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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관심을 끌었던 세기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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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6 16:52:27

O.J. 심슨은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나고 인기 높은 미식축구 선수(러닝백)로 1985년 NFL 명예전당에 입성한 슈퍼스타입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TV와 영화에 출연했고, 은퇴 후에는 리포터, 영화배우, 엔터테이너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2_tJIgfnDA

그는 19살이던 1967년에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으나 막내가 불의의 사고사를 당한 충격으로 이혼하게 되고, 1985년 니콜 브라운과 두 번째 결혼했습니다. O.J. 심슨은 1977년 나이트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니콜 브라운을 알게 되었고, 1979년 이혼 후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O.J. 심슨과 니콜 브라운은 1992년 이혼했는데, 심슨의 폭력성과 가학성 그리고 니콜에 대한 집착과 질투심이 이유였습니다. 심슨은 둘 사이에 태어난 두 자녀의 양육권도 니콜에게 넘겨줘야 했습니다. 이혼 후 O.J. 심슨은 간간히 니콜 집으로 찾아가 재결합 하려고 애원했습니다. 니콜이 거부하면 여전히 협박을 하고 폭행도 했습니다. 이혼 후에도 니콜이 경찰과 911에 울며 신고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O.J. 심슨은 흑인이었지만 니콜과 사귄 이후로 백인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었고, 그 주변의 백인들은 아무도 O.J. 심슨을 흑인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O.J. 의 가정은 항상 불안했지만, 그의 부드럽고 착하면서도 어리숙한 이미지로 인해 미국인들은 그를 선한 인물의 표본으로 여겼습니다. 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화 중 하나는 1980년대 초반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자신의 영화 「터미네이터」에 O.J. 심슨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그의 착한 이미지가 냉정한 살인기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 의견에 포기했던 일입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O.J. 심슨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그 정도로 호감일색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cS1LCfVXak

1994년 6월12일 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브렌트우드의 호화 저택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온통 피범벅이 된 채 숨진 백인 남녀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잔인하게 살해되었는지 여자 어디가 얼굴이고 어디가 몸인지 분간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사망한 여자는 O.J. 심슨의 전처인 니콜 브라운 심슨이었고, 남자는 그녀를 방문한 식당 종업원 로널드 골드만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O.J. 심슨이 용의자로 떠올랐습니다. O.J.는 알리바이가 없었고,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칼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뚜렷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http://i.imgur.com/TkAgq34.jpg

O.J. 심슨은 6월 13일 자신의 변호사로 LA의 최고 거물급 변호사인 로버트 샤피로를 선임했습니다. 그는 간단한 경찰조사 후 6월 16일 니콜의 장례식 이후 다시 경찰에 출두하기로 약속하고 귀가했습니다.


O.J. 심슨이 경찰에 출두하기로 약속한 6월 17일 저녁에는 뉴욕 닉스와 휴스턴 로케츠의 NBA 파이널 5차전이 열렸습니다. 농구 경기 방송을 진행하던 중에 NBC는 갑자기 방송을 끊었습니다. O.J. 심슨은 경찰에 출두하는 대신에 포드 브랑코를 타고 도주하고 있었습니다. 결찰헬기가 심슨의 차량을 발견하면서 경찰차 20대가 따라붙는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한시간의 추격전 끝에 O.J. 심슨은 자기 집으로 돌아왔고, 도주 차량에는 권총과 여권, 수천달러의 현금과 변장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심슨은 한 시간 후 자수하겠다고 요구해 동의를 얻은 뒤 약속대로 걸어 나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에 자수한 심슨은 대중과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LA 카운티 검찰은 두 명을 살인한 죄로 심슨을 기소했습니다. 심슨의 기소를 담당한 검사는 LA 카운티 차장검사(Deputy DA)인 41살의 마샤 클락(Marcia Clark)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9개월 동안 마샤 클락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었습니다.

http://i.imgur.com/yP3ghFF.jpg

마샤는 엄청난 열정과 의욕을 보였지만 재판 과정에서 실수를 연발했습니다. 검찰측의 증거와 작전은 모두 변호인들에게 파악되었고, 검찰측 증인은 반대신문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재판에서 패한 후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사직할 때까지 아무 사건도 맡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녀는 심슨 사건을 다룬 책 「Without a Doubt」을 쓰는 대가로 출판사로부터 420만 달러를 받는 등 돈방석에 올랐습니다.


LA 검찰이 심슨을 살인죄로 기소하기로 결정하자 변호사인 로버트 샤피로는 변호인단을 크게 보강했습니다. 샤피로는 그 이전까지 살인사건을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변호인단에 합류한 거물 흑인 변호사 자니 코크란이 샤피로와 투탑을 맡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니 코크란이 변호인단을 리드해 나갔습니다. 코크란 이후에 전설적인 변호사 F. 리 베일리와 학계의 거장이자 하버드 법대 교수인 앨런 더쇼비츠 그리고 O.J. 심슨의 친구인 로버트 카다시안이 변호인단에 합류했습니다. 로버트 카다시안은 킴 카다시안의 부친입니다. 언론은 이 다섯명을 드림팀이라고 불렀습니다.

http://i.imgur.com/s67qSx6.jpg

앨런 더쇼비츠는 검찰측의 전략과 실수를 모두 파악했고, F. 리 베일리는 검찰측의 가장 중요한 증인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O.J. 심슨은 9개월 동안 약 6백만 달러의 변호사 비용을 지불했고, 그렇게 구성된 드림팀 변호인단은 그들에 비하면 아마추어 격인 마샤 클락 검사를 재판과정 내내 압도했습니다. 드림팀의 리더인 자니 코크란 변호사는 재판 승소 후 자신이 로펌을 전국의 15개 주로 확대하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쓸어 담았으나 10년 후인 2005년에 뇌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드림팀 변호인단에는 훌륭한 식스맨이 있었습니다. 이 식스맨은 변호사가 아니라 법학자입니다. 그리고 변호인과 달리 돈이 아니라 학자의 양심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앨런 더쇼비츠 교수는 훗날 드림팀에서 활동하느라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술회했습니다.)

http://i.imgur.com/0XUyfit.jpg

그 학자의 이름은 자타공인 당시 미국 최고의 법의학 전문가였던 중국태생의 미국인 헨리 리(Henry Lee, 이창옥) 박사입니다. 헨리 리는 검찰측 법의학자들의 능력과 처리절차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검찰이 제시한 증거물의 증거능력에 대해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헨리 리는 끝까지 심슨이 살인자가 아니라고 학자의 양심으로 믿었습니다.


http://i.imgur.com/dpkVMTO.jpg

검찰측의 가장 중요한 증인인 사건 담당 형사인 마크 퍼먼(Mark Fuhrman)이었습니다. 퍼먼은 O.J. 심슨, 니콜 심슨, 골드만의 DNA가 추출된 피 묻은 장갑과 양말 등 핵심 증거물 대부분을 발견하고 수집한 담당 형사입니다. 변호인단의 최고 연장자인 F. 리 베일리는 반대신문에서 퍼먼이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로 O.J.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 재판은 퍼먼이 과거에 니거(nigger)라는 단어를 몇 번 썼는가 하는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https://youtu.be/__reD_phfbg

그리고 그가 발견한 장갑은 심슨 손에 맞지 않아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장갑은 사건현장에서 발견되었을 때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죽의 특성상 쪼그라들어 사이즈가 줄어드는 게 당연했습니다. 검찰측은 장갑이 손에 맞지 않자 멘붕상태에 빠지고 아무 대응도 못했습니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크 퍼먼은 패소 후 곧바로 경찰을 그만두고 범죄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워싱턴 주로 거처를 옮겨 라디오 쇼인 '더 마크 퍼맨 쇼'의 진행자로 변신했습니다.


http://i.imgur.com/qXBeRJw.jpg

재판으로 큰 이름을 날린 사람 중에는 담당판사인 랜스 이토(Lance Ito)가 반드시 포함됩니다. 강력범죄 담당 검사 출신인 이토 판사는 재판과정에서 검찰에 심정적으로 공감했고 드림팀 변호인들에게 조금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건 후 돈을 쫒아갔던 것에 반해, 이토 판사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으며 흔들림 없이 다른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20년 동안 계속 LA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다 65세를 맞은 작년에 은퇴했습니다. 그의 미국인 부인은 LA 경찰이었고, LA의 여성 경찰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인 Deputy Chief(경찰청 차장)까지 올랐습니다.



O.J. 심슨의 재판 당시에는 DNA 증거가 표준적인 법의학적 도구로 채택되려는 시점이었습니다. 검찰은 DNA 증거에 치중하여 심슨을 기소했으므로 드림팀 변호인단은 DNA 증거에 정면으로 반박해야 했습니다. 심슨의 침실에 발견된 양말에 묻은 혈흔에서 추출한 DNA는 니콜의 것과 일치했고, 니콜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혈흔에서 추출한 DNA는 심슨의 것과 일치했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니콜의 집 근처에서 발견된 왼쪽 장갑이 피에 젖어 있었는데, 역시 심슨과 니콜, 골드만의 DNA가 모두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심슨의 주거지에서 같은 상표 같은 사이즈의 오른쪽 장갑이 발견되었는데, 이 장갑은 니콜이 심슨에게 선물한 것이었고, 심슨은 사건 발생 직전까지 즐겨 착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변호사측은 장갑과 양말 등을 발견하고 수집한 퍼먼 형사의 증거수집 방법과 신뢰성에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까지 DNA의 법의학적 증거 채택에 반대하던 학자들을 찾아내 DNA 증거 오류 가능성에 대한 추정치가 학자들 간에 서로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변호사들은 또 일부 DNA 분석 기술은 소수 집단에 적용했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들고 나왔습니다. 변호인단은 DNA 검사가 범죄의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해도 분석 시료의 오염 가능성과 부주의로 경찰이 심슨의 양말에 혈액을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변했습니다. 또한 모든 상황과 진술을 종합하면 심슨에게는 딱 30분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격렬하게 저항하는 두 사람의 성인을 살해하고 도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고,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도 심슨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O.J. 심슨은 범인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의 재판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9개월에 거친 심리가 끝난 뒤 흑인 9명과 백인 3명으로 이뤄진 12명의 배심원들은 고작 네 시간의 토의를 거쳐 O.J. 심슨이 무죄라고 평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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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6-16 17:10:23

굉장히 흥미롭네요,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판이 열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바뀔지..

WR
2016-06-16 17:36:38

지금 열리면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2016-06-16 17:23:50

아무리봐도 심슨은 살인자입니다...

WR
2016-06-16 17:39:26

본인도 고백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http://i.imgur.com/n7QOdA4.jpg

돈을 벌기 위해서 이런 책을 내려다가 여론때문에 포기했었죠

2016-06-16 17:33:02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심슨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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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6 17:35:50
재판에선 이겼지만 유가족들에게 민사소송에서 패배하여 전재산을 날렸습니다.
그 후에 강도짓하다가 체포되어 지금 감옥에서 썩고있죠..
2016-06-16 17:37:01

참.. 인생의 흥망성쇠를 다겪은 사람이네요. 

2016-06-16 17:33:25

심증은 확실하나 물증이 없어서 무죄가 되버린 약간은 황당하기도 한 일이죠. 뭔가 제대로 꽃놀이패로 놀아난 느낌이지만 당시 심슨의 인기나 추이과정을 보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죠.

마치 프로가 고등학교 가서 농구부 손목 비틀듯 이겨버린 느낌이네요. 결국 법은 신념에 의해 움직이고, 진의여부보다는 믿음이 우선한다 생각합니다.

WR
2016-06-16 17:41:45

사실은 물증이 많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재판에서 승소한 것이지요. 검찰 대응이 너무 아마추어적이었습니다.

2016-06-16 17:47:29

뭐 요즘 얘기로 "줘도 못 먹냐!!!!!"정도의 상황이죠. 그렇다고 이거를 무전유죄라고 하기엔 심슨 본인 인생도 완전히 나락이 되어버려서 그냥 쓸쓸해진 이야기입니다.

대학에서 많은 분야의 예시로 나오는 심슨 이야기인만큼 현재까지도 많은 떡밥이 되는 사건이지 않나 싶습니다.

WR
1
2016-06-16 17:50:02

당시에는 Henry Lee 처럼 심슨과 첫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의 소행일 거라 믿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2016-06-16 18:03:21

표창원도 그렇게 얘기했었던게 생각나네요

WR
2016-06-16 18:21:34

미국에서는 음모론 정도로 치부됩니다.

WR
2016-06-16 17:54:36

최근에 ABC에서 시리즈로 방송하고 있는 O.J.: Made in America 의 예고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rB3rOcrJxg

2016-06-16 18:05:17

저 무죄가 항소심에서 난건가요 아니몀 연방대법원에서 난건가요? 우리나라는 진짜 별거 아닌것도 대법원가는데 미국은 진짜 큰 사건만 대법원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2심(항소심)이라고 항소심에서 검사를 바꿀수 있는데 바꾸지 않은 것인가도 궁금하구요.

WR
2016-06-16 18:12:38

1심에서 무죄가 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항소 못합니다.

2016-06-16 18:14:47

항소 자체가 안된다구요? 그건 더 이상하네요. 한국과는 사법시스템이 다른건지.

WR
2016-06-16 18:17:34

배심원이 무죄로 평결하면 사건은 그걸로 끝입니다. 검찰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를 안줍니다.

1
2016-06-16 20:12:01

한국과 다릅니다.


Double Jeopardy(이중위험) 금지의 원칙이라는 형사절차의 원칙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것을 한 번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다시 항소심 재판을 받는 것까지도 
이중위험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지된다는 식으로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번 "확정"판결을 받게 되면 다시 동일 사안으로 형사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중위험 금지가 적용되기 때문에,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확정되기 전에는 항소가되어도 이중위험이 아니라고 보고 있죠.
2016-06-16 18:23:33

당시 미국에 살고있었는데 판결이 말도 안된다고 언론에서도 난리가났었죠...

WR
2016-06-16 18:30:07

그때 대학원생이었는데, 학과 전체가 오후에 잠시 일손을 놓고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Not Gulity 라는 한마디에 대부분 허망해 했습니다.

미국인과 언론들은 변호인단이 재판을 인종주의로 끌고 간 것에 대해 제일 분노했었지요.

2016-06-16 20:36:26

모든 증거 하나하나에 딴지를 놓는 치사한 전략이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무엇보다 경찰의 허술한 dna증거물 관리가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WR
2016-06-17 01:52:55
말씀처럼 치사하고 야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물론 경찰과 검찰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Updated at 2016-06-16 20:41:42

암튼  거의 99%  심슨이 살인범인건  맞는거죠???


법이라는게 참 무섭습니다


돈 많이  있고  비싼 로펌이나  변호사들로  돈이면


살인자가 거의 99%  확실하다고해도 무죄를 받으니가요


역시 신과 지옥이 필요합니다


저런 악마 같은 사람은 죽어서라도 심판 받아야죠

WR
2016-06-17 01:53:49

시간이 지날수록 심슨이 저지른 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1
2016-06-16 21:25:03

반대로 oj 심슨 사건은 경찰, 검찰의 초등 수사나 증거 확보, 그리고 증인 관리 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요.

WR
2016-06-17 01:54:48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인 것은 확실합니다.

2016-06-16 22:23:21

제가 지금 기억하는 부분도 형사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인종문제로 변질된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판결이 난 후 길거리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한 흑인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 여성 왈,

"나는 심슨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심슨이 가난한 흑인이었다면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 어려서인지 대형 로펌 등의 개념에 생소할 때라, 법 위에 있는 자본주의가 의미심장 하더군요.


WR
2016-06-17 01:56:12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꼬투리잡아 부정하고, 인종문제로 몰고 가는 것이 필승전략이라고 변호인단이 판단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2016-06-16 22:46:54

아 어제 퇴근 후 ESPN에서 방송하는 30 for 30에서 OJ: Made in America 를 봤는데 이런 글을 올려주셨군요. 흥미로운 글 너무나 잘 봤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New England Patriot팀의 Aaron Hernandez도 생각나더군요. 스포츠 스타로서의 엄청난 부와 명예가 나락으로 떨어지는건 순식간이내요.

WR
2016-06-17 01:57:21

저는 그 영상을  ESPN의 예고로만 봤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많이 궁금합니다. 여러번에 거쳐서 방송하는 듯 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2016-06-17 02:29:27

궁금했던 사건인데 너무 잘 읽었습니다!

WR
2016-06-17 10:45:07

고맙습니다.

2016-06-17 09:23:30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OJ 심슨 사건이라는 타이틀만 알고 이태원살인사건이 그에 종종 비교되어 그냥 그런거겠구나...했는데..
흥미롭네요..변호인단 세치혀에 짜증나기도 하구요.. 감사합니다.
WR
2016-06-17 10:47:33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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