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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트 체임벌린 시리즈 5편 : 신화창조 - 한경기에 100점을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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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3 09:30:19

그날은 평소와 특별히 다른 점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아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3월 2일. 이 날이 농구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원히 기억될 경기가 열린 기념비적인 날이 되리란건 그 누구도, 그 경기를 만든 사람 본인조차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펜실베니아 주의 허쉬는 지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초콜릿으로 유명한 지역이고, 이 날 여기서 스포츠 역사상 손꼽힐만한 개인적 성취가 이루어지기전까진 스포츠와는 별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왜 필라델피아의 농구팀이 1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허쉬에서 홈경기를 치르게 된건지 알기 위해선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당시에는 팬층을 넓히기 위해서 시즌중 몇 경기를 근접한 다른 지역의 경기장에서 치르는게 NBA에서 일반적인 일이었다. 필라델피아 워리어스는 그 시즌 여섯번의 홈경기를 이런 식으로 다른 곳에서 가졌는데 허쉬에서 세번, 시라큐스, 우티카, 뉴욕에서 각각 한번씩이었다. 정규시즌은 다섯경기가 남아있었고 리그의 선두는 언제나 그렇듯이 보스턴이 차지하고 있었다. 워리어스는 보스턴과 9와 2분의 1 경기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었고, 남은 다섯경기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플레이오프에서의 대진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당시 필라델피아 3대 일간지라 할수있던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이브닝 불레틴,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 중 인콰이어러지에선 굳이 먼 허쉬까지 취재기자를 보내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경기는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지 않았고, 따라서 어떤 종류의 영상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팬 한명이 필라델피아 로컬 라디오 방송국에서 빌 캠벨이 중계하던 방송을 개인적으로 녹음해 만든 오디오테입이 이 경기와 관련되서 남은 유일한 시청각적 기록인데, 이 테입도 경기 전체를 담지는 않았다. 상대팀들인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와 뉴욕 닉스는 둘 다 이틀간 경기를 치르지 않아서 선수들은 모두 휴식을 충분히 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중에서 필라델피아 측의 센터는 아마도 예외였을 듯 한데, 경기 전날밤 여성 한명과 온밤을 세우며 놀다가 새벽이 되서야 집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뉴욕에 살던 그가 이날 팀연습에 참여하기 위해선 아침에 필라델피아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평소에도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기차시간 전까지 두세시간 눈을 붙이는 것보다 그냥 잠을 자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회상에 따르면 '잠들면 내릴 곳을 놓치고 버지니아까지 가버릴까봐' 기차에서도 한숨도 자지 못했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해서는 버스로 허쉬를 향해 출발했는데 버스안에선 동료들과 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허쉬에 도착한건 오후 다섯시였고 경기 시작전까진 세시간이 남아있었다. 선수들은 각자 흩어졌고 필리의 센터는 팀의 변호사인 아이크 리치먼을 상대로 내기를 걸면서 핀볼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래서 한경기에 100점을 넣기 전 윌트 체임벌린은 한밤을 꼬박 세우고 거의 잠을 자지않은 상태로 경기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워리어스가 초반 19-3으로 앞서갔지만 닉스 선수들은 곧 따라잡았다. 전반이 끝난 시점에서 팀은 79-68로 앞서가고 있었고 체임벌린은 1쿼터에 23점을, 2쿼터에 18점을 넣어 41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윌트 본인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진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즌엔 그가 전반에 그 정도의 점수를 넣은 경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이 경기 바로 전의 세 경기에서 체임벌린은 67점, 65점, 61점을 기록했었다. 체임벌린의 회상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따낸다는 건 특별히 의식하진 않았지만, 자유투를 아홉개 연속으로 성공시킨 다음엔 한경기 자유투 기록에 대해선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날 경기에서 뛰었던 워리어스의 폴 아리진은 왜 하필 그 특정한 날 밤에 윌트가 그토록 많은 득점을 하길 원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윌트는 항상 손목에 고무밴드를 차고 플레이하길 즐겼죠. 한번은 그해 일찍 우리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진 시합에서 닉스 선수들이 전원 손목에 고무 밴드를 차고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월트는 그걸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었죠. 또 하날 들자면 그 전해에 올아메리칸으로 뽑혔던 닉스의 센터 대럴 임호프였을 겁니다.그는 뛰어난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윌트는 훌륭한 수비수를 상대로 자신이 어떤 것을 할수있는지 보여주는걸 즐겼거든요." 이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수 없지만 닉스선수들이 손목에 밴드를 차고 나온 이후 체임벌린은 그해에만 닉스를 상대로 세번 65점 이상 득점했다(100점, 73점, 67점). 3쿼터에 체임벌린은 28점을 넣었고 총점수는 69점이 되었다. 이제 모두가 이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다시 윌트 본인의 말을 빌려오면 "이때 우리 모두 내가 73점이나 78점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73점과 78점이었을까? 73점은 연장전 없이 48분동안 치뤄진 경기에서 체임벌린이 기록한 한경기 최고 득점이었고, 78점은 세번의 연장전 끝에 기록한 당시 NBA 한경기 최고 득점 기록이었다. 전자는 이 날로부터 두달전 시카고를 상대로, 후자는 석달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각각 기록했다. 프랭크 맥과이어(워리어스의 감독)는 체임벌린이 78점을 넣은 날 윌트가 언젠가는 한경기에 100점을 넣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사실 난 그 말을 했을때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 그날밤(78점을 넣은 밤) 레이커스에선 세명이나 네명이 윌트를 둘러쌓고, 난 심판들이 제대로 콜을 불러 그들을 떼놓지 않는데 열이 뻗쳤었다." 4쿼터가 시작됐고 경기종료 10분 25초가 남은 시점에서 체임벌린은 NBA 48분 경기 득점 최고 기록인 본인의 73점과 타이를 기록했다. 10분이 남았을때 그는 75점째를 넣었고, 이후로 필라델피아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윌트가 슛을 하나 성공시킬때마다 환호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댔다. 윌트는 가이 로저스에게서 패스를 받아 자유투라인 근처에서 페이드어웨이 점프슛을 던져 79점째를 넣으면서 NBA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이 때 경기는 아직도 8분 남짓 남아 있었다. 체임벌린이 84점째를 넣었을때 라디오로 경기를 중계하던 빌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중계를 듣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 오세요. 오늘 밤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순간 작은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캠벨은 또한 지금 윌트가 공을 잡을 때마다 모든 관중들은 미친듯이 고함을 질러대면서 마음 속으로 마법의 숫자, 100이라는 숫자를 떠올리고 있다고 중계했다. 6분을 남겨놓고 캠벨은 닉스 선수들이 아예 체임벌린이 공을 잡는 일 자체를 막기 위해 필라델피아 공격시 중앙선을 넘어오기도 전에 파울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닉스 선수들은 그에 더해서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자기들의 공격시 외곽에서 가능한 공을 돌리며 24초를 다 소모하는 작전을 들고 나왔다. 워리어스에선 이에 맞서서 파울이 적은 선수들을 투입해서 닉스 공격시 파울을 해서 공소유권을 빨리 가져오는 작전을 썼다. 이미 시합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닉스 측에선 한명에게 한경기에서 100점을 내준다는 치욕을 막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체임벌린은 무정하게 돌아가는 자거노트처럼 멈추지 않았다. 3대1 속공상황에서 체임벌린은 앨 애틀스의 패스를 받아 89점째의 점수를 넣었고 빌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3분 30초를 남겨놓고 모든 관중들은 '우리는 100점을 원한다(We want a hundred.)'고 외치고 있습니다." 2분 28초 남은 시점에서 윌트는 페이드어웨이 점프슛으로 92점을 기록했고 16초 후 또 2점을 넣었다. 다시 그의 성명절기인 중거리에서의 페이드어웨이가 꽂히며 96점이 들어갔고, 체임벌린이 라레스의 패스를 받아 덩크를 찍으며 98점을 넣었을때 경기시간은 1분 19초가 남아있었다. 이브닝 불레틴 지의 기자 헤퍼낸은 이순간을 12일 후 스포팅 뉴스 지에 실은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워리어스 벤치의 선수들은 이제 조용한 가운데 초조하게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장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윌트가 닉스의 스로인 볼을 가로채서 자유투라인 근처에서 슛을 던졌으나 빗나갔다. 닉스의 공격도 실패했고, 워리어스 선수들이 중앙선을 넘어왔다. 윌트는 골밑에서 뉴욕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러클릭이 빅디퍼(Big Dipper. 체임벌린의 별명)에게 공을 투입했고 윌트의 슛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리바운드를 잡아서 다시 슛을 던졌으나 역시 빗나갔다. 루큰빌(워리어스 선수)이 공을 가로채 러클릭에게 패스했다. 그는 골밑의 윌트의 위치를 보고 공을 골대를 향해 던져올렸다. 체임벌린은 두손으로 공을 움켜잡고 림안으로 내리꽂았다." 100득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해냈습니다!!" 캠벨이 고함을 질렀다. "디퍼가 덩크했습니다! 그가 해냈습니다! 팬들이 코트위로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경기가 중단되는군요. 사람들이 코트위에서 이리저리 난리입니다. 윌트 체임벌린이 100득점을 했습니다. 경기가 중단됐어요.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듭니다. 등을 두드리고 두드립니다. 워리어스 선수들도 전부 그에게 달려듭니다. 팬들이 스탠드에서 들어옵니다. 46초가 남았습니다. 득점에 관해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업적입니다. 빅디퍼가 100득점을 했습니다." 체임벌린이 100점을 넣은 공은 워리어스의 용구담당이었던 제프 밀맨에게 넘겨졌고 그는 그 공을 체임벌린의 듀플백안에 넣어놓았다. 남은 46초동안은 다른 공으로 플레이했다. 세월이 흐른 후 많은 사람들은 이 경기에서 남은 46초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NBA역사상 유일하게 48분을 채우지 않고 종결된 경기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100점을 한 순간의 열광적인 경기중단이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그렇게 된듯하다. 심지어 체임벌린 본인조차 그렇게 믿었었는데, 이와 관해선 1990년 NBA ENTERTAINMENT의 프로듀서 토드 카소가 체임벌린과 가진 만남을 살펴보는게 좋겠다. "그(체임벌린)는 수십년동안 사람들에게 그경기가 NBA역사상 유일하게 48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난 경기였다고 말해왔었죠. 나는 그와 같이 앉아서 남은 46초간의 경기중계를 들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경기가 종결됐다는걸 인정했죠. 돌아서서 내게 말하기를, '난 이 일에 관해선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걸.' 이라고 했습니다. 그순간 그는 너무나 격정적인 상태였었고 그건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중 하나를 이룬 직후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죠. 사람들은 제게 그 경기가 겨우 다시 속행되었을때 윌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있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01점이나 102점을 기록하고 싶진 않았던거죠." 속행된 경기에서 닉스는 몇점을 추가했고 경기는 169-147로 필라델피아의 승리로 끝났다. 두 팀의 점수를 합하면 316점인데, 이 기록은 1986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덴버 너게츠를 186-184로 이긴 경기에서 깨졌다. 체임벌린은 쿼터별로 23, 18, 28, 31점을 넣었고 총 63개의 필드골을 던져 36개를 성공시켰으며 32개의 자유투 중 28개를 집어넣었다. 워리어스의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합쳐 52개의 슛을 던졌다. 체임벌린이 그날 세운 신기록 혹은 타이기록은 아홉개인데 그 중 주요한걸 보면 1. 한경기 최고 득점-100 2. 한경기 최다 필드골 시도-63 3. 한경기 최다 필드골 성공-36 4. 한경기 최다 자유투 성공-28 5. 후반 최고 득점-59 6. 한쿼터 최고 득점-31 위에서 한쿼터 최고 득점 기록은 데이비드 톰슨(33점)에 의해 깨졌으나 다른건 모두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후반 최고득점은 지난번 코비의 81점 경기에서 깨질뻔 했지만(55점). 윌트 체임벌린의 여러가지 기록들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기록은 거의 확실히 이 한경기 100득점이겠지만, 체임벌린 본인은 이 기록을 자신의 가장 위대한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는 100득점에 대해 애기할땐 종종 '동료들이 내게 공을 계속해서 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득점을 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고, 동료들 덕분에 이룬 기록이었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가장 위대한 개인 기록으로 꼽은 것은 역사상 자신 다음으로 위대한 리바운더인 빌 러셀을 상대로 기록한 한경기 55 리바운드, 시즌평균 50.4득점, 시즌평균 출장시간 48.5분 이렇게 세가지였다. 경기가 끝난뒤 라커룸에서 하비 폴락이 종이 한장위에 '100'을 휘갈겨서 윌트에게 주었고 그걸 들고 찍은 사진이 윌트가 나온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2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가이 로저스는 말하기를, "오늘밤처럼 어시스트를 기록하기 쉬운날은 여지껏 없었다. 난 그저 윌트에게 공을 주기만 하면 되었다." 수비수로서 명성을 가졌으나 공격에선 뛰어난 점이 없었던 앨 애틀스는 이날 여덟개의 슛과 한개의 자유투를 던져 모두 성공했는데 체임벌린에게 농담하기를 "내 평생동안 오늘이 맘의 상처가 될거야. 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슛을 성공시켰는데 아무도 나한텐 한마디도 안건다구." 모두가 윌트의 100득점에 환호한건 아니었다. 닉스의 감독 에디 도노반은 "이 경기는 코메디였다. 그들이 우리에게 파울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파울했다." 고 했고 닉스의 올스타 선수 리치 거링은 워리어스가 파울을 해서 체임벌린에게 공을 준 사실을 평생동안 비판했다. 워리어스는 이틀 뒤 뉴욕에서 다시 닉스와 경기를 가지게 되어있었다.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로 갔다가 다시 거기서 자기가 사는 뉴욕으로 가는 대신 감독 맥과이어에게 허락을 받고 닉스 선수들 차를 얻어타고 바로 뉴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체임벌린은 돌아가는 차에서 내내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 살짝 잠을 깼을때 닉스 선수들이 이렇게 말하는걸 들었다고 한다. "니들 이 개자식(SOB)이 우릴 상대로 정말로 100점을 넣었다는게 믿어지냐?" 그들이 체임벌린을 센트럴 파크 웨스트 97번지의 아파트 앞에 내려줄때 체임벌린은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했다. "니들은 오늘 이 개자식한테 정말이지 너무 친절하게 대해줬어. 100점을 득점하게 해주고는 거기에다 이 먼길을 와서 바로 집앞에까지 데려다주기까지 하다니. 고마워, 친구들." 이 역사적인 경기의 시각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체임벌린은 바로 그 점이 가져다 주는 신비한 후광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허쉬 아레나의 수용인원은 7200명이었고 이 경기에 입장한 사람은 4124명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그들이 그 날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해왔고 심저어 어떤 사람들은 체임벌린에게 그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100점을 넣는걸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체임벌린은 이런 일을 즐겼다 "사람들이 내게 그 경기를 그들이 봤다고 말을 해오면, 난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항상 그들에게 말하길, '오, 당신도 그 경기 봤군요? 그거 잘됐네, 나도 거기 있었어요.'" 사족 ; 이틀후 다시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와 뉴욕 닉스가 가진 경기에서 닉스의 센터 대럴 임호프는 농담삼아 자신이 체임벌린을 겨우 58점으로 묶었다고 말했다. 이 시즌 체임벌린은 총 4029점을 넣었는데 이 다음 가는 기록을 가진 선수는 마이클 조던으로 3041점이며 그 외엔 아무도 한시즌에 3000점을 넘기지 못했다. 사족2 ; 아직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체임벌린이 3초룰이 없는 상태에서 100득점을 했다고 생각하던데,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그런 말이 나오면 제발 좀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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