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받았던 고백
꽤 오래 전에 언젠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절했습니다. 이미 만나고 있었던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이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거절했을 겁니다. 제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던 이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못생겼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제 취향하곤 거리가 있는 외모였습니다만 온전히 빈말은 아닌, 한 절반 이상 진심이 섞인 예쁘다는 말은 자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 외에 여러 손재주도 꽤 있었습니다.
허나 그와는 별개로 저는 그분의 됨됨이가 구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백의 말은 거절했습니다. 당연히 곧이곧대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고 감사하지만,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정중히 사양 의사를 표했지요. 거절 당하면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겠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예는 표했다 생각합니다.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그분이 남성만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양성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점을 민감하게 숨기려고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저에게 문제가 됐냐고 하면 그건 전혀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성을 좋아하고, 그분은 이성이었으니 그분이 양성을 다 좋아하는 성 소수자라는 게 제겐 문제가 안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양성애가 성적 소수자에 속할지언정 제가 개의치 않고 연애할 수 있는 합의점은 있었던 거죠.
제가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위에 언급한 대로 그분 성격을 구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비슷한 유형을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민하면서도 희한하게 인간 관계의 오지랖은 넓고, 예민하기 때문에 그 오지랖에서 오는 상처는 있는 대로 다 받아버리고 끙끙 앓는 타입이 있습니다. 제 보기에는 쓸데없는 데 오지랖부리며 끼어든 대가로 얻은 상처일 뿐인데, 정작 본인은 혼자 온세상 상처는 다 받는 듯한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유형은 딱 질색이고, 그래서 그분도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분은 굳이 자신의 성적 취향을 꽁꽁 감추려고 하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공공연히 말하는 타입이었지요. 그리고 매우 고약하게도, 제가 고백을 거절한 이유를 자신이 양성애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들 제가 그분의 고백을 안 받은 이유를 제가 성적 소수자에 대해 꼴통스러운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더군요.
원래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 하지요. 저는 그분의 오해를 굳이 바로잡아줄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 모둠과 서서히 거리가 생긴 탓도 있고, 이사까지 겹쳤던 터라 그쪽과는 거의 인연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아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이 지나기도 했고, 마침 만나자는 곳에서 가까운 데 볼 일이 있어 만났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한때는 활동 범위가 겹치는 곳이 많은 사람이라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분이 당시의 일을 꺼냈습니다. 자신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순간 소름이 확 돋는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제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지만, 실상 유언비어에 가까운 말을 퍼뜨리며 누군가를 흠집낸 것에 대한 상처는 스스로 받고, 또 그 상처를 스스로 엮어서 더 큰 상처를 혼자 받은 자가 그 당시의 진짜 피해자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말을 꺼낸다는 것에 정말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 만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너와 그렇게 된 이후로는 남자가 잘 생기지 않는다. 생겨도 금방 헤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에도 볼 만한 외모였고, 지금은 어린 시절의 외모에 세련미까지 합쳐져 그야말로 봐줄 만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생각이 그 따위여서야 누가 그분과 연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겠냐 싶었습니다. 뭐 당시에도 그랬고, 얼마 전에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만......
얼마 전 만남으로 갑자기 과거지사가 떠올라 정리가 안 된 채로 길게 글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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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에 대해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애의 대상으로 다가오면 양성애자라는 것을 배제하고 고려해볼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네요. 살면서 연애의 대상은 커녕 아예 주변에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없었습니다.
친구나 지인으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와 인간관계를 맺어보고 싶은데 이러한 호기심조차 그분들에게는 실례가 되겠지요?
저도 님 글 보고 정리 안된 채로 댓글을 달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