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매직을 이끈 프랜차이즈 since 1992~1997
p.s 이글은 리뷰입니다.
1989년 농구 르네상스인 90년대가 시작 하기 1년 전에 올랜도는 nba에 참가한다. 90년대 초반 초 절정 인기팀의 탄생의 서막이었다. 도어맷팀을 전전하던 매직은 상위픽을 획득하면서 1992~1993시즌에 래전드 사킬 오닐을 얻는다 ………
샤킬 오닐
살점 농구 “ 떡대로 먹고 산다 “ 그리고 수 많은 안티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강했고 90년대 빅맨 중 유일한 생존자 이기도 하다,
샤크는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유연하고 그리고 엄청난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던 미스태리한 스태미나까지 있었다. 기존 찰스 바클리나 마이클 조던 처럼 샤크도 갑작스러운 성장으로 인해 기존 빅맨들과는 비교도 안될 민첩성 또한 가지고 있었다. 신이 주신 선물 그러나 신은 그에게 손가락 이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 또한 주셨다. 그는 농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점퍼를 할 수 없는 빅맨이었다.
하지만 이 덩치를 일대일로 막을 수 있는 빅맨은 리그에서 올라주원 패트릭 유윙이 전부였다.
덩크와 훅슛 다양한 골밑스킬로 도어맷팀이었던 올랜도를 사카고불스에 근접한 강 팀으로 만들어 간다.
올랜도는 플옵 탈락한 팀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당시의 기현상인 리그포기 즉
상위픽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경기를 지는 현상이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플옵 탈락 팀끼리만 모아서 추첨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행운으로 올랜도는 또 다시 1번픽을 얻게 되지만 당시 1번픽인 웨버를 감당할 자금은 올랜도에게는 없었다.
그리하여 1번 픽 획득부터 진행 되어온 웨버와 95,97,99년 1번 픽을 주는 조건으로 페니 하더웨이를 얻게 된다.
일거 양득 특히 샤크는 페니의 트래이드를 정말 반겼다.
이 콤비의 만남으로 올랜도는 애틀란틱 디비젼 2위로 올라선다. 같은 해인 1994년에 오닐은 세계선수권에서 드림팀2로 출전하여 골드매달리스트가 된다. 오닐에겐 2년차 징크스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올랜도란 팀은 별다른 거물FA 영입 없이 로터리픽 만으로 리그 정상급 라인업을 구축해 나간다. 초창기 맴버인 닉 앤더슨 90년 드래프트로 팀에 들어온 데니스 스캇 MIP 수상자인 스캇 스카일스 그리고 패니………
이 당시 올랜도는 막을 수 없는 혹은 막기 벅찬 미스매치 둘을 가지게 된다. 시즌 초반 신인으로 슈가를 보던 패니가 스카일스를 대신해 포인트 가드에 기용된다. 바로 전설적인 2미스매치 라인업이 탄생한다.
3점 슈터인 앤더슨과 스캇은 이 둘을 위하여 양 사이드로 넓게 포진했고 그러한 중앙 공간은 한 명으론 막기 힘든 두 영건의 놀이터가 됐다.
수 없이 많은 앨리웁과 패니의 이이솔래이션 오닐의 파워 넘치는 골 밑 공격은 조던 옹의 존재감을 넘어 설 수 있는 포텐셜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강했다. 다음해 그들은 불스에서 온 그란트를 영입해 리그왕좌에 도전하게 된다.
정규시즌에서 디비젼 1위로 마감하고 특히 오닐은 필드골 성공률 .583으로 절정을 기량을 과시한다. 보스턴을 격파하고 그들은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시카고와 만나게 된다.
당시 그란트가 빠진 피펜과 조던이 건제한 시카고를 농락한다. 시리즈는 6차전까지 가며 조던은 이 시리즈 패배의 충격으로 복귀 초 45번이었던 등 번호를 벌금을 감 수 하면서 23번으로 바꾸는 일화를 남긴다.
오닐은 시카고의 골밑을 농락하며 조던이 2차전 38점 4차전 40점 5차전 39득점을 하지만 3년차 신생 라인업에게 패배하고 만다.
3
년의 장기 집권한 시카고를 이겼던 팀이 있었고 그들은 올랜도였다. 그리고 그들의 더맨은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오닐이었다.이 최강팀은 마치 슬램덩크의 북산처럼 90년대 농구 최고의 파란을 일으키고 어이 없게 올라주원의 휴스턴에게 스웝당한다.
p.s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조던을 갈망했고 그를 대체 할 있는 선수는 없다 단정 지었다. 하지만 필자는 상업화와 조던 만들기의 놀음을 제외하고 진정한 포스트 조던은 오닐이라 생각한다. 그는 분명 조던 보다 인기 없고 최고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농구 실력은 조던과 버금가는 위력이었다.
닉 엔더슨
올랜도 창단 맴버이며 가드와 포드를 두루 볼 수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왕조 시카고를 무너트리는 스틸을 조던으로부터 해낸다. 인터뷰에서 그는 “45번의 그를 막는 것은 23번의 그를 막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던을 자극하고 조던은 23번을 달고 나타나지만 올랜도를 이길 수 는 없었다
만약 이 선수가 파이널 1차전 10초를 남긴 상황에서 4개 자유투를 하나만 성공했다면 nba 전체 판도는 바뀔 수 있었다.
데니스 스캇
지금의 라쉬드 루이스 히도 터클루 전에 올랜도를 상징하는 3점 슈터였다. 그는 닉 앤더슨이 가지고 있지 않은 폭발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페니 하더웨이
1번이라는 등 번호가 인상 깊었고 이후 티맥이 올랜도에 오게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성기가 비교적 짧았던 스타로 기억된다. 스포사이즈의 포인트가드였다. 공격에서는 자신보다. 작은 가드들을 농락했으며 수비 에서도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작은 가드들을 막아냈다.
특히 엄청난 운동능력과 보디컨트롤로 리그를 지배해 나갔다.
p.s 결론적으론 페니는 부활하지 못했으며 올랜도에서의 6시즌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임펙트 또한 없는 선수이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절대적이었으며 충실한 상품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매직 조던의 은퇴에서 그들과 가장 비슷한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고 스타성 또한 가지고 있었다.
페니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선수였다. 단 2시즌 만에 리그 판도를 바꾸는 팀을 조립했으며 그만큼 잘생긴 선수도 리그에 없었다. (드래프트동기 크리스 웨버 페니 둘다 진정한 미남이라고 생각된다. ) 세월이 흐른 지금 루키 시즌을 제외한 이후 2시즌을 빼곤 너무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와 이름이 같은 팀 하더웨이가 꾸준한 활약을 한 것이 비하면 초라한 스탯을 남겼다.
전성기
그의 아주 짧지만 눈부신 전성기는 95~96 시즌 초반이라 기억한다. 바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오닐이 부상으로 빠진 시즌 초반 그는 매직의 득점력을 넘어 셨으며 조던 보다
많은 어시스트와 보다 넓은 시아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기억으론 매직과 조던보다 더 부드러웠다는 것….. 파란 줄무뉘 유니폼을 입은 이 아티스트는 농구를 예술로 만든다. 그 경기 수는 불과 22경기에 불과 했지만 말이다.
숙명인 듯 너무나 부드럽고 스피디하며 섬세했던 선수는 올랜도 매직이라는 곳에 있었다.
올랜도라는 스몰마켓에서는 오닐과 페니를 동시에 잡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올랜도는 오닐을 버리고 페니를 통해 리빌딩에 들어간다.
그리고 찾아온 부상으로 조던 매직 양 거성에게 후계자로 지목 받았던 그는 몰락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던 복귀 후 최강팀 불스의 하퍼 조던 피펜 백코트를 농락했던 유일한 가드였으며 그의 잠재력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순간처럼 짧은 쾌락을 준 중독성 강한 한 플레이어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정말 행운이었다.
Ps 누군가 90년대 최강팀을 뽑으라면 난 94~95 매직을 뽑고 싶다. 결과를 떠나서 그들은 상징적인 불스를 제압했고 리그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힘 또한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상업적 세뇌도 아니었으며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내게 깊은 감응을 주었다.
역사상 그 어떠한 라인업이 이 당시 매직보다 화려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아마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최근 올랜도를 보면서 14년 전 최강 매직이 하나 이룩하지 못했던 파이널 우승을 이룩하기 빌며 이 최강 라인업을 닮아 갈 수 있도록 응원할 것이다.
1995년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호레이스 그랜트는 시카고와 가진 6경기 모두 출장했으며, 그해 팀이 가진 플레이오프 21경기를 모두 선발출장했습니다.
호레이스가 빠진것은 1996년 컨파결승이었죠. 1차전은 출장했고, 2,3,4차전은 출장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