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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리더십-마이크 브라운의 '성공 법칙'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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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2:11:05

마이크 브라운 감독은 성공의 기쁨을 동료들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클리블랜드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올스타전 감독으로 확정됐을 때도 브라운의 이같은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올스타전 감독으로 뽑힌 것은 전적으로 팀에게 주어진 상입니다. 선수들이 잘 해줘서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 선수들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같은 영광을 누릴 수 없었을 겁니다.”

사실은 뽑히기를 기도했다는....

하지만 선수들이 그렇게 잘 하게 해준 것이 브라운 본인이라는 것을 클리블랜드의 모든 선수들은 알고 있다. 팀 리더인 르브론 제임스는 브라운은 최고의 코치 중 한 명이며 올스타전 감독 뿐 아니라 올해의 코치상도 브라운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라운은 리그에서 선수들과의 관계를 가장 잘 유지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구단 자체 방송으로 매주 라이브 쇼를 진행할 정도로 매끄러운 화술과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하는 가비지 타임 선수들의 열정까지 알아주는 자상함을 지니고 있다. 팀의 5번째 가드인 테런스 킨제이는 브라운의 세심함을 증언할 수 있는 선수다.

"지난 1월 포틀랜드 원정에서 선발 가드진이 일찍 파울트러블에 빠졌을 때 제가 감독님께 '감독님, 제게 기회를 주세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은 그날 경기에는 저를 많이 쓰지 않으셨지만, 다음날 제가 연습하는 걸 눈여겨 보신 후 골든스테이트전에 저를 중용해주셨죠. 감독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킨제이는 브라운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난조에 빠진 모리스 윌리암스를 대신해 11점을 올리며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

선수들의 개인사까지 챙기는 브라운의 자상함은 리그 감독 중 세 번째로 젊은 나이와 짧은 감독 경력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커다란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제가 좀 천사긴 하죠~

브라운의 이같은 친화력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NBA는커녕 프로 선수 경험도 없는 브라운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브라운 본인의 엄청난 노력뿐 아니라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이 있었다.


1970년 클리블랜드가 속한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브라운은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브라운은 샌디에이고 대학으로 진학해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같은 해 포틀랜드 대학에 입학한 에릭 스포엘스트라 마이애미 감독과는 신입생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 누가 많이 이겼을까?

“저희가 더 많이 이겼습니다. 저희가 이길 때마다 에릭이 굉장히 화를 내던 기억이 나네요.”

카아악 뚱땡이녀석! 아직도 열받아!!!


어느덧 졸업 학기를 맞게 된 브라운은 자신이 NBA에서 뛸 만한 재능이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수는 없었기 때문에, 브라운은 행크 에건 감독의 사무실을 찾아 인턴 직원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NBA 팀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제자의 열정에 감동한 에건은 자신이 소개해줄 수 있는 NBA 팀들을 이야기해주며 어느 팀에 가고 싶냐고 물었다. 바로 그때 브라운의 눈에 띈 것이 에건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농구 잡지였다. 표지에는 샌디에이고 대학 선배이며 NBA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서도 당시 덴버 너게츠의 단장을 맡고 있던 버니 비커스태프의 사진이 있었다. 비커스태프는 브라운의 롤 모델이었던 것이다. 브라운은 잡지를 가리키며 ‘이 팀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브라운의 사회 경력이 시작한 계기가 된 그 잡지를 브라운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에건의 소개로 덴버 너게츠의 무급 인턴 자리를 얻게 된 브라운은 부모님이 주신 약간의 용돈만 지닌 채 덴버로 향했다. 졸업하려면 아직 한 학기가 남아있었지만 브라운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으로 경험한 프로농구의 세계가 꿈만 같았다. 브라운은 당시 덴버의 홈구장이었던 맥니콜스 아레나에서 살다시피 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구단 업무를 배워나갔다.

브라운의 성실한 업무태도와 농구에 대한 진지한 열정은 직원들 사이에서 금방 화제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커스태프 단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비커스태프는 농구에 미친 어린 후배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비커스태프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수료하기 위해 샌디에이고로 돌아가려던 브라운에게 졸업 후 덴버 구단의 정규직 비디오 분석가 자리를 제의했고, 무급임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일한 보답으로 자비를 털어 1,500달러의 수표를 끊어주기도 했다. 경영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돌아온 브라운은 연봉 15,000달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브라운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조건이었다.

“저는 스니커즈와 트레이닝복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용돈만 벌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브라운이 당시의 감격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오마이갓 정규직!

브라운이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전국 각지의 농구 캠프와 대학을 찾아다니며 유망주들의 경기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브라운의 열정은 그가 맡은 ‘촬영’ 업무를 금세 ‘촬영 및 분석’ 업무로 바꿔버렸다. 어린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비디오에 담으면서 브라운 나름의 방식으로 농구를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브라운이 제출하는 비디오에는 어느 샌가 브라운 자신이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가 따라붙게 되었다. 브라운의 스카우팅 리포트가 쓸 만하다고 생각한 댄 이셀 덴버 감독은 브라운을 아예 정식으로 스카우트에 임명했다. 브라운은 덴버에서 5년간 스카우트로 재직하며 경기를 보는 안목을 키워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인 런앤건 팀이었던 덴버에서 브라운이 중점적으로 공부한 부분은 수비였다.

덴버는 브라운에게 직장 뿐 아니라 가정도 선물해줬다. 브라운은 덴버 아가씨인 카롤린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뒀다. 브라운이 팀을 옮길 때마다 함께 이사를 다니는 이들 가족은 집에서 리틀 리그 운동 경기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중국 관광 간 마감독. 그나마 정장 벗으면 그냥 동네아자씨...;;

1997년 비커스태프가 워싱턴 감독으로 부임하며 덴버를 떠나게 되었을 때, 비커스태프는 ‘자기 사람’인 브라운을 떠올렸다. 비커스태프에게서 워싱턴 코치직을 제의받은 브라운에게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브라운은 워싱턴에서 2년간 첫 코치직을 훌륭히 수행해내며 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젊은 인재로 성장했다.

1999년 워싱턴이 크리스 웨버와 미치 리치몬드를 트레이드하고 비커스태프를 해임하자, 브라운 역시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때마침 1998~1999시즌 우승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브라운에게 코치직을 제의했다. 포포비치는 브라운의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수비 코칭 능력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실함을 중시하는 포포비치의 지도철학은 브라운과 꼭 맞았고, 브라운은 샌안토니오에서 본격적으로 코치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샌안토니오에는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바람직한 리더십이 팀을 지탱하고 있었다. 65년생인 로빈슨은 70년생인 브라운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었다. 브라운은 로빈슨이 2003년 우승 반지를 끼고 던컨의 존경과 함께 은퇴하는 모습을 보며 프랜차이즈 스타나 슈퍼스타를 다루는 법,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어디까지 권위를 행사해야 하는지 등을 배워나갔다. 선수들 중에는 스티브 커 같이 팀 운영에 관심있는 노장 선수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자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훗날 클리블랜드에서 단장과 감독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대니 페리와도 이때 처음 만났다. 서머 리그에서는 샌안토니오 서머리그 팀의 감독을 맡으며 처음으로 감독 경험도 쌓았다.

포포감독님, 정말로 이렇게 춤추면 심판이 좋아하나요?
자네 머리로 생각해보게, 정말로 그러면
우리 티미가 크로포드에게 그렇게 당하겠나?

2003년 샌안토니오가 LA 레이커스의 연속 우승을 끝내며 4년만에 우승을 차지한 직후, 브라운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릭 칼라일 감독에게서 코치직을 제의받았다. 수비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다는 조건이었다. 브라운은 제의를 받아들였고, 인디애나에서 리그 최고 성적인 61승과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공헌했다. 브라운이 전권을 위임받은 팀 수비에서 인디애나는 경기당 실점율 85.6점으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적은 점수를 허용했다.

유명한 아테스트 난동사건때
앞장서서 아테스트를 말리는 마코치

브라운은 샌안토니오와 인디애나에서 강팀을 지도하는 법을 배웠다. 브라운이 코치로 재직하는 동안 브라운의 팀들은 평균 62.9%의 승률을 기록했고 4번의 디비전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가 보고 배운 포포비치와 칼라일은 모두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명장이었다. 브라운은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스승들에게 ‘이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이기는 노하우’가 브라운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2005년 초여름, 브라운은 클리블랜드로 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신임 구단주였던 댄 길버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해 3월에 캐벌리어스를 인수한 길버트는 ‘미래의 아이콘’ 르브론 제임스가 속해있던 캐벌리어스를 대대적인 팀 개편을 통해 리그 엘리트 팀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고, 젊지만 경험이 풍부한 코칭스태프를 찾고 있었다. 35세의 브라운은 그런 길버트의 조건에 딱 맞는 상대였다. 브라운과 대화를 나눠본 길버트는 브라운의 성실한 태도와 직업의식, 그리고 코치로서의 식견을 금방 알아보았다. 며칠 후인 6월 2일, 길버트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17대 감독으로 브라운을 선임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27일에는 샌안토니오에서 브라운과 한솥밥을 먹었던 대니 페리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클리블랜드의 ‘페리-브라운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덴버에서 무급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브라운이 언제나 꿈꿔왔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클리블랜드는 2003년 르브론이 입단한 후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르브론의 입단과 함께 클리블랜드 감독을 맡았던 폴 사일러스는 채 2년을 못 버티고 팀을 떠났고 감독대행으로 뒤를 이은 브랜든 말론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르브론과 함께 클리블랜드의 대들보가 될 것 같았던 카를로스 부저는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유타로 떠나버렸고, 대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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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9-02-07 02:38:43

마 브 ?

마이크 브라운 ?

뜬금없이 하이모 헤어를 추천하고 싶군요 (추천과 함께)

2009-02-07 03:14:17

글 퍼가는거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2-07 03:18:26

역시 헬탄트님의 글은 좋군요 추천 날립니다.
우리 마감독 생긴건 악덕 경찰 같은데 말이죠... 멜깁슨 주연의 '페이백' 보셨나요? 굉장히 닮았습니다.

2009-02-07 03:19:39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준비된 감독임을 느끼네요.

2009-02-07 03:20: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드립니다.

마이크 브라운 감독 나이는 젊지만 정말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르브론팬으로서 르브론이 마감독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수비의 중요성을 아는 르브론이기에 마감독이 계속 클블을 맡고 있는 한, 뉴욕같은 다른 팀으로 르브론이 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감독은 오펜스 전술이 없다기 보다 르브론의 재능을 신뢰하고 그에게 맡기면서 (대신 선수들의 다양한 조합은 그런 르브론의 재능을 뒷받침해주는 마감독의 용병술이기도 하죠) 디펜스쪽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 또한 매우 현명한 판단이고 선택이라고 생가합니다.

2009-02-07 03:30:48

마감독 너무너무 좋습니다...

포포비치-던컨처럼 오래오래 해먹었으면 좋겠네요...

2009-02-07 05:09:46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년전만해도 '르브론한테 공주고 아무것도 안하는 감독'이라고 욕먹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올스타 감독이 되었군요. 리더쉽에 대해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2009-02-07 05:36:12

재미있네요 

괜한 시비이지만 

감독님, 상대편이 저를 너무 심하게 막아요.
그럼 얼굴에 주름을 잡으란 말야.
상대도 양식이 있으면 비켜주겠지.


여기서 웃었습니다 먹을거에 안 넘어 갈리 없죠 

2009-02-07 23:37:55

양심이 잘못 나온 거 아닌가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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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00:37:39
양식=sense

양식 [良識]
[명사]뛰어난 식견이나 건전한 판단.

예문: 아무 데나 침을 뱉는 것은 양식 있는 행동이 아니다.

제대로 된 개념을 가지고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상대라면 비킬 거라는 의미였습니다.....
2009-02-07 07:11:09

후덕한 인상과는 다르게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위한 열정이 엄청나네요.
듀크대학의 코치k같은 팀통솔력도 엿보이는것 같고 첫번째 감독생활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선수들과의
관계도 좋아 보이네요.종종 거론되던 공격전술이 답답하다는 평도 시간이 흐르면서 흠잡을때 없는 모습이고요.
인디애나에서 클블감독으로 옮겨올때 제임스가 오닐에게 전화를 해서 브라운코치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제임스 너니까 보내주는거야 ! 라면서 상당히 호평을 했다는 글을 매니아에서 봤던 기억도 나는데, 능력있는
감독임에는 틀림없는듯 하네요.

2009-02-07 08:29:54

좋은 글이네요 추천 날립니다

2009-02-07 13:18:18

MB감독이야기 책으로 써도되겠네요 춧현!

2009-02-07 23:40:36

헬턴트님의 센스는 대단하세요

2009-02-08 01:52:22

중간중간 사진이 너무 재미있어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을 좋아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heltant79님 글은 읽기가 쉬운 것 같아서 매우 좋아요!!!
앞으로도 이런 글 자주 부탁드려요...

WR
1
2009-02-08 02:31:24

클블팬 하시면 언제든 써드립니다.

2009-02-09 11:18:17

역시 헬턴트님의 글
브라운감독은 정말 좋은 '감독'이기도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브롱이 경기장 안에서 뿐만아니라, 밖에서도 영특한 녀석이긴하지만,

저런 감독과 함께라면, 2010년에도 절대 팀은 떠나지 않을듯 싶네요~

Go Cavs~

2009-02-09 13:06:48

좋은 글입니다.

저도 제작년까지만해도 마감독의 능력을 의심했었던 클블팬이었는데요.

타임콜도 못잡고 공격전술이란 제임스고에 모션오펜스도 영 어리버리하고..

얘는 수비전술빼고 하는게 뭔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들어 확실히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팀과 함께 성장하는 감독의 위력을 느낀거죠.

나아가 올해의 감독상도 받았으면 좋겠네요.

2009-02-13 22:13:08

매니아진에 오랜만에 와봤더니 이런 좋은 글이 있었네요
마감독 외모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남자였군요

2009-02-18 17:37:41

매니아진글은 너무 길은 감이 있어서 그냥 제목만 보고 지나갔는데..

이제 자주 들려야겠습니다.

좋은글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2016-03-28 02:39:08

잼있네요

mia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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