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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여,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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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5-27 17:15:37

로마인들은 개선 장군의 얼굴 전체를 붉게 칠했습니다. 그들의 조상 격인, 로마인들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에트루리아인들의 풍습으로, 그날 하루는 그 개선 장군이 신(神)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개선 장군은 (제정 전까진)반드시 개선 마차를 혼자 몰았습니다. 딱 한 사람, 개선 장군이 가장 신뢰하는 하인 한 사람이 개선 장군 뒤에 동승해서 귓가에 계속 'Memento Mori', 즉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잊지 말라.'는 말을 하룻동안 신이 된 개선 장군에게 속삭이는 것이 또한 개선식의 풍습이었습니다.


개선식이 끝난 후에는 개선 장군이 자비로 마련한 저녁 식사에 시민들을 초대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초대된 호화로운 잔치에는 몇 명의 노예가 은쟁반에 해골을 받쳐 들고 잔칫상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이 역시 개선 마차 뒤의 하인의 역할과 똑같이 잔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Memento Mori', 죽음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과 삶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것인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삶이 유장하게 흐르고 죽음 또한 끊임없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불금이라 마음이 너무 들뜨면, 혹은 불금임에도 슬픈 일이 많아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조용히 이 말을 되뇌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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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6-05-27 17:09:43

내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
천문학 다큐멘터리를 볼 때 마다 마음에 묘한 안정감이 찾아오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겠죠.
그런 기분이,살아가면서 내가 짚어가며 해결해내야 하는 고민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작고 작은 것들이 모여서 답답했던 곳에 저런 구멍들을 내주면 그 곳에서 힘이 나올 만한 여유가 시작되는 거 같아요.

WR
1
2016-07-05 01:24:14

"죽은 후의 일은 자신이 상관할 바 없으니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차피 죽음에 도달해야 하는 삶 또한 하나도 무서워 할 이유가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였던가요. Kathy님의 댓글을 읽으며 문득 저 문구가 떠오르네요. 보통은 상상만으로도 무섭지만, 너무 힘들 때면 때로는 오히려 이상한 고즈넉함과 위안을 주는 죽음......

1
2016-05-27 17:39:47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면서도, 잊어야 할 때가 있으니 삶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2016-05-27 18:05:15

언젠가 월요일이 찾아옴을 잊지말라.
주말이 막 시작된 참인데 벌써부터 섬뜩하군요.

2016-05-27 18:54:46

직장 상사한테 하고 싶은 말이네요 당신도 집에 가야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1
2016-05-27 21:53:23

어차피 세상에 두고갈건데 물질에 목숨걸지 않으려고 하고 물질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관계를 틀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제 삶의 모토와 뭔가 통하는 느낌이네요... 물론 그러면서도 당장 내야하는 돈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만요 허허허



1
2016-05-28 02:08:36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다 유한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혹은 두려움이 생겨도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한한 것에는 내 힘이 닿을 수 없지만 유한한 것엔 내 힘이 닿을 수 있고,
그렇다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택한 길이 현실적이냐 현실적이지 않느냐만 고민하면 된다는 건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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