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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의 노송 Z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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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4 00:13:08

토론토 랩터스의 슈터 제이슨 카포노의 3점 슛이 림을 돌아 나오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르브론 제임스와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가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점프했다. 토론토 선수들은 공격리바운드를 포기하고 모두 백코트 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여 분 전 이미 클리블랜드의 프랜차이즈 스틸 기록을 경신한 르브론은 일가우스카스를 흘끔 바라본 후 손을 내렸고, 일가우스카스는 볼을 한 번 바운드한 후 경기 네 개째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마이크 브라운 클리블랜드 감독은 곧바로 타임아웃을 신청해 경기를 중단시켰고, 2만여 명의 홈 관중들은 일가우스카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가우스카스는 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통산 리바운드 5,228개. 구부정한 등을 지닌 리투아니아 출신의 이 사내가 프랜차이즈 통산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일가우스카스는 큰 키(221cm)를 제외하면 그렇게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다 그는 르브론처럼 높이 점프하지도 않고 벤 월러스처럼 강렬하지도 않다. 득점도 호쾌한 슬램덩크보다는 점프슛이 대부분이다. 하다못해 팀 후배 앤더슨 바레장처럼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그의 인간성에 대한 찬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2007년 클리블랜드의 첫 번째 파이널 진출이 확정된 직후 일가우스카스에게 달려가 안겼던 르브론은 ‘그런 인간성을 지닌 선수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고, 브라운 감독은 ’그를 지닌 우리 팀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며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브라운의 말이 맞다. 일가우스카스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려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는 NBA에서 첫 경기를 치르는 것부터, 실력에 비해 훨씬 가혹한 운명과 싸워야 했다.

일가우스카스는 1975년 발트 3국 중의 하나인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1990년 소련에서 독립한 인구 350만의 이 작은 나라는 어린아이들이 매 처음 농구선수를 꿈꾸고, 자신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의사나 변호사를 꿈꿀 만큼 농구의 인기가 높은 나라다. 일가우스카스는 농구의 나라인 이 나라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던 아이였다. 지금도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열혈 축구팬이고, 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도 ‘베컴’이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자란 키 때문에 축구를 포기해야 했던 일가우스카스는 고향 카우나스 선배이자 세계적인 농구선수였던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경기를 보고 농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맨 처음 맡은 포지션은 포인트가드였다. 당시 유럽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드림팀 I의 영향으로 NBA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TV를 틀면 항상 NBA 경기를 볼 수 있었고, 이제 리투아니아의 농구소년들은 그냥 농구 선수가 아닌 NBA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일가우스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미 210cm가 넘게 자란 일가우스카스는 NBA 선수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대학에 입학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경력을 얻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리투아니아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일부러 유급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를 관리해줄 에이전트와도 계약했다.

" class="AutoLinkType_blue">17살의 소년 Z맨


하지만 리투아니아에 닥친 경제위기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와 엔지니어였던 어머니가 모두 직장을 잃었고,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대학에 다니기는커녕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활을 돌보아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일가우스카스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고향 카우나스의 신생 농구팀인 아틀레타스에 입단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첫 팀에서의 경력은 순조로웠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투아니아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그 무렵 리투아니아 대표 팀은 켄터키 대학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서 시범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켄터키 대학의 홈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일가우스카스는 26득점 19리바운드 4블록슛 2스틸을 기록하면서 33점차 대승을 이끌었다. 깜짝 놀란 릭 피티노 당시 켄터키 감독은 친구인 마이크 프라텔로 당시 클리블랜드 감독에게 연락해서 ‘제2의 사보니스가 등장했다’며 흥분했고, 일가우스카스는 몇몇 NBA 관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일가우스카스는 1995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켄터키 대학과의 경기 비디오를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케빈 맥헤일 단장은 일가우스카스를 시험해보기 위해 미네소타 팀버울브즈의 워크아웃에 일가우스카스를 초청했다. 일가우스카스의 머리 위에서 카메라를 설치하던 촬영기사가 삼각대를 떨어뜨려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는 이틀 동안 진행된 워크아웃에서 맥헤일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지명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오른발에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고, 결국 발이 부러진 것으로 확인된 일가우스카스는 NBA 입성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겪은 부상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 열린 드래프트는 앨런 아이버슨과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쉬등이 참가한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였다. 일가우스카스는 2라운드에라도 뽑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라텔로의 이야기를 들은 웨인 엠브리 클리블랜드 단장이 20번째 지명권을 그에게 사용했다. 12번째 지명권을 일가우스카스와 같은 센터인 비탈리 포타펜코에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다른 팀들은 미국 농구를 경험하지 못한 데다 부상 경력까지 있는 일가우스카스를 외면했지만, 엠브리는 큰 키에 걸맞지 않은 부드러운 슛터치에 주목했다. 일가우스카스의 NBA 경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class="AutoLinkType_blue">Z맨 지명 장면과 켄터키대학과의 경기모습

하지만 운명은 NBA 데뷔전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첫 시즌을 앞두고 맹연습을 하던 중 또다시 오른발이 부러진 일가우스카스는 NBA 데뷔전을 또다시 1년 후로 연기해야 했다.

그래도 일가우스카스가 크게 낙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리그에 갓 입단한 신인으로써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팀 분위기에 빠르게 적응해갔다.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다. 비록 가장 먼저 배운 게 욕이었지만 말이다. 일가우스카스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누구든 그의 걸쭉한 농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는다.

일가우스카스는 1997-1998시즌 마침내 첫 경기를 치렀다. 개막전에서 16득점 16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일가우스카스는 시즌 전 경기를 뛰며 평균 13.9득점과 8.9리바운드를 기록, 클리블랜드의 주전 센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올스타 루키 챌린지에도 선발 출장해서 루키 챌린지 MVP가 된 첫 번째 클리블랜드 선수가 되었다.

이듬해,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은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또다시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왼쪽 발목이 부러진 일가우스카스는 단 6경기만 뛰고 시즌을 접어야 했고, 이듬해에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일가우스카스는 크게 낙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용기를 찾았다. 힘든 재활과정을 견뎌나가는 그의 성실함은 팀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

2년여의 공백 끝에 코트에 돌아온 2000-2001 시즌, 일가우스카스는 첫 23경기에서 11.7점과 6.8리바운드를 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팀도 15승 8패로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가우스카스는 시즌 최다득점인 24점을 올린 다음 경기였던 마이애미 전에서 점프슛을 던진 후 왼발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수많은 부상을 당해봤지만 결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었다. 의료진이 달려오는 짧은 시간 동안 일가우스카스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의 왼발이 또다시 부러진 것이다. 이번에는 분쇄골절이었다. 발등 뼈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클리블랜드의 모든 팀 관계자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일가우스카스가 다시 코트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동료 선수들은 남은 시즌 결과에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부상을 슬퍼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클리블랜드 관계자들은 그 일을 떠올릴 때 눈물짓곤 한다.

하지만 일가우스카스 본인의 절망은 훨씬 컸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도 잘 이겨내 왔지만 이번만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수술을 해도, 재활을 해도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또다시 가만히 앉아서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구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구선수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마저 들었다. 하지만 일가우스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클리블랜드 프로 스포츠 역사에서 최악의 거품 선수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분발케 했다. 그는 마침내 재건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왼발 뼈의 대부분을 금속제 인조 뼈대로 바꾸는 대수술이었다. 나중에 ‘의술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까웠다’는 평을 받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음에는 혹독한 재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의 고통은 이제는 친숙해질 정도였고, 진통제를 군것질거리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일가우스카스는 더 이상 발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가우스카스는 2001-2002 시즌 기적적으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크리스 밈의 백업으로 출전했지만 금방 선발진으로 올라섰다. 그는 62경기에 출장하며 11.1득점 5.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2003년 르브론이 입단하자 팀 전체가 르브론에 맞춰 개편됐지만 일가우스카스는 여전히 클리블랜드의 주전 센터로 남아있었다. 건강을 되찾은 일가우스카스가 르브론과 함께 힘을 발휘하면서 클리블랜드의 성적도 점점 나아졌다. 2004년 결혼한 일가우스카스는 2005년 다시 한 번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팀과 5년간의 장기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제 모든 시련은 끝난 듯했다.

2007년 2월, 클리블랜드 로스터에서 일가우스카스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졌다. 원정 3연전을 앞두고 그의 아내 제니퍼가 쌍둥이를 유산한 것이다. 일가우스카스 부부의 첫 아이들이었다. 일가우스카스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당한 그 어떤 부상보다도 심한 아픔이 가슴을 때렸다. 아내가 고통 받을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 그를 믿고 기다려준 팀을 어려움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일가우스카스가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네 경기 만에 복귀한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의 첫 파이널 진출을 이끌었다.

자신을 덮친 대괴수에게 필살의 베어 허그를 시전하는 Z맨

NBA 13시즌 째를 맞고 있는 일가우스카스는 이번 시즌 26분간만 출장, 15.1득점과 7.5리바운드를 올리고 있다. 53%의 야투율은 생애 최고이고, 평소에도 넓었던 슈팅 범위를 더욱 늘려 올시즌에만 벌써 6개를 성공, 지난 시즌까지 성공시킨 3점슛 갯수(5개)를 이미 넘어섰다. 우리 나이로 35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발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가우스카스가 수많은 시련을 딛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다. 몇 주 전 필라델피아 원정 경기에서 왼발 부상을 당해 라커룸으로 향했을 때,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필라델피아 의료진들은 깜짝 놀랐다. 재건 수술을 받을 때 집어넣은 인공뼈가 발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부상 부위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의료진들에게 일가우스카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그거 설명하자면 좀 긴데요."
지난 주 미네소타 원정 경기에서 일가우스카스는 맥헤일 미네소타 단장과 재회했다. 맥헤일이 사진기사의 실수로 일가우스카스가 죽을 뻔했던 것을 떠올리자 일가우스카스가 대답했다. "만약 그때 제가 죽었으면, (미네소타 홈 구장인) 타겟 센터는 이름이 (저를 기념해서) Z 센터로 바뀌었을 걸요?" 일가우스카스에게는 시련조차도 유머의 소재다.

" class="AutoLinkType_blue">Z맨 회심의 유머?

일가우스카스는 스스로가 동료들의 모범이 될 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이 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이 겪는 문화적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미국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앤더슨 바레장이나 사샤 파블로비치같은 선수들은 일가우스카스가 베푼 엉망진창 유머가 섞인 따뜻한 배려 덕분에 팀에 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유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상대팀과 몸싸움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동료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캐집사와 안장로를 앞장서서 박해하는 왕당파 원로 Z맨

일가우스카스의 따뜻한 시선은 팀 동료뿐 아니라 자신에게 기회를 준 지역사회까지 미친다. 팀 내 지역봉사활동 모임의 일원으로써 클리블랜드와 오하이오 주를 돌며 봉사활동을 펴기도 하고,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 관심이 많다. 클리블랜드 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것은 그가 자주 하는 활동 중 하나다.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 홈 팬들의 마음에 이미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5일 브롱, 모윌, 바레장, 접이학과 함께 클블 소아병원을 방문한 Z맨

일가우스카스가 클리블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한 13년 동안 그는 2명의 구단주, 2명의 단장, 7명의 감독, 그리고 118명의 선수들과 함께했다. 일가우스카스 개인적으로나 팀으로써나 쉽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클리블랜드의 각종 통산 기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일가우스카스는 내년에 FA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클리블랜드에 남기로 했다. 르브론이 말한 것과 같이, 일가우스카스는 클리블랜드에서 영구 결번될 것이다.

일가우스카스가 2010년 후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언제 은퇴하건, 클리블랜드 팬들은 그가 겪은 시련과 이를 극복한 그의 열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거듭된 부상도, 아이를 잃은 아픔조차도 농구를 향한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일가우스카스가 마지막 경기를 마치는 날, 팬들은 그가 보여준 것만큼의 열정을 담아 박수를 보낼 것이다.

* Point Guard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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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8-12-24 00:23:21

칼럼으로 고고싱 !

2008-12-24 00:22:42

오오 heltant님 드뎌 Z맨 글을 써 주셨군요. 한참 전에 쓰시겠다고 하시더니.. 많이 기다렸습니다. 추천 한방

Z맨이 포인트 가드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군요. 어쩐지 요즘도 간혹 하이 포스트에서 엄청난 패싱센스를 과시하더라니....

Z맨 요즘 뒤늦게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잘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인고의 노력이 결국 늦은 나이에 이렇게 결실로 돌아오는 것 같네요. 25분 정도 출장시간을 조절해 준다면 그 시간 만큼은 대괴수를 제외하고 동부 최고의 센터라 불릴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이네요. Z맨

2008-12-24 00:24:21
감동의 쑤나미... 추천들어갑니다. 칼럼으로...
2008-12-24 00:36:17

일가옹..감동적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MLB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뛰었던 레드키가 오버랩되네요..

2008-12-24 00:38:26

일단 좋은 글에는 추천부터...

부상을 이겨내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참 감사한 선수입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축복받은 몸임에도 부상이 일어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커리어가 일찍 끝나거나 운동능력을 잃은 상태로...제 이미지와는 다른 플레이를 해서 눈물나게 아쉬웠던 선수들이 많았죠. 제이윌리암스, 페니, 힐등등 말입니다...
일가스커스

2008-12-24 00:39:54

아 추천 들어갑니다..

2008-12-24 00:40:46

정말 감동이네요. 일가옹.......

2008-12-24 00:43:23

훌륭한 선수이자 위대한 '인간' 이군요. 브롱이와 함께 꼭 반지하나 꼈으면 좋겠네요. 브롱이가 심지가 더 깊어져서 Z맨의 마음과 인생도 깊이 헤아려 줬으면 좋겠구요.

2008-12-24 00:47:20

Z맨은 꼭 반드시 영구결변

2008-12-24 00:53:43

오른발 왼발 번갈아서 심각한 부상을 몇차례씩 당하고도 그때마다 벌떡벌떡 일어서는 모습은 늘 한결같은 老松이란 표현이 정말 적절합니다

그건 그렇고 ..


Z맨 마인드 반만 닮자 우리 바이넘 어린이.. (또 언론에 대고 땡깡부리고 베테랑마냥 슬렁슬렁 걸어다니면 死는다..)

2008-12-24 00:55:57

멋진 글이네요

중간에 베어허그에서 큰웃음까지

2008-12-24 00:58:03

Z맨형님(아저씨 일려나요) 근성이 인상적이네요
어떻게 이번 East 올스타 감독추천으로 안될지

2008-12-24 01:05:54

Z맨은 큰 이변이 없는한 반드시 영구결번이 될거라 믿습니다... 정말 이렇게 한팀에서 소나무처럼 한팀만을 위해 경기를 뛰는것만큼 행복한일도,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는 그럴텐데 그런면에서 클블이란 팀은 정말 행복한거라 할수있겠죠? 정말 존경합니다...

2008-12-24 01:20:42

이런글은 무조건 추천과 함께... 역시 헬탄트옹입니다.. 감동의 쓰나미 Z맨 정말 꾸준한 선수죠~
클블의 한축~

2008-12-24 01:26:18

클블의 정신이신 Z맨형님~
역시 인간성하면 Z맨형님~
Z맨 형님만 보면 존경심에 글마다 존대가 써지네요~
그리고 지금도 스무스 하시지만 드랩 영상보니까 음청 민첩하셨네요~래리 버드인줄~
형님~ 우리 브롱이랑 클블에서 60까지 농구합시다~

2008-12-24 01:29:21

굴곡 많았던 크맨이여!
우승 반지를 챙겨라!

2008-12-24 01:33:00

감동이군요. 진짜 한 팀에 13년동안 헌신한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강렬하게 눈에 딱 박히는 스타는 아니지만 은은하게 아음속을 파고느는 스타네요.

2008-12-24 02:52:32

말이 필요하지않군여 느끼면 돼는구나

훈훈한 감동과 함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Z 맨 너무멋져요 부저랑 왜케 비교될까

2008-12-24 03:55:30

(내구성을 제외하면) 충분히 NBA 센터랭킹을 매기면 5위안에 들어갈만한 공수양면에서의 존재감을 가지고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과소평가받는 선수 (무려 비에드린스나 바이넘보다 밑으로 평가받는거 보고 경악..)

몇년전 파이널 올라가던 해 처음 봤을때 팀 자유투를 쏘는거 보고 참 신기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발전하는 모습으로 르굇수와함께 기사단의 전성기를 이끄는 리그의 몇안되는 프랜차이즈스타

앞으로도 3,4년이상 건강한 모습으로 선수생활 마쳤으면 좋겠네요..

2008-12-24 05:48:52

Z맨은 클블에 있어서 거목같은 존재죠. 정말 감동입니다.

2008-12-24 08:44:30

며칠전 올라온 사나이들에 그냥 사진한장 추가해드려야겠습니다.

진짜 사나이란건 이런 거죠. 진정한 터프함 역시 이런거구요.

인간적으로 존경스럽습니다.

2008-12-24 08:52:06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Z맨, 정말 한번이라도 좋으니 우리 왕당파의 수장 킹 르브론과 함께 우승반지를 끼웠으면 좋겠습니다.

2008-12-24 08:59:07

멋진 글 즐겁게 읽고 갑니다.
Z맨이 저보다 어리다는 것이 참... 마음은 아직 20대인데...

2008-12-24 09:42:56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선수가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이죠.. 클리블랜드에서 은퇴하시고, 영구결번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96년 드

2008-12-24 10:04:49

와우 Z맨이 이런 의지의 사나이 였던건 몰랐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8-12-24 10:50:29

선 추천 후 감상의 센스는 헬탄트님 글을 읽는 자세죠
우리 Z맨 형님은 우리 블옹이와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분입죠

부디 반지도 끼시고 은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블옹아 달려라....

2008-12-24 13:01:17

크아 이건 뭐....눈물이 앞을 막 가리네요.

구부정한 등과 벗겨진 머리의 Z맨을 볼때마다 산 꼭대기에서 홀로 서 있는 노송을 떠올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었군요...
사람 좋아보이는 그의 얼굴 아래에 저런 힘든 여정이 담겨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건 뭐...최근에 매니아에서 읽은 글 중에 단연 메가톤급 감동의 도가니탕이군요.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2008-12-24 13:20:47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글이 올라올지 고민되네요.


다음엔 어떤거 쓰실지 귀뜸이라도...

2008-12-24 13:39:25

정말 자칫하면... 인저리 프론인 7풋 외국인 센터로 남을뻔했군요.....

정말 대단한 의지의 사나이인듯........

근데 어떻게 하면 발등뼈가 산산조각이 나는지....... 우리모두 멸치를 많이 먹어요

2008-12-24 13:56:53

이정도의 선수였을줄이야...
정말 감동과 드라마 그 자체네요 Z맨

2008-12-24 14:12:08

기사단의 정신 z맨 이번시즌 우승하자

2008-12-24 14:40:34

나는 2k9에서 이런 센터를 트레이드 해버렸단건가

2008-12-24 16:55:01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는데, Z맨이 딱 그렇습니다. 캐브스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그였죠.

2008-12-24 17:04:54

heltant님 혹시 네이버에서 nba관련기사에 댓글달아주시던 그 heltant님이신가요??

2008-12-24 17:11:13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려본게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두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이야기를 보면서..

저도 두아이의 아빠인지라... 그때 그상황에서 그의 심정과 상황이 어떻햇을지 상상이 갑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요... 참 멋있는 남자 같습니다... 고등학교때 농구에 대한열정

누구한테도 지지않을자신있었는데... 제자신이 좀 초라해 집니다...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핼탄드님 .. 저는 그럼 이만 눈물 닦으러...

2008-12-24 18:40:38

역시 좋은 글 추천한방 날립니다
르브롱에게 베어허그를 시전하는 사진... 당시 생방으로 봤을때 정말 가슴 찡했는데, 지금보니 다시 예전의 감동이 밀려오네요...

브롱이가 빨리 레벨업해서 Z맨에게 반지를 선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008-12-24 19:11:14

추천~
정말 멋진글이네효 ~_~

2008-12-24 20:17:41

추천드립니다 ㅠㅠ.감동

2008-12-24 20:19:16

너무도 훈훈해지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Z-맨이 일찍 은퇴한다고 충격발언했을때 조마조마했는데

앞으로도 3~4년은 더 있어주길 캡스에서~

2008-12-25 09:43:26

처음 등장했을 때 제2의 Rick Smits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트업 스킬을 갖추고 있으면서, 부드러운 슛터치를 바탕으로 한 미들라인에서의 슛도 뛰어났었죠.

그리고 찾아온 계속되는 부상 소식.
솔직히 저는 여타 빅맨들처럼 부상을 못이기고 은퇴하는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워낙 장기 결장이 잦았던 그였고, 부상의 부위가 빅맨에게 치명적인 발과 발목쪽의 부상이었으니 말이죠.
그런 그를 믿도 기다려준 Cavs, 그리고 그 믿음에 부응해 돌아와서 멋지게 뛰어주고 있는 Z-Man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2008-12-25 10:06:30

아!! ㅋ맨

2008-12-25 14:00:30

훈훈한 글이네요. 헬턴트님의 따뜻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아울러, Z맨의 남은 선수생활동안엔 더이상 부상은 없었으면 좋겠네요..ㅜㅜ

2008-12-25 16:20:59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정말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선수예요.^^

2008-12-25 22:48:59

정말 최고의 프랜차이즈죠..
Z맨 영구결번 안해주면 데모라도 할껍니다~

2008-12-26 00:28:46

Z맨만한 빅맨도 없죠 저런발을 가지고 뛰었었다는게 정말 믿겨지지가 않네요

2008-12-26 08:43:04

정말 감동적인 글입니다.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요.

2008-12-27 00:10:31

일가스카스는 사보니스를 존경하면서도 사보니스 말을 잘 안 듣는 리투아니아 후배로 또 유명하죠.

1996년 올림픽을 앞두고도 대표팀에 합류해달라는 사보니스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NBA에서 뛰는 데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리투아니아에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8-12-27 09:56:08

있는듯 하면서도 없는듯...팀에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눈에는 잘 안띠기에...
좋은글에 추천은 당근입니다.

2008-12-28 08:32:06

제가 첫번재로 알게된 클블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입니다...

그렇게 큰키에 하이포스트에서 미들을 쏙쏙 넣는게 신기했었는데...

올해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Z맨, 훈훈한 이야기 감사합니당

2008-12-29 23:05:08

NBA 모든 선수들이 가장 최고의 명예로 첫 손가락에 꼽는것이

바로 자신을 믿고 선택해 드래프트 지명권을 행사해준 팀에서

선수커리어동안 계속 같은 팀의 유니폼만 입고 선수생활을 마치는것이라고 하네요..

( 요즘의 분위기로 봐서는 다른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래서 Z - MAN 도 데이빗 로빈슨과 더불어 제가 생각하는 가장 명예로운 센터로 자신있게 내세울수있습니다..

다른 센터들도 물론 엄청나고 도미넌트한 존재들이었지만 팀을 몇번씩 옮긴 기록들이 계시죠...

( 심지어 아킴 흑표범께서도 토론토에서 말년생활을....) 이제 Z MAN 챔피언쉽링 하나 꼭 드시길 응원합니다.

르브론씨도 이런 명예를 생각하시어......11번에 이어 23번도 영구결번 함께하기를...선수생활평생동안

같은팀의 유니폼만을 입고 더욱더 빛나는 위대함으로 우리기억속에 남아주기를..... 기도!!

2009-01-01 10:37:47

클리블랜드에서 Z맨을 꼭!영구결번시켰으면하는 1인.

2009-01-19 13:05:40

참 좋은 글입니다. 늦게 읽었지만 추천 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제 기억에는 일가우스카스는 95년 드래프트에도 픽업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96년 드래프트에 또 이름을 올린 걸보고 그 때 당시 어떻게 한 선수가 픽업이 두 번 될 수 있나 의아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이 부분에 대해 아시는 분?

2009-01-19 16:16:51

필자이신 heltant79님께서 쪽지로 제 오류를 지적해주셨습니다.

95년 드래프트에는 Aurelijius Zukauskas 라는 선수가 있군요. 이런 말도 안되게 헛갈려 놓고는 10년이 넘게 그 헛갈린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사족으로, 일가우스카스의 다음 드래프스 순위에는 SBS에서 뛰었던 단선생-단테존스가 있군요. 이 선수 NCAA시절에 토너먼트에서 날아다니는거 보고 정말 좋아했는데 KBL까지 흘러(?) 들어왔을때 많이 놀랐었죠. 당시 스카우터들의 분석에 의하면 '잘되면 피펜?' 뭐 이런 분석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아무튼. 지적 감사합니다.

2009-05-15 23:16:59

영구결번 가야죠. 모닝이나 Z맨 처럼 아픔을 이겨낸 선수들은 언제나 모범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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