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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의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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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10 01:23:01
<컨택트>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신선한 SF영화라는 점과 더불어
시간, 소통, 운명론 등의 여러가지 주제를 영화적으로 표현한 멋진 작품입니다.
(촬영감독 브래드포드 영은 인터뷰로만 보고 실제 작품 본 건 이게 처음인데 상당히 놀랍네요.
모든 샷에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의도된 미학을 중요시하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영화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의 선형성 또는 직선성(linearity)'입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시간을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직선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우리는 과거를 과거, 현재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미래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통시적인 관념 속에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여러 형태의 직선 이미지를 강조한 샷에 담아 보여주는데
소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상언어만의 수사학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직선이 그어진 천장샷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



주인공 루이스의 집에서 유일하게 직선 이미지가 아닌 타원형 램프 갓은
영화 끝까지 꾸준하게 화면에 잡아주는 걸로 봐서 주인공이 접촉하게 될 우주선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조금 확대해석하자면 새장이 직선인 이유도 우리처럼 공기가 있어야 사는 새도
결국 마찬가지로 우리와 같은 시공간에 속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산에서부터 내려와 움직이는 자욱한 안개 위에 꼿꼿하게 서있는 (정확히는 떠있는) 우주선.
우리가 받아들이는 시간(안개)의 흐름에 속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후반부에 외계인 언어의 형태를 컴퓨터가 초록색 선과 빨강색 원형점들로 계산해서 해독하는 씬


직선 이미지로 구성된 건물을 배경으로 그녀가 걷는 바닥은 여러선들이 원형을 교차하는 복잡한 무늬로
후에 외계인의 언어를 컴퓨터가 해독하는 장면과 상당히 유사한데,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 외계인의 공간으로 뛰어들게 될 주인공의 운명을 암시합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거나
 혼란스런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의도로 쓰이는 나선형 길이
여기선 조금 다른 의미를 함께 내포합니다.



처음엔 서있던 우주선이 이렇게 누으면 앞과 뒤가 같은 팰린드롬(Palindrome)이 되는데
이도 역시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SF영화인 이상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인물들의 복장, 우주선 내부, 그리고 영화의 주제 등 여러가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이는데,
가장 큐브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은 바로 1점 투시의 사용입니다.
어느 샷에서나 소실점을 지정하여 2차원의 화면에 공간감을 구현하는 큐브릭이 애용했던 미술기법입니다.


<샤이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런 입체감을 살리는 샷이 큐브릭을 향한 일종의 오마쥬로 영화에서 상당히 자주 연출됩니다.





(이 장면은 어떻게 보면 티비 화면이나 극장 스크린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또다른 중요한 주제는 소통(Communication)입니다.
영화내에서 상대방 언어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외계인과도 소통이 어려운데,
크게는 국가들, 그리고 작게는 같은 언어를 쓰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확힌 미장센은 아니지만) 헬기 소음에 의해 서로 이해를 못하다가
소음 차단 헤드셋을 끼고나서야 겨우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사람들간의 소통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영화내내 많은 인물들이 모니터 화면만을 바라보며 소통을 하고, 매번 난관에 봉착합니다.




주인공도 처음에는 외계인과 교류를 하기 위해 시각적 보조(visual aid)를 이용하지만,
외계인들에게 다가가 직접 접촉을 하고 나서야 진정한 소통이 시작됩니다.


번외로 북유럽 사진가 Martina Hoogland의 Speedway라는 작품입니다.
촬영감독은 그녀의 작품에서 이런 현실과 비현실이 만나 조성되는 이질감이
<컨택트>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 몇 군데만 언급해보았습니다.
이런 영화 분석은 분명 영화 관람에 재미를 불어넣는 요소지만,
반대로 지나치면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또한 확대해석을 통해서 감독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관객들이 열광하는 다소 엉뚱한 일도 생기구요.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영화 고유의 깊이(depth)를 만들어주는 장치인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화면 안에 담긴 가능성들을 관찰하며 작품이 가진 한계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건
영화에서 보다 많은 재미를 원하는 관객들과 개성 없는 게으른 화면들이 늘어나는 연출가들
모두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넌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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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7-02-10 00:48:32

좋은 소개글 잘 봤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 말고 메세지에도 어느정도 동의하셨나요?


미학적으로 완전 꽝이라서 저는 

만든이가 무슨 생각을 표현하려고 저렇게 구도를 짜고 이야기를 힘차게 밀고 가는지 봅니다(배경지식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누군지 무엇을 이야기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수 있다면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냥 이야기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을지 그거라도 알아챌려고 노력하는거 같아요


사실 저는 부산역도 끝까지 소통의 문제를 풀어내려고 만든 장치가 좀비라고 봤습니다

이 작품은 외계에서 온 생물체이니 역시나 쉽게 속단내리고 선입견을 가질수 없는 존재를 보여주는군요


아무튼 

저에게 영화는 만든이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대화같아요

아니 먼저 걸어간 이가 다른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장면과 이야기를 함께 보자고 하는걸까요


음... 기회가 되면 저도 말씀하신 측면이나 더 다채롭게 영화를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글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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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10 01: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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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10:55:54

고맙습니다

troiscouleurs 님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네요!! 

2017-02-10 00: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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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
2017-02-10 01:48:24
영화를 보고나니 왠지 모르게 원작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복도나 통로 이동 장면을 그렇게 느끼셨다니 흥미롭네요. 상당히 수긍이 가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
2017-02-10 02:05:36

원작이 단편인데 단편집 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천드려요. 다만 원작은 영화에서 나레이션으로 다뤘던 부분들을 조금씩 파고 든 느낌이거든요. 조금 더 지적이고 복잡한 느낌이 좀 있었어요...

2017-02-10 01:21:09

저 역시 좋게 본 영화에 대한 평가라니 정말 반갑네요. 필력이 대단하시군요. 좋은 분석글 보고 갑니다. 드니 빌뇌브는 확실히 본인의 스타일이 있는것같아 더 애착이 가네요.

WR
2017-02-10 01:50:49

확실히 영어권 작품을 찍으면서 조금 스스로를 자제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심도 있는 연출과 함께 분위기만으로 관객들 멱살을 잡고 끌고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
2017-02-10 07:06:47

그 부분은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저 역시 영어권 작품을 찍으면서 비교적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항상 날 것 그대로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감독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의 퀄리티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단한 감독이다 싶습니다.

2017-02-10 09:33:18

믿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이죠. 빌뇌브 감독.


이번 컨택트도 아주 머리를 때리는 영화였습니다. 원작이 좋았으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구멍이 있기는 해도 저에게는 무시할 정도로 영화 자체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WR
Updated at 2017-02-10 13:39:04
저도 사실 이야기면에선 완전히 만족하진 못했는데
연출이나 촬영은 참 기가막하기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같은 경우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독이 든 경배라고 생각했는데
빌뇌브 감독이라면 은근히 기대가 되네요.
2017-02-10 10:22:10
글 잘 읽었습니다.
분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미장센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갈리는데 컨택트는 그것에 있어서 아주 탁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외계의 생명을 마주쳤을때 Scene은 우리도 실제로는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겠구나를 생생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직선의 시공간에서 존재하지만, 외계에서는 이게 원형의 시공간으로 존재할수도 있겠구나.
라는 새로움 관점을 제시한것 같아서 참 좋았네요.
WR
2017-02-10 13:31:28

저도 그 첫 대면 씬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을 압도시켜버리는 그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2017-02-10 12:51:05

글도 글이지만 미학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담는 렌즈, 저 시선이 너무 좋습니다.

WR
2017-02-10 13:35:16

감사합니다.

Kathy님의 알찬 후기를 보고 볼 결심이 생겼던지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좋은 후기글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2017-02-10 13:10:53

으 꼭 보고 싶어요... 뭔가 안맞아 자꾸 봇보네요.

WR
2017-02-10 13:38:23

가능하시면 오늘이라도 꼭 보세요! 너무 액션 영화만 기대하시지 않으면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Updated at 2017-02-10 17:02:54

감사합니다. 내용 확인했습니다~

쪽지 기능이 있는 건 처음 알았네요. 
WR
Updated at 2017-02-10 14:32:39

쪽지 보냈습니다.

2017-02-10 15:28:06

영화를 좋아해서 교양으로도 공부를 하고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아주 즐겁게 보고 있지만 

미장센과 몽타주등의 미적 관찰하는 관점은 크게 늘어나지 않더라구요.

스태릭 감독의 오마주한 부분을 제외하곤 직선형의 공간들을 배치했다라는 점은 전혀 알지 못했네요 ㅎㅎ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신 점 감사드리며,
혹시 이런 미장센을 보는 관점이나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촬영기법은 그렇고,, 
이전에도 어디선가 답글을 남긴거 같은데, 전 빌뇌브 감독 촬영진의 사운드 활용 방법은 분명 절정이라고 생각을합니다.

사운드와 사운드 사이의 공백으로 인한 긴잠감 유발, 특유의 사운드를 입힘으로써 그 공간을 직접 느끼게 만들며 장면과 어울러지는 사운드는 정말이지,, 
이 감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인데요.
사운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도 궁금하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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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11 17:23:44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자만...;;
정답은 없지만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게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영화 분석할 때 같은 영화를 일주일 내내 보기도 했는데 그런 것도 분명 도움이 된 것 같고,
보기 전에 영화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조사하는 것도 도움이 크고요.
(감독의 성향, 제작과정, 제작동기, 작품의 영감 등등)
어떤 영화과 수업에서는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사운드를 끄고 보기도 한다는데 전 그래본 적은 없네요.
프레임 안의 모든 구성물의 배치나 형태는 전부 의도되었다는 가정 하에
모든 걸 하나하나 짚어넘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영화 음악 참 어렵습니다.
현대 영화 음악은 아직도 무성영화 때부터 쓰여온 대로 영상의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충설명해주는 원시적인 역할로만 쓰이는 게 대부분입니다.
물론 좋은 영화 음악의 정의는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옛날 틀에서 벗어나
'영상이 보여주는 것 외에 또다른 내러티브를 들려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영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설명 없이 한스 짐머에게 편지를 보내 음악을 만들게 한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비슷하게 촬영과 음악작업을 동시에 한 드니 빌뇌브와 요한 요한슨의 작업방법은
상당히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가편집본을 가지고 후반 작업 때 음악을 만드는 기본 방식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이미 영화 음악을 영상과 동시선상에 놓지 않고 보조 역할로 보는 거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제가 들은 영화 음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가 작곡한 데이빗 핀쳐 작품들과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작곡한 영화 <나이트크롤러>입니다.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은 영상에선 느껴지지 않는 입체감을 전달한다고 해야하나요.
응막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치 3D 음악처럼 그 씬의 공간감이 느껴지는데
어찌 보면 요한 요한슨과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네요.
나이트크롤러의 경우는 화면과 전혀 생뚱맞은 음악으로 호불호가 상당히 갈렸는데
그걸로 화면으론 전달되지 않는 주인공의 환상, 즉 영상과는 다른 내러티브를 전달했다고 전 느꼈거든요.
사족이 너무 길었는데...
요한 요한슨은 <시카리오>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야기상으로 전부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세계관을 음악만으로 구현하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그분 특유의 관객을 압도시키는 사운드나
침묵마저 음악으로 만드는 묘한 밸런스도 일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외계인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때 아주 독특한 형태의 보컬이 들어간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을 땐 살짝 소름 돋았습니다. 좀 횡설수설하네요;;

좋은 댓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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