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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인 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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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3 17:32:41
안녕하세요. 30대 후반에 열심히 자아성찰 중입니다. 가끔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최근에 쓴 블로그의 글을 옮겨봅니다. 관련하여 매니아님들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평어체 양해 부탁 드립니다.

회사에 일이 터졌다. 우리팀이 주관팀이 되어 앞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해야할 일이 생겼다. 처음 생긴 일이라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 난 실무자중에서는 첫 번째 또는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은 앞으로의 3개월 또는 6개월이 아주 많이 고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이었다. 입으로는 '씨발 좇됐네'라고 연신 되뇌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안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제껏 해왔던 어떤 일보다 많은스트레스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 이걸 즐기는 내 안의 나는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 내 인생의 지난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비행을 많이 저지르고 다닌 일, 아버지의 외도로 아버지, 어머니가 갈라서게 되었을 때 나는 일견 기뻐했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고 싶어했다.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보다 걱정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적으로 교육을 받아왔기에 기뻐하는 마음을 인지하지 못 했을뿐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좋아하는 내가 분명히 있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손목을 긋는 사람들처럼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머리를 벽에 부딪혀대는 어린 아이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눈길을 동정을 끌고 싶어 했고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오면 사랑받을 기회가 생긴 것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그런 비정상성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무의식중에 여겼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어머니, 아버지가 이별하시게 될때도 마치 내가 드라마의 비운의 주인공이 된 양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런 주인공들이 흔히 그러듯이 나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그러니까 비행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며 비행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나를 더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쁜 짓을 많이 저릴렀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애정결핍인것 같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닌곤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힘든 상황을 겪을때면 의식적으로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하고 극복하고 싶어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 상황을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내가 했던 또는 겪었던 일 중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비정상적인 일이 있으면 그걸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어이없게도 회사에 일이 터졌고 그게 내 일이라 업무에 치어 죽을 판인데 마음 한켠으로는 좋아했던 것이다. 



꼭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라는 사실을 내가 무의식 깊은 곳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를 발견한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알아야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숨어있는 어떤 나와 마주하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즐겨듣는 심리상담관련 팟캐스트의 부제목이 Run into the pain인데 그 이유가 일견 이해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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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9-23 18:30:05

타인이 어떻게 사유하는지 써놓은 걸 재미있어하는 저는 이런 글이 반갑습니다.
잘 봤어요.

WR
2016-09-24 01:31:50

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건 저 역시 재밌어 하는 일입니다. 잘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16-09-23 20:38:12

본인은 심사숙고하셔서 쓰셨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글로 받아들여집니다. 어떻게 보면 본인의 어두운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익명이지만 이런 곳에 털어놓을 수 있는 분이라면 상당히 성숙된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제자신을 설명해본다면요.. 저도 일이 많아지면, 감당하기 싫은 수준인데도 마음 한켠으로는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곰곰히 제 마음을 살펴보면 저 같은 경우는 그 추가적인 일을 수행함으로써 더욱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기뻤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그 일이 다른사람에게 넘어갈까 걱정까지 하게 됩니다. 

WR
2016-09-24 01:35:44

네. 말씀대로 저의 부끄러운 면을 익명성이 보장되었다고 하더라도 털어놓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부모의 이혼을 제가 마음 한편에서는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는 무섭고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또한 제 모습인걸요. 인정해야 받아들이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09-23 23:37:29

내가 힘든상황에처했지만 이것으로 사랑 혹은 관심받을수 있다는 기회로 여긴다는거 정말 공감가는 말이네요. 이 글을 읽고 저역시 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돼는거 같습니다

WR
2016-09-24 01:37:17

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랑받기 위해 자해하는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 있었고 아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딱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일견 한심했는데 그게 제 모습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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