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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열했던 플레이오프 시즌에 이룬 불멸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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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 00:49:18

1987년은 레이커스와 매직 존슨에게 최고의 해였습니다. 레이커스는 정규시즌 65승으로 체임벌린 시대 이후 프랜차이즈 최다승을 거두며 NBA 파이널에서 보스턴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매직 존슨은 정규시즌 MVP와 파이널 MVP를 석권했습니다. 매직 존슨은 지난 수년간 전문가들이 꼽은 리그 최고의 선수였으나 지난해까지 일반 팬들에게 LA 레이커스의 간판스타는 여전히 카림 압둘 자바였고, 리그 최고의 선수는 3년 연속 MVP를 거머쥔 래리 버드였습니다. 매직 존슨에게 1987년은 자신이 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LA 레이커스의 간판스타임을 입증한 해였습니다. NBA 최고선수는 매직 존슨이라는 비밀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해가 1987년이었습니다.


철인 같았던 카림 압둘 자바는 1987년이 되자 체력이 약해졌고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레이커스는 트레이드 마감일을 앞두고 스퍼스의 센터 마이클 탐슨(Mychal Thompson)을 영입했습니다. 클레이 탐슨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탐슨은 1978년도 드래프트 넘버1픽 출신의 스타플레이어입니다. 탐슨의 영입으로 인해 레이커스는 카림(1969), 탐슨(1978), 매직(1979), 워디(1982) 네 명의 드래프트 넘버1픽 출신을 동시에 보유한 전무후무한 팀이 되었습니다.


1987년 레이커스 우승 환영식에서 팻 라일리 감독은 구름같이 모인 팬들에게 본인은 레이커스가 내년에도 또 우승할 것을 보장(guarantee)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발언 후 약간 코믹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라일리 감독이 레이커스에서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그런 장담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87~88 시즌 레이커스의 전력은 강하고 안정적이었습니다. 카림 압둘 자바의 기량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게 경기당 25분으로 출전시간을 배려하면 여전히 높은 생산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나머지 20여분은 마이클 탐슨이 거뜬히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슈팅가드 바이런 스캇은 기량이 일취월장하여 팀 득점의 제1옵션으로 성장했고, 매직, 워디와 함께 공격의 삼각편대를 이뤘습니다.


정규시즌에서 레이커스는 62승을 거둬 57승을 올린 셀틱스를 여유롭게 제치고 시즌 최고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서부 컨퍼런스에서 레이커스는 부동의 원탑이었고, 54승의 덴버와 53승의 포틀랜드, 댈러스가 그 다음 티어를 형성했습니다. 동부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보스턴과 디트로이트가 파이널 진출을 다툴 것으로 모두들 예상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1988년 플레이오프는 예상을 깨고 접전과 이변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즌 47승을 거둬 뉴올리언스 시절부터 이어오던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을 경신한 유타 재즈가 포틀랜드에 업셋을 거두고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거구의 감독 프랭크 레이든은 만년 하위팀이던 유타 재즈를 7년 동안 이끌면서 다섯 번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87년에 이어 88년에도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었습니다. 프랭크 레이든은 감독 자리를 걸고 장담하건데 유타 재즈가 레이커스를 꺾을 거라고 호언했습니다.



1차전에서 패배한 유타는 레이든 감독의 호언대로 2차전과 3차전에서 연달아 레이커스를 꺾었습니다. 레이커스와 팻 라일리는 2년 전에 2라운드에서 휴스턴의 랄프 샘슨에게 버저비터를 맞고 탈락한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타에서 치러진 4차전에서 심기일전한 레이커스는 전반에는 뒤졌지만 막판에 뒷심을 발휘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습니다. 다시 레이커스의 잉글우드 포럼으로 돌아와서 치러진 5차전은 종료 직전까지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 이어졌습니다. 유타는 칼 말론의 슛이 들어가서 종료 40초 전까지 리드했지만 109-109 동점인 상황에서 종료 5초전에 마이클 쿠퍼에게 결승 외곽슛을 허용해서 결국 109-111로 패했습니다.


홈으로 돌아온 유타는 6차전에서 레이커스에 분풀이 하듯이 맹폭을 가하여 무려 28점 차이의 대승을 거뒀습니다. 다시 포럼으로 돌아와서 치러진 운명의 7차전에서 레이커스는 말론-스탁턴 콤비에게 무방비로 당했지만 바이런 스캇-매직 존슨-제임스 워디 트리오의 맹활약에 힘입어 승리를 거뒀습니다. 유타의 프랭크 레이든은 약속대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제리 슬론이 이어받았습니다. 팀은 패했지만 유타의 듀오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7차전에서 칼 말론은 31득점(14-21 야투)에 15리바운드를 거뒀고, 스탁턴은 29득점(10-15 야투, 8-8 자유투)에 20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했습니다.


가까스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른 레이커스는  댈러스 매브릭스와 결승 진출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댈러스도 레이커스와 마차가지로 포인트가드-슈팅가드-스몰포워드의 트리오가 맹위를 떨치는 균형잡힌 팀이었습니다. 댈러스는 매직 존슨의 절친이자 81년도 드래프트 넘버1픽인 마크 어과이어(Mark Aguirre)가 공격을 이끌었고, 올스타에 단골로 뽑히는 슈팅가드 롤랜도 블랙맨과 리고 최고의 수비형 포인트가드 데릭 하퍼가 뒤를 받치며 공격을 주도하는 팀이었습니다. 레이커스는 댈러스와도 7차전까지 가는 사투를 벌인 끝에 어렵게 승리하여 2연패를 노리게 되었습니다.



레이커스와 결승에서 맞붙게 되는 동부 챔피언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입니다. 피스톤스는 1라운드에서 워싱턴 불리츠와 최종전까지 가는 사투를 벌였고, 2라운드에서는 MVP 조던이 이끄는 불스에 4-1로 승리하여 컨퍼런스 결승에서 2년 연속 보스턴과 대결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전해에 아이제이아 토머스의 패스 미스로 인한 통한의 패배를 설욕하며 4-2로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팀 역사상 최초로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피스톤스는 1957년에 디트로이트로 프렌차이즈를 옮긴 이후 매년 중하위권에 머물던 팀이었는데, 1981년 드래프트 넘버2픽인 아이제이아 토머스를 중심으로 매년 멤버를 보강하여 전해인 86~87 시즌부터 강팀으로 부각되었습니다. 86~87 시즌 디트로이트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인 애드리언 댄틀리를 영입했고, 드래트프를 통해 수비의 핵심인 데니스 로드맨과 존 샐리를 얻었습니다. 그에 따라 빌 레임비어-존 샐리-데니스 로드맨-조 듀마스로 이어지는 수비라인은 거친 매너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는 리그 최강이었고, 토머스와 댄틀리는 공격의 핵심이었습니다. 레임비어와 듀마스는 언제든지 공격에서 한 몫을 할 수 있었고, 식스맨인 비니 존슨은 종종 리그 최고의 폭발력을 보여줬습니다. 88년에는 페이드 어웨이 슛으로 유명한 공격형 센터 제임스 에드워드가 피스톤스에 가세했습니다.


레이커스의 홈코트인 잉글우드 포럼에서 열린 파이널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의 스몰 포워드 애드리언 댄틀리는 그동안의 설움을 씻어버리는 듯 레이커스를 맹폭했습니다. 댄틀리는 NBA에서 가장 저평가되던 불운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6-5의 언더사이즈 포워드로 페인트존 근처에서 페이크와 퍼스트스텝은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유타에서 보낸 7시즌의 득점은 28.0, 30.7, 30.3, 30.7, 30.6, 26.6, 29.8이고 평균 야투율은 56%가 넘었습니다. 페인트존에서 정상적으로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그 시기에 뛰었던 선수 중에서 자유투 시도 회수와 성공 회수 모두 가장 많았습니다. 최전성기인 유타와 디트로이트의 9시즌의 TS는 63%가 넘습니다. 불행하게 닥터 J, 래리 버드와 같은 포지션에 동시대였고, 팀이 중위권인데다 캐릭터에 스타성이 적어서 놀라운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 선수였습니다. 적어도 공격력과 공격의 효율성에서는 꾸준히 닥터 J와 버드에 앞섰던 선수였습니다. 댄틀리는 레이커스와 파이널 1차전에서 43분을 뛰면서 16개의 슛을 던져 그중에서 무려 14개를 성공시키며 34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차전을 내준 레이커스는 매직-스캇-워디 트리오의 맹활약에 힘입어 2차전과 원정 3차전에서 승리했습니다. 1-2로 뒤진 상황에서 디트로이트 홈에서 열린 4차전과 5차전에서 피스톤스는 아이제이아 토머스가 부진했지만 공격에서 댄틀리의 맹활약과 그들의 장기인 수비 덕분에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함으로써 3-2로 시리즈를 앞서며 우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경기는 레이커스의 홈코트인 잉글우드 포럼에서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애드리언 댄틀리의 맹활약에 힘입어 3승을 먼저 거뒀지만 그 경기마다 아이제이아 토머스가 터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6차전이나 7차전에서 댄틀리와 토머스가 동시에 터진다면 막강한 수비력을 지닌 디트로이트의 우승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레이커스의 홈에서 열린 6차전은 NBA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승부였습니다. 그 경기에서는 댄틀리의 슛감각이 좋지 않던 대신에 아이제이아 토머스가 폭발했습니다. 레이커스는 매직-스캇-워디의 삼각편대가 여전히 공격을 이끌던 반면에 피스톤스는 토머스 혼자서 레이커스와 대적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전반에 3점을 뒤지던 피스톤스는 3쿼터에서 토머스가 혼자 14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하던 중 속공 챈스에서 마이클 쿠퍼의 발을 잘못 디뎌 발목 부상(sprained ankle)을 입었습니다. 토머스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코트에서 뒹굴었고, 치료를 위해 경기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토머스는 3쿼터 종료 3분전에 코트로 복귀해서 11득점을 추가로 올렸습니다. 토머스가 3쿼터에 득점한 25점은 아직까지 NBA 파이널 단일쿼더 최다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는 토머스의 3쿼터 활약을 1분가량으로 압축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c17tGKO40rs


디트로이트는 토머스의 놀라운 활약에 힘입어 4쿼터에서 레이커스에 역전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경기종료 1분전 듀마스가 두 개의 자유투를 성공시켜 102-99로 앞섰습니다. 레이커스는 바이런 스캇의 4미터 점프슛으로 102-101, 1점차로 따라붙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토머스가 27초를 남기고 왼쪽 사이드에서 돌파 후 슛을 날렸지만 림을 맞고 나왔고 워디가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 레이커스의 마지막 공격에서 바이런 스캇의 패스를 받은 카림이 14초를 남기고 스카이 훅슛을 날렸지만 빗나갔습니다. 그때 주심이 카림을 막던 빌 레임비어의 반칙을 선언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정상적인 수비 같았으나 심판은 왼쪽 어깨가 닿았다는 이유로 파울을 선언해 카림에게 두 개의 자유투를 줬습니다. 아래에 해당 장면의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youtu.be/R76Uack9TmQ

레임비어는 6차전에서 39분동안 0-5의 야투로 2득점에 그치는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이고 퇴장 당했습니다. 카림이 두 개의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킴으로 인해 레이커스는 103-102로 6차전을 승리했습니다.


이틀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7차전은 제임스 워디의 독무대였습니다. 워디는 36득점(15-22, 야투율 68.2%), 11리바운드에 16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7차전은 워디의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첫 번째 트리플 더블 경기였습니다. 피스톤스는 경기종료 47초를 남기고 100-103으로 뒤진 상태에서 레이커스에게 공격권을 내줬으나 존 샐리가 워디의 레이업을 블락한 후 데니스 로드맨이 오픈 챈스에서 슛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로드맨의 슛은 빗나갔고 피스톤스는 연달아 자유투를 내줘 105-108로 7차전을 패했습니다.


경기 후 로드맨은 펑펑 울면서 자신이 왜 슈터로 태어나지 못했는지 한스럽다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토머스는 부상의 여파로 활약이 미진했고, 댄틀리도 두 경기 연속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댄틀리는 7차전을 통틀어 평균득점 21.3에 야투율 57.3%를 기록했습니다. 댄틀리의 기록은 제임스 워디의 평균득점 22.0, 야투율 49.2%보다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팀의 패배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제임스 워디는 파이널 MVP를 가져갔고, 레이커스는 컨퍼런스 준결승부터 내리 세 번의 시리즈를 4-3으로 이겨 1969년 셀틱스 이후 백투백 우승을 한 첫 번째 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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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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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8-25 17:00:36

아...로드맨이 왜 슈터로 못 태어났는지 한스럽다는 거는 정말 짠하네요.....자신에게 왜 상황을 바꿨을 힘이 재능이 없는 지 한스럽다는 건데 로드맨 다른 건 몰라도 저거 하나만큼은 정말 짠하네요.....

WR
2016-08-25 16:32:55

오늘 로드맨에 대한 글을 써서 올리겠습니다.

2016-08-25 04:19:31

아이재아 토마스 완전 신들렸네요

WR
2016-08-25 16:33:11

정말 그랬습니다.

2016-08-25 07:12:53

베일리님 덕분에 80~90년대의 nba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출근길이 심심하지 않아서 더욱 좋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2016-08-25 16:33:28

고맙습니다.

2016-08-25 10:32:21

디트로이트가 당시 시즌 원정 5할 안된것도 약간 아쉬웠었죠.. 78-79시즌 이후 우승팀들 조건중 하나가 원정 5할승률이었는데 그걸 실패했었으니까요..

WR
2016-08-25 16:35:00

신기하게도 90년대부터 그게 공식 조건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휴스턴이 두번째 우승을 노릴 때도 원정경기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가능했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였지요.

2016-08-26 19:29:06

울림이 있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2016-08-27 12:08:45

우와..진짜 특별한 기교나 표현이 없이도 너무 흡입력있고 할아버지한테 옛날 이야기 듣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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