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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나도 극과 극으로 평가가 갈리는 요절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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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1 00:22:17

연말인 12월 22일에 화제를 몰고 왔던 영화가 개봉됩니다.

https://youtu.be/sghBjqq6awM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화가 에곤 쉴레가 28살의 나이로 사망한지 거의 100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이 영화는 에곤 쉴레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네 명의 여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중에 세 명이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이 가지만 한때 에곤에게 관심을 가졌던 저도 4번째 여성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네요. 저 영화가 개봉되면 극장에서 봐야할지 말아야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됩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는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변의 소도시 튤른(Tulln)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에곤 쉴레의 아버지는 튤른 철도역의 역장이었고 매독으로 추정되는 성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에곤 쉴레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나 부모는 그의 예술적 재능을 억누르려 했습니다. 에곤의 아버지는 성병으로 인해 자주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아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며 그림에 열중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습니다. 하지만 에곤은 그런 아버지를 우상처럼 숭배했고 자신이 15살에 아버지가 성병으로 사망했을 때 어머니가 슬퍼하지 않은 모습에 상처받아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사망 때까지 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후 가족들의 반대가 수그러들자 에곤은 16살인 1906년 시험을 치러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합격했습니다. 쉴레보다 한 살 많은 화가지망생 아돌프 히틀러가 두 번 입학을 시도했다 실패한 바로 그 학교입니다. 쉴레는 미술아카데미에서 창조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그럴수록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수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에곤은 미술 아카데미 2년차이던 1907년, 당대 최고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 그에게 인정받았습니다. 클림트는 에곤의 그림이 자신의 젊은 시절 작품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감탄하며 그를 비엔나 미술계의 중심으로 끌어 주었습니다. 클림트의 도움으로 에곤 쉴레는 1908년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였고 자신의 그림을 정기적으로 구입해주는 후원자를 얻었습니다.


결국 에곤은 미술 아카데미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1909년에 자퇴했습니다. 에곤 쉴렌는 1909년까지 클림트의 영향이 현저히 드러나는 작품을 그렸으나 미술학교 자퇴 후 스무 살인 1910년부터 사회적으로 은둔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세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쉴레는 클림트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욕정을 그림의 주요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클림트가 자신의 성적인 본능과 욕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두리 뭉실한 상징적 표현으로 치장한 반면, 쉴레는 절제 없이 적나라하게 인간 이면의 욕정까지 표현했습니다. 클림트가 장식적 요소로 채우던 인물 주변의 공간을 에곤 쉴레는 주로 빈 공간으로 두고 내면을 중요시했습니다.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조화로운 색조는 점차 사라지고 강렬한 색상과 표현의 자화상 및 누드묘사가 등장하였습니다.


에곤 쉴레의 1910년을 대표하는 두 개의 작품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가 평생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은 자화상과 여성 누드입니다. 하지만 에곤의 작품 속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제대로 된 인간의 모습이 없습니다. 그의 자화상들은 살이 거의 없이 가죽만 남은 채 고통으로 일그러진 상처투성이 얼굴에 어느 방향을 향하는 지 알 수 없는 손에다가 자신의 성기까지 과감히 내놓고 있습니다. 그의 여성 누드들은 더욱 충격적이어서 모든 여성들이 창녀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여성의 성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당시에 금기였던 음탕한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네 살 아래 여동생인 게르티 쉴레(Gerti Schiele)를 모델로 해서 그런 그림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아래의 1910년 자화상은 고통을 참는 듯 한 일그러진 얼굴을 한 누드의 모습입니다. 육체는 해보학적인 근육들을 겹치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사람의 살색이라고 보기 어려운 어두운 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텅 빈 배경은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을 도와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음을 이야기하는 듯 허전함을 느끼게 하며 허공에서 뒤틀린 팔은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말해줍니다. 특히 눈동자 없는 눈은 스스로의 삶을 고통스럽고 고립된 존재로 느꼈던 에곤의 감정을 표현하는 듯합니다.




바로 위의 1910년 여성 누드화는 당시 열여섯 살이던 자신의 누이동생 게르티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에곤의 전체 작품 중에서 여성이 가장 정상적으로 묘사된 것에 속합니다. 전형적인 에곤 쉴레의 누드화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은 구글에서 Egon Schiele nude로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에곤 쉴레는 1910년부터 초상화가로 작품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듯한 날카로운 선과 얼굴의 상처와 일그러진 모습의 쉴레의 표현방식은 그 당시 유명 인사이던 의뢰인들에게 외면 받았고, 더 이상 초상화 의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씀씀이가 컸던 에곤 쉴레는 금방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지만 항상 말끔한 정장에 단정한 모습을 하고 다녔습니다. 쉴레는 자신의 초상화속 모습과 달리 늘 흰색 셔츠에 넥타이를 두른 정장 차림이었고, 배우를 연상시키는 미남이었습니다. 초상화 의뢰가 들어오지 않자 쉴레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여러 작품을 그렸습니다.



에곤은 1911년 클림트의 소개로 17살의 발리 노이칠(Wally Neuzil)을 만나 애인 겸 누드모델로 동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풍경화와 함께 어린 소녀들의 누드화를 그렸는데, 그 때문에 1912년 4월에 미성년자를 유혹했다는 죄목으로 24일 동안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출옥 후 누드화가로 에곤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그의 야한 누드화를 구입하려고 하는 구매자들이 충분히 많았습니다. 그 즈음 에곤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부유한 철도 공무원의 딸 에디트 하름스(Edith Harms)가 에곤에게 접근했습니다. 에곤은 그에게 헌신적이던 노이칠을 버리고 부유한 에디트 하름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신병자에 색정광 화가라는 악명 때문에 하름스의 집안에서는 에곤과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으나 1915년 6월 쉴레는 하름스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결혼 사흘 만에 1차 대전의 발발로 인해 병역에 소집되어 에곤은 프라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군인 신분의 화가로 풍경화와 수채화를 그려 작품집을 출간했습니다. 1918년 비엔나 전시회는 에곤 쉴레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에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 6개월이던 아내 하름스가 사망했고, 아내가 사망한지 3일 후에 같은 병으로 에곤 쉴레는 28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2018년은 에곤 쉴레가 사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에곤 쉴레는 지금보다 훨씬 경직된 100년 전에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작업을 끝까지 밀고 나갈 뛰어난 재능과 신념을 갖춘 화가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에곤은 요절한 천재화가로 인정받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서양에서도 에곤 쉴레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에는 대부분 관객들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경고 문구가 붙습니다.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모조리 까발리는 게 에곤 쉴레의 본성인 만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의 작품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 줄어들 거 같지 않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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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12-11 01:02:23

영화 챙겨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WR
2016-12-11 01:06:52

고맙습니다. 이 영화입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307

Updated at 2016-12-11 10:11:57
페북을 통해,쉴레의 전기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고,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할 가능성은 없겠구나 했는데..
일단 정식 상영되는 것만으로 설레입니다..

그런데 서울 1개관에서
딱 5일 상영이라니...
WR
2016-12-11 13:22:59

광화문 씨네큐브입니다. 예매를 할지 말지 망설여집니다.

2016-12-11 01:19:56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흥미로운 인물을 알고 가네요.

WR
2016-12-11 13:25:27

고맙습니다.

2016-12-11 01:43:10

요절한게 아쉬운 화가중 한명이죠. 클림트의 화풍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걸 독특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착시켰습니다.

Updated at 2016-12-11 02:47:14

예전에 "클림트" 영화나오는거 보고 친구에게 "에곤 쉴레도 당연히 영화 나오겠지" 했는데 역시나 나오는 군요^^. 

2016-12-11 02:54:06

3명이 유명하고 한분을 데이먼님조차 감이 안잡히신다면 막 에곤이 스스로 자신의 여성화를 환영으로 봤다던가 이런류의 스토리는 아니겠죠? 천재들 영화나 소설에서보면 자기스스로를 압박하거나 편집증을 일으키는 환영이 나오는데  극의 마지막에 그게 자신이었다를 깨우치는 결말이 더러 있어서

WR
2016-12-11 13:24:58

물론 그런 류는 아닐 겁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모아 만두'랍니다. 영화에서는 신인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391728

1
Updated at 2016-12-11 03:21:03

클림트의 화려함을 좋아해서 기회가 생겨서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클림트만 찾아다니다 빈의 클림트 그림이 있던 박물관에 함께 있던 에곤 쉴레의 그림앞에서 한참을 서서 봤던 기억이 있네요. (그림 문외한에 아는 화가도 10명이 채 안됩니다...)

클림트 초기 그림에서는 사실 특색을 찾을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 친구의 그림은 너무나 독특해서 기억에 오래남았었습니다. 그리고 연혁에 나오는 숫자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명했더라구요.

관심있던 사람이 나오는 좋은 영화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2
2016-12-11 10:23:29

저도 비슷한 경우였는데..

비엔나에 가서,클림트 그림 보려고 미술관 돌아다니다가..
(물론 그의 그림들은 엄청나긴 했습니다..)
이름만 알고 간 쉴레의 그림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인간을 오로지 성욕에 의해,그 분출을 위해 사는 존재로 보고..
당장 자기 자신부터,자신의 여동생,모델로 선 여인들..
모두를 다분히 성중심적이며,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존재로 표현하는..
그의 그림을 눈 앞에서 보면서 받은 에너지는,어쩌면
그림 속 인물들이 뿜어내는 과장되며 왜곡되었지만,그러므로써 더욱
그 피사체의 실제를 보는 것에서 느껴진 것 같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누드들보다도,인상적으로 본 것이
그의 풍경화였어요..
다행히 제 짧은 영어로 해석되는 영문 해설이 있었는데,
자신의 눈에 비친 풍경을 
끊어지지 않고,연속된 한 선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한붓 그리기와 유사한)
문제는 풍경들이 하나의 선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어지지 않은 것들이 이어지는 선의 흐름에서도
그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1
2016-12-11 10:54:30

전 여자친구가 미술하던 친구였는데
패이보릿이라며 소개해준 에곤쉴레네요 .... 잊고 살았는데 데이몬님 책임 지세요 ㅜㅠ ㅋㅋㅋㅋㅋ

2016-12-11 11:04:33

잘 읽었습니다 

영화 한번 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WR
2016-12-11 13:25:51

감사합니다.

1
2016-12-11 12:37:50

베일리님은 이 영화에 주목하시는군요. 전 폴세잔을 좋아해서 이 전주에 개봉하는 폴세잔과 에밀졸라의 영화를 시네마톡으로 보러 갑니다 ;) 이 영화도 시네마톡을 진행한다고 해서 기대가 됩니다.

WR
2016-12-11 13:29:42

오늘 밤에 올리려고 한 글이 바로 그 영화에 대한 것입니다. (댓글로 스포하신 겁니다^^)

'세잔과 졸라'에 대해서는 에곤 쉴레보다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 쓰기도 편안합니다.

다음주에 저희 집과 비교적 가까운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해서 예매를 망설이는 중입니다.

단지 영화를 보려고 서울까지 오시는 건가요? 극장 수는 적더라도 전국에서 상영하면 참 좋았을 텐데요.

2016-12-11 15:17:26

아, 제가 스포해버렸군요 ;) 제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아신다니 기억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베일리님.

신입사원의 멘토가 돼버렸는데 회사에서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을 좀 보여주기 위해서 서울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제가 서울에 살 땐 시네마톡이나 라이브톡, 아트톡 등 톡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기회가 되면 영화 본 후에 저도 글을 한번 써보면 좋겠네요 ;) 필력이 부족합니다만 감상 정도는 남길까 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 베일리님.

WR
2016-12-11 15:33:13

물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 뿐 아니라 입대 전 아바타여행 하던 분을 환대해 주신 것까지도요.


잠시 세잔과 졸라 이야기를 해 보자면 어릴 적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관계가 소원해지고 졸라가 세잔에게 자전적 예술소설인「작품 (L'Oeuvre)」을 보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나거나 서신을 교환하지 않았습니다. 그 책을 보내준 것을 감사하는 편지가 세잔이 졸라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세잔 뿐 아니라 졸라와 가깝게 지내던 많은 화가들은 대부분 「작품」에 대해서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부터 둘의 관계가 소원했다는 여러 증언들도 있고, 세잔도 훗날 둘의 우정이 식은 것이 「작품」때문은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분명히 그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된 이유가 나올 텐데, 그게 무엇일지 참 궁금합니다. 문학이나 예술 비평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부분입니다.

2016-12-11 16:13:16

보통 스포일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베일리님께서 말씀해주신 부분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네요. ;) 영화가 더더욱 기대됩니다. 다음 주 시네마톡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실 분이 누구신지도 아직 회사 내부에서도 안 알려져서 궁금하긴 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2016-12-12 01:46:09

정작 쉴레가 외치던 인간의 본질과 쉴레는 다른거 같네요.

2016-12-12 10:26:14

제목만 보고 (숫자는 못봤네요) 극과 극의 요절한 천재라니 이상 생각하고 들어왔습니다.


에곤 쉴레 제가 참 좋아하고 책도 여러권 봤는데 이렇게 영화로도 개봉을 하네요.
하지만 요즘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도 시간은 한정되다 보니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서울 ㅠㅠ)


2016-12-13 10:25:03

너무 자극적인 그림은 잘 못보지만, 그림 보는거 좋아합니다.

아는게 없어서 가끔 저도 알만한 전시회만 다녀오곤 하는데, 오늘 또 화가 한 명을 알았네요. ^^ 클림트는 이름만 알고있습니다. 그의 키스(연인)는 너무 유명하니까요. 직접 본적은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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