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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필리. 그리고 아이버슨에 대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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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1-26 02:41:25

또한 당시 필리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더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문제였을지도 모르는 부분인데요.

 

핵심 벤치 멤버 혹은 주전 2번으로 평가받던 윌리 그린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 필리에선 믿고 공격 혹은 수비를 맡길 벤치 멤버가 없었다는 겁니다.

 

농구는 5명이 하는 것이 아니죠. 저는 당시 주전 라인업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설사 좋았다고 해도 필리의 당시 후보 선수들의 뎁쓰는 리그 최하수준이었고 이런 구성으로 플옵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봅니다. 더욱이 막 부임한 감독이 이런 선수들로 시너지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려웠겠죠.

 

부상 중인 윌리 그린을 빼면 당시 라인업은 존 샐몬스, 케빈 올리, 쉐브릭 랜돌프, 리 네일런, 그리고 맷 반즈인 데, 맷 반즈는 당시 필리에서 그리 활약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 외 선수들 중에도 실력이 특출난 선수는 없었습니다.

 

필리의 가장 큰 문제가 시즌 중반 이후 주전들의 혹사로 인한 경기력 저하이기도 했다는 것은 이 부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팀 구성에서 아이버슨이 돌파 위주의 플레이로 팀을 이끈 것이 비판받을 상황인 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쉬같은 선수가 온다면 이 당시 필리라도 플옵에 갔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팀 상황이 아이버슨이 돌파 위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플레이 스타일의 효용성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아이버슨의 돌파 외에 필리는 미들레인지로 진입가능한 선수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수비 공간을 찢어주고 동선을 열어주는 아이버슨의 돌파가 없었다면? 당시 필리의 공격이 어떠했을 지는 필리팬으로써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입니다.

 

이 시즌에 아이버슨의 상대팀 대비 온 오프코트 오펜시브 레이팅이 +8.5입니다.

 

약팀이었던 것을 감안해도 이 정도면 팀 내 공격에 있어서 절대적인 비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죠.

 

웨버를 제외하고는 1인 공격 옵션이나 패스 게임조차 거의 힘들었던 팀에서 아이버슨의 돌파 시도횟수 15~20개가 선수 성향을 감안할 때 심각했다고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라는 점은 1번으로 본다면 분명 맞습니다. 게임 조립이 되는 선수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05-06 시즌에 부득이하게 아이버슨이 1번 롤을 수행했으나 팀에서는 아이버슨이 2번인 것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2번 롤도 1번 롤 이상으로 길게 수행했음을 감안한다면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맞는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듭니다.

 

아이버슨이 팀을 플옵으로 끌고 가지 못했기에 그의 기량이 아쉬웠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요.

 

사실 아이버슨의 가장 큰 문제는 미스매치로 인한 수비 부분이고, 당시 정말 심각한 신장 문제를 겪었던 필리는(1-3번 라인업 중 2미터 이상 선수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코버와 이기도 198 cm.) 이로 인해 결국 플옵 진출에 실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리딩은 템포 조절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전술 전개방식은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쉬의 경우 훌륭한 리딩 플레이어이며 위대한 포인트 가드였지만, 슈팅이라는 부분을 배재하고 본다면(내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지만) 2 : 2 게임과 아이솔레이션 후 킥아웃이 주무기였던 것은 아이버슨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두 선수의 차이점은 내쉬는 경기 템포를 조절할 줄 알았고, 돌파와 슈팅에 대한 판단이 팀 공격 전개 차원에서 이뤄져 팀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반면, 아이버슨은 본인의 한계로 인해 게임 조립을 할 수 없어 필수적으로 이 부분을 해결해줄 선수가 필요했다는 점이죠.

 

결국, 이쯤 되면 아이버슨은 그냥 단신 스윙맨이라고 보셔도 될 겁니다.

 

우리가 스윙맨에게 게임 조립을 굳이 요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일반적으로 수준급 스윙맨 존재 시 스윙맨은 득점을 비롯한 다양한 플레이로 팀의 경기력을 끌어주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게임 조립과 리딩으로 경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은 1번이 수행했으니까요.

 

지금은 지역방어 안착 후 다양한 공격 전술로 듀얼가드의 전술적 · 공격적 리딩이 가능하나 당시에는 현재와 같이 듀얼가드들의 공격적 리딩이 전술적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냉정하게 볼 때, 아이버슨의 단점은 2번임에도 작은 신장에 있었고, 필리는 이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이 시즌에도 장신 1번인 존 샐몬스를 꽤나 중용했던 것이고요.

 

코버는 05-06 시즌에 첫 풀타임 주전 발탁에도 불구하고(현재만 보면 절대 믿으실 수 없겠지만 이 당시에는 코버가 첫 풀타임 주전이었기 때문에 오프 더 볼 무빙이나 공격 전개에서 미숙한 점이 다소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31분 출전에 무려 184개의 3점을 성공시켰는데, 이중 99개를 아이버슨이 만들어주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수치죠.

 

05-06 시즌 당시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은 이런 점에서 동의하기 힘듭니다. 아이버슨은 05-06 시즌에도 결국 2번 롤에서 많은 시간을 뛰었으며, 2번 롤에서 돌파의 효율은 코버를 살려준 상황을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필리에서 코버 외에 믿을 수 있는 슈터는 한명도 없었거든요.

 

간간히 이궈달라의 최근 플레이를 보면서 당시 이기의 슈터로써의 효율이나 돌파력이 지금만 같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웨버와의 픽 앤 팝은 종종 나오긴 했으나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했는데, 아이버슨이 3점 슈터를 살리는 데 더 재주가 있었던 점도 있고 웨버의 빠지는 움직임이 날래지 못했던 문제도 있었습니다. 좀 복합적이었죠. 여하튼 05-06 시즌 당시 아이버슨이 돌파 후 득점을 주로 노렸던 선택의 이면에는 반드시 팀 구성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아이버슨의 한계는 팬으로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볼호그란 비판도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팀 내 수비력이 절정이었음에도(리그 2) 기대치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02-03 시즌의 아이버슨은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브라운 감독이 떠난 상황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05-06 아이버슨은 돌파를 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버슨이 볼호그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그가 확실히 돌파 위주의 선수였으며, 그 뛰어난 오프 더 볼 무브조차 본인의 공격을 위해 썼다는 부분이고 그건 팬으로써도 참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찌보면 래리 브라운을 만난 후 아이버슨이 MVP까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본인이 못하는 리딩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2번이자 효율적인 득점 머신으로 변신한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1번이 아니라는 전제라면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렇게까지 비효율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그 깐깐한 브라운 감독이 아이버슨은 어느새 뛰어난 팀 플레이어가 되었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물론 아이버슨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는 제한점이 너무 많습니다.

 

스노우와 함께 뛰던 여섯 시즌과 스노우가 없던 나머지 시즌에서의 아이버슨의 평가만 봐도 그것은 극명합니다(빌리킹님. 스노우를 왜 보냈나요...).

 

하지만 스노우와 함께했던 아이버슨은 그리 비효율적인 선수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특히, 00-01 시즌에는 말이죠.

 

00-01 시즌 당시 아이버슨이 있었던 필리의 수비력은 정말 엄청났습니다(리그 5, 평균 90.4 실점).

 

아이버슨이 못하는 압박 수비를 보충하기 위한 필리의 선택은 스노우였고, 골밑에는 수호신 무톰보와 래틀리프가 있었죠(두 명은 함께 있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벤치에는 필리 팬들에게는 최고의 식스맨이었던 애런 맥기가 있어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브라운 감독의 수비는 압박을 키워드로 하는 엄청난 활동량과 동선 제한을 바탕으로 하는 전술을 베이스로 했는데, 지역방어가 없던 00-01 시즌에도 현재 트렌드 중 하나인 존 디펜스와 맨 투 맨을 혼용하는 수비를 펼쳤다는 부분에서 수비에 있어서는 정말 선구자적인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브라운 감독이 강조한 것은 두 가지. “세컨 찬스는 주지 않는다.”레이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프코트에서부터 볼을 운반하는 선수를 압박해 코트를 쉽게 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페인트존으로 한 번에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며, 볼핸들러가 이동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늦추게끔 유도하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1선 압박을 담당하는 스노우 옆에서 아이버슨은 뛰어난 스틸 능력으로 압박을 보조하고 공격 동선을 제한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습니다. 압박을 주로 하는 선수들이 스틸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기에 아이버슨이 수행한 보조 압박을 위한 스틸러로써의 역할도 팀 디펜스 전술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평균 스틸 2.5개로 리그 1).

 

이런 상황이다 보니 팀의 공격 속도는 사실 매우 늦은 편이었는데(리그 19), 그럼에도 공격에서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버슨의 존재가 컸죠.

 

그리고 이것이 아이버슨이 그 시즌에 MVP를 수상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05-06 시즌은 구성만 보면 마치 00-01 시즌 당시 필리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 이 당시 필리의 팀컬러는 공격의 팀이었지 수비의 팀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당시 GM이었던 킹은 칙스 영입으로 이 팀에 수비 전술을 심으려 했지만 정작 수비전술의 확립은 06-07 시즌에야 실현됩니다.

 

하지만, 당시 필리 팬으로써 한 가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시 필리가 약팀이었던 배경이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이고(빌리킹이 트레이드로 당시 욕을 참 많이 먹었죠), 아이버슨은 볼호그일지언정 돌파로만 게임을 풀 줄 알고 다른 장점은 전혀 없는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브라운 감독을 만난 후 필리에서의 아이버슨은 1번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팀에서는 아이버슨이 2번임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고 아이버슨이 필리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계속적으로 아이버슨이 2번 롤을 수행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선수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했었습니다.

 

또한 덴버의 당시 감독이었던 조지 칼도 아이버슨 영입 시점에 아이버슨을 2번으로 기용하려 했던 정황증거는 계속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어떻게든 밀러는 끝까지 지켜 밀러-아이버슨-멜로의 라인업을 만들어, 밀러를 축으로 하는 공격 전개 내에 아이버슨의 공격을 심으려 했던 시도를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필리에서 너무 강력히 밀러를 원했고, 다른 팀들의 영입 경쟁으로 인해 급해진 덴버가 어쩔 수 없이 밀러를 포기하면서 이 라인업은 현실화되지 못했었죠.

 

하지만, 이후에도 조지칼은 스티븐 블레이크를 영입해 아이버슨과 동시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버슨을 2번에 정착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다음 시즌 블레이크가 팀을 떠나면서 이 플랜이 다시 엉켜버렸고, 어쩔 수 없이 앤쏘니 카터가 중용되었지만, 카터가 블레이크만큼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버슨이 덴버 첫 시즌에 보여주었던 짧았지만 강렬했던 2번으로써의 모습을 덴버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는데, 이는 팬으로써 너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스노우가 없었던 아이버슨은 분명 볼호그일 수도, 난사왕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이버슨은 1번으로는 좋은 효율을 낼 수 없는 선수거든요. 2번에서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 팀원으로써 경기에 임해야만 빛이 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05-06 시즌도 그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 아이버슨은 최고의 플레이어도 아니고 팀을 우승으로 끌고 가기에는 너무 많은 제한점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던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파트너를 심각하게 가렸을 뿐 돌파만 할 줄 아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으며, 팀원 운(아이버슨을 2번으로 정착시켜줄 수 있는 장신 1)이 좀 받쳐준다면 최소한 팀 플레이어로써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는 될 수도 있었다는 점. 이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두서없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해마지 않던 래리 브라운 감독님과 슈팅가드 아이버슨이 함께 했던 00-01 시즌의 필리가 너무 그리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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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1-25 02:21:16

아이버슨팬으로서 정말 좋은글이네요. 저도 이글을 읽으니 아이버슨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너무 그립습니다. 저는 필력이 없어서 이런글 쓸 엄두도 못낼텐데 앤써에 대한 지나치다고도 할수있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16-01-26 02:43:04

그 시절 아이버슨이 떠오르셨다니 다행입니다.


과분한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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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1-25 03:05:19

아래 1편에 이어 글의 모든 부분 공감합니다. 01년 시즌에 래리브라운의 샤크를 막기 위한 카드로 당시 부상 중이었던 수비의 핵 래틀리프를 보내고 무톰보를 영입했던 건 신의 한수였죠.(비록 수비왕 출신 무톰보가 샤크를 통제 할 순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육탄전이 피 흘리면서까지 할 수 있는건 다했다고 봅니다.) 그들의 영혼의 단짝 타이론 힐은 블루컬러 워커로서 굳은 일을 도맡아 해줬었죠. 스몰포워드 조지 힐의 경우에도 수비에 강점을 둔 선수 였었고 키 식스맨이자 에릭 스노우가 벤치에서 보낼 때 그를 대신 할 수 있었던 애런 맥키의 볼 분배와 안정적인 득점 그리고 2번 수비 역할도 컸다고 봅니다. 01년 당시 맥키가 식스맨상을 수상했었죠. 05년 당시 이기가 맥키만큼만 해줬다면 아이버슨이 무리하게 돌파를 위주로 한 공격 전개를 줄일 수 있었을꺼라 봅니다. 아이버슨은 예전 매거진 루키의 기자님들 말따나 잭나이프였습니다. 작지만 날카로운 칼날 2번으로서 최고의 리썰웨폰. 사람들이 흔히들 기억하는 킬러크로스오버 드리블 이후의 돌파나 점프샷 만이 아닌 오프더 볼 무브먼트 후 캐치 앤 슛도 뛰어난 선수였고 그 바탕인 뛰어난 스크리너들의 역할이 컸죠. 팀 농구는 1:1이 아닌 5:5의 경기죠. 아이솔레이션을 통한 득점은 커녕 스크린과 볼 분배를 할 수 있는 선수들조차 부실했던 필리의 상황에서 아이버슨을 볼호그니 난사 선수로 비난하는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코비의 팬이기도 하지만 샤크가 떠난 이후 가솔이 오기 전 까지 코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필 잭슨은 떠났고 코비의 강한 에고는 루디 티를 내쳤고 오덤, 버틀러가 함께 했지만 샤크가 있던 시절의 로스터와는 확연히 달랐고 팀은 삐걱거렸고 코비는 난사를 하니 볼호그 비난에 시달렸었죠. 저 또한 당시에는 코비를 이해 할 수 없었구요. 팀의 상황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으면 가시적으로 보이는게 전부인 것 처럼 보이듯 오해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 또한 30개팀 82 경기를 모두 시청 할 수 없기에 많은 팀의 경기를 하이라이트와 박스 스코어 그리고 기사들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그로 인한 맹점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재 커리의 팬이기도 하지만 워리어스의 로스터가 커리를 중심으로한 현재의 로스터가 아닌 몬타 엘리스 중심의 워리어스였다면 팬들은 커리의 예측 불허 3점슛을 마냥 감쌀 수 만은 없다고 봅니다.
현재 캐벌리어스에서 감독의 전술 부재로 작년부터 고전하고 있는 케빈 러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전술을 펼텨야 하는데 약점을 부각 시키는 전술로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만들었었죠. (감독이 경질 됐으니 좋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랍니다.)
길거리의 1:1이 아닌 5:5 팀 바스켓볼은 감독의 전술의 비중이 50프로 이상 차지한다고 봅니다.(상대적으로 빈약한 로스터로 현재 팀을 잘 꾸려가는 릭 칼라일 99년부터 아직도 무서운 조직력의 힘 스퍼스는 두말해야 잔소리죠)
저도 래리브라운과 01년 필리 선수들이 그립네요. 몸빵과 간혹 점프샷을 성공시키던 대머리 하드워커 가이거를 포함하여
당시 부상 병동인 상황에서 기회를 얻었던 라자 벨(선즈 시절에도 좋아했습니다), 주메인 존스, 로드니 뷰포드까지 전부 그리운 밤이네요.
그리고 어느 분 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닿네요. 역사는 과정보다 결과로 기억된다는 것을......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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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1-26 02:56:49

본문보다 좋은 댓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시 무톰보 영입은 정말 최고의 한 수였죠. 래틀리프 기용이 어렵던 상황에 팀과 조금 안맞던 쿠코치를 보내면서 얻은 당시 최고의 영입이었습니다.


이기는 사실 필리팬들이 맥기만큼만 해주길 정말 바랬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참 안되었었죠. 어찌나 원석이던지, 빛이 나기는 하려나 했는 데 요즘에는 정말 빛나는 선수가 되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아쉽습니다.^^


당시 필리는 1개의 창과 4개의 방패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던 팀이었고, 조지 린치, 타이론 힐같은 선수들이 정말 수비에서 공헌도도 컸고, 아이버슨의 컬과 필리 선수들의 스크린이 만나 멋진 전술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말 그대로 아름다운 동네 한바퀴였다고 할까요?^^


저보다 기억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들이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라자 벨도 당시에는 무명이었는 데, 기회를 놓치지않고 보여준 투지넘치는 모습이 정말 좋았었죠.


저도 내쉬옆에서 똑같은 플레이를 계속 보여주는 라자벨을 정말 좋아했고, 응원 많이 했습니다.


코비가 가장 부러울 때가 바로 능력있는 프론트오피스와 명장과 함께 다시금 전성기를 보냈다는 부분입니다.


아이버슨도 브라운 감독과 그 시절 최고의 프론트오피스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면 어땠을 까란 생각도 많이 합니다.


빌리킹시절의 아이버슨은 정말 보고 있기도 맘이 아팠거든요.


역사는 과정보다 결과로 기억되는 것은 맞지만, 저나 Agent 0 님같은 앤써 팬들에게 앤써는 언제나 최고로 기억될거라 믿습니다. 전 우승 한번 못하고 떠난 앤써지만 그래도 앤써가 너무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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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1-29 01:55:15

불꽃앤써님 덕분에 간만에 과거 회상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게 아이버슨은 데뷔 때 부터 좋아했지만 99년부터는 더더욱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답을 줬던 "디 앤써, 답사마"였습니다. 당시 XXL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절대 우승을 위해서 팀을 옮길 생각은 없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겠다. 입단 당시 팀은 꼴찌였지만 우린 이제 플레이오프를 노린다. 그리고 우승을 향해 달릴거다." 라고 발언 했었는데(제 기억이 흐릿해져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뉘앙스는 저게 맞을겁니다) 순간 전율이 느껴지면서 아 이런 정신으로 원하는 일을 미친듯이 덤비며 살아야겠구나 했었습니다. 덕분에 돌고 돌아서 가고 있지만 결국 원하는 일을 하고 있구요.
정말 생각만해도 화가 치솟는 '빌리킹' 여전히 치가 떨립니다. 어떻게 심각할 정도로 무능한 양반이 여태 리그에 기생충처럼 생존해 있는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다. 불굴의 정신 로키 발보아 같은 필리 프랜차이즈를 깊은 수렁에 빠트려놓고 도망가다시피 또 다른 자리에서 미친듯이 똥을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살인사건 안나는게 신기 할 정도 입니다. 96 드래프트 당시 아이버슨을 뽑고 다듬어 나가던 주역 중 한 사람 아이버슨 못지 않게 뜨거운 심장을 가진 상남자, 팻 크로치 단장? 부분 구단주??? (제 기억으론 구단주였는데 밀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기억이 안나네요. )가 아이버슨과 함께 끝까지 필리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래리 브라운과 일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과도하게 열정적이고 입이 너무 가벼워 문제인 괴짜이자 누구보다 자신의 구단을 사랑하는 마크 큐반 구단주를 사모 아닌 사모하는 입장입니다. 아이버슨이 뛰던 시절 그런 구단주를 만났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는 아쉬움 말이죠...... 물론 눈앞의 이익 밖에 모르는 머저리 같은 선즈의 사버 구단주도 있지만요.(그럴꺼면 제발 열정적인 양반에게 거액에 팀을 팔라고요ㅠㅠ)
아이버슨 말년위 행보가 마음을 쓰리게 하지만 제게 보여준 99~01까지(그렇다고 02~06의 필리의 모습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드라마 같던 99~01년까지 이뤘던것을 감안했을 때 점점 아쉬운 점들이 커져만 갔었던 기억들이라서요)개인적인 그리고 팀 플레이어로서의 성장은 여전히 제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승부에 굶주린 모든걸 다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비장한 언더덕을 응원하는 마음이랄까요? 마치 록키 발보아처럼요......

WR
2016-02-03 02:01:09

앤써가 Agent 0님의 인생의 롤모델이었네요.


정말 멋진 선수였죠. 저도 살면서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농구에 빠져들게 만든 것은 조던의 불스였는 데 심장이 뛰게 만든 선수는 앤써였어요. 팻 크로치 gm 기억납니다. 정말 멋진 분이셨죠. 브라운-크로치 라인은 정말 최고였어요. 과감한 선수구성으로 브라운 감독이 원하는 팀을 적절하게 만들어준 분이셨죠. 추진력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크로치-브라운 떠나면서 팀이 무너진게 컸어요. 빌리킹 단장은 정말...


Agent 0님께서 02-06 필리를 보시는 것이 힘든 것도 공감합니다.


저도 필리팬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아이버슨 팬으로써는 버티기 힘든 순간이죠.


다시 필리왔을 때 너무 좋았고 결국 주전이 힘들 때 바로 은퇴한 모습 등. 앤써의 모습은 마지막까지도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좋아한 선수였어요.


제 기억속의 앤써와 크로치단장, 브라운 감독님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보다 좋은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2016-01-25 09:00:54

모든 부분에서 백프로 공감합니다.

WR
2016-01-26 02:49:48

과분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2016-01-25 09:07:27

근래 보기드문 번역글이 아닌 명문의 글입니다

WR
2016-01-26 02:50:44

그리 보아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2016-01-25 10:52:41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간지의 변호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WR
2016-01-26 02:52:35

라스트슬래셔님의 좋은 칼럼에 이런 변호글로 답하게 되어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냥 오래된 아이버슨 팬의 푸념글이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리 댓글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스트슬래셔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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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17:45:15

이기와 코버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웨버의 기량저하부분이 감춰지면서 앤써가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받는 느낌을 가끔 받을 때가 있어요. 특히 리그 트렌드가 효율성으로 바뀌고 릅,듀,노비 등 역사상 최고 수준의 슈팅효율성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당시 앤써를 제외하면 베스트5 라인업(앤써,이기,코버,웨버,달램)에서 볼핸들링이나 드리블 돌파가 가능한 선수가 딱히 없다는 점(지금의 이기만 보신 분이라면 공감이 어렵겠지만)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R
2016-01-26 02:54:53

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앤써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앤써가 조금은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MDE와 코비, 던컨이 존재하던 그 시절에 MVP를 받은 선수인걸요.^^


이 글도 그런 차원에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2016-01-26 19:05:16

AI to AI 기억나네요. 필리 이기는 지금과 완전 다른 선수였죠. 후에 리딩과 핸들링을 장착하고 작년에 식스맨으로 파엠받는거보면서 앤써 생각 많이나더군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WR
2016-01-27 09:32:25

저도 근래 이기보면 앤써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앤써가 요즘 시대로 돌아와서 이기-코버와 함께 혼즈셋을 구사하는 팀에서 뛰어본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16-01-26 19:21:49

추억의 이름들이 많이 등장해서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당시 네츠의 골수 팬이었지만 필라델피아도 눈여겨보던 팀 중 하나였는데 사실 지금 기준으로 주전라인업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아이버슨 웨버를 제외하면 가능성은 보이지만 어느팀에서도 주전을 장담할수없는 주전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고 벤치엔 쓸만한 선수가 거의 없었죠... 존 샐먼스도 만개하기 시작한건 아이버슨이 팀을 떠나고 개편하면서 부터 였던걸로 기억하네요. 웨버조차 이미 인저리 프론으로 전성기가 아닌 선수였고, 믿고 맡길말한 선수가 아이버슨밖에 없는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팀사정상 2번 롤이 효율적임에도 1번을 전담했고 어시스트 숫자도 상당햇던걸로 기억하는데 이 시기 아이버슨은 볼호그보다는 무주공산의 독보적인 에이스같은 느낌이었네요 저에겐.
추억 떠올려주신 글 써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WR
2016-01-27 09:33:28

무주공산의 독보적인 에이스! 딱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빌리킹과 오브라이언 체제이후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파트너들을 잃어버린 팀에서 정말 혼자 고군분투했었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6-01-26 20:14:13

요즘 사정상 매니아를 잘 못보다 우연히 잠깐 왔는데 이런 좋은글이 있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때 필리팬 하면서 키크고 2번수비되고 경기조립 끝장나는 키드를 그렇게 데려와보고 싶었는데...
WR
2016-01-27 09:34:18

아... 키드... 정말 탐나는 선수죠.


키드와 함께하는 앤써라면... 상상만으로도 기분좋아지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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