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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king Of An MVP' 챕터 3-'All Four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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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3 00:22:58

브라이언 윈드호스트와 테리 플루토가 쓴 브롱의 전기 'The Making Of An MVP' 번역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브롱의 인생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과 농구에 빠져들고, 여러 인연이 이어져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소개드린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챕터 1

챕터 2

챕터 6

챕터 8

챕터 12


드루 조이스 3세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결정을 내린 것은 13살 때였다.꼬마 드루는 까치발로 서봐야 5피트 2인치 정도가 될까말까했고, 5파운드짜리 추를 호주머니에 넣고 몸무게를 재도 110파운드 정도에 불과했다.

꼬마 드루는 몇 년 내로 그의 아버지 드루 조이스 2세가 평소 꿈꿔온 것을 훨씬 뛰어넘어 애크런의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의 감독이 될 줄 알 줄 몰랐다.

그는 파트타임 농구교실 코치였던 키스 댐브럿이 절대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애크런 대학교의 감독이 될 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의 친구 르브론 제임스가 2003 NBA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뽑히고, 스물넷의 나이에 NBA 최우수선수에 선정될 줄 알지 못했다.

그는 그 자신이 2002-2003 시즌 전미 1위 팀의 선발 포인트가드가 될 줄도 몰랐고, 애크런 대학교의 댐브럿 밑에서 뛰며 학교 통산 어시스트 기록을 깰 줄도 알지 못했다.

드루 조이스 3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설사 꼬마 드루의 눈을 들여다보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깔보지 않을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이야기는 1990년대 말 어느 일요일 밤, 애크런의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는 한때 1부 리그 대학 감독이었던 키스 댐브럿이 농구를 배우려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농구교실을 열고 있었다. 댐브럿은 센트럴 미시건 대학 감독으로 재직 중 팀 미팅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후 5년째 방랑생활 중이었다. 댐브럿은 그 단어가 특수한 문장에서 쓰였고 인종차별로 상대편을 공격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선수들이 대학을 상대로 댐브럿을 유임시켜달라는 청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고당했다. 더 나빴던 것은, 그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혔다는 것이다. 이제 35세가 되기 전에 애쉴랜드 대학과 티핀 대학 감독과 이스턴 미시건 대학 코치, 그리고 센트럴 미시건 대학 감독을 모두 지내본 댐브럿은 어디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됐다. 그는 고향 애크런으로 돌아와서 주식과 채권을 팔고, 스미스 버니 사에서 투자관리 업무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는 누군가가 그에게 기회를 주기 바라며 북동부 오하이오의 몇몇 가장 질이 낮은 농구 프로그램에까지 감독 지원서를 넣었다. 5년 동안은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가 댐브럿에게 일요일 밤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를 줬고,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식품회사 세일즈맨이었던 드루 조이스 2세는 페덱스 트럭 운전수였던 리 코튼과 함께 슈팅스타즈라는 여름방학 농구팀을 지도해오고 있었다. 코튼의 아들 시안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풋볼인 거구의 센터였다. 조이스는 농구를 좋아했고 언젠가는 고등학교 농구팀의 감독이 되고 싶어했다. 당시엔 슈팅스타즈에서 아들 꼬마 드루를 지도하면서 애크런 시 공립학교 시스템에 지원, 부틀 고등학교의 자원봉사 코치도 맡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조이스 부자

슈팅스타즈에는 시안 코튼과 꼬마 드루 말고도 두 명의 아이가 더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윌리 맥기와 르브론 제임스라 했다. 그들은 5학년 때 처음 만났다. 르브론과 맥기는 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르브론은 대부분의 시간을 워커 가족과 함께 살았고 주말은 어머니 글로리아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맥기는 시카고에서 애크런으로 이사온 후로는 형과 형수와 살고 있었다. 시카고에서는 맥기의 어머니가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둘 모두 안정적인 가족을 갈망하며 부성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코튼과 조이스 2세가 아버지 역할을 해줬다.

슈팅스타즈 시절

조이스 일파는 충분히 농구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유대 커뮤니티 센터의 댐브럿 농구교실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꼬마 드루가 7학년을 맞던 어느 일요일 밤 부자가 함께 전 대학 감독의 농구교실을 보러 갔다.

꼬마 드루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아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댐브럿의 말이다. “게임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었죠. 견실한 기초를 지닌 선수기도 했습니다.”

몇 주 뒤, 조이스 가족이 선수 한 명을 데리고 왔다. 6피트의 키와 커다란 손을 지녔고 멋진 모습으로 플로어를 뛰어다니는 비쩍 마른 7학년생이었다. 이 중학생 소년은 여느 중학생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옮겨 다닌 게 아니라 떠돌아다녔다.

그 소년의 이름은 르브론 제임스였다.

르브론은 13살 때 6피트 1인치 정도 됐었고, 배우는 건 모조리 흡수하려 하는 스폰지 같은 소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항상 뭔가를 배우려 했고 경청할 줄 알았죠.” 댐브럿의 말이다. “하지만 르브론이 그 나이였을 때는 아무도 그 아이가 훌륭한 프로 선수가 될 줄 몰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안과 리 코튼도 일요일 밤 농구교실에 합류했다. 윌리 맥기도 마찬가지였다. 댐브럿은 맥기의 형 일리야를 알고 있었다. 일리야는 애크런 대학교에서 농구를 한 적이 있었다. 댐브럿의 어머니가 애크런 대학 교수였는데 일리야 맥기를 가르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르브론이 가장 운동능력이 좋았지만 댐브럿이 가장 좋아한 아이는 꼬마 드루였다. 어떤 기술이나 훈련 시범을 보일 일이 있으면 댐브럿은 항상 드루를 선택했다.

꼬마 드루를 처음 지도했을 때 드루가 굉장히 열심히 했던 게 기억납니다. 거의 금욕주의 수준에 가까웠죠.” 댐브럿의 말이다. “드루는 어떤 훈련이든 해치웠어요. 부모님께 훈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1부 리그 대학농구 감독을 역임했기 때문에, 댐브럿은 운동능력만큼이나 코트를 보는 눈을 중시했다. 위대한 선수는 둘 모두를 갖고 있다. 몇몇 좋은 선수들은 평균적인 재능만 갖고 있지만, 남다른 농구 지능을 갖고 있다. 그것이 바로 꼬마 드루였다. 또 다른 면도 있었다. 댐브럿은 드루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드루와 마찬가지로 키가 5피트 8인치에 불과했던 댐브럿은 어느 팀에서도 보통 가장 작은 아이였고, 그의 감독들에게 자주 무시당하곤 했던 것이다.

슈팅스타즈의 네 친구가 일요일 농구교실에서 첫해를 보내는 동안에도 댐브럿은 계속해서 감독 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8학년이 될 무렵 댐브럿은 애크런의 사립 고등학교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의 감독으로 고용됐다. 학교 이사회의 몇몇 사람들이 댐브럿과 그의 가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댐브럿이 좋은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무료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는 소식도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댐브럿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댐브럿의 연봉은 3,000달러만 제시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댐브럿은 처음에는 팀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생계는 여전히 투자 사업으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댐브럿이 신통치 않더라도 그들은 댐브럿을 해고하고 단 3,000달러만 날리면 됐다. 그것은 학교 측에도 좋은 기회였다. 그들은 1부 리그 대학 감독 출신을 단돈 3,000달러에 영입해서 벤치에 앉히고, 최신 농구 프로그램을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 직장은 출발이 좋았다. 첫 시즌에 댐브럿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를 주 토너먼트로 이끌었다. 학교로써는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리고 댐브럿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훨씬 더 좋아지려 했다.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감독 시절의 댐브럿

전 솔직히 꼬마 드루와 나머지 친구들이 부틀 고등학교에 갈 줄 알았어요.” 댐브럿이 말했다. “드루 아버지(조이스 2)가 부틀에 코치로 있었거든요. 집도 부틀 부틀 고등학교 옆에 있었고요. 그리로 가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죠.”

애크런 서부에 있으며 학생 대부분이 흑인인 공립 부틀 고등학교는 애크런 시내 8개 공립 고등학교 중 가장 뛰어난 체육 프로그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학교는 풋볼 부와 농구부 학생들을 계속해서 1부 리그 대학으로 보내곤 했다.

그래도 댐브럿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조이스 일파를 설득해보려 했다. 그 학교는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졸업생 중에는 애크런 지역의 민간 경제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비록 학생의 90%가 백인이었지만, 이 가톨릭 학교는 소외계층 학생들을 뽑아오고 있었다. 애크런 도심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다.

저희 네 명은 같은 고등학교로 함께 진학하기로 약속할 정도로 우애가 깊었죠.” 르브론의 말이다. “저희는 여자애들, 학교, 운동종목 등 어떤 것이든 저희 사이를 갈라놓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고등학교로 갈 것인가?

부틀은 그들 모두에게 적극적인 스카우트 공세를 폈다. 하지만 꼬마 드루는 그들의 진짜 목표는 르브론 뿐이라 생각했다.

부틀은 제 작은 몸집 때문에 절 제쳐놓을 거라 생각했어요.” 드루의 말이다. “저희 모두가 세인트 V를 좋아했어요. 댐브럿 감독님이 거기 있었거든요. 하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죠.

조이스 일파는 회의를 가졌다. 꼬마 드루는 부틀의 코치로 있는 아버지가 왜 자신들을 부틀로 보내려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거기서는 뛸 기회를 얻지 못할 거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댐브럿이 그를 아끼며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줄 것 같다. 그게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라 말했다.

꼬마 드루는 부틀로 가면 뛸 기회를 잃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아요.” 댐브럿의 말이다. “드루는 제 지도를 받는 게 잘 맞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무렵 부틀 코칭스태프가 글로리아 제임스 씨에게 아들을 부틀로 보내도록 작업 중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글로리아 씨는 전적으로 중립을 지켜줬죠전 글로리아 씨가 아들에게 엄청난 헌신을 했고, 진정으로 아들을 위해 최선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부틀은 특히 풋볼 부문에서 선수들의 대학 진학률이 매우 준수한 시내 공립 고등학교였다. 게다가 애크런 흑인사회의 대부분은 부틀의 운동부 전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드루 조이스 2세와 리 코튼에게 아들을 부틀에 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왔다. 그럴 경우 르브론이 당연히 따라붙을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행은 몇몇 지역 주민들에게는 애크런 빈민가 사회에 대한 반역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꼬마 드루를 낙담시키지 못했다.

제가 세인트 V로 가겠다고 말했어요.” 드루의 말이다. “그러자 나머지 친구들이 따라왔죠.”

드루는 여름방학 농구팀에서 포인트가드를 봐왔다. 그는 타고난 리더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큰 존경심을 품고 있었지만, 부틀에 가지 않을 이유를 설명할 만한 배짱도 지니고 있었다.

꼬마 드루가 세인트 V로 오겠다고 하자 르브론의 부담이 절어졌습니다.” 댐브럿의 말이다. “모두가 르브론이 다른 친구들을 따라갈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르브론은난 친구들과 함께 갈 거예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됐죠. 그리고 글로리아 씨는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톨릭 학교인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는 어쩌면 르브론의 첫 선택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의 좋은 친구인 프랭키 워커 주니어(팸과 프랭키 워커 씨의 아들)가 부틀 진학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 세 명-드루 조이스 3,윌리 맥기, 시안 코튼-이 그의 마음을 더 강하게 끌었다. 10년 후 MVP 시상식에서, 르브론은 관객석을 둘러본 후 드루 조이스 2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친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신발끈 매는 법을 가르쳐주고 옷을 개는 법을 알려주고하지만 저 분이 아버지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대신 해줬습니다.

르브론이 어린 시절 이곳 저곳으로 얼마나 많이 옮겨 다녔는지 생각해보라. 워커 가족과 어떻게 2년간 살게 됐는지, 거기서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생각해보라. 주위에 자신이 믿을 만하고, 옳은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옳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해보라. 평화와 제대로 된 삶을 원하던 아이가 친구들 속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찾아냈는지 생각해보라.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은 꼬마 드루였다. 그리고 부성을 갈구하고 있던 르브론과 맥기에게 그들의 포인트가드를 따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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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0-02-13 01:30:34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헬턴트 님 덕분에 항상 브롱이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는군요.

2010-02-14 15:52:18

정말 능력자시네요... 번역킹...;
추천과 함께 잘 볼게요~

2010-02-15 06:09:38

추천드립니다

2010-02-16 03:51:01

인간 르브론도 정말 매력적이고, 번역글도 너무 깔끔하고 좋네요

알지못했던 르브론의 인생사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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