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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너무 좋아 고민이신 분들께 추천하는 영화, 피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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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22 01:47:41

<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view_thumbnail/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0426_axpudjid.jpg" alt="1487678659591.jpeg" id="image_0.18761165696196258"></div><br>

나온지 꽤 된 건데 어제서야 보게되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은 맥주에 땅콩 집어먹듯 그렇게 간단,편하게 손이 가는 타입은 아니에요.
같은 잔인한 씬들의 향연이라도 이게 슬래셔 무비라면 피가 튀기든 말든 스크린 너머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나님의 포근함 만끽하면서 '2시간 참 잘 보냈네' 하겠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니까.
그의 작품들은 개인의 심리 차원에 호소하는 공포가 아닌 시대의 상처와 고름을 거칠게 까보인 후, 우리로 하여금 목격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어요.
당연히 영화감상의 묘미 중 '즐거움'이라는 요소 챙겨갈 기대는 접고 들어갔어요.

<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0806_mfwrkzjr.jpg" alt="30000096021_700.jpg"></div><br>영화 내내 선명하고 친절한 상징들과 종교적 색채에 눈과 마음이 쉴 틈이 없었는데
역시 메인테마는 남자 주인공 '이강도'라는 인물 그 자체입니다.

&lt;나쁜남자&gt;의 조재현은 이 사람에 비하면 가가멜 수준이에요.
사회의 최하층민들을 상대로 피와 살을 착취하고 다니는 자본주의의 악랄한 도구이자 피해자.
그렇게 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허름하고 더러운 집에서 짐승처럼 지내는.
자학도 아니고 그냥 기계적으로 소모되어가는 인생.
영화 처음부터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잡아주는 더럽고 위태롭고 불쾌한 장면들의 향연을 보면서 느꼈던 '이 영화 쎄다' 라는 직감은,
30년만에 찾아 온 엄마 (조민수)의 등장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려나하며 잠시 흔들렸지만 아들의 집을 노크하는 손이, 거친 설거지가 말합니다.
나는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이런 영화의 반전을 일찍 캐치하는 센스 따위 없기에 강도의 어머니 강간장면을 거의 견뎌내듯이 보았습니다.

<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view_thumbnail/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0852_tnktetbj.jpg" alt="10.jpg" id="image_0.6516982635948807"></div><br>세상에 이런 캐릭터는 듣도 보도 못했어요.
초반엔 그가 저지르고 다니는 인간말종의 행위들을 보면서 느낀 분노와 경멸의 수위가 힘들었고
엄마가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하려했을 쯤엔 속으로 '아씨, 내가 이제부터 쟤를 걱정해야하네' 때문에 화가 났어요.
고이 살려두었던 장어를 구워 먹는 엄마의 모습에 상처받은 아이의 얼굴을 하며 나가고,
밖에서는 약자들 영혼을 끝까지 유린하는 두 가지의 모습에서 무얼 느껴야 할런지 몰랐어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애착'이라는 감정.
가짜엄마 아니었으면 평생 의지하는 법이나 정신적인 평온함 같은 건 모른 채 살아갈 운명이었겠죠.

<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view_thumbnail/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1218_hxopkrrr.jpg" alt="pieta3.jpg"></div><br>이정진의 연기력에 대한 지적들이 있었던데 저 역시 초반엔 잘 아는 배우도 아니고&nbsp;
'눈에 언더아이라인 해가지고 대사를 왜 저렇게 일자로 치지?' 했는데
툭툭 끊어서 내뱉고 소리 치고 하는 모습들이 소통과 대화를 추구하지 못하고 즉각즉각 자기 감정을 드러내야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 그 연기가 싫지 않았어요.

엄마역을 한 조민수씨는 참 좋아하는 배우에요.
멜로가 되시는 분.
데카당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지닌 마스크와 헤어스타일링은 '피에타'라는 묵직한 성스러움과도 잘어울렸어요.
쉽지 않은 연기였을 거 같아요.
내자식 죽인 복수를 계획하고 칼을 갈고 갔는데 애 사는 꼬라지 보고 흔들리는 연기라니.
죽은 아들의 곁으로 갈 결심을 하기 전에 차가운 얼음 바닥에 맨발로 서서 서성이는 모습은
그녀가 복수와 용서 사이의 감정에서 얼마나 번민했나를 보여주는 장면인 거 같네요.
아들의 몽정을 손으로 도와준 후에 복잡한 표정을 했던 것도,
처음 느끼는 엄마의 포근함에 아이처럼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걸 매몰차게 뿌리쳤을 때도요.

<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1027_dmtfeldr.jpg" alt="Pieta.2012.720p.HDRip.H264.AAC-Playy.mp4_20121019_235413.780.jpg"></div><br>픽션이긴 하지만 세상에 저런 곳이 있나 했는데 우리나라의 중심 중의 중심인 청계천이었다는 사실은 가짜엄마보다 더&nbsp; 반전이고
하나같이 안습인 등장인물들은 보기 싫지만 봐야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주변의 이웃들입니다.
불구가 되어 구걸하는 사람, 팔이 잘려 모든 걸 놔버리고 알콜중독자가 된 남편이 있고 그를 먹여 살리려 새벽같이 트럭을 몰고 나가는 아내가,처음부터 돈 갚을 생각 없었다며 그냥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학적 아름다움이나 새로운 것들을 상상,창조하는 예술작업들도 멋있지만
너무나 통속적이어서 우리가 쉽게들 말하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복수,모성,속죄,용서,자본주의와 같은 관념들을 투박하지만 직설적으로 파고드는 '작업'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게 돼요.

<br><div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s://cdn.mania.kr/nbamania/g2/data/cheditor5/1702/mania-done-7b03c700506f7d3d4fa8d9e138af4b21_20170221211418_jwkdeijs.jpg" alt="Pieta.2012.x264.DTS-WAF.mp4_20140926_221401.187.jpg"></div><br>어젯밤에 보고 아침에 나오면서도 ost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
그의 작품은 늘 좀 이런 식인 거 같아요.
엔딩을 보면서 젖어드는 완성도가 있어요.

영화에 소유욕을 느껴보는 경험이 오랜만이에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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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2-21 21:31:22

사실 이 영화는 여러 이야기들이 나서 본적은 있는데, 극의 내용에서 사실 딱히 흠 잡기는 커녕 잘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가서 나오는 질리가 부른 교회의 아리아는 묘하게 극중 주인공의 모습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곡인데 영화에서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작곡 : 알렉산드로 스트라델라 (Alessandro Stradella, 1639 - 1682)
노래 : 베냐미노 질리 (Beniamino Gigli, 1890.3.20 ~ 1957.11.30) 
Pieta Signore !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Pieta Signore, di me dolente, Signor Pieta! 
괴로움 속의 저에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se a te giunge il mio pregar, non mi punisca il tuo rigor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다달을 때, 날 엄히 벌하지 마소서

meno severi, clementi ognora, volgi tuoi sguardi 
덜 엄하고, 항상 인자한, 눈길을 저에게 주소서

sopra di me, sopra di me. 

non fia mai, ---- 
제 위에

che nell''inferno sia dannato nel fuoco eterno dal tuo rigor.
당신의 엄한, 영원한 지옥의 불속에 벌하지 마소서

gran Dio, giammai! 
주여, 없게 하소서

sia dannato nel fuoco eterno dal tuo rigor. ... (Fine)
Pieta signore. signor pieta,,, di me dolente. 
se a te giunge il mio pregare il mio pregar....
meno severi clementi ognora volgi tuoi sguardi 
Deh volgi sguardi su me signor........... (D.C)
WR
2017-02-21 22:56:36

가사까지 첨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의 쓰임이 과하지 않았기에 엔딩에 와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Updated at 2017-02-21 23:00:08

참 묘한 영화에요.

불행한 이들에게 생지옥을 맛보게 해주던 장본인이 도리어 생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극과 극의 체험을 하게 되는 건데 이상하게도 그런 인간X레기였던 주인공마저도 결국 걱정하게 되는.
우린 어떤 의미에선 조민수 배우처럼 모두의 어머니가 돼서 악인마저도 따스하게 안아주게 돼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중 제일 비뚤어진 문화가 모성애라고 하는데,
영화 <마더>가 우리나라 모성애를 한계치까지 밀어붙이며 그 추악한 면(?)을 보여준 영화라면
<피에타>는 너무나 추악한 최악의 환경, 최악의 사태, 최악의 인간에게서도 드러나는
핏줄마저도 넘어선 모성애의 위엄(?)을 보여준 영화인 듯 합니다.

예술이 아름다울수만은 없다는 점에 매우 공감하고,
그런 의미에서 김기덕은 어쩌면 대중의 비난까지 감수하는 제일 힘든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 깊은 좋은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17-02-21 23:30:22

묘했다는 표현에 공감이 가요.
모자관계 이면의 낯선 남녀의 동거라는 성적 긴장감이, 그 텐션이 묘했어요.
작품을 보며 젠더의 수행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강도에게 필요했던 건 꼭 생물학적 엄마가 아닌 엄마의 '역할'을 해줄 존재였던 거 같아요.(친엄마 아니라는 사실을 소나무 밑 파기 전,공장에서 잠들었을 때 이미 알고있었다고 보기에)
30년 만에 아들집에 비집고 들어와 처음 한 일이 '설거지 해주기'라니.
'명동 한복판에서 내 새끼 보호해주기''반찬 올려주기'같은 장면들도 일종의 역할놀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모성애라는 것이 꼭 부모 자식간에만이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에 둘 사이에 오갔던 감정들은 훨씬 복잡했을 거 같더라구요,무슨 실화들이햐.

'우리 엄마 어딨어' 대사는 정말 끝내주는 거 같아요.

1
Updated at 2017-02-21 23:46:14

저도 그 대사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런 단순한 대사에서 전달되는 깊이가...
거기서 이정진은 단순히 엄마를 찾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엄마, 처음으로 느껴보는 엄마의 사랑, 마찬가지로 처음 느껴보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이 따뜻한 감정,
간신히 되찾은, 완전히 잃어버렸던 평범한 어린 시절, 성인이 돼서 처음으로 보호하게 된 대상 등.
너무나 다양한 레이어를 걸친 대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7-02-21 23:28:35

자유대한민국 예술영화계의 원투펀치는
김기덕 홍상수 인데 그중에서도
김기덕이 1위라고 봅니다.
세계3대 영화제를 석권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죠.
하층민들의 삶을 관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인생의 의미와 본질을
리얼하게 느낄 수가 있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김기덕 등의
문학가들이 하층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게 그런 이유에서죠.
일상을 정밀묘사하는 홍상수는 동어반복적이고 소재가 빈곤한 반면
김기덕은 소재가 다양하고
예술성이 높습니다.

WR
Updated at 2017-02-21 23:48:54

이상하게 그분의 작품은 많이 접해본 게 없어서 비교가 힘들 거 같아요.
이번에 개봉할 《밤의 해변에서,혼자》는 어떨지 궁금해요.
연출도 궁금하지만 김민희라는 배우의 입으로 듣는 대사들은 늘 매력적이더라구요.

1
2017-02-22 11:06:50

사실 실력에 비해 홍상수는 해외 영화제에서 상복이 없었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게 데뷔작이고 당시 평단의 반응이 좋았죠.
이후 김기덕 만큼의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발표해 왔습니다.
보시면 실망하진 않으실 거에요.

2017-02-22 00:18:03

저는 엔딩부분에서 가끔 나무에 물을 주며 변함없이 살고있는 모습을 그렸다면 좀더 이 영화를 잘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트럭 엔딩장면에서 다른걸 못느꼈거든요. 그냥 저게 뭐야? 도대체 얼마나 가야 발견되는거야? 라는 생각뿐..

WR
2017-02-22 00:22:12

저는 스웨터 뺏어 입고 셋이 나란히 누워있을 때 이미 세상 떠난 줄 알았다 깜짝 놀랐어요

2017-02-22 00:24:16

저만 느낀것인지 그렇게 의도한건지 모르겠지만 이정진은 처음부터 친엄마가 아닌걸 알고있었고. 자살 장면에서도 자살이란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WR
2017-02-22 00:30:07

정말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본다면 아마 말씀하신 부분을 눈여겨 볼 거 같아요.

Updated at 2017-02-22 00:37:43

정확하지 않지만 생일선물이라며 만드는 스웨터에 사이즈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 자살장면에서는 자살하기전부터 자살이후까지 절대 위를 보지 않죠. 누군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했을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건 당연히 없을거라고 생각했다고 보여집니다.

Updated at 2017-02-22 01:52:30

오 이런 반가운 피에타! 5분은 지났나, 엄습하는 공포심에 손가락으로 귀틀어 막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혼자 질질 울다가 한껏 몰입한 친구 팽개치고 나와서 밖에 있는 텐바이텐샵을 구경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어요! 저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우리 다른 영화로 만나요

WR
Updated at 2017-02-22 02:22:55

푸하하 빠른 판단
텐바이텐에서 바로 안구정화 할 수 있었어서 다행이에요.
저도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거 볼 때 중간중간 나가서 강아지한테 뽀뽀해봐서 뭔지 이해가 가요.
특히 이건 첫 씬부터 동공지진이

2017-02-22 09:07:24

독립영화, 예술영화 매니아인 대학동기,회사 동기인 형이 강추해서 개봉당시 말고 집에서 봤었는데 참 힘들었던기억이 나는 영화네요
역시 김기덕감독 영화는 저랑안맞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그냥 제가보기엔 이상한 스토리쓰는 변태 아저씨(할아버지?)... 영화 시작하는 순간부터 힘들었던기억이나네요

WR
Updated at 2017-02-22 11:43:25

저도 많이 단련된 편은 아니지만 이젠 정신적으로 힘든 장면들을 보아도 던지는 메세지가 분명한 감독이라는 믿음 정도는 생기는 거 같아요.
최근작 《그물》은 잔인한 장면이 없어요.
저는 체제안에 갖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지루함 없이 잘 봤는데 기회되면 보세요:D

2017-02-22 10:05:04

김기덕 아저씨 영화 보면 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지루하게 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 그리고 개운하진 않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더럽거나 이상하진 않았어요.

기분 좋으신 분들에겐 라스폰트리에 영화들을 더 추천합니다. 멜랑꼴리아나 뭐 안티 크라이스 같은 영화를 보면...음...

WR
2017-02-22 12:25:08

불안과 우울 같은 감정이 예술에 융화되어 극단으로 치닫는 걸 느끼는 순간 찾아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나봐요.
역시 흥미롭게 보시는군요.
저도 영화 끝나고 기분 안 좋아지는 건 저런 게 아니라 따로 있어서
《안티 크라이스트》는 아직 제게 버거운 영화 같아요.(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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