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톡에 처음 글 남기는데, 오늘 한 쪽 입장만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서 안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네요.
안녕하세요, 프리톡에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하다하다 너무 열 뻗쳐서 누군가한테 하소연하지 않고서는 잠 못 이룰 것 같네요.
저는 연남동의 조그마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한 요리사입니다.
레스토랑을 하다가 쿠킹클래스를 2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알게된 소믈리에분이 저희 레스토랑을 예약하셨습니다. 총 6분 예약을 하셨고, 저희는 3코스 컨셉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지만, 저희에겐 다소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코스 메뉴를 섞어 5코스로 특별히 해드리도록 하고, 소믈리에분이시기에 콜키지는 따로 청구하지 않고 즐기실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여름 메뉴를 시작한지 거의 3개월이 되고 끝나가는 시점에 그 날 처음으로 메인인 토시살 스테이크 컴플레인이 들어왔었습니다. 저희 친형이 현재 레스토랑 서빙을 도와주고 있는데 손님이 셰프를 찾는다면서 나가보라더군요. 나가보았더니 이 글을 쓰신 손님이 자신이 먹던 스테이크를 셰프님이 한 번 먹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육즙이 없다면서... 미디움 레어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 때 손님분 반응이 어떠셨냐면, 플레이트에 놓아져있는 고기는 반이상은 먹은 흔적이었고 꺠끗해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저한테 먹어보라는 태도가 마치 아랫사람 하대하는 마냥 말을 하더군요.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은,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면서 일을 하라는 말이지, 손님이 자신을 왕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기미상궁입니까? 남이 먹던 지저분해진, 남의 침이 뭍은 음식을 먹으라구요?? 그 말투, 그 표정 잊을 수가 없네요.. 10년 넘게 이 쪽 분야에 있으면서 처음 들은 말투와 표정이었습니다. 학교 셰프도 그렇게 평가내리지도 않지요.
제가 셰프입장이고, 한국 4년제 조리과부터 뉴욕의 한 요리학교 졸업을 포함, 현재까지 10년 넘게 요리쪽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어떠한 반응이 있더라도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천천히 왜 그런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려 하는 찰나, 저를 도와주고 있던 저의 친형이 그 태도에 너무 화가 나서 너무 무례하신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제 친형이 그 말 하기 전까지는 말하지말고 그냥 저한테 먹어보라더군요. 자신이 먹던 음식을요. 저는 형을 진정시키고 납득이 가실 수 있게 설명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수비드 조리방식을 쓰고 있는데, 수비드 조리방식이란, 진공포장백을 통해 고기를 포장한 후 공기보다 온도가 일정한 물을 이용하여 온도를 맞추는 방식입니다. 즉, 57도의 물에 담그어 조리하면 내부 온도가 57도로 정확하게 맞추는 조리방식입니다. 글쓴분이 미디움 레어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토시살을 수비드로 57도에서 내부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정도의 시간을 조리한 후 겉에만 sear했기 때문에, 미디움 레어가 아닌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제 의견이 아닌,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코스 음식에서 메인은 소고기를 드시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은 반면에, 소고기 가격이 만만치 않아 소를 쓰려면 가격자체가 올라갈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설정한 3만 3천원이라는 가격에 3코스 중 메인을 소고기를 활용할 수 있을까 하다가, 미국에선 레스토랑에서나 구할 수 있는 프라임 등급의, 합리적인 소고기를 구할 수 있는 루트를 확인했습니다. 토시살은 영어로 hanging tender라 불리는데, 스테이크 문화인 미국에서 스테이크용으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작은 고깃덩이인 토시살을 미트글루라는, 우리가 흔히 먹는 어묵을 만들 떄 사용하는 단백질 결착제를 활용해서 안심 스테이크와 같은 크기로 만들어, 손님이 메인 디쉬로 드실 수 있도록 고안하였습니다.
고기 조리에 관해 조금만 공부하면 알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은 순전히 고기의 내부 온도입니다. 콜라겐이 가열로 인해 수축이 되면서, 근세포 안에 있는 육즙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많이 올라가버리면 고기의 살은 퍽퍽해집니다. 펄펄 끓는 물에 고기를 조리해도 고기가 과잉익힘되어 퍽퍽한 이유이지요. 그래서 스테이크 조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부 온도 조절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수비드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구요. 고기의 내부온도를 정확히 지켰는데도 고기가 퍽퍽하다면 그것은 고기자체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글쓴분께 납득이 가실 수 있도록 설명드리도록 노력하였구요.
저희는 3코스 가격이 3만 3천원이기 때문에, 연한 부위의 스테이크는 내부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육즙이 없다고 느끼셨으면 그건 스테이크 자체가 손님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고, 저희도 마음같아서는 더 고가의 식자재를 활용하고 싶지만, 연남상권의 소비층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가격의 코스로,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디 3만 3천원이라는 가격대를 고려하시어 식사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씀드렸습니다. 손님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좋아할 요리사는 없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말씀드리니, 물론 주변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들 납득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손님을 제외하구요.
전 요리하는 사람으로써, 음식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공부를 매우 중시하구요. 홍어삼합이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지, 잘못된 음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 레스토랑 음식도 만족스럽지 않은 손님이 계실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도, 그 손님이 말씀하시는 육즙 없는 퍽퍽한 미디움레어도 아닌 스테이크를 부00컷이라는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먹은 스테이크보다 좋았다는 손님들도 계십니다.
그렇게 식사하고 나가서 뭔가 안 좋은 평을 하겠구나 했는데, 평을 확인해보려 구글에 검색해보니 딴00보라는 곳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겼더군요.
게시글에 요리사 소환술을 했다느니, 요리사는 재료탓을 하고 서버는 손님에게 예절을 가르친다느니 순전히 자신이 피해자인양 글을 남겼더군요.
진짜 글을 읽다보니, 그 당시 참았던 화가 거꾸로 쏟아오르네요. 1인당 5만원은 그 모임에서 요청해서 5코스로 내어드린거구요. 심지어 보통 5코스 레스토랑이면 코스가 길어져서 포션양도 작아지는데 저희는 원래 포션으로 전부 내어드렸습니다. 일반 코스 파는 것보다 손해를 봄에도 불구하구요.
그 자신이 피해자인양 작성한 글에 댓글들도 저를 당황케했습니다. 컨셉 위주의 화려한 음식점을 피하라는 분도 계셨는데, 저희는 음식 가격에 컨셉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3만 3천원이라는 가격 한도내에서 최대한 저희의 정체성을 보여드리려 하는거구요. 그리고 저희가 미디움레어로 통일하는 이유는 3코스이기 떄문에, 미디움, 미디움웰, 웰던 등의 다양한 굽기를 요청받으면 코스 간격이 길어져서 손님께서 컴플레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현실 때문입니다. 그 손님은 설명드렸어도 기억 못하시겠지만요. 다른 댓글에는 그냥 전자렌지로 조리한 것 아니냐 등등 그 글만 보고 판단하여 댓글을 작성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 손님분은 댓글로도 참교육 시전이 필요하다라, 왜 손님입장에서만, 자신이 했던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글 쓰시는지 황당하네요. 다른 분들께서 그 손님 태도가 어땠는지 직접 보셨으면 싶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장사한다면 그냥 장사 접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댓글 다셨네요. 참 그렇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답변해드렸는데도 이런 반응인게, 제가 그렇게 성심성의껏 주방에서 나와 대화했던 것 자체가 바보짓이었습니다. 그 손님 글만 읽으면 제 3자 입장으로 읽어봤을 때 레스토랑측이 완전 나쁜인간들이네요. 이래서 양측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것을 오늘도 뼈져리게 느끼네요. 왜 다른 5분께서 저에게 사과하셨는지 고민도 안 하나 봅니다.
졸지에 저는 10년간 조리계에서 발 담그면서 노력했음에도, 재료탓만 하는 요리사로 전락했습니다. 그 짧은 글이 저의 조리 인생을 그딴식으로 표현한게 너무 화가 나네요.
p.s. 그리고 수비드조리에 육즙이 없다고 하셨는데 앞서 나갔던 양고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으셨던 것도 이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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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진상도 다 있네요. 게다가 딴x일보라니 허허.
여담이지만 글쓴이님의 글을 보고나니 오히려 이집에 가보고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