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농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NBA게시판에 올리려 했는데 글자 제한 수를 초과했다는 말에 부족한 글이지만 여기에 올립니다.
미국 프로농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다섯 명을 뽑으라면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줄리어스 어빙이 꼭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줄리어스 어빙은 엘진 베일러에 의해 시작된 쇼타임 농구의 완성자임과 동시에 관객들이 어떤 플레이에 진정으로 열광하는가를 최초로 보여준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닥터 J라는 별명 답게 농구경기 자체를 수술대에 올렸고, 그가 뛰기 시작한 이후 프로농구는 그 스타일에서 예전의 경기가 아니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이하 닥터 J)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프로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던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처럼 ABA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닥터 J는 1년도 지나지 않아 ABA를 자신의 리그로 만들었고, 인기가 시들어가던 ABA의 수명을 혼자의 힘으로 몇 년 연장시켰을 만큼 ABA 리그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그는 ABA에서 5년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신인상, 3번의 시즌 MVP, 2번의 득점왕, 뉴욕 네츠에서 2번의 우승을 거뒀고, 정규 5시즌동안 경기당 평균 29득점에 12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75-76 마지막 시즌에 ABA는 그를 위해 올스타전에 최초로 슬램덩크 컨테스트를 도입했고, 그 전통은 NBA에 계승되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NBA는 닥터 J를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해서 ABA 4팀을 NBA에 통합시켰습니다. 네츠, 스퍼스, 너기츠, 그리고 페이서스가 바로 그 4팀들입니다.
NBA로 통합된 76-77 시즌에 닥터 J는 우여곡절 끝에 필라델피아 식서스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팀에서 11년간 뛰다가 은퇴를 맞이합니다. 닥터 J를 영입한 필라델피아 식서스는 순식간에 NBA 최고의 인기팀이 되었습니다. 식서스의 원정경기는 닥터 J를 보려는 팬들에 의해 매진행렬을 거듭했고, 식서스는 어디를 가든 응원하는 팬들로 넘쳐났습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10년 후 시카고 불스와 마이클 조던에 의해 재현됩니다.)
NBA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지만 닥터 J는 NBA 데뷔 이후 ABA시절과 같은 기록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ABA 마지막 시즌에 닥터 J는 평균득점 29.3을 기록했으나 NBA 첫해에는 21.6득점 그 다음해에는 20.6득점으로 급격히 떨어졌고, 리바운드 역시 ABA 시절보다 현격히 떨어졌습니다. 닥터 J의 공격력이 약화된 가장 큰 이유는 NBA의 수비가 ABA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말년의 ABA는 팬들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무작정 공격 지향적인 경기를 했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수비하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덕분에 닥터 J는 그 놀라운 신체적 우월함에도 수비가 강했던 적이 없는 선수로 기억됩니다. 닥터 J의 공격력이 약화된 또 다른 이유는 휴비 브라운이 말했듯이 그의 무릎 상태가 ABA시절보다 못했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닥터 J가 최고의 활약을 벌인 시리즈는 단연코 그의 마지막 시즌 ABA 파이널 뉴욕 네츠 vs 덴버 너기츠 경기였습니다. 뉴욕 네츠는 닥터 J의 맹활약 덕분에 6경기만에 덴버를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중 다섯 경기에서 연속으로 닥터 J가 기록한 득점과 리바운드는 45-12, 48-14, 30-10, 34-15, 31-19 였습니다. 아마 다시 나오기 힘든 챔피언 시리즈 기록일 겁니다.
닥터 J가 NBA에 데뷔하던 76-77 시즌은 그에게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 전해에 기록한 29.3-11.0은 21.6-8.5로 떨어졌습니다. (경기당 8.5리바운드는 커리어를 통틀어 그가 NBA에서 기록한 최다기록입니다.) 76-77 시즌은 역사상 가장 평준화된 시즌이었고, 50승을 거둔 식서스는 동부 최고승률에 전체 2위 승률을 기록했고 10년만에 NBA 파이널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파이널 상대는 레이커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킨 신예 강호 포틀랜드였습니다.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졌던 식서스가 홈에서 처음 두 경기를 어렵지 않게 이겼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식서스가 10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홈에서 워낙 강한 팀이었기에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빌 월튼을 비롯한 포틀랜드 선수들은 자신들이 홈에서 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아주 시끄러웠고, 포틀랜드는 그곳에서 전혀 다른 팀이었습니다. 식서스는 너무도 쉽게 두 경기를 내줬습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어느 곳 어디서나 블레이저스 얘기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서스는 닥터 J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홈에서 열린 5차전에서 포틀랜드에게110-104로 패했습니다.
적지인 메모리얼 콜리세움으로 다시 돌아간 식서는 심기일전했습니다. 경기는 일진일퇴였고, 막판에 닥터 J와 맥기니스가 미드레인지 슛을 놓치는 바람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게 109-107로 패했습니다. 닥터 J는 40점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으나 그의 고질적 약점이던 미드레인지 점퍼가 결정적인 순간에 빗가났습니다. 닥터 J는 평균 30.3득점, 6.8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으나 평균 18.5득점, 19리바운드, 5.5어시스트, 3.7블락을 기록한 빌 월튼이 우승과 함께 파이널 MVP를 가져갔습니다.
3년 후인 79-80 시즌에 닥터 J와 식서스는 다시 NBA 파이널에 올랐습니다. NBA의 전력평준화는 이미 무너져서 식서스는 레이커스, 셀틱스, 소닉스와 함께 빅4 엘리트 팀을 구성했습니다. 식서스는 리그 최고 성적을 거둔 셀틱스를 가볍게 이기고, 시즌 MVP 카림 압둘-자바가 버티고 있는 LA 레이커스와 NBA 파이널에서 맞붙었습니다. 레이커스와의 파이널 시리즈는 거의 매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대 2로 동률을 이루던 5차전에서 카림 압둘-자바는 맹활약을 펼치며 가장 중요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부상으로 다음 경기에 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카림이 결장한 상태에서 홈경기로 펼쳐진 6차전에서 식서스는 갑작스레 센터를 맡은 루키 매직 존슨에게 유린당하며 파이널 시리즈 중 유일한 대패를 당했습니다. 닥터 J는 평균 25.5득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선전을 펼쳤으나 압둘 자바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했고, 파이널 MVP는 6차전에서 맹활약한 매직 존슨이 가져갔습니다.
바로 다음 시즌인 80-81 시즌에 닥터 J는 꿈에 그리던 두 가지 중 하나를 달성했습니다. 바로 NBA 시즌 MVP입니다. 이런 경사에도 80-81 시즌은 닥터 J에게 가장 아쉬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시즌 MVP를 수상했지만 그의 기록은 평균 24.6득점, 8리바운드, 4.4어시스트로 당시 NBA 최고의 선수였던 카림 압둘-자바나 모세스 말론에 비해 조금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MVP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선수는 21.2득점, 10.9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한 소포모어 래리 버드였습니다. 정규시즌에 식서스와 셀틱스는 62승 20패로 동률이었으나 승자승에 따라 셀틱스가 많이 유리한 상태로 플레이오프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두 팀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서부 컨퍼런스에서는 이변이 연속되어 승률 5할이 안 되는 두 팀이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습니다. 식서스와 셀틱스 중에서 NBA 챔피언이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그 해 식서스와 셀틱스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은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극적인 대결이었습니다. 7차전 승부에서 마지막 네 경기가 모두 2점차 이내에서 승부가 갈렸습니다. 3대1로 시리즈를 크게 앞서던 식서스는 마지막 세 경기에서 셀틱스에게 111-109, 100-98 그리고 91-90으로 패했습니다. 그 패배만큼 중요한 것이 그 시리즈에서 닥터 J는 래리 버드에게 압도당했습니다. 라이벌끼리의 대결에서 이정도로 상대를 압도한 예는 1995년에 올라주원이 로빈슨(당시 MVP)을 압도할 때가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래리 버드는 닥터 J가 아니라 그가 진짜 MVP라는 찬사 속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닥터 J는 큰 상처를 입었고, 그 이후로 그와 래리 버드는 견원지간이 되었습니다. 커리어 내내 둘은 서로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적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 시즌인 81-82 시즌에 식서스와 셀틱스는 또다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났습니다. 똑같이 보스턴 가든에서 7차전 승부를 펼쳤지만 닥터 J와 앤드류 토니의 맹활약으로 식서스는 셀틱스를 여유 있게 물리치고 또 다시 LA 레이커스와 NBA 파이널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숙적과의 7차전 승부로 지쳐있던 식서스와는 달리 레이커스는 스퍼스를 4대 0으로 완파하고 파이널에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레이커스에게는 밥 맥아두라는 새로운 무기가 추가로 탑재되었습니다. 맥아두는 70년대 초에 카림과 함께 리그를 지배했던 선수였습니다. 맥아두의 합류로 LA 레이커스는 완벽한 공격 밸런스를 갖춘 팀으로 변신했습니다. 파이널에서 닥터 J와 앤드류 토니가 맹활약을 펼쳤지만 압둘 자바, 매직, 자말 윌크스, 놈 닉슨, 맥아두, 마이클 쿠퍼로 이어지는 균형 잡힌 공격에 6차전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래리 버드와 보스턴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닥터 J는 정상 한발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그 다음 시즌인 82-83 시즌에 앞서 필라델피아 식서스는 그야말로 팀에게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식서스는 83년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휴스턴에게 내주고, 프리 에이전트 모제스 말론을 데려왔습니다. 직전 준우승 팀에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가 합류한 것입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올해에 앤써니 데이비스가 클리블랜드에 합류하는 것 이상으로 그 당시에 큰 이슈를 불러왔습니다. 그 방법이 아니면 도저히 우승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식서스 단장의 결정이었습니다. 닥터 J는 어쩔 수 없이 1옵션을 말론에게 내주고 앤드류 토니와 2옵션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슈퍼스타들끼리 자아가 충돌해서 서로 내상을 입었습니다. 그 해에 식서스는 정규시즌 65승을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2승1패를 기록하며 완벽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4년 동안에 3번을 만나게 된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에서도 4연승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팀의 케미스트리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거의 동일한 멤버 구성으로도 52승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찰스 바클리가 새로 합류한 84-85 시즌에 식서스는 다시 예전의 위용을 되찾지만 또다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난 셀틱스에게 완패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식서스의 영광은 없었습니다. 86-87 시즌 초에 닥터 J는 영광과 좌절의 시간을 뒤로 한 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86-87 시즌은 그의 은퇴 순회공연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방문한 경기장마다 관객들은 환호로 답했습니다.
ABA와 NBA시절 기록을 합쳐 통산 3만 26득점에 평균 24.2점, 8.5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한 채 닥터 J는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이분은 지금도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