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의 밴쿠버, 2009년의 멤피스, 그리고 드래프트
리그 내 프랜차이즈와 선수간의 관계에 대한 글을 작성하였으나 오류가 나서 날라가 버렸네요. 마침 게시판내의 분위기도 좋지 않은 듯 하여 야유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겠습니다^^ 대신 드래프트도 다가오고 있으니, 그리즐리스의 드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999년 드래프트는 시카고가 엘튼 명품을 1번으로 선발한 해입니다. 당시 2번픽을 들고 있던 밴쿠버는 꽤 많은 1번 후보들 가운데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1번픽 후보로 거론되는 선수들로는 명품과 스티비 프랜시스, 라마 오돔, 그리고 배론 데이비스 정도가 있었습니다. 듀크대 역사상 첫 얼리 엔트리인 명품과, 전문대에서 매릴랜드로 편입 후 역시 얼리로 시장에 나온 사기적인 운동력의 소유자 프랜시스, 그리고 매직과 피펜을 섞어 놓았다는 극찬을 받고 있던 로드 아일랜드 대학 출신의 라마 오돔까지, 밴쿠버는 1순위를 놓쳐도 그에 못지 않은 차선책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괜찮은 입장이었죠. 때문에 당시의 밴쿠버 프론트진은 선수들의 저울질에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후에 닥쳐올 폭풍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 말입니다.
먼저 당시 밴쿠버 그리즐리스의 98-99 로스터를 살펴보자면, 비비-로페즈(맥)-압둘라힘(맥)-메센버그(압둘라힘, 팍스)-팍스(빅컨트리)가 주가 되는 라인업이었습니다(리빌딩팀 답게 이적과 로테이션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확정된 틀은 없는 상황이었죠). 3번과 4번을 번갈아 보던 이 시대 비운의 스타 압둘라힘은 당시 말할 것도 없는 최고의 로컬맨 이였구요, 아리조나 대학에 우승을 안겨준 유망주 비비가 맡던 1번 포지션 역시 견고했습니다. 5번의 자리에도 한때 밴쿠버에서 큰 기대를 걸었던 빅컨트리가 버티고 있었는데요, 때문에 그리즐리스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확실한 제2의 득점 옵션이 되어 줄 수 있는 2번이나 골 밑에서 압둘라힘의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재능 있는 4번 자원 정도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드래프트의 날이 밝았습니다. 위의 셋과 데이비스까지 누가 1순위에 뽑혀도 좋을 상황이었던 지라 많은 팬들은 숨을 죽이고 1번픽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사실 드래프트 현장에 모인 군중들은 스티브 프랜시스가 1번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드래프트 현장이 스티비의 홈인 워싱턴DC 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를 실망(?)시키며 명품이 시카고의 선택을 받게 되고, 드디어 2번픽 밴쿠버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오돔과 프랜시스. 둘 중 어느 선수도 무리가 없었던 밴쿠버는 팀에 폭발력을 더해 줄 스티브 프랜시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 후 3번과 4번은 배런 데이비스, 라마 오돔으로 이어지게 되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이나믹한 백코트 듀오를 결성하겠다던 밴쿠버의 행복한 상상은 드래프트 현장에서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선발 당시부터 죽을상을 하고 있던 프랜시스는 모두의 우려를 적중시키며 보이콧에 나섭니다. 밴쿠버에서 뛰기 싫은 마음을 이해는 합니다만 프랜시스는 온갖 핑계와 협박에 가까운 땡깡으로 버티게 되죠. 밴쿠버는 어쩔 수 없이 대규모의 트레이드를 통해 프랜시스를 휴스턴으로 보내게 되고, 이 후 스티비는 군말 없이 로켓단과 계약하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트레이드]
밴쿠버 in – 마이클 디커슨, 앤투완 카, 오델라 해링턴, 브렌트 프라이스, 휴스턴 1라운드 픽, 올랜도 2라운드 픽
밴쿠버 out – 스티브 프랜시스, 토니 메센버그, 마이클 스미스, 로드릭 로드스, 마토우 은다예, 리 메이베리
올랜도 in – 마이클 스미스, 로드릭 로드스, 마토우 은다예, 리 메이베리
올랜도 out – 돈 맥클레인, 1라운드 픽, 2라운드 픽
휴스턴 in – 스티브 프랜시스, 토니 매센버그, 돈 맥클레인, 올랜도 1 라운드 픽
휴스턴 out – 마이클 디커슨, 앤투완 카, 오델라 해링턴, 브렌트 프라이스, 1라운드 픽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이 트레이드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이름은 마이클 디커슨 인데요. 꽤 좋은 운동능력과 점퍼 그리고 락다운의 포텐까지 지닌 패키지 선수였죠. 대학 시절 비비와 함께 팀을 정상까지 이끌기도 했던 디커슨은 후배가 있는 밴쿠버로 건너오더니 포텐셜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밴쿠버 팬들을 프랜시스 충격에서 건져냅니다. 하지만, 01시즌이 시작된 후 입은 사타구니 부상은 커리어를 끝낼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골골거리더니 이듬해에도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계약만 남긴 채 유니폼을 벗어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게 보던 선수라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렇게 디커슨이라는 이름을 잊고 지내다 이번에 복귀를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답니다.
어쨌든 황당할 정도로 큰 규모의 트레이드를 유발시킨 장본인인 프랜시스는 레전드들 사이에 끼어 멋진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즐리스 프랜차이즈와의 관계는 몇 문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꼬이게 되었답니다. 휴스턴의 밴쿠버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팬들은 자팀의 응원보다 프랜시스를 욕하러 경기장을 찾았을 정도였죠. 성깔 있는 프랜시스 역시 지지 않고 과장된 몸짓과 입놀림으로 매번 응수하면서 이 관계는 모든 NBA팬들의 관심사로 확대됩니다. 과열된 싸움은 코트 밖으로까지 이어졌는데요, 프랜시스는 밴쿠버 프랜차이즈에게 저주를, 그리고 그리즐리스 팬들은 프랜시스의 불행을 빌면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죠. 그러나 밴쿠버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프랜시스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습니다. 리그의 시작과 함께 답형이나 스타버리를 연상시키는 폭발력으로 하이라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올스타전에서는 빈스 카터의 조역을 맡으며 퇴색된 덩크대회의 흥행을 이끌고, 급기야는 명품과 함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2002년부터는 내리 3시즌 동안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요, 반대로 밴쿠버 프랜차이즈의 성적과 인기는 계속 하락세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프랜시스가 전국구스타로 떠오른 00-01년 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를 멤피스로 옮기게 되면서 이 씁쓸한 싸움은 끝나게 됩니다. 당시 프랜시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밴쿠버 프랜차이즈를 조롱하면서 그 씁쓸함이 두 배가 되기도 했죠.
그렇게 프랜시스의 승리로 끝난 것 같았던 둘 사이의 다툼은 스티비가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올랜도와 뉴욕 등을 오가며 안타까운 행보를 보이던 프랜시스는 지난해 말 그렇게도 싫어했던 그리즐리스 프랜차이즈로 이적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출 당하면서 운명의 장난은 다시 시작되었답니다.
여기까지가 99년 밴쿠버 드래프트 이야기입니다. 당시 프랜시스가 밴쿠버 행을 받아들여 비비-프랜시스-압둘라힘으로 이어지는 꿈의 라인업을 구성했다면 그리즐리스 프랜차이즈는 여전히 밴쿠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의 멤피스는 당시의 밴쿠버보다 훨씬 안정된 전력으로 2번픽을 기다리고 있죠. 정확히 10년 전에 일어난 99년의 드래프트와 5일 뒤로 다가온 2009년 멤피스의 드래프트, 이거 어째 너무 묘하지 않나요?
우선, 올해 1순위픽이 확실시 되는 블레이크 그리핀은 엘튼 브랜드와 같은 4번 포지션입니다. 언더사이즈 라는 평을 받은 점과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는 측면도 비슷한 상황이죠. 당시 밴쿠버와 올 시즌의 멤피스가 가장 원하는 포지션의 선수라는 점도 같습니다.
그리고 2번픽을 들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도 너무나 흡사한데요. 다행인 것은 올해의 드래프트 수준이 99년 만큼의 뎁스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타빗이나 하든이 오돔이나 배산적 정도의 인재는 아니죠. 불행인가요?:)
또 하나 공교로운 것은 고민하는 포지션까지 겹친다는 점입니다. 지금 루비오의 시장가치가 최초보다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포드씨가 한몫했죠^^), 여전히 그리핀에 이어 2번픽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루비오의 포지션은 아시다시피 포인트가드이죠. 현재의 멤피스에는 한창 물오른 콘리가 있구요, 10년 전의 밴쿠버에는 대학 최고 PG 출신인 마이크 비비가 있었습니다. 물론 스티브 프랜시스가 SG 성향이 짙은 가드라는 점, 그리고 대학 당시 그 포지션에서 많은 시간 플레이 했던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역시 NBA에 와서는 1번 자리를 보게 되었잖아요? 사실 이 부분이 프랜시스의 가장 큰 핑계 중 하나기는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비비 때문에 포지션이 겹친다 라는 말을 많이 했었죠. 정작 중요한 것은 밴쿠버에서는 프랜시스의 2번으로써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는 것인데 말이죠,,
가장 큰 비교점은 역시 루비오 또한 그리즐리스 프랜차이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현재 루비오가 펼치고 있는 언론플레이의 근원은 대다수 그의 에이전트 페건에 의한 것이겠습니다만, 루비오의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그런 의미에서 마크 가솔의 존재는 멤피스에게 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돔이 압둘라힘과 같이 플레이하고 싶어 다른 두 명의 1번픽 후보들 보다 밴쿠버를 선호했던 점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죠. 저 개인적으로도 우선 루비오를 픽해서 시험해 본 후 여러 카드들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최근의 루머들 중 일부가 실현 가능성이 있다면 다른 옵션을 고려해보는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 더 사족을 달자면, 스튜 잭슨과 크리스 왈라스의 막장 운영 정도라고 할까요? 왈라스 역시 프랜시스 때의 경험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루비오 픽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옳든 그르든 루비오측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비록, 왈라스 씨가 욕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튜 잭슨이 더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지라 현재의 픽다운 이나 트레이드 루머를 왈라스가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제발 엉뚱한 생각이나 무리수는 두지 말고 완벽히 그리즐리스에 이득이 되지 않는 이상 무조건 루비오로 가는 방향으로 말이죠. 사실 이 점이 10년 전과 지금의 가장 다른 상황이기도 하겠죠? 밴쿠버 드래프트 당시에는 프랜시스 아니면 오돔, 이렇게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랜시스의 태도에 그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카드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 넓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밀레니엄 언저리의 밴쿠버는 참으로 불행했네요. 혹 밴쿠버 당시부터 쭉 그리즐리스 프랜차이즈를 응원하고 있는 팬들이 계시다면 이번 드래프트는 정말 감회가 남다르실 걸로 생각됩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시려나요? 또한, 현재의 멤피스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바, 왈라스 이하 프론트진은 절치부심해서 26일 거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다가오는 시즌에는 사고 한번 치기를 바래봅니다^^
* T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6-23 11:49)
앗, 그렇네요. 신생팀이였는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사실, 지엠자리가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프랜시스가 보여준 활약으로 보면 잭슨의 선택은 옳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네, 그리고 지금 월러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 '소신' 이겠죠^^
옵티미스트님 글 보면서 재미있는걸 느꼈는데요,
당시 최악의 상황이었던 2픽으로 뽑힐만한 선수를 뽑고 트레이드 한 것이, 이번 드래프트에선 최상의 상황이 된다는 점입니다. 분명 멤피스는 루비오가 절실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건 PF죠. 그렇다고 이를 위해서 엉뚱한 선택을 하면 이게 바로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린다는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일단 루비오를 뽑고, 바보트레이드하지 말고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취할 수 있는 딜을 만들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물론 여기에는 말씀하신 월레스의 '소신'이 꼭 필요하고 말이죠^^
듣고보니 그렇군요. 하지만 그 상황이 '최상' 의 상황이 되기 위해서는 월러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겠죠.
사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멤피스인데도 팬들이 불안해 하시는 건 이러한 상황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트레이드를 통해 최상의 결과를 맞을 수 있는 상황 말이죠.
카드를 쥐고 있으면 판을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하는데 평소 하나만 보고 둘은 못보는 양반인지라^^
멤피스팬이시라 요즘 상당한 심적 불안감에 시달리시겠군요:)
역시나 동테북 스타버리네요. 스타버리 그렇게 꼬장부린적 없습니다. 아마 프렌시스 오타이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