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오만했던 천재들의 몰락

 
32
  15988
Updated at 2016-02-21 10:38:32

이 글은 제가 작년 4월 27일에 올렸던  /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871291   에 이어지만 예전 글과 상관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작성했습니다.



1994년에 출범한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 (Long Term Capital Management, LTCM)는 탄생과 동시에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LTCM은 첫해에 헤지펀드 사상 최고의 착수금인 12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익의 25%를 수수료로 책정해서 출범했습니다. LTCM은 80년대에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던 살로먼 브라더스의 차익거래팀 핵심멤버들이 중심이고, 학계에서 가장 추앙 받던 미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머턴과 마이런 숄즈 그리고 머턴의 제자로 하버드 대학 교수출신 트레이더인 로젠펠트가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하버드 대학 교수를 거쳐서 현직 FRB 부의장인 멀린스까지 영입해서 전무후무 자타공인의 드림팀을 구성해서 출범한 것이 바로 LTCM입니다.


LTCM의 투자전략은 시장의 등락에 상관없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채권에 대한 상대가치투자를 그 핵심으로 삼고 스왑과 각종 변동성에 대한 상대가치 투자를 더했습니다. 채권이나 스왑의 가치 그리고 각종 변동성은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계량화 할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갖는 두 가지의 채권 등의 금융상품이 있을 때, 가격이 낮게 매겨진 것을 매입하고 높게 매겨진 상품을 공매도 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금융 용어로는 Convergence Arbitrage 전략이라고 불리는데, 일시적으로 균형가격에서 이탈한 두 개의 이론적으로 동일한 증권에 대해서 서로 반대 포지션을 택함과 동시에 남은 잔여위험을 헤지하는 전략입니다.


시장이 요동치고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서 급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상품을 매도하고 조금 더 안전하거나 유동성이 풍부한 쪽으로 도피할 때, LTCM이 바라던 동일 이론가격을 갖는 채권들의 실제 가격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몇 달 후에 시장이 안정을 찾으면 높았던 가격의 채권과 낮게 매겨진 채권의 가격은 이론과 마찬가지로 같아질 것입니다. 바로 그 때 LTCM은 포지션 정리를 통해 차익을 챙기게 됩니다.


LTCM의 첫 번째 거래 중 하나는 30년 만기 T-bond (미국의 국채)였습니다. 새로 발행한 채권은 6개월 전에 발행한 채권보다 유동성이 좋기 때문에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높습니다. 그러나 30년 후에 두 채권은 동일 상품이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채권의 가격의 격차가 줄어드는 게 당연합니다. 이 때 상대적으로 비싼 새 국채를 공매도하고 그 돈으로 6개월 전에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면 얼마 후 두 채권의 값이 거의 같아질 것이고 그 때 포지션을 정리하면 이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전략을 쓰기에는 두 가지 채권의 가격차이가 너무 작아서 큰 비율의 차입거래를 통해서 그 차이를 몇 십 배로 늘여야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LTCM은 10억 달러에 해당되는 신 채권을 공매하고 그 전액으로 구 채권을 매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국채의 가격이 확실히 같아지는 시기는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고, 그 전까지 다른 이유로 두 채권 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지면 LTCM은 손해를 보게 되므로 그 격차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격차가 좁혀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거래에 나섰던 것입니다. 예측대로 신, 구 채권은 단시일 내에 가격이 같아져서 LTCM은 결과적으로 한 푼의 돈도 들이지 않고 1,5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항상 여러 가지 투자 포지션을 갖고 있는 LTCM은 거래의 전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전체 포트폴리오를 이루는 각 포지션 별로 과거 수익률의 상관계수를 정교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여 포트폴리오를 분산시켜서 한 포지션에서 손실을 입더라도 그것이 다른 포지션과는 무관하도록 만들었고, LTCM의 정교한 수학적 계산의 결과로 각 포지션과 전체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매 순간 수치화하여 관리했습니다.


그들의 방식은 여태껏 어느 펀드나 투자은행이 사용한 전략보다 훨씬 정교했고 복잡했습니다. 게다가 이론적으로는 그들의 각 포지션들은 시장의 등락에 무관하게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그 결과 LTCM의 실적은 첫해에 28%의 수익을 올렸고 각종 수수료를 제하고서도 투자자들에게 20%의 순수익을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1994년은 연준의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채권투자자들에겐 최악의 한 해였는데, LTCM의 투자방식에 따른 각 포지션들은 시장의 등락에 무관하게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LTCM의 수익률은 이듬해인 1995년에 59%, 그 다음해인 1996년에는 57%를 기록하는 꿈의 숫자를 연이어 만들었습니다. 투자은행들은 LTCM에 돈을 빌려주면서 그들의 첨단기법을 배우려고 줄을 섰고, 수많은 백만장자들이 LTCM에 돈을 맡기고 싶어서 안달이었습니다. 하지만 LTCM은 새로운 투자자를 받지 않았습니다.

 

LTCM의 트레이더들은 자신의 트레이드 방식이 계속 성공을 거두자 스왑과 변동성의 거래를 조금씩 늘여 나갔습니다.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예전과 같이 LTCM은 이론적으로 가격이 같은 한 쌍의 금융상품 중에서 더 안전해 보이고 값이 높은 것은 공매도하고 낮은 값이 매겨진 것을 매입하는 포지션들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였습니다. 1997년에는 LTCM의 파트너이자 이론적 배경의 제공자들이던 숄즈와 머턴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경사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금융 위기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던 그 해에 LTCM은 25%의 수익을 올렸고, 이는 각종 수수료를 제하면 17%의 수익이었습니다.


LTCM의 파트너와 직원들은 자신의 투자 수익금과 급료를 대부분 LTCM에 투자하고 있었고, 몇몇 파트너들은 전재산을 자신의 펀드 LTCM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97년 10월에 펀드의 자본은 출범 당시 12억 5천만 달러에서 71억 달러로 급증했고, LTCM은 자본의 규모가 너무 커서 각 파트너들에게 수익이 적게 돌아올 것을 우려해서 그 중 27억 달러를 투자자들에게 강제로 돌려줬습니다. 계속 돈을 맡기고 싶었던 투자자들이 항의하며 소동을 피웠으나, 결국 펀드의 자본은 47억 달러로 축소됐고, 펀드를 운영하는 파트너들의 지분이 그 중 19억 달러에 이르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여러 투자은행들의 지분이었습니다. 운명의 98년 초에 펀드는 47억 달러의 자본금의 거의 28배의 차입규모인 1,300억 달러의 자산으로 순조롭게 이익을 내며 출발했지만, 곧바로 일본의 엔화 가치가 급락했고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의 가치가 85% 폭락하고 한국 증시의 주가지수가 하루에 8% 급락하는 공포 장세가 이어지면서 전년도의 아시아 통화위기 때에도 끄떡없었던 LTCM 포트폴리오의 각종 포지션에서 동시에 큰 손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이루는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손실을 입을 확률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단적으로 낮았으나 당장의 실제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8월에 러시아의 국채가 채무불이행 함으로써 전 세계 모든 금융 증권들의 안전 상품으로 탈출화가 도미노처럼 이어졌고, LTCM의 포트폴리오는 모든 포지션의 공통점이 고 평가 증권의 매도, 저 평가 증권의 매수였기 때문에 과거 수익률의 상관계수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분산됨과는 전혀 상관없이 각 상대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짐으로 인해서, 즉 이론가격과 실제가격의 격차가 더 벌어짐으로 인해서 모든 포지션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그 손실의 규모는 47억 달러의 자본금을 전액 잠식할 만큼 순식간에 늘어났습니다.


현대 금융이론의 핵심은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 지수와 같은 기조자산의 움직임은 기하 브라운 운동과 같은 연속 확률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고 과거의 패턴과 미래의 패턴은 독립적인데 반하여 금융자산의 수익률의 표준편차로 정의된 변동성, 그리고 각 자산들의 수익률의 상관계수는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이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삼성전자의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삼성전자와 LG 전자의 주가가 시장의 변화에 따라 서로 함께 움직이는 패턴은 규칙적이라는 뜻입니다. 포트폴리오를 이루는 자산들의 수익률의 상관계수를 행렬로 만들고, 그 행렬을 사용해서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수량화 합니다. 즉 포트폴리오를 이루는 포지션들이 서로 독립적이거나 음의 상관계수를 가지면 포지션들의 위험이 분산되므로 포트폴리오의 전체 위험은 줄어들게 됩니다.


증권투자에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이루는 증권들의 수익률의 상관계수에 따라 분산투자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수익률의 상관계수는 과거의 자료로부터 유추되는데 87년 블랙 먼데이와 같은 대폭락 시장에서는 과거의 상관계수와 무관하게 모두 같은 패턴으로 수직강하 합니다. 포트폴리오 분산과 같은 투자 방식으로는 블랙먼데이의 폭락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LTCM은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LTCM 포트폴리오 역시 과거의 상관계수로부터 수량화된 위험을 토대로 짜였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시장이 과거와 같이 움직인다면’ 이라는 단서가 LTCM의 위험을 수량화할 때 붙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의 시장은 과거와 같은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금융위기가 세계로 번지고 핵 강국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선언은 시장을 극단적인 공황상태로 만들어서 투자자들은 무작정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한 상품으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교체했고, 그로 인해 과거의 독립적이거나 반대방향으로 움직임을 보이던 금융자산들의 가격이 모두 한쪽으로 쏠렸고, 이는 결과적으로 LTCM의 포트폴리오 분산을 완전 무력화 시켰습니다. 파산 직전의 LTCM는 약 1,300억 달러의 자산으로 1조 2,500억 달러 가량의 파생상품 포지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파생상품의 매매는 외형 액면가의 십 분의 일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LTCM의 손실이 자본금 47억 달러에 이르러 파산한다면 LTCM이 보유하던 1조 달러가 넘는 파생상품들이 순식간에 연거푸 청산될 텐데, 그 정도 규모의 자산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면 가격 폭락과 함께 시장의 기능이 마비되고, 그 폭락의 연속 반응은 다른 기업들까지 파산에 이르게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결국 FRB 의장 그린스펀의 지시에 따라 뉴욕 연방은행 총재 맥도너가 시티은행, 골드먼삭스, 베어스턴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 체이스맨해탄, 뱅커스 트러스트 등 미국을 대표하는 16개 은행과 IB의 CEO 들을 불러 모아 컨소시엄을 만들었고, 회의 끝에 이들 중 14개 회사는 각자 돈을 거두어서 LTCM에 긴급히 36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해주기로 합의하고 곧바로 이를 실행했습니다.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에도 LTCM의 자산은 계속 떨어져서 한때는 모두가 극단적인 패닉 상황까지 갔지만, 얼마 후 결국은 반등해서 더 이상의 손해를 보지 않고 안전하게 LTCM의 모든 포지션을 청산하고 구제금융의 전액을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구제금융을 주도한 그린스펀과 맥도너는 단 한푼의 공적자금도 투입하지 않았는데도,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서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구제금융 결정에 대한 심한 질책을 당했습니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연준이 시장에 개입해서 헤지펀드의 파산을 인위적으로 막아주는 모럴 헤저드를 지휘했다고 맹공했습니다. 


평균 IQ가 170이 넘는다고 알려진 LTCM의 파트너들은 펀드의 파산으로 극단적인 인생의 좌절을 맞봤으나 얼마 후 파트너 중 교수 출신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학에 복귀해서 연구와 투자자문을 계속 이어갔고, 트레이더 출신 다른 파트너들은 각각 새로운 헤지펀드를 만들어 투자자를 유치해서 활동을 재개하거나,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메이저 투자은행에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LTCM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 중 97년 말에 원금과 수익금을 강제로 돌려받은 행운의 투자자들은 3년 여 만에 투자 원금의 2.85배를 건지는 일종의 대박을 맛봤습니다. 98년 초에 투자금을 찾아간 38명의 투자자들은 그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LTCM에서 돈을 빼지 않은 직원들, 파트너들, 투자은행들과 일부 투자자들은 투자액의 거의 전부를 날렸습니다.


공교롭게도 LTCM이 고도의 수학적 모델을 사용한 파생상품 투자로 실패했지만, 그 이후의 금융기법은 더더욱 수학과 파생상품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 이전까지는 구경도 못했던 각종 파생상품이 시장에 활개를 치고 다니게 됩니다. 수백 편의 LTCM의 실패와 관련된 논문과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헤지펀드가 무더기로 등장했습니다. 수학자 출신의 제임스 사이먼스가 창업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와 메달리언 펀드는 LTCM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그리고 훨씬 더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지금까지 건재하면서 매년 LTCM도 꿈꾸지 못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또 하나 LTCM 사건으로 모두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엄청난 차입비율로 수많은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헤지펀드가 파산하는 경우 시장 전체가 볼모로 잡히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파생상품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던 1998년 전에 이미 호되게 당한 사건입니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이 공부하는 교재에도 그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어 있고, 모든 위험관리 코스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FRB, SEC 등 금융 감독 당국은 모든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하고 10년을 더 보냈습니다. 거기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겠지만 LTCM의 교훈은 시장 시스템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결국 10년 후에는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라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뒷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 중 LTCM과 가장 가까운 관계였고, 가장 많은 돈을 빌려주고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건 메릴린치였습니다. 메릴린치의 회장 코만스키는 개인적으로 100만 달러를 LTCM에 투자했습니다. 맥도너가 16개 은행과 IB의 CEO 들을 소집해서 만든 컨소시엄은 LTCM에게 시종일관 비우호적이었던 베어스턴스의 시장주의자 CEO 케인이 끝까지 LTCM에 대한 구제금융을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될 뻔 했습니다. 결국 베어스턴스를 제외하고 컨소시엄이 구성되었습니다. 회장 코만스키와 함께 메릴린치의 대표로 회의에 참여한 그의 오른팔 허버트 앨리슨은 회의장을 떠나는 베어스턴스의 케인에게 나중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맹세하였고, 그의 발언은 LTCM의 성장과 몰락을 다룬 로웬스타인의 1999년 저서 『천재들의 실패』에 그대로 실려서 전해집니다.


약 9년 후인 2008년 3월, 베어스턴스의 자회사인 헤지펀드가 서브프라임 CDO에 투자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담보를 가지고 있던 채권자 메릴린치는 베어스턴스에게 강제로 그 펀드를 청산하게 하는 이례적으로 과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베어스턴스는 수십억 달러를 들여서 그 펀드를 청산했고, 그것이 보도된 이후에 사람들은 서브프라임이 얼마만큼 위험하게 거대 금융사들에게 퍼져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메릴린치가 베에스턴스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1999년에 허버트 앨리슨이 다짐한 복수극이었다는 설이  오랫동안 떠돌아 다녔습니다. 결국 베어스턴스는 부도를 맞이하여 JP Morgan Chase 에 인수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베어스턴스는 6개월 뒤의 리먼 브라더스와 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게 되는 전화위복을 맞았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거대 투자은행의 운명 또한 그 못지않게 극적이었습니다.


23
Comments
2016-02-21 04:22:57

잘 정리해서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WR
2016-02-21 10:49:48

감사합니다.

2016-02-21 06:20:24

좋은 글 올려주셔셔 감사합니다! LTCM에 대해 들어보고 집에 When genius failed 책도 있는데 아직 안 읽었었는데, 이 글로 배울 수 있어서 좋네요 

글의 요점과는 조금 관련이 없는데, 금융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런 헤지 펀드들이 사회나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대 박사를 나왔는데, 체감상 주변에 수학, 물리 박사한 친구들 반 이상이 졸업 후 헤지 펀드로 갔습니다. 수학, 물리 박사 후 학계에 남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데, 한편으로는 이 뛰어난 두뇌들이 가는 헤지펀드들이 뭔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지, 아니면 제로섬 게임을 하는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WR
2
2016-02-21 11:03:30

감사합니다.


헤지펀드는 국제금융이라는 생태계 정글에서 사자의 역할도 하고 하이에나의 역할도 합니다. 그들은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기구로서 투자방식, 감수하는 위험의 종류, 그리고 차입비율 등에서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위험한 금융상품이라도 일부 헤지펀드들은 기꺼이 소화하려고 합니다. LTCM 사건이 있던 1998년부터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있던 2008년까지 헤지펀드들의 전체 규모는 10배 이상 늘었습니다. 전세계 헤지펀드들은 거의 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미국만을 놓고 본다면 상당한 부가가치를 생산합니다.)


수학, 물리학과의 경우 미국은 1970년대 말에 이미 몸집을 크게 부풀려놓은 상태였고, 그 이후로 정체 내지는 인원이 줄고 있습니다. 이론입자물리의 경우 미국에서 매년 100명가량의 박사가 배출되는데 이들 중에서 대학교의 정년보장직을 얻는 숫자는 10~12 정도에 그칩니다. 이론입자물리는 일반 연구소에 평생직장을 갖기 어려워서 나머지는 로스쿨, 메디컬스쿨, 컴퓨터나 금융분야로 진출합니다. 수학의 경우 작은 대학교에서 교양과목이나 미적분을 가르칠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박사를 받은 후 마음만 먹으면 강의중심대학에서 평생 직장을 얻기 쉽습니다. (그런 직장은 연봉도 낮고 대우도 좋지 않아서 선호도가 높지 않습니다)


헤지펀드에 가더라도 5년이상 그곳에 머무는 비율은 극소수입니다. 일단 5년이상 잘 견디는 경우 연봉은 상당히 높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업무강도는 거의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헤지펀드들이 매년 생기고 소멸합니다.

2016-02-21 08:05: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WR
2016-02-21 11:03:41

고맙습니다.

2016-02-21 12:00:14

스포츠전문가들이 토토해서 가산을 날리죠...

WR
2016-02-21 13:14:35

그런 줄은 몰랐네요..

2016-02-21 12:19:03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용도 훌륭하고 글을 정말 읽기 쉽게 쓰세요. 

저도 관련 분야에서 학위도하고 실무도 하는데 님의 글 읽는데 참 부끄럽네요.

이전 글들도 찾아봤는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은 내용을 많이 쓰셨던데요. 
실례가 안된다면, 아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평소 독서량이 어떻게 되세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으셨는지? 계기가 있으셨나요?

평소 아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글에서 내공이 느껴져서 여쭤봅니다.^^



WR
2016-02-21 13:22:40

근래 몇년 동안은 책을 별로 읽지 못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그럴 마음의 여유를 못찾는 거 같습니다. 지난 몇달도 쉬면서 책을 읽기 보다는 논문을 쓰게 되네요. 아직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저를 발견하는 게 때론 실망스럽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아마도 그 나이에 저만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겁니다. 더 읽을 책이 없어서 추리문고까지 다 읽었을 정도입니다. (무협지나 만화는 안봤습니다.) 그때 책을 많이 읽은 게 어른이 된 저에게 정말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어떤 새로운 것을 시작해도 별로 낯설지가 않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아들 딸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 모두 독서광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책 한권을 끝까지 읽는 걸 못봤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그런 거라고 위안삼고 있습니다.

2016-02-21 18:27:21

답변 감사합니다^^ 나이 한참 먹고 독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네요~^^

1
2016-02-21 13:16:53

천재들이라기 보단 몽상가들이겠죠.
금융이론 대부분이 정규분포를 가정한 분산, 베타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정규분포가 아닌 Right skewed 형태가 나옵니다. 그리고 베타에 관한 버핏의 명언이 있죠. "햄버거 가격이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못 사먹을것이냐?"

WR
1
2016-02-21 13:24:53

그 사람들이 그걸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런 실수를 하면서도 자각을 못한게 탐욕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네요

2016-02-21 20:24:03

알면서도 했다는 게 중죄인겁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거라는 끝모를 자신감이 바탕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2016-02-21 14:38:58

현대 금융이론의 핵심이 주가는 브라운 운동과 같이 불규칙하므로 예측 할 수 없다라는 가정하에 있다면, 현재 증권사의 수많은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하는 예측은 의미가 없는 건가요? 그 쪽 방면으로 직업을 가지고 싶은 학생으로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혹시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는 관련 논문이나 도서를 아신다면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WR
2016-02-21 15:59:59

주가나 주가지수가 기하 브라운 운동을 따른다는 것은 주식시장이 정상적인 상황이거나 매 순간 감정이 없는 기계들에 의해서 움직일 때는 타당합니다. 그리고 시장 참가자들의 정보 비대칭이 없어야 합니다.


시장이 약간이라도 비정상적인 상황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행동은 급격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브라운 운동은 더 이상 올바른 설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개별주식은 정보 비대칭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애널들은 정보 비대칭의 유리함을 분석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2016-02-21 16:31:34

말씀을 듣고 보니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며 정보 비대칭이 줄어들 수록 애널리스트의 가치는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 정보들을 더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WR
2016-02-21 16:41:15

고급 정보와 같은 독점적 정보들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통신기술이 발달해도 삼성전자의 다음 분기 순이익을 알 수 없습니다. 애널리스트 중 일부는 삼성전자 재무팀에 인맥을 갖추기도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불법을 피해가는 선에서 그들은 그 독점적 정보를 이용할 겁니다.

2016-02-21 20:22:36

서브프라임이 전세계와 중국을 통장삼으려는 월가의 겜블이었다면 이 이전의 LTCM은 그것의 전채요리격 사건이었죠. 이론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수익을 걸어놓았음에도 "너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희망에 열광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후에 다음 이야기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면 "리만브라더스가 산업은행에 인수될 뻔한 이야기"도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이게 이뤄졌으면 한국 금융사에 길이 남을 병X짓으로 되었을거라 확신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16-02-21 23:16:32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람들이 LTCM 매니저들의 천재성을 너무 광신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리먼브라더스의 인수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댓글로 썼던 것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금융인에는 조건호씨와 민유성씨가 꼭 포함됩니다. 조건호씨는 리먼브라더스에서 오래 일했고 아시아 총괄 사장을 거쳐 2007년에 리번 브라더스 본사 부회장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민유성씨는 살로우먼 브라더스에서 엘리트 경력을 쌓은 후 40대 중반에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겸 CFO에 오른 스타 금융인입니다. 민유성씨는 우리금융 부회장을 사임한 후 조건호씨에 의해서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역 대표로 스카웃 되었습니다. 민유성씨의 네임벨류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직책이었지만 수십억 연봉에 스톡옵션까지 지급받았습니다. (이 즈음 민유성씨는 저에게 학교 그만두과 자기와 같이 일하자고 진지하게 제안했고, 저는 말도 안된다며 일언지하게 거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리먼 서울대표로 있던 민유성씨는 MB 정권 출범 후인 08년 5월 말에 급작스럽게 정부로부터 산업은행장(당시엔 산업은행 총재)로 지명됩니다. 민유성씨는 산업은행장에 손색없는 커리어를 가졌기에 당시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인사라고 여겨졌는데, 후에는 이 사건이 모든 음모론의 발단이 됩니다. 한국의 리먼인수를 주도한 세력이 의도적으로 민유성씨를 그 자리에 올린 거라는 음모입니다.


리먼브라더스는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금융사들에게 이미 외면을 받은 처지였기에, 체면이 많이 깎이지만 살아남으려면 한국의 산업은행에라도 인수되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조건호씨와 민유성씨는 원래부터 호흡이 잘 맞는 상대였고, 민유성씨는 대단한 야심가이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협상이 진행되고, 청와대와 보수언론의 지지를 받고 08년 여름 이전에 인수가 완료되도록 하는 속전속결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협상의 주역은 조건호, 민유성 그리고 전광우 당시 금융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무리가 멀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MB의 청와대가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수협상은 강제로 무산되었고, 민유성씨는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알짜부분만 인수하려고 했는데, 청와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것에 매우 큰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양측의 증언과 의견이 심하게 엊갈려서 저로서도 진상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지 않은 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되었다가는 우리나라 일년 GDP에 가까운 부채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끔찍한 소송전에 나라 전체가 휘말릴 수도 있었습니다.


민유성씨는 후에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리먼의 알짜부분만 인수해서 이익을 챙긴 것처럼 자신도 똑같이 하려고 했고, 자신은 그만큼 리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서 산업은행의 리먼 인수 실패를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조건호씨는 리먼이 노무라에 인수된 후 퇴사했그 금융계에서 은퇴했습니다.

2016-02-22 07:52:29

그래서 갑작스런 궁금함에 저 두 사람이 최근에 뭐하고 사나 알아봤더니 조건호씨는 사모펀드사업을 하고 있고, 민유성씨는 롯데그룹 일본계열의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더군요. 한 때 많이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치고는 약간은 애매한 후반부 인생이지만 뭐 그 분들의 인생이니까... 그냥 재미로 봤습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WR
2016-02-22 14:09:29

그분들이 그렇게 지내시는 군요. 전혀 소식을 몰랐습니다. 나름 부지런히 살고 계시네요

고맙습니다

2016-03-20 15:04:09

지하철 타고 다닐때마다 아껴놨다가 정독합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