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결핍인 나를 발견하다.
회사에 일이 터졌다. 우리팀이 주관팀이 되어 앞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해야할 일이 생겼다. 처음 생긴 일이라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 난 실무자중에서는 첫 번째 또는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은 앞으로의 3개월 또는 6개월이 아주 많이 고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순간이었다. 입으로는 '씨발 좇됐네'라고 연신 되뇌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안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내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제껏 해왔던 어떤 일보다 많은스트레스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 이걸 즐기는 내 안의 나는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 순간 내 인생의 지난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비행을 많이 저지르고 다닌 일, 아버지의 외도로 아버지, 어머니가 갈라서게 되었을 때 나는 일견 기뻐했었고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고 싶어했다.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보다 걱정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사회적으로 교육을 받아왔기에 기뻐하는 마음을 인지하지 못 했을뿐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좋아하는 내가 분명히 있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손목을 긋는 사람들처럼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머리를 벽에 부딪혀대는 어린 아이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눈길을 동정을 끌고 싶어 했고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오면 사랑받을 기회가 생긴 것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그런 비정상성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무의식중에 여겼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어머니, 아버지가 이별하시게 될때도 마치 내가 드라마의 비운의 주인공이 된 양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런 주인공들이 흔히 그러듯이 나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그러니까 비행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며 비행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나를 더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쁜 짓을 많이 저릴렀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애정결핍인것 같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닌곤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힘든 상황을 겪을때면 의식적으로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하고 극복하고 싶어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 상황을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내가 했던 또는 겪었던 일 중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비정상적인 일이 있으면 그걸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어이없게도 회사에 일이 터졌고 그게 내 일이라 업무에 치어 죽을 판인데 마음 한켠으로는 좋아했던 것이다.
꼭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라는 사실을 내가 무의식 깊은 곳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런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를 발견한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알아야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숨어있는 어떤 나와 마주하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즐겨듣는 심리상담관련 팟캐스트의 부제목이 Run into the pain인데 그 이유가 일견 이해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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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어떻게 사유하는지 써놓은 걸 재미있어하는 저는 이런 글이 반갑습니다.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