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15가지.
얼마 전에 여기 매니아 사이트에서 NBA 스타들을 WWE 레슬러들과 비교를 해둔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를 보며 참 공감을 했던 것이 케빈 가넷을 케인에, 팀 던컨을 언더테이커와 비교를 한 것을 보고 적절한 비유를 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외 선수들로는 마이클 조던은 헐크 호건, 코비 브라이언트는 더 락 등등..
르브론 제임스에 매치되는 선수는 바로 존 시나 였습니다. 팬과 안티가 모두 많은 데다가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점 때문일까요? 제가 떠올린 선수는 브록 레스너였거든요. 레스너는 중간에 프로레슬링을 떠났기 때문에 업계를 대표하는 아이콘과는 거리가 멀긴 하구나 생각을 했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보입니다.
타이틀이 없더라도 자신의 종목에서 가장 강력한 선수라는 점, 압도적인 피저컬과 신체능력 등 공통점이 많지만 그보다도 그 둘을 비슷한 선상에서 보이게 하는 것은 끝판왕 같은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르브론이 리그에 입성할 때와, 젊은 르브론은 분명히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선수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모든 1st Team 선수들이 속한 팀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을 해나가는 스테판 커리 같은 모습이 아니었나 싶어요. 팀 상황부터 다른 점 투성이지만, 07년 파이널까지만 해도 저는 young LeBron이 사악한 대마왕 팀 던컨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 기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분명히' 르브론은 지금의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태도로 주목 받는 건전한 청년에 가깝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팬들이라면 훗 날 The Decision이나 Real World 같은 말로 팬들에게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킬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리얼 월드 발언에 대해서는 이미 매니아에서도 이야기가 된 끝에 르브론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이 났지만 그 외에도 팬들의 입에서 좋지 못한 이야기가 나올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의 르브론을 보면 예전의 Young LeBron은 존 시나에 비슷할지 몰라도 지금은 모범생의 끝장을 보여주는 존 시나와는 많이 멀어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영역에서 엄청난 상품성을 갖고 최정상에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요.
르브론을 오랜 기간 보아왔지만 어느 순간 예전에 르브론에 대하여 갖고 있던 생각과 이미지가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놀랐거든요.
제가 처음 NBA를 보았을 당시에 최전성기를 이미 마무리하고 조금씩 이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던 스타들을 보면서 느꼈던 심정이 최근 NBA를 접한 저보다 어린 분들이 르브론을 보면서 보면서 느끼는 심정과 비슷할까요? 부족하지만 오랜 기간 르브론 제임스를 응원한 입장에서 애정을 담은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냥 르브론에 대한 이야기들을 두서 없이 풀어보려고 해요. ^^
우리가 르브론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15가지 일들을 소개합니다. 대부분 리그에 입성하기 전의 이야기들입니다.
1. 르브론 제임스의 어머니 글로리아 제임스는 16세에 르브론을 낳았고, 르브론의 아버지는 아이를 감방에 다녀온 전과자였습니다. 르브론의 성인 James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따온 것입니다.
2. 르브론의 어머니가 겪은 많은 역경 중에서는 그녀의 어머니(르브론의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것들도 있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엄청나게 많이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 많은 역경 속에서도 르브론을 가난과 길거리의 건전하지 못한 문화, 폭력 등에서 보호하려 초인적인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농구 골대를 사줘서 어린 시절에 르브론은 오랜 시간 농구를 즐겼다고 하네요.
3. 르브론의 어머니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에디 잭슨이라는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르브론은 아버지를 갖는 것을 굉장히 좋게 생각했지만 잭슨은 마약 거래와 사기 등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4. 르브론의 어머니 역시도 감방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르브론이 4학년 때 절반이상의 많은 출석일수를 빼먹었는데, 어머니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그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워서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합니다. 일주일 정도 다녀왔는데 불법침입 등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5. 르브론이 학교를 빠지는 것을 본 프랭키 워커 코치는 그 어머니에게 르브론을 자신이 데려다가 자신의 가족과 같이 살게 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한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르브론은 5학년 때엔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르브론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르브론의 어머니는 집세를 내지 못했고 워커 코치의 도움을 그 후로도 받았습니다. 워커 코치의 아내가 글로리아 제임스가 주택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하네요.
6. 르브론은 농구 명문 고교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친구와 플레이하고 싶다는 것을 이유로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매리 고교에 진학하고 이미 1학년 때부터 엄청난 활약을 시작합니다. 한창 성장하는 10 대 때는 한 두살 차이만으로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마련인데 1학년 때부터 이미 온갖 상을 수상합니다.
7. 르브론이 학창 시절 좋아하는 과목은 미술이었습니다. 여전히 그의 시그니쳐 신발에도 디자인에 많은
관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8. 르브론의 고등학생 일 때에 정부 지원 주택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르브론의 18번째 생일 선물로 Hummer를 사주기 위해 대출을 받았습니다.
9. 르브론은 왼손으로 먹고 글씨를 쓰지만 르브론은 오른손으로 슈팅합니다. 또한 직관적 기억능력으로 화제가 되었었죠.
10. 르브론은 고교 시절에 이미 SLAM지와 Sports Illustrated지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르브론의 고교 농구 경기가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11. 르브론은 미식축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장학금까지 오퍼 받았지만 농구를 선택했습니다.
12. 르브론에 대한 관심이 과도하여 연습을 하기에 지장이 생길 정도여서 그 팀은 연습장소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13. 르브론의 아내인 서머나는 이미 NBA에 입성하기 전부터 교제하고 있었고 진작에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정에서의 르브론의 모습에 대해서 아내는 많은 칭찬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4. 르브론은 Vogue 지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흑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젤 번천과 함께 한 르브론의 사진 때문에 인종차별 논란으로 구설수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치 1930년대 킹콩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안고 있는 킹콩과 비슷하다고...
15. 르브론은 2003년 5월에 나이키와 $90m 이상의 초대형 계약을 맺습니다. 7년 93 밀리언 달러의 계약인데 이 때가 르브론의 나이가 불과 18세 였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시그니쳐 신발이 나왔고, 오스카 로버트슨과 마이클 조던에 이어 20-5-5를 신인시절에 기록한 것을 기념하는 농구화도 발매되었습니다.
르브론에 대해서 쓰려면 워낙 이야기거리가 많은 선수라 끝이 없을 것 같아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분명 남들보다 어려운 가운데서 자랐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수차례 보여주었지만, 개인의 사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문제가 거론된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들보다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은 그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숨어있을까요?
이제는 르브론이 더 이상 누군가를 넘어서주길 바라며 응원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를 먹고 현실의 삶 속에서 때론 지치지만 그저 제 어린 시절에 농구 영웅이었던 선수를 아직도 이렇게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젠 잔잔한 행복을 느낍니다. ^^
저 역시 르브론이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으나 슈퍼스타지만 사생활이 시끄럽지 않았다는 점과 꾸준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곤 감탄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