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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달여에 걸친 즐거운 마음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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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02:32:43









저는 작가 김훈 씨의 『칼의 노래』를 지난 2월부터 시작해서 약 다섯 달에 걸쳐 필사했습니다. 소설은 머리말이나 평론 및 작가 소감 등을 뺀 본 내용은 300페이지가 좀 넘는 분량이고, 필사는 노트 두 권 하고도 반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마음 공부를 하려고 시작했던 필사였습니다. 때문에 대학 과제처럼 급하게 할 필요도 없었고, 책도 아무렇게나 골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김훈 씨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칼의 노래』를 선택하여 했습니다.

요새는 초판의 분위기를 살린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나, 백석 시인의 『사슴』 같은 시집들이 아예 필사까지 할 수 있도록 시집 자체에 여백을 많이 두고 나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명시名詩들을 필사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라고 하지요.



집에 들어 와 씻고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 대략 하루에 두세 바닥 정도씩 썼습니다. 연필로 쓰다가 나중에는 샤프펜슬로 썼습니다. 오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방점을 찍으면서 마음 속으로 『칼의 노래』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 소설 속 주인공인, 마음으로 세상을 버린 자, 충무공을 존경했고, 더 존경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 공부가 됐는 지는 모르겠지만 필사를 하는 내내 영광이었고 행복했습니다. 그것으로 된 것이겠지요.



전에 Agape님께서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보통의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용을 떠나 글쓰기의 craft, 그 절묘한 배치와 재치와 센스를 음미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이니 꼭 원문 소설을 읽어보라고 충고해주셨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거기에 덧붙이자면 그 센스에 비견될 만한 한국 현역 작가는 김훈 씨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소설 그 자체를 사랑해서 마음 공부의 필사로 『칼의 노래』를 선택했지만, 그 문장도 혹시 배울 수 있을까 하여 김훈 씨의 소설을 선택한 면도 있습니다. 신문 기자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는 문체, 적확한 단어 배치, 눈앞에서 현장을 보는 듯한 핍진함은 한국어로 문장을 만드는 craft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음 공부로 시작한 것이 어느 새 취미가 됐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캐주얼한 소설인 『개』를 필사하거나, 아니면 역사 3부작 중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가장 높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남한산성』을 해볼까 합니다. 즐거운 새 취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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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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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7-22 02:47:03

말줄임표 여섯 개가 킬링파트.
필사의 효용이 생각보다 많네요.괜찮은 취미 같아요.

WR
2016-07-22 10:02:23

우연히도 저 마지막 문단이 정확히 저렇게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문단을 필사하며 괜히 울컥했었네요.

Updated at 2016-07-22 03:06:29

와 끝까지 갈무리하다니 대단하세요. 저는 이모의 권유 플러스 성경공부도 해볼겸해서(비종교인인 게 함정..) 성경필사를 했다가 세 페이진가 하고 접은 기억 뿐인데, 필사하신 노트 보니 저도 다시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WR
2016-07-22 10:03:10

좋아하는 소설, 혹은 책을 필사하시면 끝까지 가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괜찮은 취미입니다.

2016-07-22 02:57:26

저도 하나 시작하려 합니다

작심삼일이 될까 두려워 서사는 잘 못하겠고... (중국) 당시 300수에서 골라가면서 해 보려 합니다
이백 두보와 함께 두둥실 떠나 볼게요. 
물론 중국어 잘 못하지만 한자는 조금 아는 만큼 직접 써 가면서 해 볼 계획입니다
작성완료 누르고 인터넷서점 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WR
2016-07-22 10:04:01

시 좋죠. 저는 서사가 좋아 그렇게 했지만, 가사 문학 필사야말로 마음 공부에는 정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즐겁게 시작해 보시길 기원합니다. ^^

2016-07-22 03:01:49

와 대단하시네요. 필사 시작하신다는 글을 매니아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나는데..저는 아마 얼마못가 포기할것같습니다

WR
2016-07-22 10:04:48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저 책이 좋아서, 충무공에 푹 빠져서 쉬엄쉬엄 하다 보니 다 할 수 있었네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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