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순돌이 아빠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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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24 14:50:41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잡설입니다.
1. 80년대 TV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일요일 아침을 책임졌던 드라마가 있죠. 한지붕 세가족. 산업화/도시화로 도시에 사람이 몰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던 드라마죠. 거기 나왔던 술좋아하고 사람좋던 그리고 뭐든지 손을 거치면 고장났던 것을 고쳐주었던 마이더스의 손 순돌이 아빠가 기억에 남네요. 물론 순돌이도 8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죠.
2. 서울이 아파트 숲이 되기 전만해도 단독주택들 많은 거리에는 철물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와 빌라 많은 동네와의 차이가 바로 그거죠. 저는 빌라/다가구에 살고 있어서 드문드문 철물점이 보이는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단지 아파트들 사이에선 철물점은 정말 보기 힘들죠. 단독주택의 경우 소소한 집안 보수를 아버지들이 해왔지만, 아파트 문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죠. 기껏해야 형광등 교환정도죠.
3.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지역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보면 신혼부부들의 절규가 매주 이어집니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빌라로 와서 너무 힘들다"가 주된 주제이고, 아파트 값/주머니 속 자본/현실/결혼... 등등에 대한 푸념 후에 남는 결론은 두가지입니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와 "우리사정에 좀 무리하긴 했어도 대출땡겨서 청라/송도/서울로 갑니다~~~"
4. 요즘 시대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버지 세대가 없는 돈 쪼개가면서 서울이나 분당/일산같은 1기 신도시에 아파트를 구하고 그 아파트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독립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에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빌라(혹은 원룸/다세대 등...)에서 시작하든지, 아니면 대출을 이용해서 좀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로 간다든지 이런 선택지밖에는 없습니다.
5. 젊은 세대들이 아파트를 선택한 것은 그냥 편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 최근 2~30년동안 이어진 한국 부동산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때문이죠. 10년전만 해도 서울 아파트값은 평당 천만원이 되었다고 난리가 났지만 현재평당 천만원이하의 아파트는 먼 수도권에서도 전멸했습니다. 아파트를 사지 않는건 미래 재산증식에 치명적일 수 있죠. 한국이 근로자들의 노후를 책임져주는 사회도 아니니까요.
6. 아파트가 미래의 재산증식에 도움이 되는가 마는가에 대해서는 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0~30년이란 대출기간, 원금과 이자의 압박,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할 기회들... 뭐 이런건 다 아실테고... 제가 주목하는 건 "중국집 업그레이드 이론"입니다. 처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킬때에는 그냥 짜장아니면 짬뽕을 먹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월급이 오르다보면 그냥 짜장보다는 삼선/볶음밥, 나중에는 탕수육을 비롯한 요리가 점점 추가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중국집에 전화할땐 "삼선짜장 둘에 탕수육 중짜 하나요"가 디폴트 메뉴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다가 다시 짜장 둘로 돌아가는 건 생각 외로 어렵습니다.
7. 자본이 충실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아파트는 "중국집 업그레이드 이론"의 탕수육이나 양장피같은 메뉴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최대한 좋은 지역의, 높은 가격의 아파트를 구매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누릴 수 있는 혜택들, 이를테면 교통, 교육, 편의시설, 커뮤니티, 물론 사람들의 시선까지 많은 혜택들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대출금은 압박으로 돌아올 겁니다. 이 빚덩어리 아파트라도 가지고 있어야 지금 누리고 있는 걸 지킬 수 있을테니까요.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보통 대출기간이 2~30년인데 공무원이 아닌 이상 그 시간동안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무시할 수 없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요.
8. 그렇다고 아파트를 포기하고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죠. 이런 불확실한 혼미함이 우리 세대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일부 기성세대들의 "요즘 젊은 것들은 고생을 하기 싫어해"라는 말은 정말로 고생을 하기 싫어서가 아닌 윗세대들이 누적해온 삶의 데이터를 보고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나아갈 것인가가 분명하지 못해 생기는 혼미함이죠.
9. 어찌되었든 우리 젊은 세대는 시대적 혼미함 속에서 각자 무언가 길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고, 개개인이 가진 신념과 기지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글이 많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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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층간소음때문에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