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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필리. 그리고 아이버슨에 대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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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01:59:08

나름 오래되었다는 필리팬으로써 05-06시즌 당시 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매니아진에 최근 개재된 라스트슬레셔 님의 좋은 글을 봤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고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이버슨에 대해서는 오해가 될 만한 언급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뛰어난 개인 성적에도 볼호그이자 팀을 플옵에 진출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리던 아이버슨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어서 쓰는 글이고, 어쩌면 변호 글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글솜씨가 없어 장문의 글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부득이하게 연속되는 글임에도 가독성을 위해 글은 2 part로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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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당시 필리는 플옵 진출에 실패한 약팀입니다.

 

무려 아이버슨-이기-코버-웨버-달렘베어의 라인업으로 말이죠.

 

각 선수들의 맥시멈 기량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아이버슨은 팀 리더이자 에이스로써 분명히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저 라인업이, 아니 필리의 당시 라인업이 정말 강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궈달라와 코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팀을 떠난 지금도 이 선수들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있으며, 그 활약에 일희일비할 정도죠.

 

하지만, 이 선수들의 기량은 당시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평가가 놀라울 정도라 할 수 있죠.

 

먼저 코버. 이 선수 드래프트 픽이 무려 2라운드 22픽입니다. 필리 와서 그 재능이 피어나기 시작했지만 이 당시에도 코버는 수비 아쉬운 전형적인 3점 슈터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더욱이 풀타임 주전이 된 첫 시즌이었고 당시 시즌에 코버의 3점 슛 성공률은 43.8%로 매우 좋았지만, 무려 필드골 시도의 57.6%3점이었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코버의 역할은 캐치 앤 슈터, 그것도 3점 슈터로 한정되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코버의 최대 강점은 아이버슨-웨버에게서 나오는 킥아웃을 통한 3점 슛 메이드였죠.

 

코버는 당시 정말 수비가 아쉬운 3번이었고, 이후 시즌 윌리 그린 복귀 후에는 수비력 때문에 식스맨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오히려 필리에서의 마지막 두 시즌동안 칙스에 의해 스몰라인업 4번 롤이 가능하다는 재능이 발견되면서 기량이 향상되기 시작했고, 이후 유타에서 그 재능이 펼쳐집니다.

 

이궈달라. 참 좋은 선수죠. 지금 골스에서 보여주는 이궈달라의 모습은 제가 이기에게 원하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준수한 볼핸들링. 뛰어난 패싱. 깔끔한 3점 슛.

 

하지만 당시 이궈달라는 완성형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3점 슛 성공률이 35.2%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도 자체가 많지 않았고(56개 성공), 거의 대부분이 캐치 앤 슛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슈팅 속도가 좀 느려서 슈터로써 가치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패스가 참 좋은 선수였고, 특히 뛰어난 락다운 디펜서였지만, 당시 이궈달라는 볼핸들링이 좋지 못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궈달라가 화려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골밑 마무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공격기술이라고는 몸으로 밀고 들어간 후 어정쩡한 슛과 덩크가 다였고, 풀업점퍼는 장착되지 못한 선수였죠.

 

이궈달라의 역할은 팀 디펜스의 핵심인 락다운 디펜서. 그리고 속공상황에서의 링커와 트레일러. 하프코트 상황에서의 공간 창출을 돕는 것에 한정되었죠(AI to AI는 필리 최고의 하이라이트였지만 대부분이 오픈 코트에서 나왔습니다).

 

이궈달라의 발전은 에이스로 정착한 후에도 쉽게 이뤄지지 못했고, 특히 볼핸들링의 개선이 용이하지 못해서 에이스 정착 후 3년 동안 수많은 2번 정착 시도에도 불구하고(테디어스 영의 존재로 인해) 3번 롤만 수행했습니다.

 

달렘베어. 좋은 러닝센터입니다. 빠르고 탄력 넘치는 선수죠. 하지만 박스아웃을 잘 못하고 당시에는 점퍼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평균 26.7분을 뛰었는데 파울트러블이 그 이유였죠(평균 3.7).

 

거의 매 경기 파울트러블에 시달리는 주전 센터. 별명이 달렘백호인 선수.

 

운동능력이 저하된 웨버 - 볼핸들링이 안 되는 슈팅가드 이기 - 수비가 안 되며 공격 시 볼핸들링이 안 되는 오로지 캐치 앤 슈터 코버 - 모든 것이 미숙한 달렘백호까지.

 

이것이 05-06 필리의 당시 주전라인업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필리 센터라인은 달렘베어-스티브 헌터-쉐브릭 랜돌프였습니다.

 

이름들이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스티브 헌터는 달렘베어의 파울트러블을 메우기 위해 반 주전처럼 뛴 친구인데요.

 

준수한 블락 능력을 가지긴 했지만, 수비 범위가 제한적이고 BQ가 그리 좋지 못한 선수였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친구도 파울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죠. 공격 시에는 의외의 훅샷을 가지고 있어 달렘베어보다는 도움이 되었지만(달렘은 수비형 선수라고 해야할까요?이것도 애매하긴 합니다), 팀 전체 공격력을 끌어줄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랜돌프는 듀크대 출신의 백인센터였을 겁니다. BQ가 좋고 허슬이 뛰어나 중용된 친구였지만 냉정하게 서브전력으로도 아쉬운 선수였습니다.

 

당시 필리 센터진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고, 뚜렷한 주전을 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습니다(파울트러블 때문에).

 

웨버가 운동능력 저하로 예전만 못한 보드장악력과 림 프로텍션을 보이는 와중이었던 지라 약한 센터진은 더욱 아쉬웠죠.

 

달렘베어는 더욱이 박스아웃이 좋은 선수도 아니었고, 헬프 앤 리커버에 대한 개념이 약했으며, 블락에 너무 의존하는 수비성향 때문에 제한적인 수비 롤밖에 줄 수 없던 선수였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버티는 힘도 약해 힘 좋은 선수는 웨버가 맡는 경우가 많았죠(헌터도 마른 체형의 선수입니다. 랜돌프는 운동능력이 너무 나쁜 선수였죠). 블락능력=림 프로텍션 능력은 아니니만큼 당시 필리는 심각한 골밑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필리는 아이버슨이 2번으로 뛸 때 최고의 성과를 내었던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팀이었습니다.

 

05-06 시즌은 당시 감독이었던 모리스 칙스 감독의 필리 감독 데뷔 시즌이었는데요.

 

아이버슨을 살리기 위해 칙스가 수행한 전략 중 하나가 존 샐몬스의 중용이었습니다.

 

샐몬스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에릭 스노우가 생각나게 하는 리딩이 가능한 장신 1번이었고, 시즌 초반 이 선수 옆에서 아이버슨의 능력은 폭발했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 팀 케미스트리 문제로(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샐몬스를 기용 못하는 팀 내부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샐몬스 본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터뷰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샐몬스가 기용되지 못하면서 이 팀의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칙스가 부임한 후 팀에 심고자 한 것은 일단 수비입니다.

 

하지만 필리 수비는 05-06 시즌에는 심각한 부침을 겪었으며, 칙스의 수비 전술은 06-07 시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래리 브라운 감독의 다운 그레이드형 디펜스 전술).

 

공격에서는 웨버와 아이버슨의 롤을 명확히 해주고, 아이버슨의 뛰어난 오프 더 볼 무빙과 웨버의 패스를 살리는 전술을 추가로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버슨을 확실히 살려주던 하이포스트의 1번이 샐몬스 한 명이었다는 것이고, 이 선수가 그리 많이 기용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아이버슨에게 가장 좋은 스크린을 서주는 선수가 웨버라는 아이러니 때문에 웨버가 볼을 잡고 하이포스트 게임을 시작하면 정작 아이버슨에게 오프 스크린을 서줄 선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코버는 캐치 앤 슈터로써 외곽에 주로 위치하고(3&D 성향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스크린은 달렘이나 헌터가 서줘야 하는 데 둘은 그리 스크린이 좋지 못합니다.

 

오프 스크린이 가장 좋은 5번은? 아이러니하게도 랜돌프입니다.

 

코버-이기가 오프 더 볼 무드와 스크린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수준급까지는 아니었죠.

 

필리에서 아이버슨-웨버 듀오의 경기력이 가장 뚜렷하게 살아난 순간이 바로 샐몬스-아이버슨-코버(이기)-웨버-랜돌프 라인업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주전 라인업 기용 시 필리 전술의 제 1번은 아이버슨의 아이솔레이션 후 마무리 혹은 킥아웃이 분명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시 아이버슨은 리차드 해밀턴과 비견될만큼 리그에서도 스택, 스태거드 전술에 가장 적합하면서 컬을 잘하는 2번이기도 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버슨의 문제는 공격 시 2번일 때 그 효율이 극대화되는 데, 수비에서는 2번으로써 심각한 미스매치였다는 것이지 공격 시 아이버슨이 아이솔레이션으로만 게임을 푼 선수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05-06 시즌 당시에도 아이버슨의 슈팅은 컬 후 웨버의 패스를 받아 마무리시키는 점퍼도 성공률이 상당히 좋았지만, 아쉬운 점은 아이버슨에게 오프 스크린을 서줄 수 있는 선수가 웨버와 랜돌프 두 명뿐이었으며, 아이버슨이 무빙할 때 리딩해 줄 샐몬스는 밝혀지지 않은 문제로 인해 시즌 내내 기용이 다소 들쭉날쭉했다는 점입니다(스택, 스태거드가 거의 나오지 못한 이유입니다).

 

거기에 샐몬스는 사실 주전급 선수도 아니었죠. 그 외 필리의 1번은 케빈 올리라는 노장 선수뿐이었는데, 이 선수도 출전 시간은 다소 주어졌지만 당시 기량은 마찬가지로 후보로도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아래 칼럼에 라스트슬레셔님 글을 보면 아이버슨의 돌파 시도를 임의로 산출하신 것이 있습니다.

 

좋은 글에 반론을 펴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당시 아이버슨이 05-06 시즌에 슈팅을 성공시킨 총 개수 815개중 226개가 어시스트를 받아 성공시킨 득점입니다. 이는 27.7 %의 비율입니다.

 

물론 어시스트에 의한 득점이 중간 집계에는 169개로 집계되어 있어 오차가 있긴 하나, 이 또한 24.04%로 말씀하신 대로 42번의 공격 시도가 있었다면, 그 중 대략 30번이 돌파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NBA.com 공식 집계로 볼 때 이 시즌 아이버슨은 성공한 전체슈팅 중 192개의 드라이빙 후 골 밑 마무리를 기록했으며, 러닝샷은 총 92개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체 슛 성공 중 34.8%의 비율로 실제 아이버슨의 돌파 시도횟수는 이외 돌파를 감안하더라도 경기당 15~ 20번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수치도 굉장히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아이버슨이 1분간 1회 꼴로 돌파만 시도한 그런 심각한 돌파중심의 선수는 아니라는 반증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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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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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1-25 02:26:00

저도 당시 아이버슨 팬으로서 공감합니다. (특히나 불꽃앤써님은 아이러브nba의 필리팸에서도 열성적이셨던걸로 기억합니다.) 01년 파이널 이후 래리브라운이 다져놓은 팀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고 말씀하신 05~06년 시즌은 비참한 로스터의 문제 많았던 전술 등에 지쳐 당시 아이버슨 팬이라 자처했던 저 또한 필리 경기를 점차 외면하기 시작한 시점 이었습니다. 현재 애틀랜타의 코버와 골스의 이기의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특히 이기의 경우에는 말씀하신대로 볼 핸들링이 암담한 수준이어서 에릭 스노우나 아론 맥키의 역할은 절대 불가능하던 상황이었죠. 풀업 점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구요. 샐먼스는 애초에 어떤 이유든 아이버슨과 함께 코트에 나온 시간이 얼마 안되었고 말씀하신대로 습자지 마냥 얇디 얇은 당시 필리의 인사이드는 무톰보의 수비 기량 1/10도 안되는 박스아웃과 공격시 스크린이 모예요의 외장하드로도 구제가 안되었던 날아오는 공 따라 다니기 바뻤던 본능에 충실한 달람백호와 종잇장 같은 몸으로 골밑 수비와 리바운드는 커녕 몸싸움조차 안되는 전봇대 스티브 헌터 그리고 무릎이 나간 이후의 스피드를 전혀 기대 할 수 없었던 웨버였죠. 랜돌프 역시 앤써님께서 말한 수준이었구요. 01년의 필리와 비교하면 그 당시 벤치 스쿼드만도 못한 라인업이었습니다. 애초에 안전하게 볼을 돌릴 수 있는 선수는 웨버와 아이버슨 뿐이었고 나머지는 엄연히 기량 미달이었죠. 그 상황에서 아이버슨이 01년에 많이 보여줬던 스크린을 타고 해밀턴 뺨치는 오프 더 볼 무브먼트는 할래야 할 수가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 아이버슨의 움직임으로 비난 받는건 말도 안된다고 봅니다.

WR
2016-01-26 02:37:10

그 시절을 기억해주시니 송구스럽습니다. 당시에는 필리팬인 것이 정말 너무 행복했었고, 아이버슨 팬이어서 더욱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필리는 오브라이언 부임과 빌리킹의 거듭된 트레이드 실패로 로스터가 굉장히 황폐화되고 팀이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죠. 그나마 칙스가 부임하고 팀이 어느정도는 수습되어서 다행이었지만, 05-06 시즌은 사실 아이버슨 혹사의 결정판같은 시즌이었던 지라 정말 보고 있기가 힘든 시즌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코버와 이기가 현재 잘해줘서 너무 기특한 한편으로 조금만 포텐이 빨리 터져줬다면 좋았을텐 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인사이드였죠. 주전감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고 봅니다.

당시에도 제가 필리는 센터 수급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백호는 참... 애증의 선수입니다. 미워할 수는 없는 데 보고있으면 가슴한켠이 답답해져오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던... ^^; 그런 친구였죠.


제가 당시 랜돌프를 참 아꼈는 데 그나마 필리 센터중 유일하게 농구를 아는 친구여서 그랬을 겁니다. 그래도 기량적 한계는 사실 뚜렸했었습니다.


언급해주신 부분을 보고 있으니 그 시절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앤써는 당시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줬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고맙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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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11:29:4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당시에 토론토에 잠시 머물고 있어서, 저같은 토종 한국인도 NBA 경기를 직관하는 행운이 있었죠.^^


그 직관 경기 중에 필라델피아 경기도 있었습니다. 크리스 웨버, 아이버슨, 이궈달라, 달렘베어가 있는 그 라인업 말이죠. 불꽃앤써님이 적으신 내용들을 읽다 보니 정말 그 때 경기가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제 추억을 되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WR
1
2016-01-26 02:39:21

우와~ 제 평생 소원을 이루신 분이 여기 계셨군요!


제 평생 소원이 아이버슨이 와코비아 센터에서 뛰는 모습을 직관하는 것이었는 데, 그럼 당시 토론토에서 경기를 보셨겠군요.


정말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추억이 떠오르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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