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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야오밍 - 나의 루키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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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8-16 15:12:31

나는 22살 때 데뷔를 앞두고 휴스턴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


스티브 프랜치스는 그렇지 않았다.


스티브는 휴스턴 구장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사람이었다. 라커로 걸어와서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하이파이브였다. 자기의 온 몸을 전부 실어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같았다. 스티브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내 손은 얼얼해져버렸다.


그게 벌써 14년 전 일이다. 신인시절에는 모든 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첫 몇 주 동안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항상 첫 인상은 잊을 수 없는 법이다. 하루는 코치가 나의 라커를 보여주었다. 내 이름이 적힌 져지를 보니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인상 싶었던 이유는 그 져지가 내 이름이 적힌 첫 져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큼직한 일들도 많았지만 유독 자잘했던 일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른 예를 들자면, 그 당시에 사람들은 나를 ‘야오’ 라고 불렀었다. 사람들은 그게 나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따른다. 내 중국 친구들은 나를 ‘밍’ 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그냥 ‘야오’ 로 불렸다. 한번 그렇게 불리고 난 이후에 난 그것을 고쳐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난 너무 내성적이었다.


스티브는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모두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했다.


얘는 쿠티노야.

얘는 글렌이고.

얘는 Moochie야.

나는 그가 팀원의 이름을 말해줄때마다 철자를 되뇌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때까지는 영어가 미숙해서 말하는 것은 별로였지만 듣는 것은 웬만큼 할 수 있었다. 중국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이러한데 6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미안해. 내가 좀 내성적이라서,” 스티브에게 그렇게 말했다.


“걱정 하지 마.” 스티브가 말해줬다. 그리고 친근함이 듬뿍 담긴 포옹을 해주면서 말했다. “우린 너를 기다려왔어. 네가 필요해.”


중국문화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거리를 두는 것이 예절이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지만 모든 것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점차 편해지는 것이다. 스티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불타오르는 타입이었다. 코트 위어서건 밖에서건 스티브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스티브가 바로 맘에 들었다.


그때에는 몰랐지만 내가 도착하기 전에 구단 측에서는 중국인 교수를 고용해서 직원들과 선수들에게 중국 문화를 가르치게 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중국문화에 대해서 몇 가지라도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중국 사람들은 명함을 주고받을 때 두 손을 사용해서 건네주고 받는 다는 것 등을 말이다. 모두들 정말 친절했었다. 이걸 생각 할 때 마다 웃음이 나온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나를 동등한 한명의 선수로서 대해주길 바랬었지만 사실 이런 작은 일들로 인해 그들의 친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휴스턴에 도착한 첫 주간에 구단 측에서 자선 골프행사를 개최했었고 스티브가 골프코스에 태워 주었다. 아직 게임을 뛰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습에 참가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내 험머 타고 가자.” 스티브가 말했다.


“험머?” 내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그래 험머, 내 험머말야. 골프코스에 가야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차.” 라고 말하면서 스티브는 군용 짚차 같이 생긴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 종류의 차는 그때 처음 보았다. 차고가 매우 높았는데 천장 자체는 또 낮았고 레그룸은 턱없이 좁았다. 거진 낑겨서 탈 수 밖에 없었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대중적인 차인건가??”


나는 그 때에도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스티브가 나를 챙겨주려 했던 것이 매우 기뻤다. 골프장은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스티브의 험머에 올라탔는데 너무나 불편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스티브가 대화에 매우 능했다는 것이고 내가 듣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NBA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스티브는 신인 때 겪을만한 일들에 대해서 일러주었다.


“빠르게 플레이 해야 돼...아무튼 제일 중요한 것은 공격적이어야 된다는 거야.”

‘공격적인“ 그 단어는 알고 있었다.


스티브는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아마 한 스무 번 쯤 이야기 했던 것 같다. Agressive, aggressive, aggressive.


잊을 수 없는 조언이었다.


“또 다른 것은, 만약 할 수 있다고 느끼면 그냥 덩크 해 버리라는 거야.”


스티브는 오른쪽 팔의 근육에 힘을 주면서 ‘agressive'를 몇 번 더 강조했다.


스티브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더 잘 듣기 위해서 라디오를 꺼달라고 부탁을 해야만 했었다. 자신의 신인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었는데 스티브는 신인 때 출장기회가 적었다고 했다. 자신감이 부족했었다고 이야기했다.


“난 페인트 존에서 항상 밀쳐졌었어.” 스티브가 말했다.


“페인트?”


“키(key-프리드로우라인부근)말야. 페인트 존을 키라고 불러.”


왜 그 지역을 키라고 부르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보우 지역에서 볼을 잡잖아? 그럼 페이스업 하고 가드들이 스틸을 못하게 볼을 높게 들고 있으라고.”


“엘보우??”


스티브는 엘보우 지역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었다. - 자유투라인 양쪽 끝 지점


스티브는 날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하다야. 레그룸이 너무 좁지?”


난 괜찮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저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레그룸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농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그 전 몇 달 동안 나는 구단의 큰 기대와 추측 들 속에 살고 있었다.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스티브는 나를 매우 놀라게 했었다.


“너 여자친구는 있어?” 라고 물어본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고등학교때 사귄 여자친구와 쭈욱 연애중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내 지금 여자친구 고등학교때 만났었어!” 스티브가 말해주었다.


나도 내 미숙한 영어로 스티브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그는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골프코스로 가는 20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가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스티브가 올랜도로 트레이드 되었을 때 그가 많이 그리웠었다.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며 내가 휴스턴을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톰자노비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님도 내가 NBA에 잘 적응할 수 있는데 협조해 주신 분이셨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익히려고 노력했고 팀원들과 친해지려고 그리고 NBA 일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 노력했다. 알아듣는 것은 좀 할 수 있다지만 미숙했기 때문에 첫 해 동안에는 통역사가 늘 붙어있었다.


루디(톰자노비치)는 나를 매우 끈기 있게 인내해주었다. 나 에게는 그런 대우가 좀 필요했었다. 루디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해야될지에 대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루디는 페인트존에서 침착하게 플레이 하라고 충고해주었다. 내가 너무 급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실수를 통해 성장하기를 바랬다.


“너 자신을 자책하지마 - 실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거야.” 루디는 말했다.


나는 충고들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고쳐지진 않았다. 이 때 나는 비평가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디는 나에게 매우 귀중한 충고를 해주었다.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 낭비할 필요 없어.”


첫 해의 절반 동안 나는 수 없이 많은 굴곡을 경험했다. 최고의 상태로 플레이 하지도 못했다. 난 사람들이 칭찬을 해줄 때도 있지만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비판을 해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루디가 이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의 ‘Agressive' 강의는 과연 옳은 것이었다. 중국농구와 NBA의 차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구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다른 것이다. 나는 NBA식 농구에 적응 해야만 했다. 중국에서는 내 키만으로도 수비수들을 겁줄 수 있었지만 NBA에서는 매 포제션마다 수비수들이 싸움을 걸어온다. 빅맨도 빠르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CBA에서는 빅맨의 페이스에 맞춰서 게임도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반면에 NBA에서는 매 플레이마다 단거리육상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가드들만큼 빠르게 뛸 수 없다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신인 때 첫해의 2월이 되었을 때쯤부터 나는 코트 위에서 편안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고 팀 동료들과의 사이도 매우 좋아졌었다. 춘절(중국의 설 명절)에 구단 측 에서는 나를 위한 깜짝 파티를 열어 주었다. 경기가 있던 날이었는데 사람들은 중국에서는 구정에 1주나 2주간의 휴가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같이 말이다. 구단에서 그런 것 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그것도 게임 바로 전에, 나의 P.R. 매니저 넬슨 루이스는 사무실에 좀 들러달라고 했었는데 그게 바람을 잡는 것이었던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무실을 나와 보니 도처에 중국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진정한 깜짝 파티였었다.


루디는 나에게 와서 봉투를 건네주었다.


열어봤더니 1달러가 들어있었다. 거기서 모두가 빵 터졌었다. 스티브는 또 다시 그 강력한 하이파이브를 날렸고 내 손은 다시금 얼얼해져 버렸다. 미소가 떠날 새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때의 따뜻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정말 따뜻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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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8-14 11:13:18

스티브 프랜시스!! 멋진 선수였는데...

2016-08-14 11:37:49

스티비가 이렇게 훈훈한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덩크를 하라고 한다거나 공격적으로를 반복해서 말한다거나 하는건 정말 스티비다운 조언이네요.

2016-08-14 12:10:57

이런 말씀 드리기 굉장히 송구하지만, 4주 전에 AirBirdMagic님 께서 같은 글을 번역 해주신 게 느바톡에 올라와 있네요...
/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4305816&sca=&sfl=wr_subject&stx=야오&sop=and&scrap_mode=

WR
2016-08-14 14:01:59

오마이이가아아앗


전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번역 비교로 넘어가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핫핫...
2016-08-14 12:54:10

중복이라 하려했는데 윗분이 말씀해 주셨네요.
그래도 번역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2016-08-14 15:02:20

4주전에 못봤던 1인으로서 덕분에 재밌게 잘 봤습니다

2016-08-14 20:43:38

전에 봤지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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