나섰다. 29%의 자유투를 기록한 샥은 23점에 묶였고, 레이커스에서는 12득점을 한 코비 외에 두자리수 득점을 한 선수가 없었다. 반면 포틀랜드는 월러스, 스미스, 피펜이 20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월러스가 29득점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했다.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뺐어오면서 포틀랜드는 기회를 잡았다고 느꼈다.


포틀랜드에게는 불행하게도, 레이커스는 3차전에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되찾아왔다. 포틀랜드 주전 전원이 두자리수 득점을 했지만, 각각 26점과 25점을 득점한 샥와 코비에게 밀려 91-93으로 패배하고 만다.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되찾은 여세를 몰아, 레이커스는 샥(25득점)과 글렌 라이스(21득점)를 앞세워 12점차의 승리를 거둔다. 1승 3패로 뒤진 채 LA로 향하는 포틀랜드는 힘이 다한듯 했다.


그러나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5차전에서 포틀랜드는 샥에게 31득점을 허용하고도 96-88로 승리했고, 6차전 홈으로 시리즈를 연장했다. 포틀랜드는 6차전마저 잡아내었고, 마지막 진검승부가 다가왔다.


포틀랜드 팬들에게 운명적인 84-89 패배에 대해 많은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이제 그 경기는 전설이다. 포틀랜드는 두자리수 리드를 갖고 4쿼터를 맞이했다. NBC 캐스터 밥 코스타스는 많은 시간을 승패에 상관없이 샥과 샥이 발전시켜온 complete game에 대한 찬사에 할애했다. (주 : 만약 코스타스의 'complete'가 "now able to throw forearms into people on a regular basis to push them out of the way for a dunk"를 의미했다면 코스타스가 맞다. 3년전의 제리 맥과이어는 잊자. 스포츠에서 가장 tender한 순간은 사실 샥이 베넷 살바토레에게 돌아서서 "You complete me"라고 할때였다.) 조금씩 레이커스는 리드를 줄였다. 고뇌하는 플레이를 거듭하며 포틀랜드는 모든 면에서 경기를 지키기 위해 절박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팀 전체가 자동차 98중 연쇄충돌 사고 현장에서 방금 나온듯했다. 레이커스는 인디애나를 물리치고 3연패 중 첫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포틀랜드는 집으로 돌아가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곱씹는 긴 여름을 보냈다. 7차전의 결과는 6월의 그 일요일에는 짐작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두 프랜차이즈의 향후 행로를 바꿔놓았다. 포틀랜드가 그 패배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리게 된다.




2000-2001


Record : 50승 32패


감독 : 마이크 던리비


IN : 에릭 바클리, 데일 데이비스, 숀 켐프, 윌 퍼듀, 로드 스트릭랜드


OUT : 브라이언 그랜트, 조 클라인, 저메인 오닐


드래프트 : 에릭 바클리 (28번픽)


Leading Scorer : 라쉬드 월러스 (19.2 득점)


Leading Rebounder : 라쉬드 월러스 (7.8 리바운드)


Most Minutes : 라쉬드 월러스 (38.2 분)


00-01시즌을 맞이하여 포틀랜드는 낙관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최근 3년간 2번이나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고, 몇달 전에는 NBA 파이널 진출에 단지 몇분만을 남겨뒀었다. 포틀랜드와 LA 사이의 전설적 전투는 이제 시작인 것처럼 보였다. 포틀랜드가 그 전투들을 모두 패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포틀랜드에 대한 주요 비판은 상황이 어려워질때 해결사의 결여였다. 그 경기(7차전)의 중요한 순간에서의 붕괴는 비판을 더욱 가열시켰을 뿐이었다. 라쉬드 월러스는 우수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이자 정통-때로는 막을 수 없는- 스코어러였다. 그러나 언론의 주목이나 압박을 불편해했고, 게임을 뒤바꾸는 슈퍼스타의 domineering swagger - 샥과 코비가 갖고 있는 - 가 없었다.


여름에 포틀랜드는 드러난 이 문제를 두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거의 활용되지 않던 고졸신인 저메인 오닐을 인디애나로 보내고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올스타급인 데일 데이비스를 데려온 것이다. 실제로 데이비스는 당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비형 빅맨이었다. 오닐은 로테이션에서 전혀 시간을 얻지 못하고 있었고, 더 경험많은 PF와 C들을 가까운 시일내에 제낄것 같지도 않았다. 데이비스라면 샥을 진정시킬 수 있을걸로 기대되었다. 샥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약간'이나마 물고 늘어질거라는 기대... 그리고 그 '약간'은 모든 포틀랜드 구성원들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포틀랜드는 마이애미, 클리블랜드와도 딜을 했다. 브라이언 그랜트를 마이애미로 보내고 한때 도미넌트한 득점원이었던 숀 켐프를 데려올 자리를 만든 것이다. 켐프는 최소한 주득점원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팬들은 이전 시즌 켐프가 포틀랜드 상대로 28득점을 하면서 거의 혼자 힘으로 클리블랜드의 승리를 이끌었던걸 기억했다.


포틀랜드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움직임들은 모두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것들로 손꼽히게 된다. 데이비스는 포틀랜드에서 4년간 뛰게 되지만, 노쇠화와 빡빡한 로스터내 경쟁은 데이비스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고 결국 다시는 이전의 올스타 수준에 근접하지 못했다. 이후 데이비스는 자신의 상황에 불만을 갖고, 팀의 많은 케미스트리 문제의 중심이 된다. 한편, 저메인 오닐은 부상이 발목을 잡기 전까지 All-NBA 레벨의 선수가 되었다. 아직도 포틀랜드 팬들은 27세 이하의 선수가 포함된 트레이드라면, 그 선수가 2라운드 후반 픽이라도 저메인 오닐의 이름을 거론하곤 한다. 숀 켐프가 체중 문제, 마약 문제, parental issue와 싸우는 동안, 팬들은 지난 시즌의 훌륭한 퍼포먼스가 그해 켐프의 유일한 활약이었고 켐프의 커리어에서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기 시작했다. 브라이언 그랜트는 생산성 기준으로는 과대평가 되었을지 몰라도 팀의 heart and soul이었고, 특히 칼 말론과의 전설적인 플옵 전투에서 그랬다. 그랜트가 떠나면서, 포틀랜드는 프랜차아즈의 몇 안되는 기수 중의 하나를 잃었고, 데이비스나 캠프가 해주지 못한 quality를 상실했다. 프론트코트가 빡빡한 팀에 남는게 그랜트에게는 행복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팀에서 그랜트가 영원히 포틀랜드 선수로 남도록 시간을 만들어볼 수도 있었다.


시즌 초중반은 잘 돌아갔다. 전년도만큼 매끄럽거나 활기차진 않았고 라커룸 내에서 잡음이 들려왔지만, 여전히 talent로 이길만한 경기는 모조리 이겼고 포틀랜드는 많은 talent를 가지고 있었다. 그해의 어느 순간, 슈렘프는 자신의 팀을 "traveling All-Star team'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갑자기 끽소리를 내며 멈춘 것은 2001년 3월 6일. 당시 42승 18패로 컨퍼런스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13승 48패의 밴쿠버를 홈에서 맞이했다. 그날 밤, 포틀랜드 구단은 드렉슬러를 초청하여 나쁜 금기를 깨고 있었다. 드렉슬러는 94-95시즌 트레이드를 요구한 시점부터 경영진과의 관계가 틀어져있었다. 그러나 낙관론을 불러일으키고 겉보기에 현재 계속 변화하고 있는 팀에 과거와의 강한 결속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기에, 경영진은 과거는 잊고 드렉슬러를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밴쿠버전 전반은 흐리멍텅했다. 그러나 휴식시간에 드렉슬러가 코트에 모습을 드러내자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드렉슬러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드렉슬러는 자신의 시대 동안에 포틀랜드에 우승을 가져다줄 수 없었던 것이 후회되고 그 시대의 팀동료들에게도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포틀랜드 경영진은 팀이 올바르게 흘러가도록 노력해왔으며, 우승할 바로 그 팀을 모았음을 믿는다고 드렉슬러는 말했다. 그 시점에서의 기록은 드렉슬러가 말한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었다. talent는 분명했다. 뎁스는 따라갈 팀이 없었다. 포틀랜드는 4년전 월러스를 얻기 위해 보냈던 로드 스트릭랜드까지 다시 데려왔다. 스트릭랜드는 데이먼 스타더마이어가 PG에서 드러낸 약점들 - 그렉 앤소니로는 커버할 수 없었던 부분 - 을 보완할 예정이었다. 본지 웰스는 SG에서 떠오르고 있었고 때때로 스티브 스미스의 자리를 위협했다. SF에서는 피펜, 슈렘프, 오그먼이 번갈아 나왔다. 빅맨으로는 월러스, 사보니스, 데이비스, 켐프가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


포틀랜드는 자연스럽게 라커룸을 나섰고, 신속히 패배했다. 밴쿠버 그리즐리스에게.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밤에 말이다. 이때부터 5연패를 했고, 8승 14패로 시즌을 마쳤다. 더이상 포틀랜드는 컨퍼런스 선두가 아니었고, 7위까지 추락했다. 7번시드는 바로 플옵에서 2번시드를 받은 LA 레이커스와 만나는 자리였다. 지난해 샥에게 패배했던 또다른 선수를 데려오는건 샥에게 대항하는 로스터를 보강하는데 추천받는 방법이 아님을 포틀랜드는 빠르게 알아냈다. 또한 숀 켐프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로스터를 보강하는 길이 아님도 찾아냈다. 포틀랜드는 3경기 모두 두자리수 차이로 패배하며 스윕당했다. 바람은 역풍이었고, 돛대는 물 속에 쳐박혔다.





2001-2002


Record : 49승 33패


감독 : 모리스 칙스


IN : 데릭 앤더슨, 루벤 붐체붐체, 릭 브룬슨, 미첼 버틀러, 크리스 더들리, 스티브 커, 루벤 페터슨, 잭 랜돌프


OUT : 그렉 앤소니, 스테이시 오그먼, 게리 그랜트, 안토니오 하비, 윌 퍼듀, 데틀리프 슈렘프, 스티브 스미스, 로드 스트릭랜드


드래프트 : 잭 랜돌프 (19번픽), 루벤 붐체붐체 (49번픽)


Leading Scorer : 라쉬드 월러스 (19.3 득점)


Leading Rebounder : 데일 데이비스 (8.8 리바운드)


Most Minutes : 라쉬드 월러스 (37.3 분)



50승을 했지만 플옵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은 마이크 던리비의 목을 날려버렸다. 시즌 중 어느 시점에서 선수들은 던리비가 감독을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선수들은 미디어 앞에서 감독을 큰소리로 비난했다. 두 차례의 비극적 시즌 마무리 이후, 누구도 던리비의 해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구단에서는 이 다루기 힘든 로스터를 이끌어나갈 선수친화적이고, 케미스트리와 합의를 이끌어낼 감독이 필요했다. 그래서 포틀랜드는 모리스 칙스를 선택했다. 칙스는 리그에서 빠르게 부상하는 어시스턴트 중 하나이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고, 필라델피아 우승멤버였으며, 닥터 제이, 모제스 말론, 바비 존스 등 스타들로 가득찬 팀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었다.


경영진은 또한 로스터의 상당부분을 갈아치웠다. 노쇠한 수비수 그렉 앤소니와 스테이시 오그먼이 떠났다. 스티브 스미스와 로드 스트릭랜드 역시 밀려났다. 그자리에는 공격수들이 들어왔다 : 미시간 주립 출신의 드래프티 잭 랜돌프(1996년부터 2003년까지 포틀랜드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드래프티였다), 샌안토니오의 SG 데릭 앤더슨, 장거리 슈터 스티브 커. 포틀랜드는 수비적인 부분을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지구상에서 샥이 자유투 내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인 크리스 더들리를 데려왔다. 시애틀의 자칭 '코비 스토퍼' 루벤 패터슨도 데려왔다.


로스터는 fiddling했지만, 균열은 이미 생기고 있었다. 영입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한 부분에 특화되어 많은 보수를 받고 있었지만, 누구도 다재다능하지는 않았다. 크리스 더들리-데일 데이비스 골밑은 리바운드와 인사이드 수비에서 도움이 될지라도 득점력이 심각하게 빈곤했다. 데릭 앤더슨과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는 수비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포틀랜드는 선수 친화적인 감독을 데려왔지만, 곧바로 방침을 선회하여 통제불능인 선수들을 영입했다. 패터슨, 앤더슨, 랜돌프는 향후 몇년간 문제를 일으켰다. 데이비스는 매일같이 까다롭게 굴었다. 숀 켐프는 이시점에서 1득점당 3M을 받고 있었고, 팀의 샐러리에 큰 부담이 되었다. 팀의 주축인 본지 웰스와 라쉬드 월러스는 코트 바깥과 라커룸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는 이후 마약 문제로 밝혀진 상태에 있었다. 완성된 팀에서 높은 수준의 농구를 하는데 익숙했던 스카티 피펜은 혐오 속에 두손을 들어버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이 로스터에서 합리성에 대한 유일한 권리는 미래의 NBA GM과 오레곤 주지사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될터였다.


또다른 따끔한 일격은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은퇴였다. 고역에 지쳤거나 나이와 부상의 무게를 절감했거나 혹은 이전 시즌을 망쳤던 라쉬드 월러스와의 타월 사건에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더들리는 괜찮은 수비수였지만 사이즈, 패싱 능력, 공격에서의 floor-spreading에서 사보니스를 대체할 선수는 없었다. 사보니스는 공격에서 조용하게 공헌해왔고, 포틀랜드는 그걸 되찾기 위해 시즌의 대부분을 소모했다.


이러한 로스터의 균열은 코트 위에서 바로 분명해졌다. 포틀랜드는 힘든 스케줄로 시작했고, 초반에 1승 3패를 기록했다. 5할 승률을 넘어서기까지는 41경기가 필요했다. 이번 시즌은 이전의 기준에 의하면 재앙이었다. 월러스와 웰스 외에는 득점이 없었다. 공격은 여전히 훌륭했으나, 수비는 괜찮은 수준에서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선수들은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지 못했다. 코칭 스태프는 모두를 만족시키거나 최소한 현상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봄이 되면서 상황은 나아졌다. 첫 40경기에서 20승 20패를 했던 포틀랜드는 마침내 약간의 on-court chemistry와 분명한 롤을 확립했고, 이후 29승 13패를 했다. 시즌이 다 끝났을 때, 지난시즌보다 1승이 적었을 뿐이었다. 월러스와 웰스는 나란히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루벤 패터슨이 그 뒤를 따랐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는 포틀랜드에 와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 정반대-시작은 평범했으나 강력한 폼으로 플옵을 맞이함-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49승은 컨퍼런스에서 6위였고, 바로 3번시드를 받은 레이커스와 1라운드에서 만나게 되는 위치였다. 포틀랜드를 변호하자면, 홈경기에서는 접전을 펼쳤고 겨우 1점차로 패배했다. 포틀랜드는 5번의 도전 끝에 한자리수 차이로 패배했다. 그러나 패배는 패배였다. 팀 야투율은 38%였고 강력한 리바운드만이 접전을 만들었다. 레이커스에게 두번 연속 스윕을 당한 후, 이 로스터로 다시 부활할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포틀랜드는 수렁에 빠졌다. 그때는 누구도 그 수렁이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한번 플옵에서의 '환호'가 있은 후 비로소 그것을 깨닫게 된다.


* pnics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5-16 21:43)
5
Comments
WR
2010-05-12 19:11:28

1996년 7월 15일에
포틀랜드는 라쉬드 월러스와 미첼 버틀러를 받으면서
워싱턴에 로드 스트릭랜드와 하비 그랜트를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은 글이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5-13 01:27:45

당시 워싱턴은 라쉬드라는 좋은 신인을 뽑았고, 실제로 라쉬드가 웨버의 부상 공백을 틈타 루키 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완 하워드-크리스 웨버라는 젊고 막강한 포워드라인을 구축하고 있던 워싱턴으로선 웨버가 돌아오면 라쉬드를 벤치로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포가진은 마크 프라이스가 부상으로 쓰러지며 텅 빈 상황이었죠. 로버트 팩이 있긴 했으나 역시 인저리 프론... 프라이스는 워낙 부상이 심해 예전 기량을 되찾긴 불가능해보였고 그래서 포가가 필요했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수년간 포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워낙에 고약한 성격을 지닌 선수라 늘 프런트, 코치진과 트러블을 일으켰죠. 게다가 포틀랜드는 FA로 케니 앤더슨 영입을 물망에 두며 스트릭랜드와 결별할 수순을 밟고 있었습니다.

결국 포틀은 유망주 포워드 쉬드를 받아오는 댓가로 스트릭랜드를 워싱턴에 보냅니다. 워싱턴으로선 UNC출신의 4번픽인 쉬드의 가치가 상당하긴 했지만 이미 쉬드가 아쉬울 게 없었던 포워드 라인이 구축된 상태고 포가가 워낙에 급했습니다. 대신 포틀랜드에서 하비 그랜트란 베테랑도 받아오며 쉬드가 빠진 포워드진의 공백을 메우려 했죠.

포틀랜드 역시 스트릭랜드가 좋은 포가였지만 팀 내 말썽꾼이었고 이미 케니 앤더슨이란 훌륭한 대체자원을 포착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특급 유망주 포워드까지 얻어올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죠.

이 트레이드는 그 당시만 봐도 참 윈-윈이었습니다. 포틀에서 쉬드가 말썽도 많이 폈지만 그래도 90년대 후반 올스타 군단을 이끈 에이스이고, 4대 파포로 불릴 정도로 잘 컸으니 그야말로 이득이었죠.

워싱턴도 스트릭랜드가 그야말로 전성기의 기량을 과시하며 (워싱턴 시절 스트릭랜드는 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포가였습니다...) 하워드-웨버같은 젊은 포워드들을 잘 이끌었습니다. 코트 밖에선 시끄러워도 코트 안에서 실력만큼은 진짜 리얼이었죠.

만년 약체 워싱턴은 스트릭랜드-하워드-웨버 3인방을 내세워 8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기도 했으나 최강 불스를 만나 1차전에서 박살났습니다. 워싱턴의 스윕이었지만 그나마 3차전에서 접전을 벌인 게 수확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시카고의 포스가 무지막지했죠. 당시 언론 매체에선 조던-피펜-로드맨의 불스 3인방과 워싱턴 3인방을 나란히 비교하는 떡밥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후... 웨버를 새크라멘토로 보내는 트레이드로 워싱턴은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웨버-리치몬드 트레이드도 양 팀이 당시엔 윈-윈이다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일방적인 새크 이득이었습니다.

웨버를 보낸 것도 뼈아펐지만, 당시 워싱턴 감독이자 악동 다루기의 제왕인 버니 비커스탭을 성급하게 경질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비커스탭이 떠나자 스트릭랜드는 마치 삼장법사의 금테를 벗어던진 손오공마냥 코트 밖에서 길길이 날뛰며 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 이후 워싱턴은 기나긴 암흑기를 걷게 됩니다.

2010-05-12 16:57:40

재미있네요 잘봤습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라쉬드가 워싱턴에서 올때 정확한 트레이드 내용을 알고계시면 좀 설명을...^^;
남은 시리즈도 잘보겠습니다

2010-05-12 17:08:32

3년 연속 레이커스에 졌었군요...
2010-05-12 17:59:24

16점 차였던가 여튼 거기서부터 야금야금 쫓아올라와 종료 직전 6점 차까지 벌려놓던.....랄의 수비 정말 무섭더군요

minphx
33
3316
24-04-25
nyk
64
5325
24-04-23
nykphi
32
3669
24-04-21
miaphi
42
7679
24-04-18
bos
79
10147
24-04-16
min
84
15234
24-04-16
atlbkn
41
6780
24-04-13
por
69
16661
24-04-12
hou
33
12190
24-04-08
orl
43
8120
24-04-10
dalsac
48
8534
24-04-05
dal
57
20309
24-04-04
gswind
89
11387
24-04-02
hou
62
11165
24-03-23
bos
126
31451
24-03-18
atlgsw
91
23094
24-03-18
bosden
59
7856
24-03-16
den
125
26225
24-03-14
lal
44
8912
24-02-24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