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여에 걸친 즐거운 마음 공부
저는 작가 김훈 씨의 『칼의 노래』를 지난 2월부터 시작해서 약 다섯 달에 걸쳐 필사했습니다. 소설은 머리말이나 평론 및 작가 소감 등을 뺀 본 내용은 300페이지가 좀 넘는 분량이고, 필사는 노트 두 권 하고도 반 정도 되는 분량입니다.
마음 공부를 하려고 시작했던 필사였습니다. 때문에 대학 과제처럼 급하게 할 필요도 없었고, 책도 아무렇게나 골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김훈 씨의,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칼의 노래』를 선택하여 했습니다.
요새는 초판의 분위기를 살린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나, 백석 시인의 『사슴』 같은 시집들이 아예 필사까지 할 수 있도록 시집 자체에 여백을 많이 두고 나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명시名詩들을 필사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라고 하지요.
집에 들어 와 씻고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 대략 하루에 두세 바닥 정도씩 썼습니다. 연필로 쓰다가 나중에는 샤프펜슬로 썼습니다. 오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방점을 찍으면서 마음 속으로 『칼의 노래』를 얼마나 사랑했는 지, 소설 속 주인공인, 마음으로 세상을 버린 자, 충무공을 존경했고, 더 존경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 공부가 됐는 지는 모르겠지만 필사를 하는 내내 영광이었고 행복했습니다. 그것으로 된 것이겠지요.
전에 Agape님께서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보통의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용을 떠나 글쓰기의 craft, 그 절묘한 배치와 재치와 센스를 음미하며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이니 꼭 원문 소설을 읽어보라고 충고해주셨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거기에 덧붙이자면 그 센스에 비견될 만한 한국 현역 작가는 김훈 씨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소설 그 자체를 사랑해서 마음 공부의 필사로 『칼의 노래』를 선택했지만, 그 문장도 혹시 배울 수 있을까 하여 김훈 씨의 소설을 선택한 면도 있습니다. 신문 기자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는 문체, 적확한 단어 배치, 눈앞에서 현장을 보는 듯한 핍진함은 한국어로 문장을 만드는 craft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그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음 공부로 시작한 것이 어느 새 취미가 됐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캐주얼한 소설인 『개』를 필사하거나, 아니면 역사 3부작 중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가장 높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남한산성』을 해볼까 합니다. 즐거운 새 취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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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줄임표 여섯 개가 킬링파트.
필사의 효용이 생각보다 많네요.괜찮은 취미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