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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Making of an MVP-가족이 필요해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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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0 21:45:14

브라이언 윈드호스트와 테리 플루토가 공동 집필한 'Making of an MVP' 두 번째 소개 시간입니다. 오늘은 빈민가에서 어렵게 자라던 브롱이 후견인을 만나서 마침내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지난 순서에서 브롱이 보여준 고등학교 시절의 행동과 가치관이 어떤 유년기를 거쳐 성립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평어체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09년 NBA MVP 시상식에서, 브롱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팸과 프랭키 워커 씨는 제가 이 자리에서 이 상을 받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브롱이 MVP를 받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꼽을 때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이름을 댄다. 브롱의 어머니 글로리아, 어린 시절 코치였던 키스 댐브럿과 드류 조이스 2세, 여러 프로 감독들, 2008년 올림픽에서 브롱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던 코비나 키드같은 NBA 선수들....

하지만 워커 가족에 대해 들어본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워커 가족은 브롱이 젓가락처럼 긴 다리를 가졌고 가끔은 겁이 많으며 대부분은 수줍음을 많이 타던 8살때 그를 처음 만났다. 워커 가족은 당시 브롱에 대해 조용하고 키는 큰데 비쩍 마른 몸으로 프랭키 워커가 지도하던 사우스 사이드 레인저스 유소년 풋볼 팀에서 뛰며 6경기에서 18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던 꼬마로 기억한다. 그들은 생활고를 겪는 싱글맘 밑에서 생활의 안정이 필요했던 브롱에게 같이 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브롱이 태어난 1984년 12월 30일에 글로리아 제임스는 16살이었다. 그녀는 어머니 프레다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프레다는 일찌감치 남편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미용사이자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브롱 가족은 애크런의 히커리 가에 위치한 비교적 큰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브롱이 세 살 생일을 맞기 1주일 전이던 1987년 크리스마스날, 프레다 제임스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때 글로리아는 19살이었다. 혼자서는 그녀와 외아들이 그 집에서 함께 살 정도의 돈을 벌 수 없었다. 브롱은 각종 인터뷰에서 자신이 8살 생일을 맞을 때까지 10번 정도 이사를 다녔다고 말한 바 있다. 새로 이사간 집은 대부분 먼저 집보다 더 작고 나쁜 집이었다. 글로리아는 가끔씩 그 어린 나이에 아들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에 짓눌려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브롱이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브롱 역시 여러 번 전학을 다녀야 했다. 브롱은 인터뷰에서 그 무렵에는 1년에 80~100일씩 학교를 빠지곤 했다고 말했다. 브롱은 늦게까지 집에 머물며 어머니 글로리아와 함께 TV를 보곤 했다. 그의 생활에는 안정도, 아버지의 영향력도, 삶에 대한 설계도 없었다. 사우스 사이드 레인저스에서 풋볼을 할 때를 빼놓곤 말이다. 워커 가족과 브롱 자신은 이 암흑기를 얘기할 때 대단히 조심스러워한다. 브롱의 어머니 글로리아를 폄하하는 말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MVP 시상식에서 브롱은 청중 앞에 서서 어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전 아직도 당신이 (제게) 어떻게 그렇게 해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은 어떻게 글로리아가 10대 싱글맘을 노리는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글로리아 자신과 아들 브롱을 지켜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대부분이 그 아이를 슈퍼스타로 인식하고 있죠. 얼마 전에 우리 딸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 브롱이가 슈퍼스타야?'" 팸 워커가 웃으며 한 말이다.

그것은 워커 가족이 브롱이 17살의 나이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지의 표지 모델이 되고, 2003년 드래프트 1픽으로 뽑히며 'Chosen One'이 되기 훨씬 전부터 브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브롱을 그저 나쁜 길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있던 얌전하고 잘 뛰어다니던 어린아이로만 기억할 뿐이다.

워커 가족이 브롱을 집에 들이기로 했다 해서 그를 글로리아에게서 떼어놓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브롱에게 머물 곳과 그의 감성을 지켜줄 가족을 주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브롱의 미래에 NBA가 있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도시 빈민가에 사는 아이들이 빠지기 쉬운 약물, 범죄, 또는 다른 나쁜 길로부터 브롱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다. 워커 가족은 글로리아에게 그들이 글로리아를 믿고 있으며, 아들을 보고 싶으면 아무 때라도 찾아와도 좋다고 말했다. 때로는 글로리아에게 돈을 저축할 시간과 머물 곳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브롱의 친아버지는 알려진 바가 없고, 최소한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오하이오 주 교도소에 있는 흉악범을 포함한 몇 명의 남성이 브롱의 아버지임을 주장한 적은 있지만 아무도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지 못했다. 한동안 애크런는 센트럴 하워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당한 롤랜드 비빈스가 브롱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말이 돈 적이 있다. 브롱은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라고 밝힌 적도 없고 그런 질문 자체를 잘 받으려 하지 않는다. 글로리아의 친한 친구였던 에디 잭슨이 나중에 브롱에게서 '아빠같은 아저씨'라 불린 적은 있다. 그는 브롱의 고등학교 시절 글로리아 모자를 도우려 애썼고 브롱이 스폰서 농구화를 선택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잭슨은 한 번도 브롱의 친아버지라 주장한 적이 없고, 브롱의 어린 시절 항상 같이 있지도 않았다(잭슨은 브롱의 어린 시절에는 마약 판매 혐의로 복역중이었습니다).

브롱은 생활의 안정이 필요했다. 가족이 필요했던 것이다.

MVP가 되기 위해서는 훈육이 필요하다. 자신이 팀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권위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더 좋은 계약을 이끌어내거나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걸 항상 걱정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MVP는 팀에서 가장 가치있는 선수지 팀의 유일한 선수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브롱이 그런 것들을 배운 것은 바로 워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였다.

"처음에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어요." 팸 워커의 말이다. "우리들도 그런 식으로 아이를 데려와본 적이 없었거든요."

브롱이 엄마랑 떨어졌다고 화를 내지는 않을까? 권위, 특히 가부장적 권위에 반발하진 않을까? 브롱은 그때까지 집에서 그런 식의 권위를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워커 부부는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브롱이 이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지는 않을까? 그들은 브롱의 행동을 강제할 법적인 권위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또한 브롱을 데려간 후 글로리아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알 수 없었다.

워커 가족은 주위에서 높이 존경받는 집이었다. 프랭키 워커는 애크런 주택관리국에서 일했고(나중에는 도시 빈민들을 보살피는 NGO에서 활동했다), 팸 워커는 민주당 하원의원 톰 소여(이름 참...)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쉐로드 브라운의 비서로, 그가 상원으로 옮긴 후에는 나중에 하원 주택위원회 소속이 되는 베티 수튼의 비서로도 활약했다. 그때까지 글로리아 제임스는 대부분 저소득 직장에서만 일했을 뿐이었다. 워커 가족과 함께 산 이후 브롱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들에게도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모습을 봤다. 브롱은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하며, 좋은 직장과 대학 학위를 가진 친구들을 둔 사람들 곁에 있어보게 됐다. 새 세상을 만난 것이다.

워커 가족은 브롱이 처음 그들에게 왔을 때 얼마나 공손하게 굴었는지 말하곤 한다. 그는 엄마나 할머니에게서 배웠음이 틀림없는 '도와주고 싶어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워커 부부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우리는 그 아이가 하루 일과라는 걸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팸 워커의 말이다. 브롱은 방과후 집에 와서 숙제를 하는 법을 배웠고, 청소나 설거지같은 집안일을 하는 법을 배웠다. 집에 아이들이 이미 세 명이나 있어서 아침마다 욕실이 북적거렸기 때문에 학교 갈 준비를 빨리 하는 법도 배웠고,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는 법도 배웠다. 세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잔 다음날 아침은 일찍 두들겨 깨워진다는 걸 배운 후부터는 저녁때마다 누구보다도 먼저 욕실로 달려가곤 했다.

워커 가족은 브롱이 그런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일이 쉽게 풀린 건 그 아이가 그런 생활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팸의 말이다. "그 아이는 정말 한 번도 우리와 다투지 않았어요. 그 아이는 우리 아들 프랭키 주니어와 한 방을 썼는데, 방청소하라는 소리는 아들에게 했거든요. 브롱이는 아들 옆에 얌전히 서있었죠."

"워커 씨 부부는 저를 훈육하려 하셨습니다." 브롱의 말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학교에 가도록 하셨죠. 학교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거든요. 가족의 일부가 돼서, 부모님이 모두 주위에 있고.... 형과 두 누나가 있는 것.... 그건 제 어린 시절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그건 제가 여기까지 오도록 눈을 띄워준 경험이었고 오늘날 제 태도를 결정한 경험이었습니다."

브롱은 주중에는 워커 가족과 함께 지내다 주말이 되면 글로리아에게로 돌아가 지냈다. 그렇게 지낸 포티지-패스 초등학교 5학년 동안, 브롱은 개근을 하며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서미트 레이크 커뮤니티 센터에서 농구를 시작했다(나중에 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하는 친구들을 바로 여기서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어디든 잘 어울렸어요." 프랭키 워커의 말이다. "그 아이는 집에서의 일상생활을 좋아했어요. 배우는 것도 빨랐죠."

팸은 브롱이 공부하라고 성화댈 필요가 없었던 아이라 말한다. "그건 우리 아들 프랭키 얘기죠. 우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학교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는데, 브롱이는 학교를 좋아하더군요."

워커 가족과 함께 5학년을 보낸 후, 브롱은 고등학교에서 전과목 B 이상을 받는 좋은 학생이 되어있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든다.

1. 혼란한 상황을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이 평온하면 오히려 불편해한다. 그래서 일부러 사고를 치거나 인생을 극단적인 변화로 몰고간다.

2. 질서를 찾는다. 지금까지의 인생 대부분이 제어불능이었기 때문에, 뭐든지 제어할 수 있는 걸 찾게 된다. 방을 깔끔하게 정돈한다거나 옷을 깔끔하게 입는 것이다. 정해진 일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하기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겁니다." 팸의 말이다. "그 아이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면 그 아이는 제가 주는 건 뭐든지 다 먹어치우려 하더군요. 그 아이가 독일식 쵸콜릿 케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죠. 하지만 사실 그 아이는 제가 만든 거라면 다른 파이나 케잌도 다 좋아해요. 글쎄 브로콜리까지 먹어치운다니까요?"

워커 가족은 브롱이 목욕탕에서 프랭키 워커가 머리를 잘라주는 걸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는 밖에 나가서 군겆질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주말을 어머니랑 보내는 일이 많았지만 늦게 돌아오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일요일 밤이면 브롱은 언제나 돌아와 학교갈 준비를 하곤 했다.

글로리아 제임스는 브롱을 키우면서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브롱이 어렸을 때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랍지 않은 말이다. 그는 완벽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고집이 너무 세고, 어떤 아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 들으려 한다.

브롱이 6학년을 시작할 무렵 글로리아가 드디어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리고 브롱은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됐다.

팸 워커는 브롱이 6학년때 주중에는 엄마랑 보냈지만, 주말에는 자주 워커 가족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런 패턴이 수년간 이어졌다. 워커 가족은 브롱에게 정말로 가족이었다. 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한 친구들이나 드류 조이스 2세-3세 부자처럼 말이다.

편부/편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대가족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그 대가족이 아이를 받아들였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는 말이다. 하지만 브롱은 그런 경험을 했다. 브롱은 천성적으로 섞여들기를 좋아한다. 여러분은 브롱이 프로가 된 후 새로 팀원이 된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려 노력하고, 루키를 멘토링해주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브롱은 자신이 외톨이라고 느끼며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했던 때를 떠올리는 것 같다.

오늘날, 워커 가족은 클블의 거의 모든 게임을 보러 간다.

"저 아이가 체육관에서 혼자서 연습하던 걸 보던 때를 집사람과 떠올리곤 합니다." 프랭키 워커의 말이다. "지금도 저흰 계속 저 아이를 보고 있죠. 이젠 다른 사람도 같이 보지만요."

* Point Guard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12-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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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9-12-10 22:01:46

브롱이는 정말 인간적으로 멋있고 존경스럽네요.

NBA 최고의 스타가 될만합니다 ...

헬턴트님 글 잘 읽었고요 ..~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09-12-10 23:29:16

잘 봤습니다. 근데 워커 가족은 흑인이예요?

2009-12-11 00:09:15

헬턴트님 글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살포시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2009-12-11 00:37:10

멋진 가족에 멋진 브롱이네요... 워커 내외와 브롱이 사진도 한 번 꼭 보고 싶네요.

2009-12-11 12:37:02

수많은 브롱, NBA의 팬들 중 한 명으로써 그 분들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덕분에 괴물같은 또라이 한 마리가 저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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