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서야 봤을까, 그을린 사랑
10
1555
Updated at 2016-11-21 11:18:36
좋은 영화는 매달 수십편씩 쏟아져 나오지만
영화 평론을 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1일 1영화를 하면서 산다는 건 제겐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감상하는 2시간 만큼은
유쾌함,몰입감,서스펜스 같은 유희적 요소를 얻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요.
'안티 크라이스트' 같이 작품 속의 은유를 읽어내지 못하면 완전한 감상이 될 수 없는 영화나
'자 이제 여기서 울어버려라' 하는 영화,
책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했는데 평가가 좋지 않은 영화,
보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 거 같은 영화는 1 tier로 놓질 않게 됩니다.
'그을린 사랑'은 단지 포스터와 세간의 '충격적 스토리'라는 평 때문에 힘들까봐 밀어냈었던 작품인데
시카리오 뽕에 취해서 다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안 보신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특히나 조심하셔야해요.
메멘토 처럼 복잡한 플레시백과 디테일, 기발한 시각의 연출이 있어
N차를 찍어도 새롭게 재미있을 영화가 아니고,
차분하게 응축 시켜 놓았던 에너지를 후반에 터트리는게 어쩌면 전부인,
영화적 장치 자체가 극의 주제와 맞닿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진실 앞에 마주 설 용기'
진실을 미리 알아버리면 이야기의 의미가 없잖아요.
어머니 나왈의 사후 유언장 공개로 이야기는 시작 됩니다.
그녀의 변호사가 공개한 어머니의 유언장에는 예상치 못했던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생부와, 있었는지도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니요.
신탁을 물려주어도 슬픔이 아직 안 가실 판에 단서도 주지 않고 그냥 가서 찾으랍니다.
이때부터 여기가면 절로 가라하고 저기 가면 저기 가라하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은 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죠.
본격적으로 딸의 아버지를 찾아으러 중동간 여정과
그곳에서 있었던 어머니의 과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점은 현재이지만 중간중간 필요에 의한 어머니의 과거(단서)들이 교차 편집되어 그려지는 거죠.
기억나는 몇 가지 씬입니다.
그녀를 살린 십자가 목걸이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잔느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바람소리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장면
누가 그녀의 손에 총을 쥐게 만들었는가.
'우리 엄마 감옥에 있었대'
점점 드러나는 엄마의 진실이 버겁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수많은 물음표를 간직하고,
아파할까봐 숨기고,
서로를 위안하고.
어머니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방이 막힌 차가운 감옥 바닥에 앉아서요.
마치 희망을 품을 자유까지 구속할 수는 없다는 듯이
구슬프고 연약하지만 서슬퍼런 오기가 담긴 노래 가락을 뱉어냅니다.
감옥에서의 씬들은 결코 잔혹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알아서 상상해내야 합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어쩌면 평생 너무나 마주하고 싶었을 진실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론수학, 난제와 공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던 이유를
강렬한 대사 한마디로 설명해버립니다.
어머니 유언의 진실이 잉크가 물에 용해되듯 속수무책으로 풀려버립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는 저 남매의 인생은 어떻게 하나요?
아, 작가의 너무나 잔인한 상상력입니다.
몰라, 인간사에 무슨 일은 없겠어.
복수와 사랑,화해의 모순적인 연결고리라는 결론을 던져놓은 채 극은 끝났습니다.
그 안에서의 해석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겠죠.
솔직히 말하면 두번은 그을리고 싶지 않습니다만 전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어요.
'나는 진실 앞에 마주 설 용기가 있는가?' 라는 너무나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14
Comments
글쓰기 |
나와르의 감옥신은 보기에 잔혹하지 않지만(덜하지만) 상상을 하게 만들기에 더 잔혹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