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6 시즌 필리. 그리고 아이버슨에 대한 이야기. (2)
또한 당시 필리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더 있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문제였을지도 모르는 부분인데요.
핵심 벤치 멤버 혹은 주전 2번으로 평가받던 윌리 그린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즉, 필리에선 믿고 공격 혹은 수비를 맡길 벤치 멤버가 없었다는 겁니다.
농구는 5명이 하는 것이 아니죠. 저는 당시 주전 라인업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설사 좋았다고 해도 필리의 당시 후보 선수들의 뎁쓰는 리그 최하수준이었고 이런 구성으로 플옵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봅니다. 더욱이 막 부임한 감독이 이런 선수들로 시너지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려웠겠죠.
부상 중인 윌리 그린을 빼면 당시 라인업은 존 샐몬스, 케빈 올리, 쉐브릭 랜돌프, 리 네일런, 그리고 맷 반즈인 데, 맷 반즈는 당시 필리에서 그리 활약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 외 선수들 중에도 실력이 특출난 선수는 없었습니다.
필리의 가장 큰 문제가 시즌 중반 이후 주전들의 혹사로 인한 경기력 저하이기도 했다는 것은 이 부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팀 구성에서 아이버슨이 돌파 위주의 플레이로 팀을 이끈 것이 비판받을 상황인 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쉬같은 선수가 온다면 이 당시 필리라도 플옵에 갔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팀 상황이 아이버슨이 돌파 위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플레이 스타일의 효용성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아이버슨의 돌파 외에 필리는 미들레인지로 진입가능한 선수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수비 공간을 찢어주고 동선을 열어주는 아이버슨의 돌파가 없었다면? 당시 필리의 공격이 어떠했을 지는 필리팬으로써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입니다.
이 시즌에 아이버슨의 상대팀 대비 온 오프코트 오펜시브 레이팅이 +8.5입니다.
약팀이었던 것을 감안해도 이 정도면 팀 내 공격에 있어서 절대적인 비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죠.
웨버를 제외하고는 1인 공격 옵션이나 패스 게임조차 거의 힘들었던 팀에서 아이버슨의 돌파 시도횟수 15~20개가 선수 성향을 감안할 때 심각했다고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라는 점은 1번으로 본다면 분명 맞습니다. 게임 조립이 되는 선수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05-06 시즌에 부득이하게 아이버슨이 1번 롤을 수행했으나 팀에서는 아이버슨이 2번인 것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2번 롤도 1번 롤 이상으로 길게 수행했음을 감안한다면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맞는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듭니다.
아이버슨이 팀을 플옵으로 끌고 가지 못했기에 그의 기량이 아쉬웠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요.
사실 아이버슨의 가장 큰 문제는 미스매치로 인한 수비 부분이고, 당시 정말 심각한 신장 문제를 겪었던 필리는(1-3번 라인업 중 2미터 이상 선수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코버와 이기도 198 cm죠.) 이로 인해 결국 플옵 진출에 실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리딩은 템포 조절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전술 전개방식은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쉬의 경우 훌륭한 리딩 플레이어이며 위대한 포인트 가드였지만, 슈팅이라는 부분을 배재하고 본다면(내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지만) 2 : 2 게임과 아이솔레이션 후 킥아웃이 주무기였던 것은 아이버슨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두 선수의 차이점은 내쉬는 경기 템포를 조절할 줄 알았고, 돌파와 슈팅에 대한 판단이 팀 공격 전개 차원에서 이뤄져 팀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반면, 아이버슨은 본인의 한계로 인해 게임 조립을 할 수 없어 필수적으로 이 부분을 해결해줄 선수가 필요했다는 점이죠.
결국, 이쯤 되면 아이버슨은 그냥 단신 스윙맨이라고 보셔도 될 겁니다.
우리가 스윙맨에게 게임 조립을 굳이 요구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일반적으로 수준급 스윙맨 존재 시 스윙맨은 득점을 비롯한 다양한 플레이로 팀의 경기력을 끌어주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게임 조립과 리딩으로 경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은 1번이 수행했으니까요.
지금은 지역방어 안착 후 다양한 공격 전술로 듀얼가드의 전술적 · 공격적 리딩이 가능하나 당시에는 현재와 같이 듀얼가드들의 공격적 리딩이 전술적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냉정하게 볼 때, 아이버슨의 단점은 2번임에도 작은 신장에 있었고, 필리는 이 부분을 알고 있었기에 이 시즌에도 장신 1번인 존 샐몬스를 꽤나 중용했던 것이고요.
코버는 05-06 시즌에 첫 풀타임 주전 발탁에도 불구하고(현재만 보면 절대 믿으실 수 없겠지만 이 당시에는 코버가 첫 풀타임 주전이었기 때문에 오프 더 볼 무빙이나 공격 전개에서 미숙한 점이 다소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31분 출전에 무려 184개의 3점을 성공시켰는데, 이중 99개를 아이버슨이 만들어주었습니다. 절반이 넘는 수치죠.
05-06 시즌 당시 아이버슨의 돌파가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은 이런 점에서 동의하기 힘듭니다. 아이버슨은 05-06 시즌에도 결국 2번 롤에서 많은 시간을 뛰었으며, 2번 롤에서 돌파의 효율은 코버를 살려준 상황을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필리에서 코버 외에 믿을 수 있는 슈터는 한명도 없었거든요.
간간히 이궈달라의 최근 플레이를 보면서 당시 이기의 슈터로써의 효율이나 돌파력이 지금만 같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웨버와의 픽 앤 팝은 종종 나오긴 했으나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했는데, 아이버슨이 3점 슈터를 살리는 데 더 재주가 있었던 점도 있고 웨버의 빠지는 움직임이 날래지 못했던 문제도 있었습니다. 좀 복합적이었죠. 여하튼 05-06 시즌 당시 아이버슨이 돌파 후 득점을 주로 노렸던 선택의 이면에는 반드시 팀 구성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아이버슨의 한계는 팬으로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볼호그란 비판도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팀 내 수비력이 절정이었음에도(리그 2위) 기대치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02-03 시즌의 아이버슨은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브라운 감독이 떠난 상황은 더욱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05-06 아이버슨은 돌파를 위주로 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버슨이 볼호그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그가 확실히 돌파 위주의 선수였으며, 그 뛰어난 오프 더 볼 무브조차 본인의 공격을 위해 썼다는 부분이고 그건 팬으로써도 참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찌보면 래리 브라운을 만난 후 아이버슨이 MVP까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본인이 못하는 리딩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2번이자 효율적인 득점 머신으로 변신한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1번이 아니라는 전제라면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렇게까지 비효율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그 깐깐한 브라운 감독이 “아이버슨은 어느새 뛰어난 팀 플레이어가 되었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물론 아이버슨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는 제한점이 너무 많습니다.
스노우와 함께 뛰던 여섯 시즌과 스노우가 없던 나머지 시즌에서의 아이버슨의 평가만 봐도 그것은 극명합니다(빌리킹님. 스노우를 왜 보냈나요...).
하지만 스노우와 함께했던 아이버슨은 그리 비효율적인 선수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특히, 00-01 시즌에는 말이죠.
00-01 시즌 당시 아이버슨이 있었던 필리의 수비력은 정말 엄청났습니다(리그 5위, 평균 90.4 실점).
아이버슨이 못하는 압박 수비를 보충하기 위한 필리의 선택은 스노우였고, 골밑에는 수호신 무톰보와 래틀리프가 있었죠(두 명은 함께 있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벤치에는 필리 팬들에게는 최고의 식스맨이었던 애런 맥기가 있어 경기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브라운 감독의 수비는 압박을 키워드로 하는 엄청난 활동량과 동선 제한을 바탕으로 하는 전술을 베이스로 했는데, 지역방어가 없던 00-01 시즌에도 현재 트렌드 중 하나인 존 디펜스와 맨 투 맨을 혼용하는 수비를 펼쳤다는 부분에서 수비에 있어서는 정말 선구자적인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브라운 감독이 강조한 것은 두 가지. “세컨 찬스는 주지 않는다.”와 “레이업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하프코트에서부터 볼을 운반하는 선수를 압박해 코트를 쉽게 넘지 못하게 하는 한편, 페인트존으로 한 번에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며, 볼핸들러가 이동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늦추게끔 유도하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1선 압박을 담당하는 스노우 옆에서 아이버슨은 뛰어난 스틸 능력으로 압박을 보조하고 공격 동선을 제한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습니다. 압박을 주로 하는 선수들이 스틸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기에 아이버슨이 수행한 보조 압박을 위한 스틸러로써의 역할도 팀 디펜스 전술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평균 스틸 2.5개로 리그 1위).
이런 상황이다 보니 팀의 공격 속도는 사실 매우 늦은 편이었는데(리그 19위), 그럼에도 공격에서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버슨의 존재가 컸죠.
그리고 이것이 아이버슨이 그 시즌에 MVP를 수상한 배경입니다.
하지만, 05-06 시즌은 구성만 보면 마치 00-01 시즌 당시 필리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 이 당시 필리의 팀컬러는 공격의 팀이었지 수비의 팀이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당시 GM이었던 킹은 칙스 영입으로 이 팀에 수비 전술을 심으려 했지만 정작 수비전술의 확립은 06-07 시즌에야 실현됩니다.
하지만, 당시 필리 팬으로써 한 가지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시 필리가 약팀이었던 배경이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이고(빌리킹이 트레이드로 당시 욕을 참 많이 먹었죠), 아이버슨은 볼호그일지언정 돌파로만 게임을 풀 줄 알고 다른 장점은 전혀 없는 선수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브라운 감독을 만난 후 필리에서의 아이버슨은 1번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팀에서는 아이버슨이 2번임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고 아이버슨이 필리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계속적으로 아이버슨이 2번 롤을 수행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선수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했었습니다.
또한 덴버의 당시 감독이었던 조지 칼도 아이버슨 영입 시점에 아이버슨을 2번으로 기용하려 했던 정황증거는 계속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어떻게든 밀러는 끝까지 지켜 밀러-아이버슨-멜로의 라인업을 만들어, 밀러를 축으로 하는 공격 전개 내에 아이버슨의 공격을 심으려 했던 시도를 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필리에서 너무 강력히 밀러를 원했고, 다른 팀들의 영입 경쟁으로 인해 급해진 덴버가 어쩔 수 없이 밀러를 포기하면서 이 라인업은 현실화되지 못했었죠.
하지만, 이후에도 조지칼은 스티븐 블레이크를 영입해 아이버슨과 동시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버슨을 2번에 정착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다음 시즌 블레이크가 팀을 떠나면서 이 플랜이 다시 엉켜버렸고, 어쩔 수 없이 앤쏘니 카터가 중용되었지만, 카터가 블레이크만큼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버슨이 덴버 첫 시즌에 보여주었던 짧았지만 강렬했던 2번으로써의 모습을 덴버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는데, 이는 팬으로써 너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스노우가 없었던 아이버슨은 분명 볼호그일 수도, 난사왕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이버슨은 1번으로는 좋은 효율을 낼 수 없는 선수거든요. 2번에서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 팀원으로써 경기에 임해야만 빛이 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05-06 시즌도 그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 아이버슨은 최고의 플레이어도 아니고 팀을 우승으로 끌고 가기에는 너무 많은 제한점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던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파트너를 심각하게 가렸을 뿐 돌파만 할 줄 아는 선수는 절대 아니었으며, 팀원 운(아이버슨을 2번으로 정착시켜줄 수 있는 장신 1번)이 좀 받쳐준다면 최소한 팀 플레이어로써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는 될 수도 있었다는 점. 이것을 얘기하고 싶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두서없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해마지 않던 래리 브라운 감독님과 슈팅가드 아이버슨이 함께 했던 00-01 시즌의 필리가 너무 그리운 밤입니다.
아이버슨팬으로서 정말 좋은글이네요. 저도 이글을 읽으니 아이버슨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너무 그립습니다. 저는 필력이 없어서 이런글 쓸 엄두도 못낼텐데 앤써에 대한 지나치다고도 할수있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