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의 시작은 승리에서 시작한다.
리빌딩
영문으로 Rebuilding으로,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재건'이란 뜻이다. 스포츠에서는 흔히 기존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거나, 새로운 계약으로 팀을 떠났을 때 '판을 새로 짜는' 걸 뜻한다.
대개 리빌딩에 들어 간 팀들은 악성 계약자들,
즉 돈은 많이 받지만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는 노장들과의 계약을 정리하고, 대신 젊은 신예들을 대거 기용하며,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을 발굴하는데 고심하며 젊은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농구, 야구, 축구 가릴 것 없이 리빌딩은 중요하다. 왜냐면 아무리 리그를 지배하는 강력한 팀이라도 선수들은 늙고, 세월에는 장사 없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도 조던과 피펜이 팀을 떠난 후 데릭 로즈라는 신인이 등장할 때까지 10년의 세월을 하위 팀으로 전전긍긍 해야만 했고, 크고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한국야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타이거즈 역시 마찬가지. 김성한, 한대화, 선동렬, 이종범 등 기라성 같은 한국야구의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8-90년대를 호령했지만 2009년 다시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 까지는 10년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리빌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단순하게 어리고 가능성 있는 신예들로 로스터를 꽉꽉 채워 놓으면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름 수십년 스포츠 팬을 자처하며 야구 농구를 봐온 경험에 근거해 리빌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빌딩에 성공한 사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를 말하겠다.
혹자는 삼성은 꾸준히 강팀에 있고 2000년 대 SK와 함께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구단인데 무슨 리빌딩이냐고 묻는데, 리빌딩이 세대교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삼성을 예로 든다.
삼성이야 말로 리빌딩의 귀재라 하겠다. 양준혁 이승엽 박한이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그리고 김상수에 이르기까지 삼성의 승리 DNA는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만 해도 그렇다. 무려 1차전을 넥센에게 내주면서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제동이 걸리지 않나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던 박한이가 홈런을 날려주고, 운명의 5차전에서는 최형우가 손승락을 무너뜨리면서 6차전에서는 너무나 쉽게 넥센을 꺽는 삼성을 보면서 삼성은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님을 알았다.
이기면서도 삼성은 김상수, 그리고 박해민 같은 미래의 자원들이 선배들을 통해 어떻게 승리하는 가를 배우고 있다. 이들이 나중에 베테랑 자리에 올라가면 위기 때마다, 배영수가 어떻게 던졌는지, 이승엽이 어떻게 홈런을 쳤는지, 최형우와 박한이가 한국시리즈에서 어떻게 팀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후배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리빌딩의 초점은 영건들에게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리빌딩의 시작은 베테랑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리의 DNA가 없는 팀에게 리빌딩은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이기는 법을 모르는 프로는 프로가 아니다.
LG트윈스가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LG는 수년 간 대표적인 약체 팀이었고, DTD 내려갈 팀 팀은 내려간다는 과학의 모델 되는, 일종의 조롱거리였던 팀이다. 그런 LG가 지난 시즌부터 강팀으로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정성훈-박용택-이진영-이병규의 강력한 중심타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찬스 때마다 이들 중 한 명은 반드시 안타를 때려냈고 그것을 계기로 LG는 이기는 야구를 할 수 있었다. 유격수 오지환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과연 오지환이 더욱 성장해 지금 베테랑들의 승리 DNA를 이어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프로야구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그렇다면 기아 타이거즈는 어떤가? 형편 없는 팀이다. 필자가 응원하는 팀이지만 이 팀의 반등은 요원하다. 도무지 이길 줄 모르는 팀이다. 이기고 있다가도 역전 당하고, 한 번 끌려가면 뒤집을 줄은 모르는 식물야구를 하는 팀이다. 찬스만 오면 전부 배트가 굳는다. 2009년 우승 경험의 주역들이 대부분 팀을 떠났거나 현재 깊은 부진에 빠져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그나마 야구다운 야구를 했던 안치홍 마저 군입대로 2년 동안 팀에서 이탈하게 된다. 최희섭은 절대 리더가 될 수 없는 선수며, 김주찬은 FA로 팀에 합류, 이범호 역시 나이만 베테랑이지 요근래 성적을 보면 자기 밥 그릇도 못 챙기는 수준이며, 투수쪽을 보면 양현종은 나이가, 나머지 선수들은 존재감이 미약한 선수들 뿐이다. 이종범의 은퇴와 서재응의 영향력 실종으로 기아는 소위 라커룸 리더를 잃었다.
농구를 볼까?
가장 리빌딩을 잘한 팀으로 나는 내가 응원하는 휴스턴 로켓츠를 꼽고 싶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야오밍이라는 강력한 두 축이 부상으로 커리어를 마감하자 휴스턴 로켓츠는 리빌딩에 들어갔는데, 휴스턴은 결코 높은 드래프트 픽을 얻기 위해 성적을 포기하는 운영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구단주인 레슬리 알렉산더의 입김이 작용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휴스턴은 스타플레이어는 없었지만 그래도 준척급 선수들의 알짜 활약으로 그 치열한 서부 커퍼런스에서도 2010년-2012년까지 세 시즌 동안 연속으로 9위를 기록, 결코 만만히 볼 팀이 아님을 알렸다.
로켓츠는 그러면서 계속 유럽에서 알짜배기 선수들을 리쿠르트 하고 2라운드 드래프트에서도 숨은 실력자들을 발굴해서 NBA의 하부리그 D-리그를 육성해 선수들을 테스트 했고,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스텝업 하는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묶어 점점 로스터를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 해나갔다.
그리고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의 제임스 하든을 트레이드로 얻어 내면서 로켓츠는 단숨에 강팀으로 발돋움 했고, 그 다음 해에는 드와이트 하워드까지 FA로 영입,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섰다.
리빌딩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이 팀은 패가 늘어 나겠군'이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다. 실제로 승보다 패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질 때 지더라도 내용이 있는 시합을 해야 하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해야만 한다.
"바둑은 상대를 이기지 못하면 내 바둑이 좋아졌는지 안좋아졌는지 드러나지가 않는다. 아무리 밤을 세워 노력해도 승리를 성취 못했다면 내 실력은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반집차의 승리라도 바둑에서 이기게 된다면 그 모든 묘수들로 기뻤다"
요즘 장안의 화제 미생(味生)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겨야 과정도 의미가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과거 90년대 LA 클리퍼스는 대표적인 루징 팀이었다. 패배의 아이콘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지고 지고 또 졌다. 지겹게 졌다. 그 팀에는 로이 보우트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래도 클리퍼스에서 몇 안 되는 농구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루징 팀의 에이스였을 뿐이다. 선수 말년에 부상 때문에 실력도 하락한 원인도 있었겠지만 클리퍼스를 벗어난 이후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참 안타까우면서 느낀 것은 그의 그릇이 그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 팀이 그의 그릇을 제한 한 것일까, 더 일찍 그가 좋은 팀에서 뛰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스포츠는 컴퓨터 게임과 다르다. 게임은 켜놓고 플레이하면 캐릭터가 경험치를 획득하고 일정 단계에 이르면 레벨업을 통해 강력해지지만, 스포츠는 무턱대고 시합만 한다고 승리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말장난 같지만 승리는 승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LA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 리그의 최고 명문 팀이다. 이 팀에는 리빙 레전드 위대한 코비 브라이언트가 있다. 투쟁의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끊임 없이 경쟁에서 이기길 원하는 승부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코비가 속한 레이커스가 2014-15시즌 끝 없는 추락 중이다. 혹자는 로스터 자체가 경쟁력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코비 외에는 선수가 없다. 맞는 이야기다. 야심차게 영입한 줄리어스 랜들은 몇 경기 뛰어 보지도 못하고 정강이 뼈가 부러져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운도 없다. 그렇다고 계속 지는 탱킹을 통해 또 다시 드래프트 상위픽을 얻는 것이 정답일까? 해답은 모른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었을 때 이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어차피 유망주는 유망주일뿐 아니던가. 수많은 포텐셜들이 리그의 문을 열고 들어와 그 중 90%가 5년 내에 자취를 감춘다. 10년 후에는 겨우 네 다섯 명이 로스터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낮은 확률의 도박을 하라는 건가.
이기는 시합을 통해 팀의 경쟁력을 갖추고 기존 로스터의 가치를 올린 후 점진적인 트레이드로 로스터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나는 더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필라델피아 76ers는 기승전패배를 시전하고 있는 팀이다. 아무리 시합을 훌륭하게 전개해도 시합 막판에는 어이 없는 플레이들이 속출해 결국 스스로 승리를 헌납하고 있다. 이번 시즌이 시작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승리가 없다. 이기는 법을 모르는 거다. 팀의 중심을 잡아 줄 베테랑도 없고, 이길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팀이다. 이렇게는 아무리 유망주들을 긁어 모아도 리빌딩은 끝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빅 마켓, 뉴욕 닉스는 패트릭 유잉과 트윈 테러의 시대가 저문 후, 카멜로 엔써니가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한심한 팀의 전형이었다. 드래프트에서 뽑은 유망주들은 전부 기대 이하였고, 야심차게 영입한 거대 계약자들은 전부 먹튀거나 부상으로 쓰러졌다. 그 매력적인 시장을 보유하고도 닉스는 수년 째 플레이오프와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닉스의 팬들은 자신의 응원 팀에 야유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같이 드래프트 기가 막히게 해서 팀을 단숨에 파이널까지 진출 시킨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라고 본다.
장황하게 긴 글이 되었고 이 역시 주관적인 글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내 주장은 간단하다. 리빌딩의 시작은 승리에서 시작한다.
1) 팀의 주축이 될 수 있는 베테랑들이 있는지 확인해라.
2) 보유하고 에셋, 즉 미래자원들의 가능성을 체크하자.
3) 승리를 통해 로스터의 가치를 끌어 올려라.
4) 그 중에서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은 보유 육성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자원들은 트레이드 하자
5) 외부수혈이 가능하다면 주저할 이유는 없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 육성이다.
이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와 미국 프로농구의 예를 섞어서 설명했다. 스포츠 시장의 규모도 다르고, 야구와 농구의 차이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핵심 개념은 같다고 본다.
리빌딩의 시작은 승리에서 시작한다.
너무좋은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