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프랭크 카민스키
여러분도 매해 드래프트 기간 가장 많이 관심이 가는 루키가 있을 겁니다.
그 친구가 내가 본 그 장점을 제대로 살려 NBA에서 부디 성공하길 바라면서 말이죠.(당연히 내가 보는 눈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상당하죠.)
저 역시도 그렇고 이번 드래프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친구가 3명입니다. 프랭크 카민스키, 윌리 컬리 스테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입니다. 25년 가까이 피닉스 광팬으로 살다 보니 매해 드래프트마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는 선수들이 빅맨들이네요.
이 중에서 피닉스가 현실적으로 가장 뽑을 가능성이 높고, 제 눈으로는 가장 크게 성공할 것 같은 선수가 바로 프랭크 카민스키입니다.
‘프랭크 더 탱크’ 또는 ‘더 무스(Moose, 북미 큰 사슴)’라는 별명을 가진 프랭크 카민스키, 실링이 굉장히 낮고 이미 다 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이 4학년 졸업생. 이 친구에게 무엇을 기대하기에 2015년 드래프트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 하는지 어이없어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이 친구에게서 1996년 드래프트 당시의 4학년 졸업생 ‘스티브 내쉬’가 연상됩니다. 스티브 내쉬의 향기가 짖게 나는 카민스키가 미래에 MVP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제가 왜 프랭크 카민스키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그가 위스콘신을 졸업하며 남긴 이별의 글을 번역해서 올립니다.
일단, 프랭크 카민스키가 누군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신체사이즈, 대학교 4학년 성적에 대해 간략하게 올리겠습니다.
프랭크 카민스키
1993년 4월 3일생(만22세)
위스콘신 대학교 졸업
2m16cm(7-1)
드래프트 예상순위: 1라운드 7~19번픽 사이로 예측
○ 신체사이즈
신장(신발 벗고) | 신장(신발 신고) | 몸무게 | 윙스팬 | 스탠딩 리치 |
6’11.75’’ | 7’0.75’’ | 231lb | 6’11’’ | 9’1.5’’ |
○ 대학교 4학년 성적
나이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나온 카민스키는 올해 만 22세입니다. 분명 1, 2학년만 다니고 나오는 친구들이 많기에 요즘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치고는 나이가 많습니다.
카민스키는 지난 달(5월)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관점에서는 나이가 문제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었던 백투백 MVP 스티브 내쉬도 1996년 4학년을 마치고 비슷한 나이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올해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무려 20년 동안 NBA 커리어를 이어 나간 거죠. 이 말은 4학년을 졸업해도 좋은 실력을 갖추고, 관리를 잘한다면 최소 10년 이상 NBA에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카민스키는 운동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NBA에서 통한다면 30중반까지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빅맨입니다. 22살에 입문하여 25살에 궤도에 올라서서 35살까지 높은 수준의 기량을 뽐낸다면, 충분히 긴 기간 뽑아 먹을 수 있는 겁니다.
또한, 4학년을 졸업하고 지금 리그에서 DPOY 2위를 차지한 드레이먼드 그린(만25세)을 봐도 알겠지만 NBA에서 통하기만 한다면 고학년이든 저학년이든 여전히 20대 초반인 어린 나이에 들어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해 먹습니다.
높이
카민스키에서 스티브 내쉬를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요소가 바로 키입니다. 카민스키는 내쉬처럼 평범한 운동능력을 갖춘 백인입니다. 거기다가 일반인 같은 팔길이(키 대비)를 가지고 있죠. 미친듯한 운동능력에 원숭이 같은 팔길이를 자랑하는 짐승들이 활보하는 NBA를 생각하면 큰 약점입니다.
하지만 카민스키는 스티브 내쉬처럼 포지션 대비 높은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약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됩니다. 스티브 내쉬가 포인트 가드로써 190cm 이상의 큰 키를 자랑했다면 카민스키는 파워포워드로써 무려 216cm(7-1)에 달하는 큰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NBA에서 신체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키입니다. 윙스팬은 다음 번이죠. 동네농구 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일단은 키가 큰 게 유리합니다. 농구는 높이의 운동입니다. 그런데 만약 (포지션 대비) 키가 부족하다면 팔이라도 긴지를 확인하죠. (물론, 키도 되고 팔길이까지 길면 가장 이상적이지만요.)
프랭크 카민스키는 백인 빅맨들이 흔히 겪는 상대적으로 짧은 팔길이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게 포지션 대비 키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카민스키가 타일러 핸스브로처럼 6-9 밖에 안되는 선수였다면 기대조차 안했을 겁니다. 하지만 신발 벗고 7풋에, 신발 신으면 7-1이나 다름없는 신장은 이 친구가 NBA 4번 포지션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게 해줄 겁니다.
농구스킬과 바스켓볼 IQ
이게 바로 카민스키가 대박 스타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카민스키는 굉장한 농구스킬과 농구IQ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고학년(3, 4학년) 때 잘한 친구들을 우려하는 이유가 경험과 피지컬적 발달로 저학년들을 눌러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NBA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카민스키의 경우는 어떨까요? 카민스키도 1, 2학년 때에 비해 육체적으로 많이 성숙해 졌습니다. 하지만 카민스키는 상대를 육체적으로 밀어붙인 스타일이 아닌 기술과 농구IQ로 상대를 압살해 버렸습니다. 문제는 그가 4학년 때 보여준 기술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겁니다. NBA에서도 무섭게 통할 수 있을 정도로요.
https://www.youtube.com/watch?v=Ru5Q1sickBc
위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포스트업, 페이스업, 3점슛, 업앤언더, 피벗, 스핀무브, 드리블 등 모든 기술이 굉장히 수준이 높고, 언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특히 카민스키는 팔꿈치를 굉장히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수비수와의 틈을 만들고 슛을 던질 기회를 만들죠. 동영상에서 나오는 스핀무브를 보면 아시겠지만 몸이 돌 때 붙어 있는 수비수와 공간을 만들기 위해 팔꿈치로 상대 등을 찍으며 골대로 먼저 몸이 나갑니다. 당연히 수비수는 거기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팔만 벌린 체로 지켜보기만 하죠. 이 상황에서 점프를 한다던가 어설프게 움직이면 오히려 파울이 나서 앤드원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카민스키에게는 NBA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두 가지 필살기가 있습니다.
(1) 플로터
카민스키의 기술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무브는 바로 훅슛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다른 플로터입니다. 위의 하이라이트에서 보셨겠지만 216cm의 거구가 플로터를 날리면 당연히 상대수비수는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NBA에서도 필살기로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사실 NBA에서도 현재 플로터를 던지는 빅맨은 비슷한 키를 가진 브룩 로페즈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알 제퍼슨도 훅슛과 플로터 중간스러운 슛을 던졌었는데 요즘은 잘 안그러더군요.) 거의 다가 훅슛만 사용하지 플로터를 제대로 던지지 못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oRFJxvgyzXs
위의 브룩 로페즈(7-1) 하이라이트에서 첫 부분에 나오는 플로터 모습을 보시면 알겠지만 상대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상대 빅맨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이밍이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플로터는 훅슛보다 좀 더 먼거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훅슛 레인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 빅맨들이 더욱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빅맨이 플로터를 능숙하게 던진다는 것은 슛을 던질 때의 감각이 일반 빅맨과는 다른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친구는 훅슛, 외곽슛, 터프샷 다 잘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손끝 감각이 다르거든요. 카민스키의 슛에 대한 감각은 남다릅니다.
(2) 외곽슛 및 볼핸들링
또한, 카민스키는 위스콘신 대학교 팀 내 3점슛 성공률 1위(41.6%)를 차지할 정도로 외곽슛 능력도 뛰어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ulSWLjUeOQ
카민스키는 자신이 3점슛 능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었는지 본인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카민스키의 슛이 정확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익혔던 그 감각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카민스키는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키가 불과 6-3에 불과했기에 포인트가드를 봤었던 친구입니다.
외곽슛과 볼핸들링이 7-1 빅맨의 수준이 아닌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 거죠. 파워포워드로써 코트를 넓힐 수 있고, 픽앤팝을 비롯한 2대2게임에 능숙하게 적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외곽에서 틈을 노리고 돌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볼핸들링도 갖추고 있죠. 카민스키는 리그 트렌드에 최적화된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신력, 워크에틱, 좋은 인성, 리더쉽 등
카민스키는 대기만성형 선수입니다. 그런 배경에는 워크에틱, 정신력 등이 있습니다. 밑에 올릴 번역에도 나와 있지만 카민스키는 1, 2학년을 형편없이 보냅니다. 그에게는 시련이었죠. 이러한 시련을 헤쳐 나오고 정상급 선수로 발전한 데에는 끊임없는 연습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강화시킨 데 있습니다. NBA에 진출해서도 카민스키는 분명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카민스키는 이러한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아는 친구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의 성공을 좀 더 확신하는 거죠.
카민스키의 별명은 위에 언급했다시피 프랭크 더 탱크, 더 무스입니다. 이 별명들의 기원이 독특합니다. 프랭크 더 탱크는 ‘올드스쿨(old school)’이라는 코메디 영화에서 윌 패럴이 연기한 멍청한 캐릭터에서 나왔습니다. (영화를 보지 못해 자세한 설명이 힘듭니다.)
또한, 무스는 말 그대로 북미에 사는 큰 사슴인데 자신의 귀 옆에 양손을 대고 손가락을 쫙 펼치면 무스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재밌는 점은 카민스키는 이러한 별명들을 스스로가 즐기고 오히려 더 희화화한다는 겁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goofy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본인을 약간 멍청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래서 카민스키는 주변 동료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사실 카민스키는 어렸을 때 굉장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희화화시키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자신의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꾸었다고 하더군요.
스티브 내쉬를 아시는 분들은 잘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타고난 리더쉽을 갖춘 선수이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이상한 동영상을 찍고 낄낄거리고 즐겁게 지내며 친구처럼 다가왔던 선수죠. 카민스키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카민스키는 3, 4학년 때 좋은 리더쉽을 발휘하며 위스콘신 대학교를 2년 연속으로 광란의 3월 토너먼트 4강진출이라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단순히 경기장 내에서 보여주는 수치들뿐만 아니라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뛰어난 정신력과 워크에틱, 그리고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는 인성 및 리더쉽은 그를 NBA에서 필요한 존재로 각인시켜 줄 것입니다.
큰 경기에 강한 타입
앞서 언급했듯이 카민스키는 3학년 때 광란의 3월 4강진출을 이끌었고, 4학년 때는 결승진출까지 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업적의 주역은 카민스키였죠. 카민스키는 큰 경기, 뛰어난 선수와의 매치업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많은 NBA 팀들이 큰 경기, 플레이오프 등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을 찾는데 그게 바로 카민스키입니다. 이번 드래프트 최상위 픽으로 꼽히는 타운스, 오카포, 윌리 컬리 스테인 등을 상대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위스콘신 대학교의 로스터상 카민스키가 골밑을 외로이 지켜야 했는데 카민스키는 그걸 해냈습니다.
가벼운 몸무게와 수비
아마 그의 커리어 내내 달고 다닐 약점은 바로 수비일 겁니다. 7-1의 빅맨이 몸무게가 겨우 231파운드에 불과합니다. NCAA에서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훨씬 무게가 나가고,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가 많은 NBA에서는 이 정도 몸무게로는 골밑수비가 힘들 겁니다. 더군다나 팔길이도 짧으니까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파워포워드를 본다면 그의 키는 굉장한 경쟁력이 있다는 점이고, 평균 정도의 수비를 보일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스테판 커리, 스티브 내쉬 다 수비에 어느 정도 약점을 보였지만 MVP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공격력, 포지션 대비 좋은 신장, 수비이해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카민스키는 대학시절의 활약을 보면 수비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한 친구가 아닙니다. 또한, 리바운드와 수비도 할 때 해주는 친구였죠. 적은 몸무게였음에도 오카포, 타운스, 윌리 컬리 스테인 등을 효과적으로 잘 막았습니다. 특히 키가 확실히 높으니까 박스아웃에 이은 수비 리바운드를 잘 걷어 냈습니다.
카민스키가 2~3년에 걸쳐서 몸을 체계적으로 불려 250파운드까지 올린다면 5번 수비로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4번 수비수로는 평균의 모습을 보일 겁니다.
NBA에서의 카민스키는?
많은 분들이 이번 드래프트에서 즉시전력감으로 프랭크 카민스키를 꼽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는 스티브 내쉬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고급기술을 최고 수준 레벨에서 쉽게 선보일 수가 없을 겁니다. 내쉬나 그나 NBA 선수들을 압도할만한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NBA 4번 포지션에 적응도 해야 합니다. 당연히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경험이 쌓여야 할 겁니다.
전 카민스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려면 최소한 2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봅니다. 당연히 시련의 기간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스티브 내쉬는 긴 시련을 결국 극복했고, 댈러스에서 맹활약했으며, 피닉스에 와서 백투백 MVP를 이뤘습니다.
카민스키는 이미 대학교시절에 이러한 시련을 겪어봤습니다. 당연히 그가 잘 극복할 거라 믿습니다. 카민스키는 일생 동안 수 많은 의심과 의문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증명해냈습니다. 그의 새로운 여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수 많은 장애물과 의심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겠지만 카민스키, 그는 반드시 자신의 목표를 이룰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프랭크 카민스키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4Xp0wwnBFeU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위스콘신과의 작별에 관한 글을 썼는데 읽어 볼만합니다. 매니아 팬들과 같이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의역,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http://moosebball.blogspot.kr/2015/05/to-be-honest-i-have-been-putting-off.html
On Wisconsin Forever
솔직히 여기에서의 새로운 글은 내 대학생활의 마지막을 의미하기에 저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과거를 회상하며 펜을 잡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추억들이 너무 많아 뭐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많은 추억들을 더듬어 보니 마음이 울적해 집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 대학교 팀의 농구선수로 뛴 사실은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지만, 이제 저는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글은 저의 미래보다는 제가 대학교에서 알게 된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이별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고등학교 때 위스콘신 대학교로 리쿠르팅 되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학교 경기장에서 5대5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위스콘신 잠바를 입은 키 큰 아저씨가 들어왔습니다. 위스콘신 수준의 대학교에서 지금까지 저를 보러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정말로 긴장하면서 경기를 뛰었습니다. 경기 후, 그 분은 저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며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당시 코치셨던 하워드 무어십니다.
당연히 저는 이 만남이 앞으로 있을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무어 코치는 후에 정식 영입제의를 하셨고 저와 제 가족이 위스콘신을 방문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위스콘신 캠퍼스와 스태프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이미 위스콘신으로 마음이 기울어졌었고, 몇 주 후 저는 위스콘신 대학교를 정식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지금 저는 죽을 때까지 Badger라고 말할 수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위스콘신 대학교에 입학할 시절 저는 꿈만 원대한 나약한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저는 그 꿈이 금방 이뤄지지 않음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저의 신입생 시절은 형편없었고, 저는 학우들에 비해 많이 뒤쳐졌습니다. 그 시절 저는 항상 절망만 하였고,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스콘신은 나에게 최적인 학교이며, 스스로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고, 아둔하며, 아무 것도 갖추지 못했다고 마인드를 다잡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저는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었고, 신세한탄이나 하는 제 모습에 신물이 난 상태였었습니다. 저는 다짐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며, 미래에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직접 지켜볼 거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제가 속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2학년 시절 저는 육체적 발달은 물론, 경기력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뤄냈지만 저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좌절하였고, 그게 경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실망하여 그 누구와도 대화하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2학년이 마무리될 무렵 저는 제 스스로가 목표로 했던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면 그건 제가 더 이상 신세한탄이나 하며 나약하게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 이상 현실에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계속 연습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위대한 일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고,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습니다.
이후 제 3, 4학년 시절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Big 10 우승, 2년 연속 토니 4강 진출, 토니 준우승, Big 10 올해의 선수, 전미 대학 최고의 선수, 그리고 졸업까지… 우리 농구팀이 이룬 업적은 이미 다른 데서 잘 기록되어 있기에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반드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팀은 제 인생 최고의 팀이었다고요. 우리는 하루하루 더 나아졌습니다. 저는 제 위스콘신대학교 농구경력에 대해 그 어떠한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저 빼고 그 누구도 저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커리어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저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으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저를 지켜줬습니다. 또한 저의 멍청한 짓을 참아주고 이해해줘서 고맙습니다.
제 팀동료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를 믿어주고,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 겪으며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너희들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이고, 우리가 여기서 함께 이룬 것들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
그리고 코치님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코치님들의 관심 덕분에 저는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치님들이 없으셨으면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제 꿈을 이룰 수 있게 독려해 주시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팬 여러분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여러분은 전미 최고의 팬들이었습니다. 그 어떠한 팬들도 우리 팬들에 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충섬심과 끊임없는 응원은 저희에게 불굴의 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스콘신 대학교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위스콘신 대학교에서의 생활은 제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위스콘신은 세상 그 어느 곳과도 비견할 수 없는 최고의 지역입니다. 저는 일리노이에서 자라났지만, 저를 한 남자로 성장시켜준 위스콘신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느낍니다.
재학생으로써의 삶을 마치고, 졸업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매우 흥분되어 있으며, 제가 어디를 가든 제 마음 속에는 위스콘신이 함께 할 것입니다.
(중략)
마지막은 카민스키가 인용하고 싶어하는 책의 구절이라 생략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에 올린 주소로 직접 들어가셔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드래프트 유망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저와 같은 경우는 이 녀석, 프랭크 카민스키가 제일 끌리네요. 성공을 기대합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Bye~ Bye~
신체사이즈와 성적 표가 잘 안올라가네요. 수정한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