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의 양대 흑역사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사세를 확장시켜 첨단 산업에 신규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공시했습니다. 이 경우 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그 공시를 환영하지만 채권 보유자에게는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신규사업이 대박 나더라도 주식보유자와 달리 채권보유자가 챙기는 건 원금과 미리 정한 이자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업의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대한 주식보유자와 채권보유자의 입장 차이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만일 그 기업이 채권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서 신규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라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그 채권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기업이 채권자를 설득해서 낮은 이자로 조금 모험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전환사채는 채권으로 발행되지만 일정기간이 지나 투자자가 원하면 미리 정한 가격을 적용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든 증권입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발행 후 일정기간이 지나 투자자가 원하면 미리 정한 가격으로 신규발행주식을 살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동시에 만기까지 채권의 이자와 원금도 받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즉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인 반면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신주인수권이 사은품으로 붙은 회사채입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전환사채(CB)에 전환가격이 1만원으로 돼 있다면 이를 사들인 투자자는 처음에는 1억원짜리 채권으로 그에 해당한 이자를 받다가 정해진 시점에 주가가 충분히 상승한 경우 1억 원짜리 채권을 주당 1만원 기준 1만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억원짜리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인수가격 주당 1만원씩 1만주의 인수권리가 부여돼 있다면 투자자는 채권은 그대로 보유한 채 따로 1억원을 내야 새로 발행된 주식 1만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글은 1996년에 있었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1999년에 있었던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사건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됩니다. 이 두 사건은 지난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모든 신문과 TV를 장식했고, 사람들의 입에서도 삼성그룹을 비난할 때 쉴 새 없이 거론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저는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와서 모두 끝난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현대 경제사에 아주 중요한 두 사건들이기에 이번 글에서 가능하면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삼성 회장에 취임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 선대 회장은 그룹 경영권의 80%를 쥐고 비서실이 10% 각 계열사 사장들이 나머지 10%를 나눠 행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회장이 20%, 비서실이 40%, 각 계열사 사장이 40%를 행사하는 식으로 바꾸겠다.”
그 이후 삼성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약칭 구조본)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거의 10년간 그룹의 경영권은 회장이 10%, 구조본이 80%, 계열사가 10%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구조본의 파워가 막강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힘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단지 그의 분신이라고 불리던 이학수 구보본 본부장 그리고 김인주 차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습니다. 이학수씨가 그룹 경영과 인사 전권을 맡고, 김인주씨가 그룹 살림을 맡으면서 이학수 본부장을 보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은 이건희 회장에게 절대 충성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10년 동안 회사에 출근한 것은 단 두 번이었고, 회사 일에 대해서는 그룹 계열사의 큰 설비투자나 S급 인재 영입에만 관여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이 잘 돌아가고, 자신의 2세들에게 경영권이 순조롭게 이양되는 한 위임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노터치였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특이한 기인으로 본인이 세계 일류기업의 모든 걸 책임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기에 막중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분이었습니다. 변화를 체험하기 위해 2년 동안 하루에 한끼밖에 먹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6개월 동안 왼손으로만 생활한 적도 있었습니다.
삼성그룹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 문제였습니다. 이 회장의 유일한 아들인 이재용씨의 능력은 계속 의심받고 있었고, 선대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CJ 회장)씨가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야 한다는 일부 일가친척들의 주장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의 지분을 상속하는 방법도 있지만 막대한 세금을 물고 나면 그룹의 경영권을 지킬만한 지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이학수씨가 이끄는 구조본 재무팀이 묘책을 마련했습니다. 이재용씨의 재산을 불려주기 위해 당시 우리나라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계열사를 동원하여 무리수를 둔 것입니다.
삼성 에버랜드 사건
삼성에버랜드 주식회사는 1996년 10월 30일 이사회를 열어 전환사채의 발행을 결의했습니다. 전환사채의 배정방법은 125만주를 전환가액 1주당 7700원으로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되 실권시에는 이사회의 결의로 제3자에게 배정하기로 정했습니다. 125만주는 당시 에버랜드 전체주식수의 60%가 넘는 큰 규모였습니다. 전환사채 발행 전 에버랜드의 주식은 장외에게 1주당 12만원 가량이었으나, 전환가격은 황당하게도 1주당 7,700원이었습니다. 시중 가격보다 무려 15분의 1이나 저가로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지만 당시 에버랜드는 비상장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관련 법규조차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전환사채의 발행 당시 에버랜드의 법인주주들은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고, 개인주주들은 대부분 삼성그룹 계열사의 전·현직 임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가보다 15배나 싼 헐값인데도 전환사채의 청약을 거부했습니다. 전체 대상자의 무려 97%가 인수청약을 신청하지 않았고, 바로 그날 삼성에버랜드는 주주들이 실권한 전환사채를 이재용씨 남매에게 배정하기로 의결했고 이재용씨는 또 바로 그날 인수대금 납입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이재용씨는 주식전환권을 행사하여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이재용씨가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 직후부터 삼성그룹의 헤게모니는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1998년 에버랜드는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비상장사 삼성생명의 주식 344만주를 1주당 9천원에 구입하면서 삼성생명의 지배권을 장악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6개월 후 삼성자동차 채무를 갚기 위해 본인이 보유하던 삼성생명 주식을 350만주를 내놓았고, 이때는 주당 70만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0년 이후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에버랜드”였고, 에버랜드를 장악한 이재용씨는 부동의 삼성그룹 후계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방송통신대 곽노현 교수를 비롯한 법학교수 43명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관계자들을 전원 고발했으나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 2명만 불구속 기소되었을 뿐입니다. 2009년에 대법원에서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배정에 대해 무죄판결을 확정지었습니다. 삼성 에버랜드는 2014년에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고, 2015년에는 삼성물산과 합병에 성공했습니다. 삼성물산은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3위의 거대기업이고 이재용씨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입니다.
삼성 SDS 사건
이건희 회장의 암 발병이 확인된 1999년에 구조본의 이학수씨와 김인주씨가 한번 더 큰일을 터트렸습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이었지만, 이번에는 비상장회사인 SDS의 신주인수권에 관련된 사건에 제3자인 SK증권을 중간에 끼워 들여 완충지 역할을 맡겼습니다. 이번에도 비상장회사가 헐값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이 갖춰지기 전이었습니다.
삼성SDS는 1999년 2월26일 이자율 연 8%로 23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 321만6780주를 주당 7150원에 발행해 SK증권에 전량 팔았습니다. 비상장 기업이던 삼성 SDS는 외환위기 이전에 한때 장외에서 1주당 100만원이 넘게 거래된 적도 있었으나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2월 코스피지수가 500을 기록하던 시점, 장외에서 1주당 6만원 가량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황당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SK증권은 약간의 프리미엄만 남긴 채 전량을 이재용씨 4남매(막내 이윤형씨는 몇 년 후 사망)와 이학수, 김인주 등 6인에게 매도했습니다.
이들 여섯 명은 곧바로 신주인수권을 행사해서 삼성 SDS의 대주주들에 등극했습니다. 이재용씨 남매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재벌 역사상 유래 없이 가신들로 불리던 이학수씨와 김인주씨에게도 큰 혜택이 돌아갔습니다. 삼성 SDS는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99년 3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SDS 신주인수권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같은 해11월에 삼성SDS 이사들을 고소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무혐의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2007년 11월 23일 국회에서 통과된 '삼성 비자금 의혹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특검의 기소가 있었습니다.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넘긴 데 대해 법원은 2009년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김인주 두 사람에게 배임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실형을 살지 않았으며 그들이 취득한 재산은 고스란히 인정받았습니다.
2014년 11월 14일 삼성 SDS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되었습니다. 공모가격은 주당 19만원이었습니다. 공모가격으로만 쳐도 최대주주 이재용씨의 지분가치는 1조 6천억원이 넘고, 이학수씨이 지분가치도 5,800억원이 넘었습니다. 상장 10일 후 SDS 주가는 43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 그 이후로 등락을 거듭하다 어제와 오늘 주가가 폭락한 후 19만 9천원에 종가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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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비상장회사를 이용해서 출자순환지배의 악순환을 이어가고 있죠...
매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손보겠다고 으름장만 잘 놓지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는 감도 못 잡는게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