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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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4 17:48:28
오늘 오전에 일을 하면서 친구랑 카톡을 하면서 잠깐 노는데 옛날 친구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하는데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오고, 또 다른 친구, 또 다른 친구 뭔가 이야기가 엄청 흘러흘러 들어가서 기억 속에 잊고 살던 친구의 이야기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 친구까지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떠오르지도 않아요. 그 친구와는 더이상 어떤 접점도 없거든요. 솔직히 친구보다는 그냥 고등학교 동창생 정도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2학년 때 한 번 같은 반을 하기도 했고, 학교가 지리적으로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셔틀버스를 타지 않으면 걸어서 한 20~30분 걸리는 길을 걸어나와야 하는 곳인데 그 친구랑 집 방향이 같아서 종종 같이 걸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 생각하면, 아니 당시에 생각해도 조금 남달랐습니다. 아마도 집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가방은 제가 초등학교 때 들었을 법한 그런 가방전문 브랜드 제노바? 이런 브랜드의 비닐 소재로 된 가방을 들고 다녔고, 고2 때 필통이 쇠로 된 각진 필통을 들고다녔습니다. 그 마저도 세월의 흔적이 엄청 묻어나는 다 녹이 쓴 그런 필통이었습니다. 외모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조금 소도둑? 그렇게 생겨서 별명도 약간 산적, 소도둑, 도적 이런 것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투박스럽고 까만 피부에 몸은 딴딴하고 덩치는 좋은데 키는 그렇게 크지 않은, 멋이나 유행, 브랜드 이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 아니 신경을 쓸 수 없는 친구였을 것입니다.
그 친구와 하교를 몇 번 같이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당시에는 아무래도 대학, 장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할 때 였습니다. 고 2때니깐 야자하고 그러면서도 한 번씩 이야기도 해보고 했는데, 그 친구는 천주교를 믿었고,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생소했습니다. 뭐가 되고 싶나라는 질문에 신부라는 대답이 나온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그 친구는 정말 진지했습니다. 공부도 나름 잘했던 것 같아요. 사교육을 받아보거나 학원의 문 앞에 가본 적도 없는 친구였는데도, 공부를 곧 잘했습니다. 몇 번 집안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봤을 땐 그 친구 공부 충분히 잘했는데, 집에서 아버지께서는 성적표보고 늘 혼낸다고 하시고, 혼낼 때마다 레파토리가 서랍에서 아버지의 성적표를 꺼내서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뭐냐 이래서 보면 늘 반에서 1~2등을 다투셨다고 합니다. 당연히 당시엔 학원, 문제집 이런 것 없이 오로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셔서 아버지도 그 친구가 그렇게 공부해도 충분할 것이라 믿고 계셨고, 그렇게 해오지 못하는 친구가 늘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한 번씩 대학생 때 집 주변에 보면 그 친구가 신학교 학생들이 입는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고, 인사를 나누기도 했었는데요, 어느샌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다 오늘 오랜만에 어쩌다 그 친구 이야기가 건너건너 나와서 그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제가 친구한테,
'야 걔는 신부됐으려나?'
이렇게 이야기를 던졌는데, 친구가 무슨 링크를 하나를 줬습니다. 그 링크를 눌러봤는데, 낯익은 얼굴과 이름이 있었고, 그 친구가 신부가 됐다는 소식, 그것이 자신이 있는 성당 카페에 올라와있더라구요. 첫 미사 이런 것들이 있던데 종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지만 저는 그걸 보고 처음에 육성으로 우와!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 친구가 잘 생겨져서도 아니고, 멋있어져서도 아니고 나는 신부가 될거다 라고 말했던 것을 스스로 지키고,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는 것 그 자체가 멋지고, 감탄스려워서 진짜 부러움과 감탄의 우와 라는 탄성을 지르게 됐습니다.
괜히 연관 게시물들 그 친구가 나온 사진들 더 챙겨보면서 그 친구는 아마도 저를 기억도 못할 것인데 제가 기쁘고, 뿌듯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는 무언가를 꿈을 꾼 적이 있나, 목표를 한 것을 이뤄냈나,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된 이유는 저는 바랐던, 꿈꿨던 일, 목표로 했던 일을 이뤄내지 못했기에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꿈을 이룰까 이런 생각도 들었구요.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언제쯤 그런 기분을 맛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현실에 마주해서 그런 꿈 같은 것들 더이상 꾸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늦엇다 이렇게 포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거창한 꿈이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꿈이나 목표가 아닌 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꾸면서 달려나가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였네요.
꿈을 이룬 그 친구를 언제 한 번 만나게 된다면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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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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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큐예서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고요한 군대 혹은 기숙사학교 같더라구요.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네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