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세계에서 정치적 암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

 
51
  5547
2017-02-23 23:35:49

러시아는 세계에서 정치적인 암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12월에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촬영 카메라 앞에서 암살당했고, 재작년에는 푸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가 모스크바 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실제로 소련 해체 후 러시아에서는 테러와 살인청부업자들에 의해서 매년 500명 이상이 희생되어 왔고, 이러한 암살과 테러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서까지 자행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청부살인 행위가 연방보안국(FSB)내 비밀조직이나 특수요원들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비밀조직들은 국가의 적 그리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인사들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어 있는데, 그들의 타겟(target) 중에는 푸틴을 비롯한 권력층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추적하고 폭로하던 정치인, 언론인 그리고 인권운동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년 전에 피살당한 넴초프는 옐친 대통령 시절 제1 부총리를 지낸 인물로 그동안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무리한 집권연장시도, 언론 및 인권탄압, 측근들의 부정부패 등을 신랄하게 비난해온 푸틴의 최대 정적이었습니다. 넴초프의 피살은 12년 전인 2003년에 야당인 자유러시아당 공동당수이자 FSB(연방보안국)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코발레프 위원회 부의장인 유센코프가 모스크바 자택 인근 도로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의 데자뷰였습니다. 유센코프 피살 1년 전인 2002년에는 골로프료프 자유러시아당 당수가 모스크바 거리에서 총격으로 피살당했습니다. 실제로 푸틴 체제 17년 동안 정권 및 권력층 비리 폭로와 관련해 피살된 언론인들만 해도 50여명에 이릅니다. 이런 식의 암살에 하도 익숙해서인지, 자국의 대사가 카메라 앞에서 괴한에게 총격으로 피살당해 세계가 놀라는 가운데에서도 러시아 국민들의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 해체 후 체제 전환기의 극심한 혼란을 경험한 러시아 국민들은 개혁과 민주주의라는 험한 여정보다 안정되고 강한 국가를 원하고 있었고, 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소련(특히 스탈린)시대의 강력한 국가와 영광을 동경하는 생각들이 깔려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국가의 번영과 영광을 위하여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제한받는 것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명인사들의 연이은 피살에도 푸틴의 지지율은 80%를 넘고 있고, 정적인 넴초프의 사망과 나발리의 유죄선고 이후 푸틴에게 맞설 수 있는 라이벌이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푸틴에게는 내년 대통령선거 당선도 떼놓은 당상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함께 러시아 지배계층의 의식유형을 살펴보면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에서 발생해온 암살과 테러의 큰 흐름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가 ‘올리가르히’ 두 번째가 ‘실로비키’ 그리고 세 번째가 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시민활동가들입니다. 올리가르히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신흥 재벌들을 일컫는데, 이들은 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국가 소유의 산업체, 금융기관, 석유시설 등 각종 생산수단이 민간으로 옮겨질 때 정보 선점, 막후 거래 및 무자비한 폭력 등을 통해 이를 손쉽게 소유함으로써 힘들이지 않고 엄청난 부를 쌓은 계층입니다. 푸틴은 집권 직후 올리가르히들과 협정을 맺고 그들이 90년대에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을 눈감아 줄 테니 기업을 깨끗이 운영하고 자신에게 반대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올리가르히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를 자신들의 손에서 쥐락펴락 하려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푸틴 집권 후 새로 실세로 부상한 실로비키와 크고 작은 충돌을 겪고 있습니다.


실로비키는 2000년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후 새로운 권력 집단으로 부상했고 현재는 러시아를 통치하는 핵심 세력입니다. 푸틴은 대학 졸업 후 줄곧 KGB 첩보원으로 활동하다 소련 연방 붕괴 직전인 1991년에 KGB 중령으로 예편한 인물입니다. 푸틴은 대통령에 오른 후 전임자인 옐친이 해체한 KGB를 FSB(연방보안국)라는 이름으로 확대 부활시켰습니다. 실로비키(siloviki)는 KGB나 FSB 및 군부와 경찰 출신들을 일컫는 단어로 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후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실로비키는 옐친 집권시절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며 올리가르히가 부와 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올리가르히의 경호를 맡는데 그쳤으나 푸틴 대통령의 집권으로 전성기를 맞아 크렘린, 의회, 정부부처 및 국영기업 등의 요직을 장악했습니다.


1991년 사회주의 체제를 끝내고 민주화와 시장개혁을 진행해온 러시아는 옐친 집권시절인 1998년 국가부도를 겪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시민사회 단체들로 구성된 시민활동가들은 그 당시의 무제한적인 자유와 무절제를 폄하하는 대신 민주주의라는 멀고도 험한 목표를 향한 여정으로 여겨 지속적인 개혁만이 러시아가 나아갈 올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비효율적이라도 민주적 방식을 선호하며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중요시하며,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사안에 따라 친 서방적 성향을 띄고 있으며 푸틴 정권의 언론탄압 및 정권연장 시도에 반대하는 집단입니다.


반면에 실로비키는 소련 해체 이후 초강대국 위치를 상실한 러시아를 재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강한 러시아’를 재건하려면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중무장하고 있는 실로비키는 러시아의 부활을 위해선 푸틴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신념화하고 있으며 이를 위협하는 세력은 합법적인 절차보다 물리적 수단으로 제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실로비키에게는 푸틴이나 크렘린에 대한 비판이 곧 러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비판, 나아가 매국행위로 여겨지는 분위기입니다. 몇해 전까지 실로비키는 미국과 서방국가야말로 푸틴 체제의 최대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은 러시아의 정권교체를 달성해 궁극적으로 러시아를 분열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로비키는 그동안의 방어적인 태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푸틴정권에 우호적인 서방 정치인이 정권을 잡게 하기 위해서 불법해킹과 거짓뉴스 등을 통해 서방국가의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러시아가 가장 강하던 시절은 공교롭게도 가장 심한 독재와 잔인한 인권탄압이 극성을 부리던 때였습니다. 요시프 스탈린(1879~1953)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히틀러와 함께 항상 최악의 인물 1위를 다투는 독재자이며,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행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탈린은 31년 동안 소련을 통치하면서 히틀러의 독일을 물리치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유럽 변방의 3류 국가를 향후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절반을 거느리는 초강대국으로 변모시킨 인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스탈린 시절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의 정치인 암살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명은 스탈린의 동지이자 후계자로 여겨지던 세르게이 키로프(1886~1934)이고, 또 한명은 한 때 스탈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레프 트로츠키(1879~1940)입니다. 키로프 암살사건은 스탈린 시대 소련에서 발생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트로츠키 암살사건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유명한 암살사건에 속할 것입니다.


스탈린은 1879년 조지아(Georgia, 그루지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일곱 살에 천연두에 걸려 죽을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얼굴과 몸에 평생 흉터를 지닌 채로 살았습니다. 그는 15살에 장학생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마르크스와 레닌의 서적을 접하면서 인간을 단백질의 합성으로 보며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산주의적 무신론에 빠져들어 신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노동활동과 혁명에 투신해 투옥과 추방을 되풀이했습니다.


레프 트로츠키는 스탈린과 같은 해인 1879년 우크라이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트로츠키는 수학과 작문에 뛰어난 학생이었으나 책을 통해 유럽과 러시아의 현실을 알게 된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했으며 경찰에 체포되어 형무소를 전전하다가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레닌의 저작에 매료되어 1902년 유형지를 탈출하고 망명중인 레닌을 찾아가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젊은 시절 내내 탈주범 신세였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가명을 필요로 했습니다. 트로츠키라는 이름은 그가 레닌을 만나 후 위조여권으로 런던으로 도피할 때 여권에 적힌 가명이었는데, 그 이후로 줄곧 레프 트로츠키라는 이름을 사용해 본명처럼 굳어졌습니다. 스탈린이라는 이름도 탈주범 시절 사용하던 가명 중 하나였으나 1910년 이후 그가 평생 사용해서 본명처럼 굳어졌습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1907년 런던 공산주의 대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는 고작 28살이었으나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하지 못할 끔찍한 경험을 수차례 겪은 이미 닳고 닳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해에 스탈린은 은행을 털어 러시아 노동당의 운영자금을 조달하는데 성공했고, 트로츠키는 런던대회에서 레닌의 반대파인 멘셰비키와 한편이 되어 레닌을 공개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트로츠키는 이렇듯 때때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이를 오갔지만 결정적인 시기에는 언제나 확고한 행동으로 레닌을 도왔습니다. 러시아 혁명당시 레닌이 카렌스키에게 쫓겨 핀란드로 가 있는 동안 무장봉기를 조직해 1917년 10월 혁명의 성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춘 인물이 트로츠키였으며, 혁명 성공 후 공산당 군대의 사령관을 맡아 2년에 걸친 시빌워(Civil War)인 적백 내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도 트로츠키였습니다. 볼셰비키 정권 수립 후 레닌에 이어 당의 서열 2위이자 레닌의 후계자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도 트로츠키였습니다.


한편 스탈린은 10월 혁명의 성공에는 결정적인 기여가 없었으나 10여 년 동안 투옥과 유배생활을 하면서 당에 충성하며 한 번도 레닌을 반대한적인 없다는 이력 덕분에 당 서열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히틀러, 스탈린, 카스트로 모두 무력으로 국가 전복을 시도하다 실패해 반역죄로 투옥되었으나 너무도 손쉽게 풀려나 결국 정권획득에 성공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전복하려고 했던 국가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관용이 넘치던 곳이었습니다.) 볼셰비키 정권 출범 후 구성된 중앙위원회에서 스탈린은 레닌, 트로츠키, 스베르드로프에 이어 당 서열 4위에 올라 국가의 비상시 결정에 대한 전권을 지닌 4인 위원회의 멤버였고, 소련 연방 공화국의 소수인종을 담당하는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모두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인물로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는 전체라는 공공의 이익 앞에 희생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1918년부터 2년간 진행된 적백 내전 당시 적군 사령관이던 트로츠키가 보여준 잔인함과 처벌 만능주의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치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스탈린은 과거에 러시아 변방에 있다가 소련 연방으로 편입된 소소인종을 담당하는 장관 역할을 수행하면서 레닌의 바램처럼 우대정책을 펼치는 대신 철저히 탄압 일변도 정책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스탈린의 모습에서 레닌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10월 혁명 성공 후 레닌이 혁명의 아버지이며 그가 소련 연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치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레닌의 건강은 이전부터 좋지 않았고 1918년 8월에 볼셰비키를 반대하는 카플란(Kaplan)이라는 여성이 쏜 총에 목을 맞아 사경을 헤맨 후 회복되었지만 총상 후유증 때문에 그 이후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발작을 일으켰고 몸의 일부가 마비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레닌의 후계자에 오르기 위한 권력투쟁이 본격화 되었고 트로츠키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몇 걸음 앞서 있었습니다. 레닌이 공개적으로 트로츠키를 지지할 경우 트로츠키의 후계자 위치는 반석 위에 오를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레닌이 스탈린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글이 길어져 오늘은 이만 멈추겠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오랜만에 글을 쓰려다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내용이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영화 스토리 같은 키로프와 트로츠키의 암살 사건과 그 파장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주말 쯤 글을 올릴 거 같습니다.

12
Comments
2017-02-24 00:07:26
휴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2017-02-24 00:35:34

잘 읽었습니다!

거의 카페베네급의 타이밍이네요ㅜㅜ
다음편이 너무 궁금합니다

2017-02-24 01:24:39

허...정말 재밌는데요.
딱 절정이 이르고자 하기전이 끊으신 느낌입니다

2017-02-24 07:11:19

대강은 알고 있던사실이지만 끔찍하네요..암살에 무감각한나라라니..

2017-02-24 08:26:54

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그렇지않아도 언제쯤 출장에서 돌아오실라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정부가 국가인가, 국민이 국가인가... 생각해보게됩니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알고있는데 말이죠.

일단 정권을 잡으면, 자기가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엉망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게 모든걸 파국으로 끌고가는 거겠죠.


얼마전에 코스타리카의 중립국선언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롭더군요. 중남미쪽은 무척 혼란스럽고 위험하기도 한 곳인데, 그 곳에서 군대없이 중립국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 치안이 좋다고 평가받지도 못하는데 말이죠. ^^ 

2017-02-24 08:28:48

이런 상황과 이런 행동을 하는데

푸틴멋있네 카르스마있네 하는거보면 참...

2017-02-24 10:43:39

만약 러시아 국민이라면 충분히 그런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지지율의 신뢰도가 어떤진 모르겠지만 지지율이 그 증거이기도 하구요. 모든 나라에서 정치인의 도덕성이나 깨끗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니니까요

2017-02-24 11:31:21

러시아 국민들이 하는말을 적은게 아니라...대한민국 국민들이 저런 소리하는걸 말씀드린겁니다.

그나라의 국민들은 제가 평가하고 한심해할 이유가 없죠.

2017-02-24 09:13:00

푸틴은 독재자죠.

2017-02-24 11:24:39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나올듯 하네요.
관련된 저서나 영화가 있으면 추천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7-02-24 21:40:18

스킨헤드, 정치적암살, 무력을 사용한 크림반도 합병, 친서방과의 신경전 등이 현재 러시아를 대변하는 실태죠.

2017-02-25 04:03:06

온라인에서 이리도 흥미진진한 양질의 글을 읽게 해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