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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과 중국 황제들의 화려한 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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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00:56:27

제가 10년쯤 전에 조선 왕의 삶과 현재 나의 삶 중에 어느 쪽이 질이 높을까를 스무 개 정도 항목으로 비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15개의 정도의 항목에서 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는 현재 제 삶의 질이 높다고 결론이 났고, 나머지 3~5개 항목도 왕의 삶은 질을 떠나서 저에게는 전혀 부럽지 않은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부러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래에 이건희 회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서 이 글을 씁니다.


우리나라의 왕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였던 만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식욕과 권력욕 그리고 색욕을 원하는 만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색욕은 왕의 사생활이지만 나라의 존망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 조선시대의 경우 왕의 밤생활에 대한 입장은 정도전에 의해 확립되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로서 건국이념, 국가의 노선과 제도 등을 확립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초에 지어진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기 전까지 궁궐로 쓰였습니다. 경복궁 각 전각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는데, 그가 왕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 지은 것에는 왕이 사적인 욕망에 휩싸여 중용의 도를 잃지 않도록 경계하는 유교적 훈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조선 왕의 가정생활과 밤생활은 침전인 강녕전과 중전의 교태전, 그리고 후궁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후궁이라는 것은 원래 왕후가 아닌 빈, 귀의, 소의, 숙의, 소용, 숙용 등이 거처하는 궁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곳에 머무는 왕의 배우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왕의 부인은 1명의 왕후와 여러 명의 후궁으로 이뤄집니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많은 후궁을 둔 인물은 태종(11명)이고, 그 뒤로 성종(9명), 중종, 정조와 철종(7명), 선조(6명)의 순입니다. 재임 기간이 비교적 길었지만 후궁을 두지 않은 왕은 13대 명종과 18대 현종입니다. 한반도를 지배했던 왕들 중에 가장 많은 부인을 거느린 사람은 고려의 태조 왕건입니다. 왕건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이유는 성행위가의 목적이 아니라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호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혼인이었습니다. 왕건은 29명의 부인들 두었습니다.


깐깐하고 규율이 강한 정도전이 왕의 밤생활 규범을 만들었던 만큼 조선시대 왕의 성 윤리는 중국에 비해 매우 엄격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글 뒷부분에 쓰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왕은 격무와 병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매일 밤생활을 치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선 왕의 밤생활은 침전인 강녕전이 아니고, 왕이 마음 내키는 대로 중전이나 후궁의 침실로 찾아가서 합방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어느 후궁에게 갈지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 순간 왕의 마음에 달려있었기에 후궁이나 왕비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역술가에 의해 아들이 들어설 것 같은 길일이라고 점찍힌 날이 있으면, 제조상궁이 왕에게 권유하는 형식으로 강녕전에서 합방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강녕전에서 합방이 이뤄지는 또 다른 경우는 왕이 마음에 드는 궁녀를 점찍어 놨다가 강년전으로 은밀히 불러 성사됩니다. 그 경우 해당 궁녀는 즉시 신분에 급격한 변화가 오고 별도의 거처가 마련됩니다. 유교 지식인들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해 온 조선 왕의 밤생활은 기본적으로 대를 이을 자녀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연산군을 제외하면) 극도로 방탕한 성생활을 영위했던 왕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1년이 되는 1439년(당시 42세)에 승지 김돈에게 한 말이 전해집니다. 그 시대에 왕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아팠고 10년을 앓다가 조금 나았는데, 그때부터 등에 부종이 생겨 아픈지가 오래되었다. 아플 때는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참을 수 없다. 지난 해 여름에는 임질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겨울에 이르러 날씨가 추워지자 조금 나았다. 지난 봄 강무를 한 이후로 왼쪽 눈이 아파 안막을 가리는 데 이르고,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 사람도 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역사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중국 황제의 성생활은 조선의 왕보다 훨씬 자유롭고 문란했습니다. 진시황은 1만명의 후궁을 거느렸고, 당나라 현종은 후궁과 궁녀를 합쳐 4만명을 거느렸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황제의 성생활에 대한 유교적 규범이「주례」라는 책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황제의 행동은 조선의 왕만큼 유교에 얽메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주례」에 의하면 중국 황제는 황후 1명을 위시하여 부인 3명, 빈 9명, 세부 27명, 어처 81명 등 정부인 1명과 후궁 120명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는 조선의 왕과 달리 후궁들과 집단합방을 했습니다. 황제는 황후를 제외한 후궁들과는 집단합방이 원칙이었는데, 세부와 어처는 한 자리에 9명씩 황제와 집단합방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하루도 쉬지 않고 황제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인들과 합방을 하도록 스케줄이 구성된 것입니다. 「주례」규정에 의한 한달 동안 황제의 잠자리 스케줄은 아래와 같습니다.


01일-09일 : 81명의 어처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10일-12일 : 27명의 세부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13일 : 구빈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4일 : 삼부인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5일 : 황후 혼자서 황제와 동침

16일 : 황후 혼자서 황제와 동침

17일 : 삼부인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8일 : 구빈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9일-21일 : 27명의 세부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22일-30일: 81명의 어처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물론 이것은 「주례」규정일 뿐이고 실제 황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후궁들과 집단합방을 하며 무절제한 삶을 살았습니다. 중국 문명의 황금기인 7세기 중반 당태종 시절에는 후궁의 수가 이보다 훨씬 많았는데, 황궁의 규방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제의 규방에서 기거하는 수많은 후궁과 궁녀들의 생리주기, 배란시기, 성교날짜, 임신 등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궁녀나 후궁이 황제와 잠자리를 같이 한 날짜를 그녀의 팔에 지워지지 않는 염색약으로 새겼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9개월 후에 아기를 생산할 경우 황족으로서의 신분증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황제 중에는 후궁, 궁녀들과 힘든 합방을 자주 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을 빼지 않고 미녀들과 즐기는 걸 더 좋아한 인물도 많았습니다. 수나라를 말아먹은 양제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미궁을 건축하여 수많은 미녀에게 속이 비치는 얇은 적삼만을 살짝 걸치고 미궁 위에 서있게 했습니다. 바람이 불어 적삼이 날려 나신이 드러날 때 그녀들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자세하게 묘사하면 이 부분은 정말 야할 수 있어서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수컷은 생식적 성공을 달성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욕망을 가지도록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처럼 동성애자가 아니면서도 여자에게는 지나치는 관심 이상을 가졌던 적이 없는 정복자도 있었습니다. 오늘 글은 정말 황당한 내용이 되었네요. 제가 며칠 후에 미국에 가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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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7-22 01:03:56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혹시 전공자이신가요?

글 참 잘쓰시네요... 장문의 글이 이렇게 쉽게 읽히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2016-07-22 01:11:46

데일리님 유명하시죠! 이분 글 쭉 읽다보면 제자신이 똑똑해져감을 느낍니다

2016-07-22 10:52:10

제가 알기론 전공자가 아니라 교수이신 걸로....

Updated at 2016-07-22 01:10:38

재미있네요. 여자한테 관심 없던 지배자도 궁금하네요. 그 지배자가 어떤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말입니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거는 아니었겠죠

2016-07-22 10:18:49

요즘 짤로 만들어져서 넷상에 돌고 있는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리우스 2세 불가록토누스 황제가 생각나네요. 황제가 그야말로 수십 년을 일만 죽어라 하다 죽었디고 하죠.

2016-07-22 01:10:50
뭘 그렇게 챙겨먹어서 저런 스케쥴 소화가 가능한건지...
2016-07-22 01:45:57

다접하되 방사하지 말라는 소녀경의 골자가 문득 생각나네요. 10대의 소녀 100명을 모아놓고, 모두와 접하되 방사하지 않음으로서 젊은 소녀의 음기를 취득하는것을 즐겼다던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2016-07-22 07:37:45

재미있는 상상입니다.
저도 이를 닦을때비슷한생각을 해 본적이있습니다.
이런 청량감은 조선시대 왕도 느끼지 못해봤겠구나 하고요
또는 맹장염같은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맹장염은 거의 죽을 병이었을테니까요

2016-07-22 11:09:54


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마지막에 미국에 가신다는 말이 매니아를 떠나신 다는 말 처럼 들려서

아쉽네요. 아니길 바랍니다..^^

2016-07-22 12:42:02

 요즘 출근길에 책 읽듯이 Damon Bailey님 글 찾아 읽고 있습니다.

 양질의 글 많이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WR
2016-07-22 14:29:22

댓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에 작은 오류가 있어 수정합니다. 확인한 결과 조선 13대왕 명종에게는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위기간이 10년 넘지만 후궁이 없는 왕은 현종 한분입니다. 재위기간이 34년인 23대 순조는 후궁이 한명(숙의 박씨) 뿐이었습니다.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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