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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Making of an MVP-브롱, 미디어를 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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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5 14:15:43

브라이언 윈드호스트와 테리 플루토가 공동 집필한 'Making of an MVP' 네 번째 순서입니다.

오늘은 브롱이 어떻게 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 노련하게 대처하게 됐는지 소개됩니다.

평어체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브롱은 지난 동부 파이널에서 탈락한 후 악수와 공식 기자회견을 거부해서 전국 미디어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입을 삐죽 내밀고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브롱의 평소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사실은 브롱이 미디어 앞에서 실수를 저지른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처음으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15살에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브롱이 세인트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의 스타 신입생이었을 때였고,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리라고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메이저급 TV 방송국이나 60분, 데이비드 레터맨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오프라 쇼 같은 유명 토크쇼에 나와보지 못했을 때이기도 했다. 그 때는 브롱이 겨우 지역 신문에 자기 이름이 나오는 걸 가지고도 기사에 나온 자기 사진을 소중히 스크랩하던 15살 때였던 것이다.

그 때도 브롱이 미디어에게 무시당했다고 느낀 때는 있었다. 1학년 말에 브롱은 학교가 25승 무패를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Ohio All-State team에 오르지 못한 걸 보고 분노한 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All-State team은 정규 시즌이 끝난 후 미디어 투표인단들에 의해 선발되는데, 투표인단은 브롱에게 1학년은 좀처럼 선발되기 힘들다고 설명해줬다. 그래도 브롱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몇 주 뒤 브롱은 팀을 오하이오 주 우승으로 이끌며 Division III state tournament MVP에 선정되었고, 그가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큰 주목을 받았다.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직원들이 브롱에게 특별관리가 필요함을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점 많은 인터뷰 요청이 학교로 밀려들었다. 브롱이 고등학교 첫 주 토너먼트에 임하기 전에 데이비드 래츠 교장은 농구부와 면담을 갖고 미디어 인터뷰에 임하는 법을 의논했다. 키스 댐브럿 감독은 브롱을 앉혀놓고 미디어에 얼마나 참을성있고 공손하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곤 했다. 브롱이 참가한 몇몇 여름 캠프에서는 미디어 대응법에 대한 강연을 받기도 했다.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그동안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PR 및 미디어 전문가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법을 설명해주곤 한다. 그들은 기자가 질문할 때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보며 듣고, 대답하기 전에는 잠깐 시간을 둘 것을 조언해준다.

브롱은 이런 교육을 받는 것뿐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다. 자신의 우상인 마사장의 인터뷰 영상을 틀어놓고 말이다. 브롱은 마사장이 아무리 무례한 질문에도 거의 흥분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마사장은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항상 잘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나타난다는 것도 배웠다. 브롱은 클리블랜드에서 PR 전문가로 활약하던 알렉산드라 분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기자나 카메라 앞에 서는 브롱의 자신감을 높여줬다.

이 분야에서 브롱에게 중요했던 사람은 고등학교에서 대부분의 PR업무를 맡고 있던 학교 관리인 패티 버든이었다.

"그 아이에게 데니스 로드맨의 예를 들어줬습니다." 버든의 말이다. "그는 훌륭한 농구선수고 위대한 리바운더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자기 책 팔려고) 웨딩 드레스나 입던 사람으로 기억할 겁니다. 그 아이에게 그런 사실을 잘 기억하라고 말해줬어요. 그 아이는 그런 식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려 하진 않았죠. 한 번만 실수해도 꼬리표가 오래 따라다니니 말입니다."

브롱이 SI 표지로 나섰던 2학년때부터 그는 지역 스타에서 전국적인 명사로 발전했다. SI지는 그에게 '쵸즌원'이란 별명을 붙여줬고, 그랜트 월이 쓴 기사에는 전 NBA 선수이자 감독인 대니 에인지가 '그 아이는 미래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 말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에인지는 심지어 16살짜리 고2 학생에 불과했던 브롱이 지금 당장 드래프트에 나와도 1픽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 기사가 나오자 그 아이는 어린애처럼 들떴어요," 버든의 말이다. "그 기사는 한동안 우리 지역 최고의 얘깃거리였죠."

얘깃거리뿐아니라, 유명인이 됐다는 건 브롱의 인생에서 실제상황이 돼버렸다.

"그 기사가 나가자마자 그 아이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우편물이 전국 각지에서 50개나 밀려들었어요." 바버라 우드의 말이다. "그 아이는 한동안 사인을 해줬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제 책상으로 달려오더니 사람들이 자기 사인을 이베이에서 팔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아이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하더군요. '선생님, 저건 제가 판 게 아니에요! 제 돈이 아니라구요!' 그리고 나서 그 아이는 사인해주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저는 나무라지 않았어요. 그 사건이 그 아이에게 눈을 띄워줬습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아이같았죠. 전 그 사건 이후로 그 아이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브롱은 어른들에게 사인해주는 일을 그만뒀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길 이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을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생각하며 공공장소에서 거칠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가 맞기도 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브롱은 그저 자신과 악수하고 그에게 행운을 빌어주려던 순수한 팬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2008년에 방송된 '60분'에서 브롱은 그때 SI 표지모델이 된 것이 그렇게 큰 일인 줄은 몰랐다고 토로한 바 있다. 물론 그때도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 표지는 브롱을 지역에서 좀 유명한 꼬마에서 전국적인 얘깃거리로 이끌었다.

오늘날엔 고등학교 농구경기가 지역 방송이나 때로는 ESPN같은 전국 방송에서 중계되는 것이 일상사가 됐지만, 2002년 세인트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가 농구명문 오크힐 고등학교와 맞붙던 때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ESPN이 우리 학교에 연락해서 오크힐과의 경기를 중계하면 안되겠냐고 하더군요." 버든의 회상이다. "그런데 경기 날 ESPN 프리게임 분석을 보는데, 대학농구 평론가인 제이 빌라스가 학교가 얼마나 학생을 팔아먹는지 열변을 토하더군요. 정말 화가 났습니다. 중계를 요청한 것은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었거든요. 카메라도 그들 것이었어요. 브롱이를 괴롭힌 건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나운서 딕 비테일과 빌 월튼은 경기 전에 라커룸에 쳐들어갔어요."

브롱은 그 게임을 64-45의 대승으로 이끌었다. 그 경기는 13,000여 명에 달하는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리블랜드 주립대 체육관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이 그날 경기에서 브롱이 겪어야 했던 압박감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졸업반이었고 NBA 드래프트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농구화 회사들은 벌써부터 야단인 상태였다. 수백만달러의 돈이 눈앞에 있었다. 가족을 풍족하게 먹여살릴 돈이 브롱의 인생 목표 중 하나였음을 기억해보라. 그 경기는 농구화 회사들에게 그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였을 뿐아니라 프로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그의 가족과 그가 돕고 싶은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딕 비테일과 빌 월튼이 중계하는 전국 방송 앞에서 형편없는 경기를 하기라도 하면 브롱이 가족을 위해 갖고 있던 꿈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브롱의 어머니 글로리아는 그날 특히 크게 분노했다.

"글로리아 씨의 얼굴에서 긴장감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버든의 말이다. "그녀는 엄마고, 당연히 아들을 걱정하죠. 전국 방송 앞에서 아들이 좋은 경기를 못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거죠. 우리 학교가 글로리아 씨의 아들을 전국 방송에 팔아먹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 생각은 당시 글로리아 씨도 조금 갖고 있었고, 모성 본능에 따라 그분은 전국 방송 중계를 반대하기도 했죠.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걸 원했어요. 심지어 브롱이마저 '그래요? 한번 해보라고 해요!'라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 경기 이후 학교는 밀려들어오는 제안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해 ESPN이 또다시 전국방송 중계를 요청해왔는데 그땐 거부했습니다." 버든의 말이다.

브롱의 졸업반 시즌에 ESPN The Magazine은 처음으로 브롱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톰 프렌드가 쓴 그 기사에서는 브롱의 어머니인 글로리아를 집중 공략했고, 그녀의 사생활적인(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브롱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지역 언론 기자들 모두가 글로리아가 어려운 삶을 살았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기사로 쓸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브롱의 어머니가 내린 잘못된 결정 몇 가지로 왜 브롱을 괴롭혀야 하나?(제가 ESPN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겁니다) 그런 온갖 난리에도 불구하고 브롱은 졸업반의 반도 지나지 않은 17살짜리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프렌드는 ESPN의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 계속해서 브롱의 어머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당연하죠. 자기 중계가 거부당한 이유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또한 세인트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의 모든 것도 공격했다. 브롱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선이 갑자기 바뀌었고, 브롱은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모든 것에 손사래를 치며 안하겠다고 버틴 때가 있었어요." 버든의 말이다. "그때 거절한 것들에는 합법적인 것들도 있었고, 그 아이는 미디어는 비즈니스라는 걸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이 레노, 오프라, 레지스, 그리고 켈리... 진짜 괴물같은 것들이 앞에 있다는 걸 알았죠. 그런 요청이 밀려들 때마다 저희는 평정을 유지하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들 앞에서 뭘 말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그런 방면으론 모두 애송이나 다름없었던 거죠. 학교에선 그런 요청들을 브롱이에게 가지고 가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는데, 그 아이는 대부분 '싫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아이는 매일 아침 6시반에 학교에 왔는데(부지런하다!) 카메라는 그때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죠." 우드의 말이다. "사람들은 아침 6시부터 학교에 와서 큰 경기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서있었어요. 어떤 방송국에서는 도서관까지 들어와서 인터뷰좀 하자고 하더군요. 브롱이가 절 쳐다보는데, 6-6짜리 덩치가 마치 강아지같은 눈을 하고 묻더군요. '선생님, 저 이거 해야 하나요?' 그래서 말해줬죠. '당연히 안돼!'"

브롱이 졸업반이 되자 모든 카메라는 수업시간 동안 쫓겨나게 됐고, 교직원들은 브롱을 미디어로부터 보호해주기로 했다.

많은 스포츠 및 연예계의 어린 스타가 브롱이 겪어야 했던 일을 겪으면서 긴장이 풀어져 미디어 혐오증 환자로 변해가지만, 브롱이 NBA에 입성했을 때는 여전히 미디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발전해있었다.

그는 루키 워크샵에 참석해 미디어 대처법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 수많은 미디어 경험에도 불구하고 브롱은 미디어 대응 경험상 불리한 점이 있었다. 대학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브롱은 일간 미디어의 매일같은 아우성에 익숙해져있지 않았다. NBA는 프로모션을 돈을 벌어야 하고, 그중에는 신문, 라디오, TV에 선수들을 노출시키는 것도 포함돼있었다. NBA에서 시행하는 네트워크와 방송 스케줄도 있다. 선수나 코치들은 미디어를 상대해서 리그 수익을 올려줘야 한다. 명문대학교를 나온 대부분의 루키가 그런 맛을 보고 NBA에 온다. 그들은 경기날이 아니라 연습 후에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는 데 익숙해져있는 것이다. 그들은 NCAA 토너먼트같은 큰 무대에서 미디어를 다뤄본 경험이 많다.

브롱은 고등학교 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미디어를 겪어본 선수일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미디어에 시달려왔다. 브롱은 겨우 18살에 온갖 카메라 플래시에 선탠을 한 느낌을 받았다. 15살짜리 신입생 슈퍼스타의 이야기가 신문사를 살리고, 카메라 플래시들은 18살의 브롱에게 가끔은 미디어 노출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2003년에, NBA는 새로운 얼굴로 브롱을 필요로 했다. 브롱은 관중 동원 리그 꼴찌였던 클블로 가게 됐다. 클블은 지난 3년간 전국방송읗 단 한 번도 타지 못했고(아... 안습...;;), 지난 5년간 플옵에 오르거나 위닝 시즌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브롱이 입단하기 전에는 매월(매년 아님) 1밀에 가까운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로터리 공이 로또를 맞혔고, 브롱이 고향팀으로 오게 된 것이다. 클블은 브롱이 재정적으로 혼수상태였던 팀을 순식간에 살려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클블은 브롱을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브롱이 팀원이 되기도 전이었던 프리드래프트 워크아웃때조차도 모두 팀이 초대한 100명에 달하는 취재진이 브롱이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취재했다.

그가 드래프트되고 나서는 훨씬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클블 직원이라면 누구나 취재하려 했고 브롱이 클블 저지를 입는 순간을 찍어댔다. 늦여름에는 심지어 클블 외곽에 있는 한 스튜디오로 기자들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브롱이 새 시즌 라디오 광고를 녹음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프런트는 브롱이 여름 내내 최대한 많은 뉴스에 오르기를 바랬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 끝에 클블은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많이 뉴스에 노출된 여름을 만끽하게 됐다.

브롱 혼자서 이 많은 일들을 해낸 것이지만, 그는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미디어에 지쳐버렸다. 루키 시즌 그가 원정가는 팀마다 엄청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느라, 브롱은 경기 당일에도 세 번씩이나 인터뷰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아침에 슈팅 연습을 하고 나서, 경기 1시간 또는 30분 전에, 그리고 경기 직후 말이다.

매년 클블이 자주 치르는 전국방송 경기에는 브롱의 일정을 바꿔야 할 정도로 훨씬 많은 미디어가 개인 인터뷰를 신청하곤 했다. 실제로 경기 당일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많은 인터뷰를 한 선수는 그때까지 없었다.

"그때까지 클블에는 이렇게 미디어가 많이 원하는 선수가 없었죠." 클블 창단 이래 2년만 빼고 모든 경기의 라디오 중계를 맡고 있는 조 태이트의 말이다. "그 친구가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 평생 인터뷰만 하는 것 같더군요. 물론 그게 다 의무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불평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사실은 벌써부터 PR 부서에 피로를 호소하곤 해왔다. 하지만 브롱은 항상 제때 싫다고 말하지를 못했다. 프리시즌 동안 SI가 방문해서 NBA 프리뷰 특집호에 브롱을 표지 모델로 쓰고 싶다고 했다. 루키로써는 드문 영광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SI는 지난 300여 개의 SI 표지를 찍어온 전문가 월터 아이유스를 데려왔다. NBA 전문가인 잭 매컬럼이 직접 클블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런데 브롱이 SI에 할애해줄 수 있었던 시간은 단 30분 뿐이었다.
2년 전 브롱이 처음 SI 표지모델이 됐을 때는 아침 내내 찍어댈 수 있었다. 그랜트 월에게 준 인터뷰는 수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유스가 20분 동안 지금도 유명한 브롱이 볼 잡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사진을 찍고, 매컬럼이 10분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브롱의 미디어 피로증은 그가 인터뷰때 잘못된 대응을 하게 만들었고, 이는 기사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 해 클블은 크리스마스 경기로 티맥의 올랜도를 상대하게 됐다. ESPN과 ABC가 중계권을 딴 지 2년째 되는 연간 최고 시청률이 보장된 경기날이었다. ABC는 샼과 야오밍이 대결한 레이커스 휴스턴전을 중계하기로 했고 프리게임 쇼로 브롱의 경기 직후 인터뷰를 내보내려 했다.

브롱은 루키 시즌을 통틀어 가장 좋은 34득점 경기를 펼쳤지만 티맥이 40점을 올리며 연장 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브롱은 패배에 크게 실망했고, 연장전을 가는 바람에 레이커스-휴스턴의 프리게임 쇼에 맞추지 못하게 됐다. ESPN 기자인 존 선더스가 기자석에서 내려와 개인실에 틀어박힌 브롱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브롱은 거절해버렸다. ABC는 당연히 그가 인터뷰를 할 줄 알고 시간을 잡아놓고 있었다. 클블 미디어 부서 직원들이 내려와 NBA에게 ABC 방송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했지만 브롱은 몇 번이나 거절했다.

브롱이 전국 미디어 또는 방송과 가질 인터뷰 스케줄을 캔슬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렇게 많은 인터뷰를 해줬는데도 그 몇 번의 캔슬이 그의 루키 시즌에 오점을 남겼다. 브롱이 가진 문제는 수많은 인터뷰어 속에서 누가 메이저 언론이고 누가 마이너인지 가려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시즌이 시작할 때 18살이었던 브롱은 19살이 되던 때 이미 몇몇 NBA 선수들이 평생 가진 것보다 많은 인터뷰를 가져야 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브롱은 미디어 상대 일정을 확정지었고 미디어와의 관계는 발전돼갔다. 그는 미디어에 훨씬 호의적이 됐고, 메이저 미디어를 다루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 친구는 제가 이 바닥에 있는 동안 본 어느 슈퍼스타보다도 미디어를 많이 상대하고 있습니다." 클블 TV 캐스터인 프레드 맥로드의 말이다. "프리게임과 포스트게임 인터뷰에 꼭 참석하고, 매일 연습때도 인터뷰를 합니다. 그 친구는 질문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죠. 그 친구가 대답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한다는 것이 보일 겁니다. 전 이 바닥에 27년이나 있었지만, 그렇게 미디어를 잘 다루는 선수는 본 적이 없어요."

클블은 브롱을 단체로 인터뷰할 수 있는 시간을 10분 정도 준다. 지역 언론이나 중계진과 1:1 인터뷰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조 태이트는 얼마 전 그런 드문 기회를 얻었다.

"그 친구는 제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았어요." 태이트의 말이다. "그 친구를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죠."

글로리아 제임스는 태이트의 중계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이 캐스터를 볼 때마다 달려가 푹 안기곤 한다. 태이트는 브롱이 항상 인터뷰 시간을 지켜서 고맙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사 제 때 오는 일이 없었던 숀 켐프같은 선수도 상대해봤습니다." 테이트의 말이다. "아주 죽어나죠. 르브론은 그러지 않아요. 팀 전세기 안에서도 조용합니다. 카드게임 할 때는 빼고요. 그때만은 엄청 시끄럽게 얼마나 딸 건지 떠들어대곤 하죠."

그래서, 얼마나 딸까?

"전 그 친구가 얼마나 카드게임 얘기를 하는지는 알지만 얼마나 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브롱은 미디어에 그런 카드 허풍선이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맥로드에 따르면, 그는 '애늙은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그건 당연....;;). 브롱은 20대에 40대처럼 행동한다.

"저는 수많은 말도 안되는 질문에 그가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 놀랬습니다." 맥로드의 말이다. "무슨 질문인지 잘 들어서 대답하죠. 코트에 있을 때랑 똑같아요. 신체적으로 뛰어나고, 정신적으로는 더 뛰어납니다."

브롱은 미디어 종사자를 좌절시킬 수도 있다. 경기 당일날 누구에게도 인터뷰를 허용치 않음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슈퍼스타에겐 사생활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갑니다" 베테랑 코트사이드 캐스터인 제프 펠프스의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하고 싶어하죠. 그는 엄청나게 프로페셔널하고 엄청나게 공손해요. 방송 용어만 사용하기 위해 조심해서 말합니다. 인상적이죠."

펠프스는 클리블랜드 주립대 TV 방송국 소속으로 브롱의 고등학교 경기를 중계한 적도 있다.

"그 친구가 TV에 나오는 걸 좋아했던 꼬마 시절을 기업합니다." 펠프스의 말이다. "경기 전에 그를 만나러 온 팬 몇 명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취재 라인으로 오더니, 하나하나 줄을 세우는 겁니다. 저는 그 친구가 인간적으로뿐아니라 미디어 인격체로 자라온 걸 봤어요. 항상 미디어에 어떻게 비칠지 신경씁니다. 모든 선수가 그렇지는 않아요."

2년차 시즌을 보낸 후에 브롱은 코트 밖 매니지먼트 책임자와 다시 일하게 됐고 에이전트를 새로 고용했다. 그리고 뉴욕을 기반으로특히 뮤지션들을 관리해온 키스 에스타브룩과도 계약했다. 브롱은 자신만의 마케팅 회사인 LRMR을 친구들과 함께 설립했고, 에스타브룩은 그 회사에서 브롱의 국내외 마케팅을 맡고 있다.

브롱은 CBS에서 방송하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단골 게스트이기도 하다.

"레터맨 쇼에 브롱이 나온 걸 봤는데 몇 주동안 나온 것처럼 하더군요." 태이트의 말이다. "완전히 긴장을 풀고 제때 웃고, 조크를 터뜨리고요. 그걸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는 정장을 입고 GQ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는 남성 건강 잡지 표지에도 나온 바 있었다. 포브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경제지에도 인터뷰가 실렸다. 2008년에는 보그 지 116년 역사상 세 번째 남성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다른 두 명은 리처드 기어와 조지 클루니였다. 브롱은 유명 사진작가인 애니 래보비츠가 가 진행한 촬영 시간에 탑모델 지젤 번천과 함께 등장했다. 그는 촬영에 20분 이상을 할애했다. 애크런 시내 한 극장에서 히터를 틀어놓고, 몇 몇의 팬들과 함께 한 이 촬영은 마치 조그만 영화 촬영과 같았다.

브롱은 오프라 윈프리 쇼 출연에도 동의한 뒤 어머니와 오랜 여친인 사바나 브린슨을 데리고 나왔다.

취재대상의 밝은 면만 부각하진 않는 '60분'에서, 브롱은 평소엔 취대 대상에 무차별 질문 공세를 퍼붓는 스티브 크로프트 기자 앞에서 70풋 변태샷을 성공시키며 그를 자신에게 매료시켰다. 그 슛은 딱딱한 질문 공방을 넘어서며 그 프로그램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됐다. 그것은 브롱이 모든 어려운 질문에 쿨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크로프트가 얼마나 빨리 브롱에게 매료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브롱은 자신이 미디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팀의 얼굴, 리그의 얼굴, 그리고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단 걸 빨리 배워나갔습니다." 펠프스의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주길 바라고, 미디어를 잘 다루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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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9-12-15 15:46:23

정말 쿨하긴 하죠.

2009-12-15 16:46:54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번역이 매끄러우셔서 보기가 더 편한 것 같아요-
이거 원문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WR
1
2009-12-15 18:37:08

출판사인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 지에 링크가 있습니다.

http://www.cleveland.com/cavs/index.ssf/2009/12/a_star_at_age_15_lebron_worked.html


20여 개의 챕터 중 5개를 맛보기로 소개해놨고 이 섹션을 번역중입니다.

2009-12-17 09:29:25

감사합니다

2009-12-15 21:43:33

70풋 변태샷

WR
1
2009-12-16 00:03:45

말하자면 이런 거죠.

2009-12-16 01:45:38

헉... 저게 고등학생 시절의 브롱군인가요

2009-12-16 18:54:05

올해 3월입니다.

2009-12-16 18:54:59

보그 촬영에 2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니

2010-01-01 08:11:06

점프볼에서도 그대로 배꼈나보네요....전 그쪽에서 직접 쓴건줄 알았는데....표시가 되어있던가....흠....

WR
1
2010-01-01 12:52:37

그 점프볼 기사를 쓴 사람이 저입니다. 매니아에 올린 글을 종합해서 제 웹진에 올렸고, 제휴관계인 점프볼에서 플레인 딜러지에서 출간한 책을 요약했음을 밝힌 제 기사를 게시했습니다. 뭐가 문제죠?

2010-01-02 01:49:55

오해하신듯하네요... 그게 아니라 점프볼측에서 직접 쓴것인줄 알았다는겁니다...
점프볼측 글을 볼 때 헬턴트님이 썼다는 자료가 없으니 제가 알았을리 없죠...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말해본건데요...
점프볼에서도 본 글이라...

2010-01-02 02:18:55

오해하지마세요 글은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근데 점프볼에도 똑같은 글이 올라와있고

신x섭 칼럼니스트(rotaract2030@naver.com)

이분이 썼다고 나와있어서...제가 알수가 없었죠..본인이실수도 있겠지만 아이디도 다르니까요 그냥 별 생각없이 올린겁니다. 점프볼측에도 자세한 설명은 안나오니까요
설명이 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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