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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받았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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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1 11:46:03

꽤 오래 전에 언젠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절했습니다. 이미 만나고 있었던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이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거절했을 겁니다. 제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던 이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못생겼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제 취향하곤 거리가 있는 외모였습니다만 온전히 빈말은 아닌, 한 절반 이상 진심이 섞인 예쁘다는 말은 자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 외에 여러 손재주도 꽤 있었습니다.


허나 그와는 별개로 저는 그분의 됨됨이가 구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백의 말은 거절했습니다. 당연히 곧이곧대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고 감사하지만,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정중히 사양 의사를 표했지요. 거절 당하면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겠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예는 표했다 생각합니다.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그분이 남성만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양성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점을 민감하게 숨기려고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저에게 문제가 됐냐고 하면 그건 전혀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성을 좋아하고, 그분은 이성이었으니 그분이 양성을 다 좋아하는 성 소수자라는 게 제겐 문제가 안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양성애가 성적 소수자에 속할지언정 제가 개의치 않고 연애할 수 있는 합의점은 있었던 거죠.



제가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위에 언급한 대로 그분 성격을 구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비슷한 유형을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민하면서도 희한하게 인간 관계의 오지랖은 넓고, 예민하기 때문에 그 오지랖에서 오는 상처는 있는 대로 다 받아버리고 끙끙 앓는 타입이 있습니다. 제 보기에는 쓸데없는 데 오지랖부리며 끼어든 대가로 얻은 상처일 뿐인데, 정작 본인은 혼자 온세상 상처는 다 받는 듯한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유형은 딱 질색이고, 그래서 그분도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분은 굳이 자신의 성적 취향을 꽁꽁 감추려고 하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공공연히 말하는 타입이었지요. 그리고 매우 고약하게도, 제가 고백을 거절한 이유를 자신이 양성애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들 제가 그분의 고백을 안 받은 이유를 제가 성적 소수자에 대해 꼴통스러운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더군요.


원래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 하지요. 저는 그분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아줄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 모둠과 서서히 거리가 생긴 탓도 있고, 이사까지 겹쳤던 터라 그쪽과는 거의 인연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지나기도 했고, 마침 만나자는 곳에서 가까운 데 볼 일이 있어 만났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한때는 활동 범위가 겹치는 곳이 많은 사람이라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분이 당시의 일을 꺼냈습니다. 자신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순간 소름이 확 돋는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지만, 실상 유언비어에 가까운 말을 퍼뜨리며 누군가를 흠집낸 것에 대한 상처는 스스로 받고,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엮어서 더 큰 상처를 혼자 받은 자가 그 당시의 진짜 피해자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말을 꺼낸다는 것에 정말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 만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너와 그렇게 된 이후로는 남자가 잘 생기지 않는다. 생겨도 금방 헤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에도 볼 만한 외모였고, 지금은 어린 시절의 외모에 세련미까지 합쳐져 그야말로 봐줄 만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생각이 그 따위여서야 누가 그분과 연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겠냐 싶었습니다. 뭐 당시에도 그랬고, 얼마 전에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만......



얼마 전 만남으로 갑자기 과거지사가 떠올라 정리가 안 된 채로 길게 글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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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8-21 12:08:54

저는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에 대해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애의 대상으로 다가오면 양성애자라는 것을 배제하고 고려해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네요. 살면서 연애의 대상은 커녕 아예 주변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없었습니다.
친구나 지인으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와 인간관계를 맺어보고 싶은데 이러한 호기심조차 그분들에게는 실례가 되겠지요?
저도 님 글 보고 정리 안된 채로 댓글을 달아봅니다.

WR
2016-08-21 14:40:09

동성애에는 제가 관심이 없지만, 여성이 양성애자라면 그쪽이 좋은 연인으로서 지켜줘야 할 것만 지킬 수 없다면 연애 상대로 생각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요.

친구로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성적 소수 쪽인 친구들이 몇 있는데, 보통의 좋은 친구가 갖춰야 할 조건을 갖춘 친구들은 성적 취향이 어떻든 좋은 친구이고,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친구는 성적 취항이 어떻든 간에 나쁜 친구였습니다.

4
2016-08-21 12:16:17

어차피 다시 안 볼 사이라면 돌직구 하나 날려주시지 그러셨어요. 뭐 그 사람이 말한다고 알아들을 것 같진 않지만, K2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말을 하시는게 맞지 않았나 합니다.

WR
2
2016-08-21 14:41:38

사필귀정이라, 그 모둠의 다른 친인에게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쪽에서도 신망은 거의 잃은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말씀대로 한 마디 쏘아붙여줄까 하다가 그러면 또 그걸로 찐따 붙을까 저어되어 그냥 놔뒀지요.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2016-08-21 12:23:09

저랑 굉장히 비슷한 경우시네요.

저도 태어나서 고백을 딱 두번 받아봤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첫번째 고백을 받은 분과 사귄지 (제 인생 유일한 연애입니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우연히 알게된 여성분께서 대시를 해오시더라구요. 
연상이긴 했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대화중에 양성애자인걸 알게 되었구요.
당시엔 연애중이라고 거절했지만, 다른시기였다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네요.
삼십팔년 인생 통틀어 여자랑 연이 닿은게 딱 두번인데, 그 시기가 겹친다는게 참 신기하네요.
(물론 지금은 아주 오랜기간 솔로입니다.)
WR
2016-08-21 14:42:41

그 시기가 보통은 겹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누군가와 사귄다는 것은 본인의 매력이 밖으로 배어나올 정도로 완숙했다는 의미일텐데, 그렇다면 다른 여러 이성들이 대쉬를 하게 되겠지요. (웃음)

Updated at 2016-08-21 12:33:55

흠 저도 예민한 성향의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지랖은 잘 모르겠지만, 예민한데다 기분변화가 크고 변덕이 심해서 꽤나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거기다 K2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본인이 입은 상처와 피해만 생각하는 타입이었습니다. 본인의 변덕과 선입견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행동이 변덕스러워 자길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지적만 하길래 진절머리 났었었죠.

WR
2016-08-21 14:43:35

성적 취향이야 어쨌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일 뿐인데 몇몇 사람은 그걸 모르는 게 안타깝지요.

2016-08-21 13:00:37

저는 억울해서라도 따질 거 같은데 한마디 안하시니 안타깝네요..

WR
2016-08-21 14:45:36

진짜 완전히 무관심한 사람이었던 터라 따질 기분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론을 해치고 다녔어도 대강 어떤지 속사정을 아는 제 친인들 때문에 금세 사그라들어서 굳이 제 손을 더럽힐 필요가 적었죠.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WR
2016-08-22 11:48:24

사이코패스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소시오패스는 진짜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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