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일어난 베스트 트레이드 10선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지금 2건의 트레이드가 터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내일, 내일 모레가 되면 더 많은 트레이드가 터지겠죠. NBA 앱 있으신 분들은 편히 주무시려면 알람을 끄는 걸 권장할 정도로..
오늘 번역한 기사는 역사상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일어났던 베스트 트레이드 TOP10입니다.
1. 파우 가솔(멤피스) to LA레이커스(2008년)
이 트레이드가 일어나기 1년도 되기 전인 2007년 봄, 팀에 전력보강을 요청하며 프런트와 갈등을 빚을 때만 해도 코비는 몰랐을 것이다.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레이커스가 우승 후보 1순위 팀으로 올라설 줄은. 당시 레이커스 GM인 미치 컵책은 콰미 브라운, 마크 가솔, 자바리스 크리텐튼과 2장의 드래프트 픽을 멤피스로 보내고 파우 가솔을 영입했는데, 가솔의 영입으로 레이커스의 팀 역사가 바뀌고 말았다. 코비 브라이언트에 이은 2옵션으로 이보다 완벽할 수 없었던 파우 가솔과 함께 레이커스는 2008~2010년까지 3년 연속 파이널에 올랐으며 이 중 2번을 우승했다. 가솔이 없었다면 과연 코비는 5개의 반지를 손에 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멤피스로써도 이 트레이드는 신의 한 수였다고 할 수 있다. 수비력에 있어서는 형보다도 나은 선수인 마크 가솔은 멤피스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으며 2013년에는 수비왕도 수상하였고 작년에 멤피스와 5년 맥시멈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형보다도 더 오래 팀에 헌신하는 선수가 되었다.
2. 클라이드 드렉슬러(포틀랜드) to 휴스턴(1995년)
1995년 트레이드 데드라인까지 휴스턴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부 컨퍼런스 6위에 그치고 있었는데 바로 전해인 94년 우승팀의 위용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1995년 발렌타인 데이, 휴스턴은 휴스턴 출신의 홈타운 보이인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데려오는 승부수를 던진다. 드렉슬러의 반대급부로 휴스턴이 내준 것은 오티스 더프와 마르셀로 니콜라, 그리고 한 장의 드래프트픽. 하지만 정규시즌에서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그들은 트레이드 이후에는 17승 18패, 오히려 트레이드 전보다도 못한 승률로 정규시즌을 마쳤고, 서부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돌입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드렉슬러는 왜 휴스턴이 자신을 영입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드렉슬러의 맹활약과 함께 휴스턴은 60승의 유타, 59승의 피닉스, 62승의 샌안토니오를 눌렀고 파이널에서도 57승의 올랜도를 꺾으며 백투백 우승을 달성한다.
3. 라쉬드 월라스(포틀랜드) to 디트로이트(2004년)
2002년과 2003년, 두 시즌 연속으로 50승32패를 기록했지만 동부 컨퍼런스 관문을 뚫지 못하고 좌절했던 디트로이트는 2004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다. 포틀랜드에서 애틀랜타로 옮긴 라쉬드 월라스는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고 단 한 경기만 치르고 다시 유니폼을 바꿔입게 된다. 디트로이트는 젤리코 레브라카와 밥 수라, 그리도 한 장의 드래프트픽만으로 6-10의 올스타 파워포워드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공격에서는 공간을 넓혀주는 스트레치 빅맨으로, 수비에서는 환상적인 스타퍼로 공 수 양면에서 맹활약했던 라쉬드 월라스의 합류 이후, 디트로이트는 동부 컨퍼런스 관문을 마침내 뚫었고, 파이널에서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4. 윌트 채임벌린(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to 필라델피아(1965년)
물론, 1965년에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임벌린의 트레이드는 NBA역사에서 시즌 중간에 일어난 첫 번째 블록버스터급 트레이드였다. 당시 재정난에 허덕이던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는 팀에서 가장 고액연봉자였던 채임벌린을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채임벌린은 이적 첫 해에는 원래 팀의 주추이었던 할 그리어, 쳇 워커, 루크 잭슨 등과 갈등을 겪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명감독인 알렉스 핸넘 부임 후, 3시즌 연속 MVP를 받는 등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1966-67 시즌에 필라델피아는 당시 NBA최고기록이었던 68승 13패를 기록했으며 8시즌 연속 우승의 보스턴 셀틱스를 저지하고 파이널에 오르기도 한다. 윌트 채임벌린은 커리어 2회 우승 중 첫 번째 우승을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차지한다.
5. 케빈 존슨(클리블랜드) to 피닉스(1988년)
사실 케빈 존슨의 트레이드는 클리블랜드의 뼈아픈 패착 탓이 크다. 그들은 마크 프라이스라는 준수한 가드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1987년 드래프트에서 7번픽으로 케빈 존슨이라는 또다른 포인트가드를 뽑는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당시 루키였던 케빈 존슨을 피닉스의 베테랑 포워드였던 래리 낸스(현재 레이커스 소속인 래리 낸스 주니어의 아버지) 등등과 트레이드한다. 그리고 케빈 존슨은 피닉스에서 3회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으며 당시 케빈 존슨과 함께 피닉스로 갔던 드래프트 픽은 바로 몇 달 후인 1988년 드래프트에서 댄 멀리를 뽑는 데 사용된다. 케빈 존슨과 댄 멀리, 찰스 바클리는 올스타 3인방으로 1993년 피닉스 선즈를 파이널까지 진출시킨 선수들이다.
6. 디켐베 무톰보(애틀랜타) to 필라델피아(2001년)
00-01시즌, 래리 브라운의 필라델피아는 동부 컨퍼런스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수비형 포워드인 테오 라틀리프가 부상으로 아웃되었고 따라서 수비수를 구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가 찾는 유형의 선수는 수비가 되면서 볼 욕심이 없고 앨런 아이버슨이 슛을 마음놓고 쏠 수 있게 공격 리바운드도 잘 잡아주는 선수였다. 딱 맞는 조각, 바로 디켐베 무톰보였다. 커리어 4회 수비왕에 빛나는 무톰보는 당시 34세의 노장이었음에도 불구, 합류하자마자 팀에 바로 녹아들며 필라델피아가 파이널까지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코비와 샤크의 레이커스에게 패했지만, 당시 필라델피아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팀이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왜 그 때 애틀랜타가 무톰보를 부상중인 라틀리프와 바꿨냐는 것이다.
7. 배런 데이비스(클리퍼스) to 클리블랜드(2011년)
이번 건은 위의 6개와 다르게 조금 복잡하다.(바로 그 해에 성적이 상승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2011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LA클리퍼스는 배런 데이비스의 거대 계약을 받아줄 팀을 물색중이었고 클리블랜드는 그것을 덥썩 물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클리퍼스가 보호조항이 아예 없이 그 해 1라운드픽을 클리블랜드에게 넘겨준 데 있었다. 10-11시즌, 클리퍼스는 32승 50패로 성적이 최하위권은 아니었음에도 불구, 2.8%의 확률로 드래프트 1번에 당첨되었고, 그 픽은 자연스레 클리블랜드로 넘어갔다. 클리블랜드가 지명한 선수는 2012년 신인왕이자 2014년 올스타 MVP, 카이리 어빙이었다. 만약에 그 픽이 클리퍼스에 있었으면? 우리는 어빙과 그리핀의 조합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당연히 크리스 폴이 클리퍼스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르브론 제임스가 클리블랜드로 컴백하는 일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8. 제프 호나섹(필라델피아) to 유타(1994년)
슈퍼스타라고 분류하기는 힘든 호나섹이기에 당시 호나섹의 트레이드가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었다. 피닉스로부터 2시즌 전에 데려와서 호나섹을 포인트가드로 키워보려고 했던 필라델피아는 호나섹을 포기하고 슈팅가드인 제프 말론을 유타로부터 받아온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모르지 않았을까. 호나섹이 칼 말론과 존 스탁턴을 보좌하는 최고의 3옵션으로써 팀의 1997년과 98년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의 큰 공을 세우는 선수가 될 줄은.
9. 앤드류 보거트(밀워키) to 골든스테이트(2012년)
당시 앤드류 보거트의 트레이드는 단순 보거트 합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물론, 보거트는 공격에서는 컨트롤 타워로, 수비에서는 준수한 림 프로텍터로 좋은 빅맨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 있다. 바로, 이 트레이드가 스테픈 커리를 지금의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었다는 것. 보거트와 트레이드된 선수는 당시 커리와 많이 겹쳤던 몬타 앨리스였고, 앨리스가 떠남으로써 커리가 마침내 팀의 백코트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골든스테이트는 지난 해인 2015년 우승, 올 시즌에는 시카고 불스의 72승 10패를 깰 유력한 팀으로 예상될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팀이 되었다.
10. 카멜로 앤써니(덴버) to 뉴욕(2011년)
당시 이슈화된 걸로만 치면 앤써니의 딜은 여기 있는 그 어떤 트레이드보다도 화제였다. 그것은 앤써니가 슈퍼스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트레이드의 대상이 뉴욕이기 때문이다. NBA최고의 마켓 뉴욕. 레이몬드 펠튼, 윌슨 챈들러, 다닐로 갈리날리, 티모페이 모즈코프와 3장의 픽이 덴버로 향했고 카멜로 앤써니는 NBA의 메카, 뉴욕으로 왔다. 멜로 합류 후 5시즌이 지난 지금, 5시즌에 무려 감독이 4번이나 교체되었으며 플레이오프 진출은 딱 2번, 1라운드 통과는 1번에 그치며 지금 시점까지만 봤을 때 멜로 트레이드는 실패에 가깝다. 하지만, 분명 당시 화제성은 그 어떤 트레이드보다도 높았다.
6번에서 테오는 젊고 굉장한 블럭샷 능력을 지녔었죠.그 해 수비에 눈을 뜨고 있다는 평에 올스타까지 선정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동부는 더블더블급 빅맨이면 올스타 가던 시절입니다.)추가로 토니쿠코치,나즈모하메드 등 여러 유망주들이 포함되었었죠
8번은 제프호나섹은 필리시절 이미 20+를 기록해본 선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