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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28 - SF편 (v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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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09:19:28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에 이어 이번에는 시리즈 3번째 연재물인 SF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재물인 PG편, SG편은 아래 링크해두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G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336

SG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390


범례 및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등은 이미 지난 편을 통해서 소개해 드렸으나, 이번 편을 맨 처음으로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습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래 순위부터 역순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기본 랭킹 외의 선수들을 5명씩 소개하는 “Honorable Mention”이 등장하며, 이후 28위부터 역순으로 15위까지 마이너 랭킹”(14), 이어서 14위부터 역순으로 1위까지 메이저 랭킹”(14)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 위 글 내의 전반적인 스탯 정보(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 등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준용하여 제시하였습니다.

 

- 스탯 정보는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을 기재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그리고 야투성공률(FG%), 3점슛성공률(3PT%), 자유투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가장 대표적인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 경기 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에 대한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경우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기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직접적인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경우, 3점슛 개수 및 3점슛율은 Top12까지, 블락슛과 스틸은 Top15까지, 나머지 스탯들은 Top20까지 랭킹을 매겼습니다. (스탯 랭킹의 범위가 각각 차이가 나는 까닭은, 3점슛은 79-80시즌부터,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계산된 스탯임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 스탯 랭킹 내에 드는 평균 및 비율 스탯의 유효 기준은, 레퍼런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커리어 최소 요구 수치를 준용하였습니다. 따라서 평균 득점 등 여러 스탯은 100경기 이상 출전을, FG%500개 이상 필드골 성공을, FT%200개 이상 자유투 성공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3PT%의 경우에는 현 레퍼런스 사이트의 기준이 50개 이상 3점슛 성공인데, 3점슛을 많이 쏘는 현재의 트렌드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기준입니다. 그래서 얼마 뛰지도 않은 전문 3점 슈터들이 상위 랭킹에 대거 포진하는 등의 기현상이 있어서 필자의 임의에 따라 94-95시즌 이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존대로 50, 94-95시즌부터 11-12시즌까지는 100, 12-13시즌 이후로는 150개를 랭크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리그의 3점슛 시도가 크게 늘어난 시점을 각각 지표로 삼았습니다. 94-95시즌에는 리그에서 3점슛 거리를 전체 22피트로 조정함에 따라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급증하였고, 처음으로 경기당 10개를 돌파했습니다. 이 거리 단축 조치는 3시즌 동안만 유지되었으나, 이후 3점슛의 비중이 커지고 선수들이 3점을 더 많이 던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2-13시즌에는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처음으로 경기당 20개를 돌파하였으며, 또한 이 시즌에 스테판 커리가 레이 알렌이 가지고 있던 시즌 최고 3점슛 기록(269)를 간만에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합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에서 드래프트 된 경우에는 드래프트된 연도와 그 순위까지 언급하였으며, 고인이 된 선수는 몰년과 향년을 기재하였습니다. 이밖에 명예의 전당 입성 및 해당 프랜차이즈 영구결번 여부 등도 밝혔습니다.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호크스 프랜차이즈는 1946년에 NBL 리그에서 버팔로 바이슨즈(Buffalo Bisons)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가, 한 달 여 만에 연고지를 일리노이 주의 멀린(Moline)으로 옮기면서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Tri-Cities Blackhawks)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트라이-시티스란 미시시피 강 유역에 서로 인접한 멀린, 록 아일랜드(Rock Island), 데이븐포트(Davenport)의 세 도시에 속한 구역을 지칭하는 말이고, “블랙호크스는 과거 용맹했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장신 센터 돈 오튼을 주축으로 한 블랙호크스는 1949년에 NBLBAA 리그에 병합되어 새로이 NBA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그 소속이 NBA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구단주 벤 커너는 1951년에 연고지를 대도시인 밀워키로 옮겼고, 팀 이름도 좀 더 간단하게 호크스로 바꿨죠. 하지만 밀워키 호크스는 성적이 계속 하위권에 머물면서 흥행이 신통치 않았고, 결국 1955년에 연고지를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엘리트 빅맨인 밥 페팃을 중심으로 차츰 전력을 강화한 호크스는 56 드래프트에서 빌 러셀을 뽑았지만, 흥행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의 지역 스타인 에드 마콜리를 영입하기 위해 러셀을 보스턴 셀틱스에 팔고 말았죠. 56-57시즌에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공교롭게도 러셀 트레이드의 상대였던 보스턴과 맞붙어 역대 파이널 사상 가장 치열했던 7차전 대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57-58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보스턴과 리매치를 벌였는데 이번에는 러셀의 부상을 틈타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리벤지에 성공,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죠. 이후 호크스는 밥 페팃, 클리프 헤이건 등을 앞세워 50년대 말~60년대 초에 서부를 대표하는 강자로 군림했으며, 라이벌 보스턴과는 두 번 더 파이널에서 맞붙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64-65시즌을 끝으로 밥 페팃이 은퇴하자, 호크스는 선수 겸 감독인 리치 게린의 지도하에 레니 윌킨스, 젤모 비티 등의 흑인 스타들을 앞세워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했죠. 게린의 시대에 호크스는 매년 빠짐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67-68시즌에는 56승의 호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편 홈구장 신축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벤 커너 구단주는 1968년에 끝내 팀을 애틀란타의 부동산 재벌인 톰 커즌스 등에게 매각함에 따라, 호크스는 연고지를 애틀란타로 옮기게 되었죠.

 

이후 호크스는 루 허드슨, 피트 마라비치 등 재간 있는 스코어러들이 팀을 이끌었지만, 몇몇 주축 선수들을 경쟁 리그인 ABA에 빼앗기기도 하고 마라비치와 흑인 동료들 간에 갈등도 심했으며 ABA의 스타 쥴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려다 실패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성적이 추락, 잠시 침체기를 걷게 됩니다. 그러다가 1977년에 MLB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인 테드 터너가 팀을 사들이고 휴비 브라운을 감독으로 임명한 후에 댄 라운드필드의 영입 등으로 전력을 추스르며 다시 중상위권으로 도약하게 되었죠. 82-83시즌에는 조지아 주 출신의 지역스타인 도미닉 윌킨스를 운 좋게 데려온 호크스는 이후 엘리트 스코어러로 성장한 윌킨스의 활약과 명장 마이크 프라텔로의 지도력 등을 앞세워 80년대 말에 4년 연속 50승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등의 벽을 넘지 못하며 잇달아 고배를 마셔야 했죠. 프라텔로 사임 후 애매하게 중위권에 머물던 호크스는 93-94시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레니 윌킨스를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윌킨스는 부임 첫 해에 도미닉 윌킨스를 트레이드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면서 57승의 호성적을 거두었으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도미닉을 트레이드한 데에 충격을 받은 다수의 홈팬들이 호크스에 등을 돌리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죠.

 

이후 윌킨스 감독은 마이애미 히트로부터 스티브 스미스를 영입하고, FA로 수비 대마왕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하며 90년대 중후반에 공수 발란스가 훌륭한 호화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 등에게 가로막히며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죠. 99-00시즌부터 리빌딩에 들어간 호크스는 프런트의 잇따른 오판에 따른 선수 영입 실패로 인해 오랜 암흑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무려 8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호크스는 그래도 그간 얻은 드래프트 픽 등을 통해 차츰 전력을 강화한 끝에 07-08시즌부터는 다시 플레이오프 권으로 복귀했죠. 이후 호크스는 조 존슨, 알 호포드 등을 앞세워 계속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만 하다가, 13-14시즌에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을 영입하며 새롭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벤치 마킹, 팀플레이 위주의 짜임새 있는 전력을 구축한 호크스는 14-15시즌에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60승을 거두며 챔피언 컨텐더 급의 전력으로 올라섰죠. 하지만 무려 45년 만에 진출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속절없이 스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다시 중상위권으로 내려온 호크스는 이번 시즌에도 동부의 다른 팀들과 치열하게 플레이오프 싸움을 벌이는 중이죠.

 

호크스는 70년 역사 동안 우승은 단 1회에 불과하지만, 47회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해 온 부지런한 프랜차이즈입니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8시즌 동안 외에는 뚜렷이 긴 암흑기도 없죠.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번번이 1라운드 탈락, 2라운드 탈락 등의 성적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 횟수에 비해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편입니다.

 

그럼 이상으로 서설을 마치고,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5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William “Pop” Gates


 

프랜차이즈 원년 멤버인 올라운드 플레이어 팝 게이츠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흑인 선수이며, 1989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Jack Givens


 

78년 켄터키 대학 우승의 주역이었던 잭 기븐스는 78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16)에 뽑혀 두 시즌 간 백업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Danny Manning

  

  

L.A 클리퍼스의 간판스타였던 대니 매닝은 93-94시즌 도중 프랜차이즈 레전드 도미닉 윌킨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팀에 합류했으나,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피닉스 선즈로 떠나버렸습니다.

 

Roshown McLeod



98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20)에 지명된 로숀 맥로드는 00-01시즌에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디켐베 무톰보 트레이드 때 함께 필라델피아 76ers로 이적했습니다.

 

DerMarr Johnson

 

00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지명된 장신 스윙맨 더마 존슨은 안타깝게도 2002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커리어가 꺾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랭킹 소개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이너 랭킹 (28~15)

 

28

 

#_7 / #_11 Warren Perkins


 

6-3, 190lbs SF / 2시즌(50-51), 126경기

 

6.1, 4.8리바운드, 2.0어시스트, 3.1윈셰어

 

툴레인 대학 출신의 워렌 퍼킨스49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로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의 지명을 받았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루키 시즌부터 종종 스타팅 포워드로 기용되어 팀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죠. 신장이 6-3에 불과했지만 대학 시절에는 센터를 보았기에 리바운드와 훅-슛이 주 무기였던 그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골밑에서 더 큰 선수들과 부대껴가며 플레이했습니다. 두 시즌동안 묵묵히 라인업에서 제 몫을 다한 그는 블랙호크스가 고향인 뉴올리언즈에서 멀리 떨어진 밀워키로 연고지를 옮기려 하자 미련 없이 현역 생활을 청산했죠. 은퇴 후에는 의사의 길을 걸은 그는 뉴올리언스에서 족부(足部) 전문의로 50년 넘게 활동했으며, 2014년에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7

 

#_17 Dick Mehen

  

  

6-5, 195lbs SF/PF / 1시즌(52), 65경기

 

10.8득점, 4.3리바운드, 2.6어시스트, 35.3분 출전

 

49-50시즌에 워털루 호크스(Waterloo Hawks) 소속으로 팀 내 최고인 평균 14.4득점을 기록한 공격형 포워드 딕 메헨, 이듬해 워털루가 NBA를 떠나 NPBL 리그로 옮길 때에 NBA에 남아 볼티모어 불리츠 소속이 되었습니다. 당시 리그에서 워털루의 리그 이적을 승인하는 대가로 메헨과 6-10의 센터 해리 보이코프, 두 선수를 내주고 갈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죠. 50-51시즌 도중에 그는 두 차례나 트레이드를 겪으며 볼티모어, 보스턴, 포트웨인을 전전했습니다. 한편 51-52시즌을 앞두고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는 올스타 가드 프랭키 브라이언을 포트웨인 피스톤즈에 내주면서 대신 메헨과 하위 슐츠, 현금을 받아왔죠. 프론트 코트 자원임에도 뛰어난 중장거리 슈팅 능력을 자랑했던 그는 51-52시즌에 팀의 주전 포워드로 출전하여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려 주었습니다. 그 시즌을 끝으로 블랙호크스를 떠난 그는 독립리그의 톨레도 머큐리스(Toledo Mercuries)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고, 1986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6

 

#_14 Ira Newble


 

6-7, 220lbs SF/SG / 2시즌(02-03), 115경기

 

7.8득점, 4.3리바운드, 1.3어시스트, 0.8스틸

 

하부리그와 유럽 등을 전전하던 무명의 아이라 뉴블00-01시즌에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하며 리그에 데뷔했다가 벤치만 덥히고 방출되었습니다. 다시 하부리그로 돌아온 그는 01-02시즌 도중에 애틀란타 호크스와 10일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호크스의 스윙맨 뎁쓰가 워낙 빈약했기에 10일 계약자임에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어느새 주전 자리까지 꿰찬 그는 호크스와 잔여계약 체결에 성공했으며, 주전으로 나선 35경기에서 평균 8.2득점, 5.7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강인한 인상에 스윙맨으로서 좋은 신체조건을 지닌 그는 터프한 수비력을 자랑했으며, 속공 및 리바운드 가담에도 적극적인 에너자이저였죠. 다만 스윙맨 치고 슈팅 능력과 레인지가 좀 아쉬웠습니다. 오프시즌에 1년 미니멈 계약을 맺으며 호크스에 잔류한 그는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했고, 약점인 3점슛도 많이 향상된 모습(38.1%)을 보여주었죠. 그는 02-03시즌을 마치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515mil에 계약하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2010년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현재 D-리그의 노던 애리조나 선즈(Northern Arizona Suns)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습니다.




 

25

 

#_15 / #_11 Chuck Cooper


 

6-5, 210lbs SF/PF / 2시즌(55-56), 105경기

 

7.2득점, 5.0리바운드, 2.0어시스트, 22.1분 출장

 

냇 클리프턴, 얼 로이드와 함께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로 유명한 척 쿠퍼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4시즌을 뛴 뒤 53-54시즌을 마치고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54-55시즌에 그는 3-4번 포지션을 두루 백업하며 주로 벤치에서 활약했고, 평균 8.2득점, 5.5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당시에는 3번과 4번 포지션 간에 롤의 차이가 크게 없어서 3-4번을 모두 소화하며 수비, 리바운드 등 궂은일에 전념하는 수비형 포워드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도 그 대표적인 케이스였습니다. 한편 55-56시즌을 앞두고 호크스는 연고지를 세인트루이스로 옮겼는데, 인종차별색이 강했던 세인트루이스는 그에게 뛰기 힘든 환경이었죠. 결국 그는 시즌 도중에 방출되었는데, 마침 포트웨인 피스톤즈가 클레임을 걸면서 그는 잔여 시즌을 피스톤즈에서 마쳤습니다. 이후 그는 NBA를 떠나 묘기농구단인 할렘 매직션즈(Harlem Magicians)에서 뛰던 중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허리를 크게 다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죠. 이후 그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고향인 피츠버그 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1977년에 인종차별의 벽을 허문 공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는 1984년에 간암으로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4

 

#_25 Thabo Sefolosha

 

6-7, 220lbs SF/SG / 2시즌(15-16), 127경기

 

6.0득점, 4.4리바운드, 1.4어시스트, 1.1스틸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에서 여러 시즌 주전으로 활약한 스위스 출신의 타보 세폴로샤13-14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사인 & 트레이드(312mil에 계약)를 통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6-7의 키에 7-2의 윙스팬이라는 좋은 사이즈를 갖춘 그는 빠른 발과 적극성을 겸비한 훌륭한 퍼리미터 디펜더죠. 다만 득점력은 다소 아쉬운 편인데, 그리 정교한 슈터가 아니어서 슛이 터지지 않으면 공격에서 답답함을 주기도 합니다. 14-15시즌에 주로 벤치에서 활약한 그는 시즌 막판에 황당한 부상을 당해 그 해 플레이오프를 통째로 뛰지 못했죠. 201548일에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크리스 코플랜드가 괴한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마침 그때 그와 팀 동료 페로 안티치가 현장에 있다가 공무집행 방해로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행될 때 경찰이 과잉 진압을 하는 바람에 그만 그의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던 거죠. 15-16시즌에 건강하게 돌아와 벤치의 핵심 수비 요원으로 활약한 그는 이번 시즌에는 스타팅으로도 많이 출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는 지난번 과잉진압 건과 관련하여 뉴욕 경찰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입니다.




 

23

 

#_18 Don Boven


 

6-4, 210lbs SF/PF / 2시즌(52-53), 93경기

 

9.6득점, 4.7리바운드, 2.3어시스트, 28.5분 출전

 

NPBL 리그의 워털루 호크스(Waterloo Hawks)에서 뛰던 돈 보벤50-51시즌에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56경기 총 781득점, 평균 13.9득점) 그 시즌을 끝으로 리그가 파산해버리자 NBA의 밀워키 호크스와 계약했습니다. 그는 팀의 주축 멤버로서 전 경기(66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9.9득점, 5.1리바운드, 2.7어시스트의 전방위 활약을 보여주었죠. 웨스턴 미시간 대학 시절에는 6-4의 키로 센터도 봤었던 그는 2번부터 4번 포지션까지 두루 커버할 수 있는 전천후 플레이어였습니다. 또한 그는 적극적인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파울이 잦았는데, 이 시즌에만 5경기 연속 6반칙 퇴장을 비롯해 18차례나 6반칙으로 퇴장당한 바 있죠. 한편 그는 52-53시즌 도중에 3 : 2 트레이드를 통해 볼티모어 불리츠로 이적했으며,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습니다. 이후 그는 모교인 웨스턴 미시간 대학에서 강사 및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했으며, 농구팀 감독도 수년 간 역임했죠. 그는 2011년에 심장병으로 인해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2

 

#_10 Don Adams


 

6-6, 210lbs SF / 2시즌(72-73), 74경기

 

11.4득점, 7.0리바운드, 1.9어시스트, 28.5분 출전

 

드래프트에서 낮은 순위(70 드래프트 8라운드 120)로 지명되었음에도 리그에 살아남은 돈 애덤스2년차 때인 71-72시즌을 앞두고 소속팀 휴스턴 로케츠와 재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시즌 초반에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리치 게린 감독의 신임을 얻으며 출장시간을 제법 받은 그는 피트 마라비치, 루 허드슨 등 화려한 멤버들 사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롤을 수행하며 궂은일에 전념했죠. 수비형 포워드인 그는 평범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리바운드에 가담해주었고, 수비에서 에너지를 더해줬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리치 게린 감독이 사임하고 코튼 피츠시몬즈가 새로 부임했는데, 애덤스는 새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4경기 만에 2라운드 픽 하나와 맞바꿔져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트레이드되었죠. 이후 그는 디트로이트, 버팔로 브레이브스 등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잠깐 ABA에 몸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금융 설계사로 일한 그는 2013년에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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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7 Toni Kukoc

 

  

 

6-10, 192lbs SF/PF / 2시즌(01-02), 76경기

 

12.1득점, 4.1리바운드, 4.2어시스트, 0.8스틸, 36.4% 3점슛율

 

90년대 말 시카고 불스의 23연패 시절 식스맨으로 맹활약했던 토니 쿠코치는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으로 있던 00-01시즌 도중에 티오 래틀리프와 디켐베 무톰보 간의 딜에 끼어서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새 팀에 합류한 직후에는 주전 3번으로 중용되며 17경기 에서 19.7득점, 5.7리바운드, 6.2어시스트의 에이스급 활약에 두 차례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발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조기에 접어야 했죠. 크로아티아 출신인 그는 유럽의 매직 존슨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뛰어난 외곽 슛과 높은 BQ, 탁월한 패싱 감각을 자랑했습니다. 다만 발군의 공격 재능에 비해 수비가 형편없어서 커리어 내내 주로 식스맨으로 많이 뛰었죠. 01-02시즌에는 주로 벤치에서 출격한 그는 전 시즌만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외곽 슛도 많이 무뎌졌습니다.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글렌 로빈슨을 영입하기 위한 카드로 쓰이며 밀워키 벅스로 이적했죠. 이후 그는 벅스에서 4시즌을 더 뛰다가 은퇴했으며, 현재는 친정팀 시카고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

 

#_4 / #_5 Ken Norman


 

6-8, 215lbs SF/PF / 3시즌(95-97), 125경기

 

10.4득점, 4.3리바운드, 1.4어시스트, 33.7% 3점슛율

 

L.A 클리퍼스에서 오랫동안 주전급 포워드로 활약한 켄 노먼93-94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벅스와 6년의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나, 한 시즌 만에 로이 힌슨의 권리(부상으로 은퇴함)와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94-95시즌에 그는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평균 12.7득점에 4.9리바운드를 올려주었으며, 95-96시즌에는 스테이시 오그먼을 밀어내고 초반부터 스타팅 3번으로 기용되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무성의한 태도로 인해 결국 레니 윌킨스 감독의 눈 밖에 나서 로테이션에서조차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운동능력 좋은 트위너 포워드로, 터프한 수비력을 자랑했으며 체격 대비 괜찮은 리바운더였죠. 그는 94-95시즌부터 3점슛 라인이 22피트(6.7m)로 짧아진 틈을 타서 3점슛을 쏠쏠하게 넣어주기도 했지만, 파울 라인에서는 끔찍한 자유투 슈터였습니다. (통산 자유투 성공률 56.7%, 호크스 시절엔 42.5%) 이래저래 팀의 골칫덩이로 전락한 그는 96-97시즌에는 등 부상까지 겹치며 17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97-98시즌을 앞두고 계약이 2년 남아있었음에도 팀에서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19

 

#_1 Maurice Evans


 

6-5, 220lbs SF/SG / 3시즌(09-11), 206경기

 

6.0득점, 2.3리바운드, 0.6어시스트, 0.5스틸, 36.2% 3점슛율

 

언드래프티 출신으로 여러 팀을 떠돌던 저니맨이었던 모리스 에반스07-08시즌을 마치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37.5mil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08-09시즌에 주로 벤치에서 활약한 그는 마빈 윌리엄스 등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에는 땜빵 주전 노릇도 해주며 평균 7.2득점을 올려주었고, 아크 너머에서 39.5%3점슛 성공률을 기록했죠. 그는 운동능력이 매우 뛰어나 종종 호쾌한 덩크로 팬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준수한 외곽슛과 퍼리미터 수비력을 겸비한 전형적인 3 & D 자원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두 시즌 더 호크스의 벤치에서 활약했으나 장기인 외곽슛이 조금 무뎌지며 (두 시즌 동안 32.9%에 그침) 08-09시즌만큼의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했죠. 결국 그는 10-11시즌 도중에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되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한 시즌 더 워싱턴에서 뛴 뒤 은퇴한 그는 현재 스포츠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8

 

#_24 Kent Bazemore


 

6-5, 201bs SF/SG / 2시즌(15-16), 150경기

 

8.4득점, 4.0리바운드, 1.7어시스트, 1스틸, 35.9% 3점슛율

 

언드래프티 출신인 켄트 베이즈모어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L.A 레이커스에서 뛰다가 14-15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24mil에 계약했습니다. 14-15시즌에는 주로 벤치 에서 활약한 그는 타보 세폴로샤가 종종 부상으로 빠졌을 때 그 공백을 잘 메워주었죠. 한편 오프시즌에 팀의 주전 3번인 드마레 캐롤이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해 버리자, 15-16시즌에는 그가 주전 3번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초에는 별 대안이 없어 그냥 땜빵식으로 그를 스타팅에 기용한 것이었지만, 그는 기대 이상으로 분전하며 평균 11.6득점, 5.1리바운드를 기록, 캐롤의 공백을 나름 잘 메워주었죠. 그는 타고난 운동능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속공에 가담해 주며, 퍼리미터 수비력과 외곽슛을 겸비한 3 & D 자원입니다. 또한 코트 위에서 항상 열정적으로 플레이하며, 벤치로 물러나 있을 때에도 기막힌 리액션으로 동료들을 적극 응원하는 에너지 가이죠. 이번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는 시장에서 각광받는 수비 되는 스윙맨인데다가 샐러리캡까지 급증하면서 몸값이 훌쩍 뛰었습니다. 한때 타 팀으로부터 연간 20mil급의 오퍼를 받았다는 루머까지 나돌던 그는 결국 친정팀 호크스와 470mil에 재계약하며 의리를 지켰죠. 이번 시즌에도 그는 꾸준히 주전으로 출전 중이지만, 슈팅 슬럼프에 시달리며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

 

#_22 Jim Jackson


 

6-6, 220lbs SF/SG / 2시즌(00-01), 96경기

 

16.3득점, 4.9리바운드, 2.9어시스트, 39.0% 3점슛률(통산 5), 87.2% 자유투율(통산 4)

 

리그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손꼽히는 짐 잭슨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소속으로 있다가 99-00시즌을 앞두고 팀 동료 아이재이아 라이더와 함께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스티브 스미스+에드 그레이 잭슨+라이더의 딜) 포틀랜드에선 주로 벤치에서 출전했던 그는 99-00시즌에 호크스에서는 주전 3번으로 뛰며 평균 16.7득점을 기록, 이적 동기인 라이더와 함께 팀 공격을 주도했죠. 그는 외곽슛, 돌파, 포스트-업 등 다양한 공격 루트를 지닌 스코어러였으며, 패싱 센스도 제법 뛰어났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대폭적인 팀 개편을 단행했던 호크스는 시즌 내내 팀워크가 엇박자를 보이며 부진에 빠졌고, 결국 8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죠. 이듬해인 00-01시즌에는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주춤한 모습을 보인 그는 결국 시즌 도중 브레빈 나이트 영입 딜에 끼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 1년 반 만에 다시 짐을 싸야 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거의 매년 팀을 옮겨가며 역마살 가득한 커리어를 보냈고, 05-06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때 까지 총 12개 팀을 거치며 이 분야에서 조 스미스, 토니 마센버그, 쳐키 브라운과 함께 역대 공동 1위에 올라 있습니다.




 

16

 

#_1 Stephen Jackson


 

6-8, 218lbs SF/SG / 1시즌(04), 80경기

 

18.1득점, 4.6리바운드, 3.1어시스트, 1.8스틸

 

긴 무명 생활을 거쳤다가 02-03시즌에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주전 슈팅가드로 뛰며 우승에 일조한 스티븐 잭슨, 오프시즌에 스퍼스와의 재계약이 무산되자 글렌 로빈슨의 이적으로 주전 3번 자리가 공석이던 애틀란타 호크스와 22.1mil(1년 후 플레이어 옵션 포함)로 저렴하게 계약했습니다. 그는 하위권 팀 호크스에서 많은 기회를 부여받아 좀 더 자신의 주가를 높일 수 있기를 바랐죠. 곧바로 호크스의 주전 3번으로 자리 잡은 그는 스퍼스 시절보다 많은 공격 롤을 부여받으며 한층 향상된 스탯을 뽐냈습니다. 특히 샤리프 압둘-라힘이 트레이드 된 후로는 29경기에서 평균 24득점을 넣으며 1옵션 노릇까지 톡톡히 해냈죠. 스윙맨으로서 탁월한 사이즈에 준수한 운동능력, 개인기를 겸비한 그는 샤프슈터는 아니지만 언제든 슛을 주저하지 않는 강심장이었습니다. 다만 슛 기복이 심하고 볼-핸들링이 불안정했으며, 수비 시 집중력이 늘 오락가락했죠. 03-04시즌에 호크스는 부진한 성적에 그쳤지만, 잭슨은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오프시즌에 플레이어 옵션을 포기하고 FA가 된 그는 마침내 640mil의 장기계약을 따내며 사인&트레이드를 통해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했죠. 이후 그는 골든스테이트, 샬럿 등지에서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냈고, 2015년에 공식 은퇴했습니다.




 

15

 

#_13 Glenn Robinson


 

6-7, 225lbs SF / 1시즌(03), 69경기

 

20.8득점, 6.6리바운드, 3.0어시스트, 1.3스틸, 87.6% 자유투율(통산 3)

 

밀워키 벅스의 간판 스타로 두 차례 올스타 경력이 있는 빅 독(Big Dog)” 글렌 로빈슨02-03시즌을 앞두고 토니 쿠코치+리온 스미스+1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호크스는 올스타 출신인 로빈슨을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장담했고, 만약 플레이오프에 못 나가면 시즌 티켓 구매자들에게 일부 환불까지 해주겠다고 나섰죠. 샤리프 압둘-라힘과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끈 그는 개막 후 첫 3경기에서 모두 30득점 이상을 기록, 동부지구 첫 이 주의 선수에 뽑히며 이름값을 해줬습니다. 타고난 공격 본능을 지닌 그는 특히 정교한 미드-레인지 샷이 일품이었고, 리바운드 능력도 준수했죠. 다만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너무 형편없었으며, 플레이오프 등 큰 무대에서 부진해 새가슴으로 불렸습니다. 한편 시즌 초의 호언장담과 달리 호크스의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았고, 론 크루거 감독은 끝내 중도에 해임되고 말았죠. 로빈슨과 압둘-라힘으로 이어지는 호크스의 포워드 라인은 득점력은 좋았지만 수비에서는 최악이었고, 결국 호크스는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의 영입이 실패임을 자인한 호크스 구단은 오프시즌에 4각 딜을 통해 그를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해버렸죠. 이후 뚜렷한 하향세를 걸은 그는 은퇴 직전에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으로 행운의 우승 반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의 아들인 글렌 로빈슨 3세도 NBA에 진출해 현재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뛰고 있습니다




 

메이저 랭킹 (14~1)

  

 

14

  

#_4 Chris Crawford



 

마켓 대학을 졸업한 크리스 크로포드97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50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미미한 출전에 그친 그는 2년차인 98-99시즌에는 부상으로 아웃된 주전 포워드 라폰조 엘리스를 대신해 30경기를 땜빵 주전으로 뛰었죠. 이때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그는 오프시즌에 호크스와 718mil의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3-4번을 두루 소화 가능한 그는 미드-레인지에서 훌륭한 슈팅 터치를 자랑했고, 투지가 넘치는 허슬 플레이어였죠. 하지만 이후 그는 끊임없는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인저리 프론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99-00시즌(55경기 출장)00-01시즌(47경기 출장)에 잇달아 발목 부상 등을 당해 여러 경기를 빠진 그는 급기야 01-02시즌 초반에 왼쪽 무릎 ACL이 파열되며 거의 두 시즌을 통으로 날렸죠. (01-02시즌에는 7경기 출장 후 시즌-아웃, 02-03시즌에는 무릎 부상 재발로 5경기 출장) 한편 03-04시즌에 건강하게 복귀한 그는 시즌 초반에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샤리프 압둘-라힘이 트레이드 된 이후로는 주전 출장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즌 마지막 25경기에서 주전 파워포워드로 기용된 그는 평균 19득점, 5.1리바운드의 깜짝 활약을 펼쳤고, 아크 너머에서 39%3점슛을 넣어주기도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활약이 그의 커리어의 마지막 불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04-05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 ACL이 파열되며 시즌-아웃되었고, 끝내는 팀에서 방출되며 한 많은 현역 생활을 마감했죠. 그는 은퇴 후 2륜 마차 경주(Harness Racing)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13

 

#_12 Mike Farmer

 



샌프란시스코 대학 출신으로 58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뽑힌 마이크 파머는 뉴욕, 신시내티를 거치며 평범한 커리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1-62시즌에 출범한 ABL 리그의 샌프란시스코 세인츠(San Francisco Saints)가 지역 스타 출신인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자, 그는 NBA를 떠나 ABL에서 잠시 한 시즌 머물렀죠. 이후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합류하며 NBA로 리턴한 그는 62-63시즌에 스타팅 포워드로 기용되며 평균 7.4득점, 4.6리바운드를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수비력 하나만큼은 일품이었으며, 3번치고 좋은 체격조건을 바탕으로 리바운드도 잘 잡아주었죠. 또한 간간히 점프슛과 훅 슛을 터뜨리며 득점에도 약간 기여해 주었습니다. 호크스에서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수비형 3번으로 제 몫을 다 해주던 그는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인해 65-66시즌 초반에 은퇴해야 했죠. 이후 호크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 및 스카우터로 활약하던 그는 볼티모어 불리츠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30살의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했으나, 66-67시즌 초반에 18패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 채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모교인 샌프란시스코 대학으로 돌아가 농구 팀 어시스턴트 코치 및 체육학 강사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12

 

#_10 / #_19 Bill Calhoun



 

50-51시즌에 로체스터 로얄즈의 멤버로 뛰며 우승을 맛보기도 했던 빌 칼훈은 시라큐즈 내셔널스 소속이던 52-53시즌 초반에 현금 트레이드로 밀워키 호크스에 합류했습니다. 뛰어난 수비수로 정평이 나있던 그는 호크스에서 남은 49경기 동안 평균 39분을 뛰며 10.3득점, 5.1리바운드를 기록했죠. 그는 체격 조건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나 상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끈끈하고 터프한 대인 방어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는 매치-업 상대가 아예 패스를 받지도 못하게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으며, 덕분에 “Shadow”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죠. 그는 2-3번 포지션을 두루 오가며 상대의 주득점원들을 봉쇄하는 역할을 전담했는데, 그의 락-다운 수비를 당한 공격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득점이 뚝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두 차례 득점왕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스코어러 폴 아리진도 그의 수비에 허우적대다가 경기 내내 두 골 밖에 못 넣은 적도 있었죠. 그는 뛰어난 득점원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슈팅력을 바탕으로 종종 중거리 점프슛들을 꽂아주곤 했으며, 패스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살림꾼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두 시즌 더 호크스에서 활약하며 수비로 이름을 떨치다가 54-55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11

 

#_5 Tom Van Arsdale



 

세 번의 올스타 경력이 있는 스윙맨 톰 밴 아스데일은 동생인 딕 밴 아스데일과 함께 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쌍둥이 형제로 꼽힙니다. 훌륭한 기량에 비해 팀 복이 없어 잦은 이적을 경험했던 톰은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이던 74-75시즌 초반에 클라이드 리+드래프트 3라운드 픽과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죠. 당시 오프시즌에 간판스타 피트 마라비치를 트레이드해버린 호크스는 전 시즌에 필라델피아에서 평균 20득점 가까이(19.6득점) 올려 준 그를 데려와 마라비치의 공백을 매워보려 했습니다. 한편 그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에이스 스윙맨인 루 허드슨 마저 부상으로 쓰러져버리자, 그는 얼떨결에 팀의 에이스 롤을 맡으며 평균 18.9득점을 기록했죠. 동생인 딕과 거의 유사한 스타일과 능력을 지녔던 그는 뛰어난 돌파력을 지닌 1:1 득점원이었고, 수비력도 탄탄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인 75-76시즌, 이미 32살의 노장이 된 그는 현저한 기량 저하를 보였고, 공격에서 롤도 줄어들며 평균 득점이 10.9득점으로 급락해 버렸죠.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다시금 버팔로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며 짧은 애틀란타 생활을 마쳤습니다. 한편 그는 그때까지도 11년의 커리어 동안 플레이오프 경험이 전무했는데, 이를 안쓰러워 한 동생 딕이 전년도에 준우승을 한 자신의 팀인 피닉스 선즈로 합류시켰으나, 거짓말처럼 선즈도 플레이오프에 탈락하고 말았죠. 결국 톰은 12, 929경기의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역대 1위의 불운한 기록입니다.




 

10

 

#_5 DeMarre Carroll



 

멤피스, 유타 등지에서 평범한 백업 포워드로 활약하던 드마레 캐롤13-14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25mil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편 오프 시즌에 데빈 해리스의 이적으로 인해 전 시즌 주전 3번이었던 카일 코버가 2번으로 자리를 옮기자, 비어버린 주전 3번 자리는 운 좋게도 캐롤의 몫이 되었죠.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을 맡아 기대 이상으로 분전하며 평균 11.1득점, 5.5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특히 그전까지는 별 볼일 없었던 외곽 슛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3점슛률 28.6% 36.2%로 상승)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블루-칼라 워커인 그는 근성 넘치는 수비와 부지런한 리바운드 가담 등으로 팀 플레이에 기여했으며, 부쩍 늘은 3점슛 덕분에 훌륭한 3 & D 자원으로 자리매김했죠. 14-15시즌에 호크스는 정규 시즌에 60승을 거두며 파란을 일으켰고, 특히 1월 달에는 전승을 거두며 그를 비롯한 호크스의 주전 5명 전원이 동부지구 이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록 다른 주전 4(티그, 코버, 밀샙, 호포드)과 달리 올스타에는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12.6득점 5.3리바운드에 39.5%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호크스는 정규 시즌 대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유독 캐롤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네츠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팀 내 최다 득점(6경기에서 평균 17.5득점)을 올렸으며, 6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넣기도 하며 답답했던 팀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죠. 한편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는 토론토 랩터스로부터 460mil의 특급 계약을 얻어내며 호크스를 떠났고, 현재 랩터스의 주전 포워드로 활약 중입니다.




 

9

 

#_33 Duane Ferrell



 

조지아 공대 출신의 언드래프티 듀안 페럴88-89시즌에 애틀란타 호크스의 로스터에 들었으나 가비지 타임에만 나오다가 시즌 후 방출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는 CBA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다시 10일 계약으로 호크스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기회는 미미했죠. 90-91시즌을 앞두고 그는 오프시즌에 호크스로부터 두 번이나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끝내 세 번째 계약을 따내며 로스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백업 포워드로 확실한 롤을 부여받으며 로테이션 플레이어가 되었죠. 그는 슈팅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준수한 운동능력과 돌파력을 지니고 있었고, 받아먹기 득점에 능했습니다. 또한 터프함과 에너지가 넘치는 좋은 수비수였으며, 체격조건이 좋아 종종 4번 포지션까지 커버하곤 했죠. 한편 91-92시즌에 도미닉 윌킨스가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밖에 출전하지 못하자 그는 윌킨스의 공백을 메우며 많은 시간(평균 24.2)을 뛰면서 평균 12.7득점을 올려주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3-4번 포지션을 두루 백업하며 호크스의 주요 벤치 자원으로 활약했죠. 한편 93-94시즌을 마치고 FA가 된 그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계약하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인디애나, 골든스테이트에서 뛴 그는 99-00시즌을 앞두고 무키 블레이락 트레이드 때 호크스로 복귀했으나, 이내 방출당한 후에 바로 선수 생활을 접었죠. 그는 은퇴 후에 친정팀 호크스에서 선수 육성관리 프로그램의 매니저로 활동했습니다.




 

8

 

#_33 Tyrone Corbin



 

유타 재즈에서 활약하던 베테랑 타이론 코빈94-95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를 통해 애틀란타 호크스에 합류했습니다. 백업 스윙맨으로 한 시즌 간 활약한 그는 오프시즌에 스퍼드 웹과 맞트레이드되어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했죠. 1년 뒤인 96-97시즌, 다시 베테랑 미니멈으로 호크스에 재합류한 그는 동부의 강호인 호크스 라인업에서 당당히 주전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는 블레이락-스미스-레이트너-무톰보로 이어지는 다른 주전들에 비해 이름값이나 비중은 떨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궂은일을 도맡으며 팀을 위해 헌신했죠.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으나 미드-레인지에서 좋은 슛터치를 지니고 있었고, 스윙맨임에도 리바운드에 열심히 경합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부지런한 수비수이자 훌륭한 라커룸 리더였으며, 96-97시즌부터는 3점슛을 새로이 공격 옵션으로 장착해 외곽에서도 활약해 주었죠. 한편 98-99시즌에는 벤치로 밀려나며 팀 내 입지가 줄어든 그는 오프시즌에 호크스를 떠나 새크라멘토로 이적했습니다. 00-01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이후 친정팀 유타로 돌아가 제리 슬로언 밑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일했으며, 슬로언이 사임한 뒤에는 그 후임으로 세 시즌 반 동안 유타의 지휘봉을 잡았죠. 이후 그는 새크라멘토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하다가 이번 오프시즌에 새로이 피닉스 선즈의 코칭 스태프로 합류했습니다.




 

7

 

#_12 / #_11 Jack Coleman

 


 

50-51시즌 로체스터 로얄즈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던 올스타 출신 포워드 잭 콜먼55-56시즌 도중에 팀 동료 잭 맥맨과 함께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호크스 구단은 이 둘을 얻기 위해 55 드래프트에서 전체 1픽으로 뽑은 딕 리케츠를 내놓는 초강수를 두었죠. 경험 많은 두 베테랑 잭은 호크스의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었고, 트레이드 이전에 4할 승률(12-18)에 그쳤던 호크스는 이후 승률이 5(21-21)로 상승했습니다. 본래 파워포워드였던 콜먼은 당시 팀에 엘리트 파워포워드 밥 페팃이 있었기에 주로 스몰포워드 포지션을 소화하며 11.7득점, 8.4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50년대에만 해도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의 역할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워커였으며, 빅맨 임에도 코트 비전이 뛰어나 동료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제공해주곤 했습니다. 56-57시즌에 호크스는 정규 시즌에는 3438패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선전하며 파이널까지 진출해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었죠. 파이널 1차전에서 두 팀은 2차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는데, 경기 막판 콜먼이 결승 슛을 성공시키며 호크스가 125-123으로 신승을 거뒀습니다. 이후 두 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고, 승부는 7차전까지 이어졌죠. 한편 7차전 종료 39초를 남기고 호크스가 101-100으로 1점차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그는 결정적인 속공 레이업 찬스를 잡았으나, 안타깝게도 질풍처럼 내달린 보스턴의 센터 빌 러셀의 체이스-다운 블락에 막혀버렸습니다. 치열한 승부는 1차 연장전으로 접어들었고, 콜먼은 111-113으로 뒤진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 슛을 터뜨리며 승부를 2차 연장으로 끌고 갔죠. 하지만 결국 호크스는 123-125로 패하며 우승의 문턱 앞에서 주저앉아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57-58시즌, 그는 후배 클리프 헤이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벤치에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고, 호크스는 파이널에서 보스턴을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하며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죠. 그리고 어느덧 34살의 노장이 된 그는 생애 두 번째 우승반지를 거머쥐자 미련 없이 은퇴했습니다. 이후 고향인 켄터키에서 목재 회사를 운영한 그는 1997년에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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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 Josh Childress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조쉬 칠드리스04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주전과 벤치를 두루 오가며 평균 10.1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했고, -루키 세컨드 팀에 선발되었죠. 이후 그는 2-3번을 두루 백업하며 팀의 대표적인 식스맨으로 활약했습니다. 고전적인 아프로 헤어스타일이 돋보인 그는 좋은 사이즈와 기럭지를 지닌 장신 스윙맨이었죠. 그의 주요 공격 루트는 돌파와 받아먹기 득점이었는데, 슛 셀렉션이 좋아서 야투 성공률이 제법 높았습니다. 또한 훌륭한 신체 조건과 운동능력 덕분에 포지션 대비 훌륭한 리바운더였고, 수비력도 준수했죠. 다만 외곽슛의 폼이 상당히 어정쩡했으며, 시도 자체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06-07시즌에 발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평균 13득점, 6.2리바운드로 커리어-하이 활약을 펼쳤고, 07-08시즌에는 리그에서 빅맨이 아닌 선수들 중 가장 높은 필드골 성공률(57.1%, 리그 6)을 기록하기도 했죠. 한편 오프시즌에 그는 제한적 FA가 되었는데, 예기치 않게 그리스의 명문 구단인 올림피아코스가 그에게 320mil의 파격적인 오퍼를 던졌습니다. 호크스 구단도 이에 533mil의 오퍼로 맞섰지만, 유럽에서 뛸 경우 세금 혜택이 많아 실질적인 수입으로 따지면 올림피아코스 쪽의 오퍼가 더 우세했죠. 결국 그는 호크스 잔류 대신에 유럽행을 택했는데, 그간 노장 선수가 말년에 유럽으로 진출하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칠드리스처럼 한창 젊은 나이에 유럽행을 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였습니다. 그는 그리스에서 2년을 뛴 뒤 10-11시즌을 앞두고 NBA로 컴백했는데, 샐러리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호크스는 사인--트레이드(534mil의 계약)를 통해 그를 피닉스 선즈로 이적시켰죠. 하지만 컴백 후 그의 기량은 예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 상태였고, 결국 그는 벤치를 전전하다가 11-12시즌을 마치고 사면룰로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리그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했으며, 현재는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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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4 Marvin Williams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신입생 때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팀의 NCAA 토너먼트 우승에 기여한 마빈 윌리엄스1학년만 마치고 05 드래프트에 참가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특급 유망주였던 그는 슈퍼스타급의 포텐셜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확실한 1픽이었던 앤드류 보것에 이어 유력한 2픽 후보로 손꼽혔죠. 마침 당시 2픽은 애틀란타 호크스가 쥐고 있었는데, 호크스는 포인트가드 보강이 간절했고 이미 마빈의 포지션에 다른 유망주들(조쉬 스미스, 조쉬 칠드리스)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대학 최고의 포인트가드인 크리스 폴을 뽑지 않고 마빈을 선택했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주로 벤치에서 뛰며 평균 8.5득점, 4.8리바운드를 기록했고, -루키 세컨드 팀에 선발되었죠. 이후 팀의 붙박이 주전 3번으로 기용되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조금씩 성장해가며 3년차 때인 07-08시즌에는 평균 14.8득점, 5.7리바운드를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4번도 너끈히 소화 가능할 정도로 좋은 사이즈를 지닌 그는 미드-레인지에서 좋은 슛 터치를 지녔고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죠. 다만 슈퍼스타 감이라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1:1 득점력이 떨어지고 적극성이나 대담함도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는 08-09시즌을 마치고 호크스와 537.5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으나 이후로는 별다른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플레이오프와 같은 중요한 무대에선 존재감이 사라지기 일쑤였죠. 결국 이후 평균 두 자리 수 득점에 겨우 턱걸이하며 롤 플레이어 급으로 전락해버린 그는 11-12시즌을 마치고 데빈 해리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유타 재즈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그는 재즈와 샬럿 호네츠에서 뛰면서 나름대로 쓸 만한 수비형 스트레치 4번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번 오프시즌에는 호네츠와 454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4

 

#_27 Joe Caldwell



 

64 드래프트 2픽 출신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조 칼드웰65-66시즌 도중 베테랑 가드 존 반힐과 맞트레이드 되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2-3번을 두루 오가며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한 그는 67-68시즌을 앞두고 감독을 겸하던 노장 리치 게린이 선수로서 은퇴함에 따라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죠. 어마어마한 탄력 때문에 포고 조(Pogo Joe, 포고는 일명 스카이콩콩으로 알려진 놀이기구)” 또는 점핑 조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는 당대 보기 드문 호쾌한 슬램덩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또한 그는 운동능력과 열정을 두루 겸비한 강력한 락-다운 디펜더였으며, 외곽 슈팅능력도 준수한 편이었죠. 다만 슛이 좋았음에도 희한하게 자유투는 젬병이었습니다. (통산 자유투 성공률 57.2%) 호크스가 애틀란타로 연고지를 옮긴 68-69시즌, 그는 평균 15.8득점을 기록하며 동료인 루 허드슨과 함께 나란히 생애 첫 올스타에 등극했죠. 이듬해인 69-70시즌에 그는 전년도보다 향상된 득점력(평균 21.1득점)을 과시하며 2년 연속 올스타에 올랐고,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도 뽑혔습니다.

 

한편 당시 연봉이 6만 달러에 불과했던 그는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내심 올스타 급 대우를 받길 원했지만, 호크스 구단은 오히려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슈퍼 루키 피트 마라비치에게 역대 신인 최고 대우(5년간 총 1.9mil)로 거액을 안겨주었죠. 그러자 구단이 자신에게 줄 돈을 루키에게 퍼준 데 분노한 그는 아예 NBA를 떠나 경쟁 리그인 ABA로 진출해버렸습니다. ABA의 캐롤라이나 쿠가(Carolina Cougars)51.1mil의 계약을 체결하며 백만장자의 꿈을 이룬 그는 ABA에서도 여전히 올스타 급의 최고 수비수로 활약했는데, 당시 ABA의 최고 스윙맨이던 줄리어스 어빙이 자신을 가장 잘 막는 선수로 지목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는 계약 시 옵션이었던 연금 보장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벌이다가 끝내는 74-75시즌 도중에 부당한 징계를 당해 계약이 파기되고 말았고, 구단과 한통속이던 ABA 사무국은 한 술 더 떠서 그를 아예 ABA에서 영구 퇴출시켜버렸습니다. 이후 1976년에 ABANBA에 합병된 후로도 그의 징계는 풀리지 않아, 그는 끝내 강제로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죠. 이후 그는 잃어버린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20년이 넘게 험난하고 기나긴 법정 투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는 2003년에 자서전인 “Banned from basketball”을 펴내어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대중들에게 알렸으며, 2012년에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3

 

#_22 John Drew


 

무명의 가드너-웹 대학 출신의 존 드류74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25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오프시즌에 피트 마라비치, 월트 벨라미 등 주축 선수들이 잇달아 이적한 뒤여서 루키인 그에게도 제법 많은 출장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죠. 루키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그는 평균 18.5득점, 10.7리바운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발되었으며, 6-6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그 해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공격 리바운드(평균 4.6)를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75-76시즌, 그는 전천후 식스맨 롤을 맡으며 평균 21.6득점, 8.6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죠. 이후로도 그는 평균 22~24득점 정도를 올려주며 에이스 스코어러로서 제 몫을 다해 주었습니다. 탁월한 운동능력을 보유한 그는 공격 본능에 충실한 타고난 득점 기계였죠. 그는 미드-레인지에서 준수한 슈터였으며, 골밑으로 계속 달려들며 파울을 얻어내는 데 도사였습니다. 또한 신장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고 특히 공격 리바운드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다만 커리어 중반 이후로는 리바운드에 대한 열정이 많이 줄었죠. 그는 양날의 검처럼 단점도 많았는데, 득점 욕심이 너무 과한 이기적인 볼-호그이며 화려한 공격력에 비해 형편없는 수비수였습니다. 또한 잦은 파울 트러블로 인해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했으며, 역대 한 경기 최다 턴오버(14) 기록을 가지고 있는 등 실책도 잦은 편이었죠.

 

79-80시즌에 그는 평균 19.5득점을 올리며 다소 하향세를 보였으나, 팬 투표로 올스타에 뽑히는 등 여전히 팀의 간판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코카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 뒤로 그의 커리어는 점차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한편 82 드래프트 때 전체 3번으로 유타 재즈에 뽑힌 조지아 대학 출신의 도미닉 윌킨스가 재즈로의 합류를 거부하는 해프닝이 일어났고, 재즈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놔야 했습니다. 결국 조지아 주를 연고로 하는 호크스가 드류와 프리먼 윌리엄스를 재즈에 내주며 지역 스타 윌킨스의 지명권을 가져왔죠. 트레이드 된 후 더욱 코카인에 빠진 그는 급기야 약물 재활로 82-83시즌의 절반을 날려야 했고, 이듬해 겨우 복귀했으나 그만 다시 코카인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86년에 약물 관련 규정 위반으로 리그로부터 영구 추방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죠. 80년대에 리그는 스타 선수들의 마약 문제로 큰 홍역을 겪었는데, 드류를 비롯해 패스트에디 존슨,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등이 마약으로 리그에서 영구 추방되며 커리어를 망쳤습니다. 현재 그는 과거의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한 채, 휴스턴 시에서 조용하게 택시 기사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2

 

#_16 Cliff Hagan



 

클리프 헤이건은 켄터키 대학을 졸업하고 53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켄터키 대학이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되어 1년 자격 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대학 4학년 때는 뛰지 못했던 그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동기생인 프랭크 램지 등과 함께 졸업생 신분으로 1년 더 켄터키에서 뛰었고, 이후 곧바로 공군에 입대했죠. 한편 56 드래프트에서 전체 2픽을 쥔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는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빌 러셀을 지명할 계획이었는데, 마침 러셀을 노리던 보스턴 셀틱스가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올스타 빅맨 에드 마콜리를 카드로 제시했습니다. 당시 NBA는 흥행이 잘 되지 않던 때라 호크스 입장에서는 티켓 파워를 지닌 지역 출신 스타의 존재가 절실했고, 결국 마콜리에다가 3년 전 보스턴이 지명했던 헤이건에 대한 권리까지 덤으로 받는 조건으로 2픽을 내줬죠. 군 복무를 마치고 늦깎이로 56-57시즌에 데뷔한 헤이건은 정규 시즌에는 벤치를 전전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플레이오프에서 들어서 연이은 깜짝 활약을 보이며 팀의 파이널 진출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파이널에서 호크스는 얄궂게도 러셀 트레이드 맞상대인 보스턴과 맞붙었는데, 2-3으로 시리즈 패배 위기에 몰린 6차전에서 헤이건이 결승 팁-인을 성공시키며 시리즈를 극적으로 7차전까지 끌고 갔죠. 호크스는 아쉽게도 7차전에서 한 끝 차이로 패배하며 우승을 목전에서 놓쳤지만,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평균 17득점, 11.2리바운드로 대활약한 헤이건은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이듬해인 57-58시즌, 그는 전년도 플레이오프의 여세를 몰아 팀의 주전 3번으로 확고히 자리 잡으며 평균 19.9득점, 10.1리바운드를 올려주었고, 올스타 및 올-NBA 세컨드 팀에도 선발되었죠.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팀 내 최다인 평균 27.7득점을 올려주며 호크스가 파이널 리매치에서 보스턴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신장이 6-4에 불과했으나 탄탄한 웨이트와 걸출한 운동능력, 민첩성, 기술을 바탕으로 주저 없이 골밑을 파고들며 더 큰 선수들과 맞섰죠. 그는 작은 키로 인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높은 포물선의 훅 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는데, 심지어 그의 훅 슛 궤적은 빌 러셀이나 윌트 체임벌린의 블록슛까지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절묘했습니다. 또한 그는 한창 때에는 그 키로 평균 두 자릿 수 리바운드를 잡아낼 정도로 투지 넘치는 리바운더였고, 발군의 패싱 센스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죠. 그는 밥 페팃과 함께 당대 최강의 포워드 콤비를 이루며 50년대 말~60년대 초 호크스를 서부 최강자로 이끌었습니다.

 

58-59시즌에 그는 평균 23.7득점, 10.9리바운드로 올-NBA 세컨드 팀에 2년 연속 선발되었고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8.5득점(1), 12리바운드로 활약했으나, 아쉽게도 팀은 서부 디비전 결승에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에게 무릎을 꿇으며 리핏에 실패했죠. 59-60시즌에는 그(24.8득점-10.7리바운드)와 페팃(26.1득점-17리바운드), 클라이드 로벨럿(20.8득점-10.6리바운드) 등 호크스의 프론트 코트 3인방이 모두 20-10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두 시즌 더 평균 22득점 이상을 기록하였고, 61-62시즌까지는 5년 연속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하였죠. 그런데 62-63시즌 이후로 그는 종종 식스맨으로 기용되며 팀 내에서 예전만큼의 비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벤치를 오가며 들쭉날쭉하게 20분대로 출장하면서도 군말 없이 평균 13~18득점 정도를 꾸준히 올려주었죠. 한편 그는 65-66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는데, 1967년에 ABA가 새로 출범하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ABA의 달라스 쉐퍼럴스(Dallas Chaparrals, 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전신)에서 제2의 농구 인생을 시작한 그는 세 시즌 동안 감독 겸 선수로 활약하며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죠. 이후 그는 모교인 켄터키 대학에서 프런트로 일했으며, 1978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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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1 Dominique Wilkins



 

도미닉 윌킨스는 조지아 대학 시절부터 호쾌한 슬램덩크로 숱한 명장면들을 연출하며 이른바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Human Highlight Film)”이란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대학을 3학년만 마치고 82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전체 3번으로 유타 재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외진 곳에 위치한 약체 팀인 재즈에서 뛰는 것을 거부했죠. 결국 재즈는 눈물을 머금고 애틀란타 호크스에 존 드류+프리먼 윌리엄스+현금을 받고 그를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정인 조지아 주로 돌아온 그는 루키 시즌부터 주전 3번 자리를 도맡으며 평균 17.5득점을 기록, -루키 퍼스트팀에 뽑혔죠.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그는 2년차 때 평균 20득점을 돌파했고(21.6득점), 3년차 때인 84-85시즌에는 평균 27.4득점을 올려주며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 정상급의 공격수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또한 85년도 슬램덩크 컨테스트 결승전에서는 마이클 조던을 누르고 덩크왕에 등극하기도 했죠.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탄력을 지녔던 그는 특히 림을 뒤흔드는 윈드-밀 덩크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덩크만 잘 한 게 아니라 탁월한 1:1 기술을 두루 갖춘 최정상급 공격수였죠. 그는 정확한 중거리 슛을 주 무기로 게임을 풀어나갔으며, 스핀-무브, --언더 등 다채로운 기술들로 골밑을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속공 때마다 빠른 스피드를 뽐내며 피니셔로서 위력을 발휘했고, 포지션 대비 뛰어난 리바운더였죠. 다만 화려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에는 다소 의문부호가 붙었고, 코트 비전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는 85-86시즌에 평균 30.3득점을 올리며 득점왕에 올랐고, 생애 첫 올스타 선발, -NBA 퍼스트 팀 등극 등의 영광을 누리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또한 대 뉴저지 네츠 전에서는 무려 57득점을 기록하며 밥 페팃, 루 허드슨과 함께 프랜차이즈 1경기 최다 득점 타이 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이듬해인 86-87시즌(평균 29득점)87-88시즌(평균 30.7득점)에도 그는 정상급 득점력을 뽐냈으나, 마이클 조던의 존재 때문에 2년 연속 득점 2위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88년 슬램덩크 컨테스트 결승전에서 3년 만에 조던과 다시 맞붙어 멋진 승부를 펼쳤지만 아쉽게도 무릎을 꿇고 말았죠. 한편 88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호크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어 치열한 접전을 펼쳤는데, 특히 두 팀의 에이스인 윌킨스와 래리 버드의 맞대결이 시리즈의 백미였습니다. 승부가 갈린 최종 7차전에서 윌킨스는 무려 47득점을 퍼부으며 보스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호크스는 116-118, 1골 차로 보스턴에게 패배하고 말았죠. 이후 세 시즌 동안 그는 평균 득점이 26득점 내외로 약간 하락했으나, 여전히 정상급 공격수로서 호크스를 꾸준히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90년도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는 케니 스미스를 누르고 생애 두 번째 덩크왕에 등극하기도 했죠. 한편 그간 큰 부상이 없이 강골이었던 그는 91-92시즌 도중에 그만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92-93시즌에 건강하게 복귀한 그는 평균 29.9득점(조던에 이어 리그 2)으로 오히려 더 향상된 득점력을 뽐내며 관록을 과시했죠.

 

93-94시즌 들어 그는 이미 33살의 노장이 되었고, 종전에 맺은 5년 계약도 어느덧 마지막 해를 맞았습니다. 호크스 프런트 및 레니 윌킨스 감독은 시즌을 마치고 그와 다시 거액의 장기계약을 맺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결국 비즈니스를 앞세우며 충격적인 선택을 하고 말죠. 호크스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팀의 간판스타인 그를 1라운드 픽과 묶어서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대니 매닝을 데려왔습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허무하게 팔아버린 이 결정에 실망하고 분노한 호크스 팬들이 이때 등을 많이 돌렸죠. 호크스 구단은 하향세를 보이던 노장 윌킨스를 과감히 정리하고 좀 더 젊고 유망한 매닝을 그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으나, 오프시즌에 매닝이 호크스와 계약하지 않고 피닉스 선즈로 이적해버리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윌킨스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유럽으로 넘어가 그리스의 명문 구단 파나시나이코스에서 뛰었죠. 아직까지 리그의 간판스타였던 그가 유럽으로 진출한 것은 당시 제법 파장을 일으켰고, 얼마 후 리그에서 위대한 50을 발표했을 때 그가 명단에 빠진 것은 유럽행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설도 돌았습니다. 이후 그는 샌안토니오, 올란도 등지에서 뛰다가 98-99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죠. 현재 친정팀 호크스에서 프런트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는 호크스에서 12시즌을 뛰는 동안 9번의 올스타, 6번의 올-NBA (퍼스트 1, 세컨드 4, 서드 1*)을 역임했으며, 총 득점, 출장 경기, 출전 시간 등 여러 부문에서 프랜차이즈 역대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의 등번호 #212001년에 호크스에서 영구 결번되었으며, 2006년에는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죠. 한편 그의 동생 제럴드 윌킨스 및 조카 데미언 윌킨스도 각각 NBA에서 뛴 바 있습니다.

 

L.A 클리퍼스에서 시즌을 마친 93-94시즌의 서드팀 선발은 제외

  




종합 랭킹





  

Epilogue

 

스몰포워드 부문의 1위야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이고, 그 아래 2, 3위의 선정도 무난한 수순이었습니다. 다만 지난번 슈팅가드 편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슈팅가드 1위에 랭크된 루 허드슨이 본래는 스몰포워드 2위 자리에 랭크되어 있다가 막판에 포지션을 옮겼죠. 그리고 슈팅가드 5위에 랭크되었던 조 칼드웰이 스몰포워드로 옮기면서 4위로 한 계단 올랐습니다. 칼드웰 역시 2, 3번을 두루 오가는 선수인지라 허드슨과 마찬가지로 포지션 확정이 어려웠는데, 처음에는 2번으로 분류했다가 추후 포지션 재점검 과정에서 과거의 신문기사, 사설 등을 통해 그를 포워드로 분류했던 사례들을 몇 건 수집하게 되었죠.

 

그런데 5위 이하부터는 진짜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셨을 겁니다. 애틀 팬들에겐 그리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애증의 마빈 윌리엄스가 5위라니... 그나마 마빈이 애틀에서 내세울 거라곤 오랫동안 뛰면서 누적을 많이 쌓은 것 정도밖에 없는데, 스몰포워드의 전체 뎁쓰가 워낙에 안습이다보니 마빈이 누적빨로 무려 Top5 진입이 가능했던 거죠. 타 포지션에 비해 스몰포워드의 뎁쓰가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윌킨스, 헤이건, 드류로 이어지는 스포 3인방의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종 2번으로 분류되었지만 허드슨도 그 긴 커리어 중에서 절반가량을 3번으로 뛰었으니... 이렇듯 몇몇 엘리트 플레이어들이 오랫동안 주전 자리를 꿰차며 플레잉 타임을 독식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이 활약할 기회가 없어져 버린거죠. (윌킨스 등 3인방과 허드슨까지 주전급으로 뛴 기간을 합쳐보면 거의 32년에 육박합니다. 70년 역사에서 거의 절반가량의 기간을 저 네 분이 해 드신거죠.) 예전에 보스턴 셀틱스 센터 편에서 빌 러셀, 데이브 코웬스, 로버트 패리쉬, 에드 마콜리, 이 넷이서 다 해먹는 바람에 켄드릭 퍼킨스가 Top5로 뽑혔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초기 기획 때에는 3번으로 분류되었다가 재정리를 거쳐 포지션을 옮긴 선수들이 더 있어서 3번의 뎁쓰를 더더욱 얇게 만들었는데요, 슈팅가드 11위인 다이크 에들먼은 본래 스몰포워드 6위에 랭크되었었고,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존 브라운이란 선수도 스몰포워드로는 메이저 랭킹에 들었지만 파워포워드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순위가 뚝 떨어져야 했죠. (브라운 얘기는 나중에 파워포워드 편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반면에 허드슨이 2번으로 확정됨에 따라 3번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예가 칼드웰 말고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스포 11위인 톰 밴 아스데일입니다. 밴 아스데일은 2번으로 분류되었을 때에는 메이저도 아닌 15위에 랭크되었으나, 3번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메이저로 진입한 케이스죠. 그리고 고작 1년 반짝했던 글렌 로빈슨, 스티븐 잭슨같은 선수들이 마이너 최상위권에 랭크된 것만 보더라도, 유구한 팀 역사에서 손꼽아볼만한 스포들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몰포워드 랭킹의 미래는 앞으로도 그리 밝지 않죠. 현재 18위인 켄트 베이즈모어는 거대 계약 이후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이지만 어쨌든 계속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기에 메이저로 입성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겁니다. 그런데 카일 코버의 이적, 타보 세폴로샤의 주전 기용 등으로 인해 그의 포지션이 앞으로 2번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제법 되죠. 사실 원래가 메인 포지션이 2번인 선수를 드마레 캐롤의 공백을 메운다고 땜빵 3번으로 출전시킨 거였기도 하니... 그렇게 된다면 뎁쓰 창창한 슈팅가드 랭킹에 켄트가 비집고 들어가게 되면서 안 그래도 휑한 스포 랭킹은 더더욱 휑해지게 될 겁니다. 그나마 타보가 팀의 수비 중추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긴 한데, 그도 이번 시즌이 만기라 오프 시즌에 어찌 될 진 모르죠. (그래도 워낙에 수비에서 중요한 롤을 수행중이라 웬만하면 재계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호크스는 토린 프린스, 디안드레 벰브리 같은 어린 스포 자원들을 여럿 드래프트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루키 시즌에 이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만 여실히 보여주고 있죠. 프린스, 벰브리같은 유망주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해가느냐에 따라 앞으로 스포 뎁쓰가 더더욱 안습이 되느냐, 아니면 조금 나아지느냐가 갈릴 듯 합니다. 3년 후에는 부디 이들이 크게 성장하여 본 랭킹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주길 바래보죠.

 

경악에 가까운 이번 스포 편 때문에 몇몇 호크스 분들의 정신 건강에 해나 끼치진 않았나 내심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뭐 이것이 명백한 현실이니 어쩌겠습니까? 그저 앞으로 마빈이를 Top5에서 끌어내릴 우수한 스타 스몰포워드가 조만간 나타나주길 기원할 수 밖에...

 

이제 어느덧 연재도 반환점을 돌았네요. 그럼 다음 주 초에는 파워포워드 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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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1-20 12:43:57

SF 1등은 너무나 당연스럽내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2017-01-20 13:35:53

역시 휴먼하이라이트필름..

2017-01-20 20:48:17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
현재 평가받고 있는것보다 훨씬 좋은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호쾌한덩크는 조던의 샤프함과는 다른 매력이죠.

WR
2017-01-23 12:42:37

윈드밀 덩크를 그렇게 멋드러지게 찍는 선수는 그 빼곤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봅니다.

2017-01-20 23:25:17

파워포워드는 밥 페팃, 케빈 윌리스, 폴 밀샙, 조쉬 스미스, 크리스찬 레이트너 등이 떠오르네요

Updated at 2017-01-23 02:09:40

최근 모습은 유독 좋은 스포보다는 그냥 알짜배기? 유틸리티(혹은 트위너?!)에서 연이 많았던 홐스같습니다. 보고싶은 친구들 다 보니 현자타임이 오네요 

WR
2017-01-23 12:46:32

도미닉 윌킨스 이후부터 올스타급 스포가 배출되지 못한 게 참 아쉽죠. 마빈이가 어떻게 보면 그만큼의 기대를 걸고 뽑은 선수인데... 최소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루디 게이 만큼의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2017-01-26 22:35:43

팀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3번에 있는데 반해 뎁쓰는 모든 포지션 중에서 최악이니 참...


마빈만 헤이건이나 드류 정도로만 성장했더라도 리빌딩이 훨씬 앞당겨졌을거고 팀 역사도 바뀌었을텐데 참 아쉽습니다.

WR
2017-01-26 22:47:46

사실 뎁쓰 문제는 허드슨 포함 네 양반이서 너무 독자적으로 해먹은게 커서 그렇긴 한데, 윌킨스의 저주인지 그를 그렇게 보내고나서 유독 스몰포워드 복이 없기도 하네요. 마빈은 너무 아쉽고 차라리 3픽이 걸렸음 맘편하게 폴 뽑았을텐데란 아쉬운 가정도 해보게 되네요.

2017-01-26 22:58:59

제 생각에는 당시 마빈을 키울 환경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조쉬 칠더레스, 조쉬 스미스 둘 다 3번이었는데 거기다가 마빈까지 뽑았으니....


게다가 조 존슨도 있어서 지금의 위긴스처럼 밀어주기도 힘든 상황이었죠.


실링은 높았으나 루키 때부터 롤플레이어처럼만 플레이하다보니 점차 그렇게 변해간 거 같습니다.


오히려 다른 팀에 가서 공도 좀 많이 만지고 롤도 많이 받았으면 애틀란타에서보다는 더 나은 커리어를 쌓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도 3번이 참 애매하죠. 베이즈모어도 사이즈는 2번이고 먹튀의 위험성이 보이는 중이고요. 타보 세폴로샤가 어느 정도 커버는 해주고 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 흔한 스코어러 3번이 애틀란타에는 왜 그렇게 안나오는 것인지...

WR
2017-01-26 23:20:48

근데 전 마빈에게 실망스러웠던 게 스킬셋도 별로고 플레이도 딱 3, 4번 트위너라는 느낌밖에 안들었습니다. 사이즈랑 미들슛 터치는 좋긴한데... 고딩때 활약상이 좀 거품이란 생각을 지울수 없더군요. 같은 트위너라도 앤트완 재이미슨처럼 끝없이 득점해보려는 의지도 부족하고... 애틀 스카우터들이 너무 막연하게 접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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