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표현의 자유, 일베 조각상에 대한 단상
지금은 삭제된 게시글에 대한 답글로 작성하다가 원글이 삭제되어 부득이하게 새글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본래는 원글이 주장하는 바를 몇 가지로 함축하여 각각의 포인트에 대한 제 의견을 펼치는 형태였는데, 새글이기에 이전 글과 관련된 내용은 최대한 지우고 올려보았습니다.
1. 일베의 정체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일베는 극우라고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특정 대통령을 지지하고 특정 대통령을 비하하는 등 얼핏 보면 방향성이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대변하는 가치는 파시즘도, 리버테리아니즘도, 아나키즘도 아닌 철저한 제노포비아 입니다. 제노포피아가 아니라면 ‘극우’라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 혐오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극우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 그들이 수성한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2000년도 더 된 텍스트인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일침을 놓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장 1절)
일베가 궁금해 한동안 일베에 드나들며 일베 글을 읽어보았지만 파시즘의 이념과 같이 공익을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리버테리아니즘도 아나키즘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유는 두 이념은 책임을 전제로 한 자유를 주창하는데 비해 일베는 책임이 결여된 자유에 대한 주권선언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왜 좌파라고 할 수도 없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음 두 주장을 바탕으로 펼쳐보겠습니다.
1. 가치판단을 철저하게 제외한 시점에서 보자면, 한계가 없는 표현의 자유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일베의 모든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우산 안에 보호받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2. 하지만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폭력적인 언행이 권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적인 언행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모든 종류의 발언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유지하길 원하는 이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로 인해 대가를 치를 준비도 동시에 해야합니다. 일베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피해를 입히면서도 그에 대한 온전한 대가를 치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베 회원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지요. 인정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 ‘푸른 하늘을’을 통해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시집 <거대한 뿌리>(1974)
피가 따르지 않는 혁명은 없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자유가 피를 흘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유인가는 일베 회원들이 깊게 고려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 일베에 대한 혐오에 대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일베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혐오가 검증되지 않은 편견이라는 생각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립니다. 일베라는 이슈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일베 사이트를 눈팅을 했을 때, 그곳의 모든 회원이 다 나쁜 언행을 일삼는 것도 아니었고, 종종 놀랄만큼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베에 대한 저의 비판은 일베 회원 개개인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일베라는 플랫폼에 향했습니다. 동질감을 바탕으로 근거 없이 타인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인류가 힘겹게 수호해가고 있는 자연권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반 인류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근거 없는 혐오 발언은 그러한 발언을 주창하는 집단의 성격과 상관없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일베인들이나 일베인들을 비판하는 일부 일반인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주장에 동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사물, 집단, 사람의 실체에 대한 고찰 없이 그 대상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행위는 모두가 지양해야 합니다. Labeling은 훌륭한 경험적 지식으로 우리의 문제해결 속도를 촉진시키는 순기능도 있지만, 한편으론 사람의 실체를 단어 하나로 요약/비약하게 만드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쉬이 판단하지 않고 사안의 맥락과 개별성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3. 일베조각상
작가가 실제로 뭘 의도했는지는 작가만이 알겠지요. 조각상의 파괴는 인터넷으로만 존재하던 무형의 가치가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형태를 갖추었을 때 어떠한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집중하고 싶은 반응은 이러한 파괴가 아니라 그 조각상 근처에 붙어있던 다양한 쪽지들입니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본 작품은 설치된 장소, 조형물의 형태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본교 학생인(학번) 저는 post-it을 작품에 부착함으로 해당작품 철거를 요청합니다" 라던가 "아직 오픈식도 진행 안 된 작업에 너무들 하시네요", "작업은 의도를 들어봐야 아니까요"와 같은 반응은 편향된 대중 매체의 보도와 인터넷상의 글들과 달리 현실속의 많은 사람들은 참 온유하며 온건한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 어느때보다 긴 평균수명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어느때보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우리 모두가 참고해야할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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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관심병걸린 집단과 개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