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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 - 우리나라의 미래가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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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2-04 00:34:45

앞선 글  /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2327873  에 이어집니다.



제가 앞으로의 우리나라에 대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갈등조정능력의 부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나라는 여기서 더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사회갈등을 예방하는 노력과 조정하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여기서 멈추거나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 글에서 미국사람은 부자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믿고 있으며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의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부자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불인정과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미국인이 자국의 시스템을 신뢰하는 데 반해서 우리 국민들은 한국의 시스템을 허점투성이로 여기며 불신합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약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서였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창 산업화가 추진되었을 당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대체로 특혜를 받았거나 내부정보를 얻었거나 줄서기를 통해 기회를 얻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열심히 일하며 성취동기가 높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정도를 밟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합니다. 이렇듯 분노는 정당한 노력 없이 성공에 지위를 누리는 사람에게로 향하고,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회적 불신이 싹트게 됩니다.


매니아님들은 NBA 슈퍼스타들이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것에 질투하거나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월한 능력으로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른 선수들인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학입학 수능제도에 찬성하지 않는 학부모들도 전국적으로 일시에 치르는 수능의 성적을 대학 입학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수능 고득점 학생은 질투와 부정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속한 영역의 진입장벽을 철저히 높여놓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배타주의는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사청문회에 모습을 나타내는 50대 후반의 장관 후보자들은 그 연배의 공직자 리더들 중에서 과거를 지내오면서 가장 흠결이 적은 부류에 속합니다. 그런 분들조차도 지금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을 다반사로 해온 것을 확인한 젊은 세대들은 좌절하며 존경대신 조롱을 보냅니다. 우리나라에는 존경받을 만한 권위가 이미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획일적인 사고는 사회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잘 쫓아가지 못합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에 도덕수업을 참 싫어했습니다. 너무 재미없었기 때문입니다. 반공교육이 삼분의 일 쯤 차지했던 도덕 수업은 세상의 다양한 가치에 대한 획일적인 판단기준을 심어줬고 우리는 반복적인 시험을 통해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철학이 없는 획일적인 도덕관념만 남아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가치 관념은 제가 느끼기에도 매우 경직되어 있습니다.


맹자의 오륜으로 대표되는 유교사상은 우리 생활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내려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30여년을 노력해서 부부유별을 차츰 극복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유별 못지않게 우리에게 해악적인 장유유서는 시대가 지나면서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학생들끼리 재수, 빠른 년생 등등을 전부 참작해서 순식간에 자신들 간의 위계질서를 만드는 걸 보고 저는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선배 세대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유유서는 권위주의적 문화 상하 위계적 문화를 존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규범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가장 윗사람이 강력한 권위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하며 아래를 통제하는 시대에 살지 않습니다. 모든 중요한 결정은 우리 스스로의 몫으로 남습니다.

(이부분에 대해 약간 추가합니다. 사실 학생들이 순식간에 위계질서를 만드는 이유는 호칭문제가 가장 중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고유한 '존대말' 사용은 필연적으로 장유유서를 없애기 힘든 요인입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재수생은 친구와 똑같이 불렀는데 요즘엔 재수생과 빠른년생도 칼같이 구별합니다. 위계적이라고 해도 학생들의 경우는 연장자가 막강한 권한을 갖는 건 아닙니다.) 


저는 미국에서 교육받았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서 획일적 도덕관념이 아닌 나 자신의 철학을 서서히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 시스템 중에 많이 놀랐던 것이 배심원 제도입니다. 미국은 모든 중요한 사법적 사건에서 무작위로 차출한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유무죄를 평결합니다.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입니다. 이런 제도가 현재까지 무리 없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일반인들도 열린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끄는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무작위 집단이 순수하게 그들의 힘으로 참여자 모두가 납득할만한 합의에 도달하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열린 토론으로 합의를 이끄는 방식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토론으로도 자신의 기존 생각을 바꾸지 않고 의사결정은 대부분 과반수 표결입니다.  열린 대화 속에서 자신이 내놓은 의견보다 더 나은 의견이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대화자 각각의 생각이 협력적 사유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능동적이면서 배타적이지 않은 대화능력의 배양은 우리나라 교육이 갖추지 못한 아쉬운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인 민주주의와는 여전히 큰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정부의 권위도 예전보다 많이 약해져서 민간부문의 갈등에 함부로 개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계층갈등, 이익집단갈등, 노사갈등, 정책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 지역갈등, 환경갈등, 입지갈등, 성별갈등, 문화갈등 등 각종 사회갈등이 점차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의약갈등과 최근의 사시존치갈등처럼 찬성과 반대 측이 관련된 인맥 등 온갖 세력을 동원하는 총력전의 양상도 자주 나타납니다.


근래에 이익과 관련된 사회갈등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하면 한약조제권 분쟁, 대학등록금 반값 투쟁, 골목상권 SSM 분쟁, 서울시 뉴타운 출구정책 갈등, 방폐장 건설부지 선정, 의약품 편의점 판매 분쟁, 용산재개발 갈등 등이 떠오르고 가치와 관련된 갈등으로는 서울시 무상급식, KTX 민영화,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 시화호 개발, 평창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 밀양 송전로 건설 등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갈등들이 여기저기서 우리나라의 발전지표를 늦출 거라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가치관이 다양해지는 민주화 정착 시대에 사회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시끄러운 본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갈수록 많아지는 갈등에 대한 조정장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껏 갈등은 표면화되기 전까지 갈등 당사자 상호 간 회피하고 무시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례, 천성산 고속철도개발사례, 행정중심 복합도시건설사례처럼 법원의 판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으로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등을 조정해 줄 존경받는 권위가 없으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획일적이고 좁은 당사자들의 식견 그리고 열린 대화 속에서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갈등을 예방하거나 해소하는 능력의 부재로 인해 갈등조정의 길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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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2-03 23:41:48

"우리나라에는 존경받을 만한 권위가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 부분 왜 이렇게 공감가면서 슬픈지요..

WR
2016-02-04 00:16:18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뀐 탓도 큽니다. 지도층 인사들이 경력을 쌓을 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건들인데 그들이 최고위층에 오르려고 하니까 지금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존경받는 권위가 서서히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02-03 23:47:32

터키는 쿠르드족 문제 때문인가요??

WR
2016-02-04 00:16:45

쿠르드족 문제도 크고, 시리아 종교분쟁에 휘말린 이유도 클 겁니다.

2016-02-04 06:21:51

단일민족이면서 외부적 요인 (아마 북한 문제는 제외겠죠?)으로 인한 갈등상황도 특별히 없는 한국이 실질적 1위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WR
2016-02-04 13:38:51

한국은 서양과 달리 시민의식, 공화국 의식을 갖추지 못한 채 정치적 민주화를 맞았습니다. 시민의식에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을 갖추기 전에 스스로 결정하는 권한을 쟁취했습니다. 앞으로 각계각층 방방곡곡에서 오랫동안 눌려왔던 개별욕구가 분출할텐데, 그것들을 어떻게 우리가 감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앞응로 갈등은 훨씬 더 밖으로 불거져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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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3 23:54:34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모든 사회문제에서 많은 이들이 수긍할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은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인 토론과 이를 판단할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정해야 하죠.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논리, 토론, 판단에 의하여 결론을 도출하는게 아니라 권위에 의하여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많죠. 결국 이걸 극복해 나가야 할겁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여기서 더 발전하는건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WR
2016-02-04 00:19:10

그런데 사회갈등에서 이익 당사자들은 정부의 권위 따위는 조금도 겁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지금껏 권위로 누르던 게 불가능해졌고, 국책사업들은 갈등 때문에 표류하기 일쑤입니다. 독일에서 국민과 정부 그리고 야당이 대타협에 성공해서 당장의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원전을 모두 폐쇄한 그런 방식은 우리나라에게 아직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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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2-04 00:03:43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땡깡을 부리면 콩고물이라도 더 떨어진다'는 생각이 아주 기본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건데 이것은 '높은 놈들도 다 도둑질 하는데 내가 땡깡 좀 부려서 내 이득 좀 더 챙기는 게 뭔 대수냐?'하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요.
STX 그룹은 분식회계를 하다가 들통나서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시가 총액이 몇 조가 날아갔지요.

이 과정에서 STX에 투자한 많은 개미 투자자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식 회계를 주도한 회장은 집행 유예로 풀려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잃은 개미투자자는 국가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 개미 투자자는 나중에 자기 집 옆에 국가가 전봇대라도 하나 세우려고 하면 드러누워서 돈 내놓으라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저는 사회 지도층부터 강력한 개혁을 통해 청렴함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한국 사회는 침몰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WR
2016-02-04 00:21:30

정부의 권위가 약해지니까 갈등이 발생했을 때 땡깡부리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지도층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에 주 경력을 쌓은 분들이라 현재의 청렴도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도 있습니다. 앞으로라도 사회 지도층부터 강력한 개혁을 통해 청렴함을 확보해야겠지요.

2016-02-04 06:57:44

솔직히 몇천억 횡령 해먹으면서
집행유예 받을 수 있으면
횡령 안하는 인간이 병신 아닌가요?

저라도 '당연히' 할 것 같네요.

Updated at 2016-02-04 00:11:10

-교육에 대한 문제를 애기할 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너희는 사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있지 않냐. 그러니 교육은 큰 문제가 아니라 너희를 잘 가르친거라고..


-일본에서 전해진 서열화로 인한 획일적 경쟁 : 말만 절대평가인 현 제도


-위에서 언급한 잘못된 인식과 전통, 학부모의 욕심을 깰 수 있는 건 저는 중고교 통페합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좁은 땅덩어리에 지하철 버스 빵빵한데 학교가 너무 많습니다. 사교육을 이길 수가 없죠. 서울만이라도 구별로 중고교 한곳씩 두고 대학체제로 커리큘럼 위주로 짜면 제대로된 절대 평가가 가능할 겁니다.  수업의 질도 훨씬 좋아질거고. 학생들의 선택폭은 훨씬 넓어질거에요. 더 창의적인 공부가 가능할겁니다.

왕따, 일진문제도 한반의 학생수가 줄면서 생겨났어요. 규모가 커지면 자연히 서로 견제 세력이 생겨서 그런 문제도 줄어들거라 봅니다

WR
2016-02-04 00:24:43

공교육과 사교육의 질 대결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과 유사합니다. 절대 공교육이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사교육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의한 거대 인센티브가 슬자에게 지급됩니다. 공교육에서 우수 선생님께 그런 인센티브를 지급할 수는 없는 겁니다. 공교육은 사회규범, 사교육은 시장규범 .. 효율성으로는 경쟁이 되기 힘들겠지요.


입시와 관련 적은 인성문제, 생활지도 등은 사명감 있는 선생님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2016-02-04 00:34:36

중고교 사교육 시장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가까운 일본도 없죠. 자본주의 논리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정경제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주범이고 사실상 소모성 이중 과세이며 그 댓가를 가져가는 학원선생님들의 고용효과와 부가가치는 시스템적으로 도움이 안되죠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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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00:37:17

일본에서도 대입학원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은 아니더라도 학벌이 향후 커리어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학간판이 남은 인생에 절대적이니까 자본주의 속성에 의해 경쟁적으로 교육사업이 번창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학생의 수가 줄어들어서 약해지고 있지만요

1
2016-02-04 00:52:58

베일리님이 모든 해답을 줄 수도 없고 그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좋은 화두와 식견을 보여주고 이런 토론이 오가고 그걸 눈팅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겠죠. 이런글 시간내서 올리는 거 얼마나 수고로운건지 많은 분들이 알거에요.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WR
2016-02-04 01:07:24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2
2016-02-04 00:24:20

어떻게 제가 다니던 때보다 한반의 학생수가 훨씬 줄었고 교육시스템도 좋아졌을텐데 정반대로 사교육 팽창, 왕따문제, 일진폭력은 훨씬 늘까요? 이 모순을 깨야해요

WR
1
2016-02-04 00:28:58

예전에는 한반에 50명이어도 학생들의 성향이 균일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통솔하기도 어렵지 않았지요. 지금은 한반에 30명인 학생들이 학생마다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일사불란한 학생 통제가 어려운 현재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패자가 되는 학생들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쓰거나 왕따문제를 일으켜서라도 일상의 패배감을 잠시나마 달래려고 할 겁니다.

2020-06-25 11:39:49

Damon bailey님의 과거 글을 읽다가 댓글 남깁니다. 중고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주변에 중고교생들이 매우 많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왕따 문제, 일진 문제는 절대 과거보다 늘지 않았습니다. 요즘 애들은 사회가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현재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이 성인이 된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의거한다면 일진 왕따 문제는 분명 과거보다 개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진 왕따 문제가 더욱 대두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또한 미디어의 발달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접근도와 노출이 잦아졌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현재 23살인 제 윗학년보다 저희 학년의 학교 폭력이 적었고 저희보다 아래 학년이 학교 폭력이 적었으며 4살 아래인 현재 고3 동생 정도의 학년은 학교 폭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WR
1
2016-02-04 00:29:53

매번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1
2016-02-04 00:28:24

전 요즘 매니아에 공부하러 옵니다

WR
2016-02-04 00:30:45

아아고~ 감사합니다^^

7
Updated at 2016-02-04 00:42:39

전 심화되는 사회갈등의 주요요소는 사회적 정의의 부재와 개개인의 철학의 부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부재를 불러오는 것은 교육시스템의 문제라고 보고,
발전 시킬생각 없이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유지해본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이 셈 입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쌓을려면 좋은 교육(사회적/시스템적/가정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받고, 군대가고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참 공정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제치하의 유산인지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남과 다르면 특별하다거나, 특출난것이 아닌 유별나다, 이상하다식으로 낙인찍고, 항상 남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는 문화에서는 다양성이 나오기 매우 힘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공정함의 부재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불합리함, 부정에 대항에서 일어난 사람들을 묵사발내서 죽여놓거나, 변절자로 만든후 봐 부러질꺼면서 혼자 깨끗한척 하지마라 식으로 해온 예는 셀수없이 많은데, 반대로 맞서싸워서 쟁취해온 역사는 제가 잘몰라서 없는건지, 아니면 진짜 없는건지 거의 들어본적이 없네요. 그에 비해서 미국/일본의 경우는 한때 법관련 수업/공부를 조금 했던 시절 읽었던 판례나 사건들을 보면 정말 끈질기게 인권/정의를 위해 싸워오고 결국 그 용기있는 사람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생은 고통이였지만) 그 뒤의 세대가 바뀌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봐왔는데 위와 같은 사례가 우리나라에는 희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기타 선진국이라고 해서 정의로운 사회라고는 생각안합니다. 물론 거기서도 떼돈 버는사람, 날로 먹는 사람들은 정치권이나 기타 큰 이권 세력과 결탁해있거든요, 하지만 대놓고 사회적으로 용납할수 없는 발언, 부정을 행하지는 못합니다. 적어도 부정을 행할려면 위험을 무릎쓰고 해야되고, 걸리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된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두려워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기가 막히는 말을 대놓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그외 비리가 눈에 빤히 보이는데 눈가리고 아웅하는데 그것을 한두해도 아니고 건국이래로 쭈욱 보고 있는 국민들이 그런 사회현상을 보고 배운게 누적되어 나오는게 현재의 모습일 뿐인 것이죠.

교육부터 바꾸고, 정책적으로 부정을 때려잡는걸 앞으로 한 십년은 꾸준히 해야 그 다음세대에서 조금씩 개선되는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게 없는 현재로썬 절대 나아질수가 없을겁니다.

또한 부재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을 겁니다.
이부분도 사회적 갈등과 불합리를 느끼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
정당한 감정이라고 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인들이 부자에 대해 불인정과 불만이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만,
그게 한국인들의 성품적인 문제이기 보다는 결국 사회적 병폐와 부자/가진자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물질을 가진 사람일 수록, 배운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이 무거운 법입니다.


한 개인이 위계와 안정을 중시하는 사회의 힘과 다름과 변화를 위한 저항을 짓누르는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기 밥그릇 챙기기 급급할 뿐인 것을요.
WR
2016-02-04 01:02:55

사회갈등이 커다랗게 수면위로 드러난건 민주화가 되면서였고, 그 이후로 지방자차제가 실시되면서였습니다. 억눌렸던 게 분출된 거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방국책사업 관련 갈등은 집단이기주의가 막무가내로 기승을 부리고 외부인까지 합세해서 글자그대로 점입가경입니다. 이런 것들도 과도기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몇개의 키워드로 묶으면 ToLiveOrDie님께서 말씀하신 사회적 정의의 부재와 개개인의 철학의 부재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겠지요.

저도 글에서 한국인들이 부자에 대해 불인정과 불만이 있는 건 성품적인 것보다 사회적 병폐에 가깝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는 서로 비교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배아파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것을 인정안하는 측면이 훨씬 클겁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16-02-04 01:04:17

오히려 그런 획일적인 유교문화가 있어서 여기까지 성장할수 있었던 것도 고려는 해야할듯 합니다. 사회시스템 유지면에서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는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중요한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치하문부터 시작해서 토론에 관한 좋은 이야기도 유교에 많이 있습니다.
또 이런 급성장을 하면서 생각보다 부패는 낮습니다. 중국이나 브라질에 비교하면 국민적으로 유교문화로인해 덜 부패했다고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성장할수있었던 동력들이 지금은 방해가 되는 시점이 왔고 그 과도기에 있어서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암울한것은 이 과도기를 바꿀수있는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엔 너무 시스템이 거대화 되었습니다. 이걸 바꾸려면 피로써 바꾸거나 시간이 오래걸리면서 차근히 바꿔야하는데 둘 다 여의치가않습니다.
어떻하면 대한민국의 좋은 점을 발전시키고 취약점을 보완시킬지 고민입니다. 본인의 취업도 힘든데말이죠.
크게보면 교육만 해결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듯 한데 이 교육도 사회구조와 직결되서 어찌 손볼찌 모르겠습니다.

WR
2016-02-04 01:06:53

말씀처럼 성장기 개발독재시절에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리더쉽을 통해 나라를 쉽게 컨트롤할 수 있었죠. 부패의 양적인 측면은 어쩌면 그렇게 높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심리적인 측면은 현재까지 계층갈등과 반목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말씀처럼 우리나라가 성장할수있었던 동력들이 지금은 방해가 되는 시점이고, 그 관성의 법칙 때문에 우리가 쉽게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말씀에 공감합니다.

Updated at 2016-02-04 01:27:51

주입식 교육과 군대라는 장치가 현재의 권위주의를 지속시키는 요인같습니다. 대학에서도 취업난으로 인해 다양한 학회활동이 이뤄지기보다는 ~스터디가 활성화되어 이전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의견개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구요. 뿐만 아니라 사회가 점점 어린 나이를 선호하면서, 효율성이라는 덕목하에 많은 것들이 갈아넣어지고 있다고 할까요.
초중고에서 토론수업을 배워보기는커녕 정답만을 찾고, 대학에 와서는 군대에서 상명하복을 배우며 취준시기에는 역시 기업이 원하는 덕목들, 일명 스펙을 쌓기에 바쁩니다. 중앙대같은 메이저대학조차 취업이 안 되는 학과들을 정리하려고 했을 정도인데요. 효율성을 통해 권위주의가 지배하게 된 이 사회는, 한동안 바꾸기 요원해 보이네요. 데이먼님 말씀처럼 갈등조정메커니즘이 부재할 뿐더러, 그걸 길러낼 토양조차 척박해보입니다. 한편으론 위의 권위라는게, 공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저신뢰사회가 돼버렸죠.

다른 이야기지만 더 큰 문제는 젊음들이 실패에 도전할 용기나 의지를 박탈당했다는 거구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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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01:28:03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젊음 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회복탄력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좌절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 얼마만큼 빨리 회복되어서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는가가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효율성은 절대 장기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기업도 구직자도 장기적인 목표에 힘을 쏟기엔 현재 상황이 너무 급한 것 같습니다.

Updated at 2016-02-04 01:36:54

제가 말씀드리고팠던 효율성은, 경쟁이 심화되어 예전에는 조금 딴생각을 해도 될 것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사라지고 정답, 즉 최대한 빨리 성공으로 향하는 길에 더 가깝습니다. 네, 물론 현재 상황이 급박해서 더 그렇겠죠.
지난번 데이먼님의 덧글-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자세를 갖는 것만으로 경쟁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속되게 멘탈관리라고 해야 할까요. 힘들수록 정신의 굳건함을 뜻하는 것 같아 되새기게 됩니다.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WR
2016-02-04 01:46:57

말씀 고맙습니다. 편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2016-02-04 02:25:31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건 학생들이 자신의 다른 생각과 궁금증을 나이 많은 교수들한테 공격적으로 캐물을 때였습니다.

한국이었으면 '어디 선생님 말에!' 하면서 따귀맞기 십상이죠. 실제로도 맞아 봤구요.
그럼에도 교수들은 권위로 찍어누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학생과 토론하고 설득하더군요.
올바른 권위는 자기가 만드는게 아니라 남이 느끼게 하는건데 이게 참 안달나죠.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1
2016-02-04 13:46:13

저는 지도교수를 미스터 로빈슨이라고 부르는 게 편했는데, 교수님은 팻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팻으로 불렀죠. 지도교수의 퍼스트 네임을 부르게 되니까 훨씬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그 분과 나는 일방적으로 기대는 사이가 아니라 개인대 개인의 동등한 사이고, 내가 내 역할을 충분히 못할 시에는 매우 비참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이 좋았던 이유는 이렇게 매사에 갑을 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모든 게 순조로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미국인 교수들이 좋았습니다. 제가 공부할 때 동유럽의 뛰어난 학자들이 미국으로 대거 유입되었는데, 그분들은 대부분 미국인 교수들처럼 쿨하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동유럽은 우리나라 이상으로 교수와 학생이 주종관계였더군요.

1
2016-02-04 02:38:01

공정한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
남여로 갈라, 젊은이와 어르신들로 갈라, 좌우로 갈라, 지역으로 갈라 등등..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
공정한 토론이 진행되다가도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고 핵심 논점와 멀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WR
2016-02-04 13:50:22

제가 몇년 동안은 티비를 안봤지만, 한국에 정착했을 때는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티비를 자주 봤었습니다. 그때 백분토론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토론인데, 그 안에 토론은 전혀 없었습니다. 패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전혀 경청하지 않고 자신들의 말만 했습니다. 국회의원 합동유세와 뭐가 다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 우리의 '토론불가사회' 는 해법이 별로 안보입니다.

2016-02-04 02:47:10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기득권이 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자와 젊은층을 기만하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잘못생각하고 있는게 돈이 많아야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부는 시간과 자유 그리고 건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이 즐기는건 여유지 사치품이 아닐겁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 또는 대기업 임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아서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기본적인 업무시간과 강도가 정말 높은 편이라 업무와 스트레스등의 실상을 알면 결코 많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월급과 소비는 끊임없이 통화를 유통시키고 그것이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저는 분명히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 활동이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소비를 의도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차 더 넓은집에 많은 제품으로 채워나가고 그래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졌지만 더 가난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수 있는 상황에서 질병이 없다면 돈쓸일이 뭐가 그리도 많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벌고 쓰고 빌리고 벌고 갑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죠.
이후에 제품 소비에서 자유로워지면 음식이나 의료서비스 같은것으로 소비를 강요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최소 12년 이상의 교육을 받지만 호기심이나 상상력을 가지고 신중하게 관찰하고 상대의 말속에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고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선 거의 배우지 못하고 그저 하라는 대로 하는 방법만 숙지한체 사회에 나와 누군가 이끌면 모두가 가는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설사 그곳이 벼랑 끝이라 해도 말이죠. 저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궁굼해 하질 않아요. 삶을 잘못 인도하고 잘못 이해한체 살아가게 만들고 있는것 이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합니다.
하지만 큰 사기 일수록 의외로 간단한 법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오늘은 생각이 많아져서 힘들었습니다. 좋은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6-02-04 03:09:06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만,

돈이 순환은 경제가 돌아가는 것의 기본입니다. 그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소비를 하지 않으면 돈이 안도는데 자본주의의 기본이 되는 상업이 다 죽겠죠.
그럼 돈이 없으니 모두 다같이 가난해지는 길뿐입니다.

아마 돈이라는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고 만족하지 못하여 끊임없이 더 많이 더많이 갈구하면서 불행해하는것은 병폐고 행복을 방해하는 큰 문제로 보지만요. 그리고 좋은 집 좋은 차라고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기술의 발전도 따져봐야됩니다. 예를 들어서 다시 탱크같이 생긴 핸드폰시대로 돌아가서 대부분 집전화쓰고 소수만 핸드폰쓰는 시대와 비교하면 그때는 폰으로 모든것이 이어지는 세상 그런걸 몰라서 요즘 겪는 SNS라던지 네트워킹에 따르는 고통이 없어서 행복했으니 그게 좋은걸까요? 

사람이 배부르고 등따시면 행복한 그런 단순한 동물은 아닐꺼라고 봅니다.
질병이 없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현대의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지(거대한 의학/약품계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냥 갑자기 질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소비 또한 계속 그 형태가 변할 뿐이지 시대만 다를뿐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대한 고대 유적건물들이나 진귀한 보석들, 명품들은 왜 만들어진걸까요. 웰빙이라는 단어는 왜 만들어지는걸까요, 단순히 소비를 만들기 위한 그 누군가가 만든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는 사실 교육적인 문제도 크지만, 개인의 노력도 상당부분 차지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 줄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타인의 긴 시간에 걸린 고심과 연구를 편하게 즐길수 있는 독서로써
내가 직접 경험하거나 고심하지않고도 상당부분 많은 것을 얻어갈수 있는 방법입니다.

WR
2016-02-04 13:59:14

인간의 본성은 현 위치가 어떻든 더 나아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되면 돈 욕심이 더 생깁니다. 우리나라의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더 그렇습니다.


자수성가해서 기업을 재계서열 30위 안에 올려놓았고, 사세를 더 팽창시키려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부실 회사를 인수했다가 그 때문에 그룹이 공중분해 된 모 기업의 회장님께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재계 서열 30위 안에 처음 들어서 당시 대통령 MB에게 청와대 재벌만찬에 초청받았을 때는 정말 감개무량에 소원성취한 기분이셨답니다. 그런데 청와대 모임에 참석하고 난 후에는 초라함과 모멸감이 들었답니다. 그 이후에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10대 재벌안에 들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답니다. 우리나라 사정이 이렇습니다.

2016-02-04 06:13:17

장유유서가 문제라기 보다는, 일제시대를 기치면서 상명하복에 의해 왜곡된 장유유서가 문제 아닐까요?

다들 조선시대라고 하면 갑갑한 인식을 가지신 분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외국 특히 미국 사회와 조선 선비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 됩니다.
WR
Updated at 2016-02-04 14:20:40

장유유서라는 발상은 오래 전의 연장자들이 세월에서 오는 지혜만으로도 공경을 받을 수 있을때 싹트기 시작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 장유유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며 천편일률적인 서열을 강요하는 개념으로, 그래서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일본식 군국주의 문화가 합쳐져서 더 큰 부작용을 낳았겠지요.


제가 글에서 장유유서를 비판한 것은 개인이 스스로의 주인의식 없이 윗 사람이 문제해결을 도맡았던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앞으로 계속 발생할 각종 사회갈등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것과 한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 사회와 조선 선비 사회의 유사점도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신분제도의 타파는 미국의 건국이념이었고, 조선의 선비사회는 신분제도 위에서 발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선비는  일체의 생산활동과는 담을 쌓았었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제가 역사 문헌을 살피다 보면 우리 조상 선비들의 이중성에 기가 질릴 정도였던 겁니다. 그들은 대 저택에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초가삼간 예찬론을 읊었고, 온통 마음이 조정에 가 있으면서도 자연을 칭송하는 가사와 시조를 읊었습니다.

2016-02-04 15:15:54

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장유유서가 아닌 다른 단어를 쓰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안그래도 왜곡되고 있는 장유유서가 다시 왜곡 되는 것 같아서요.
어차피 장유유서란 단어를 단칼에 우리사회에서 없앨 수 없다면, 장유유서가 가진 단어의 부정적인 면은 없애고 긍정적인 면은 살리는 쪽으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선선비의 이중성은 당시 시대상 때문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기준을 그 시대에 가져다 놓으면 모든 곳에서 모순이 생길 것 같습니다.
물론 조선 선비의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제가 말한 조선 선비 사회와 미국 사회의 유사점은 실력 위주로 사람이 평가 된다는 면이었습니다. 그게 시조든 기술이든 그 사회의 기준이 되는 능력이 명확 했고, 그 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 했다는 면에서 유사성을 봤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기준이 모호하고 주로 돈에의해평가 되는 것 같구요.
WR
2016-02-04 15:27:06

조선시대에 실력에 따라 관직에 등용하려고 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다스리고 행정을 하는 문관이 경우 유학의 깊이가 사람 다스리고 행정하는 것과 큰 관계가 있었을까요? 유교의 이념이 나라 전체에 퍼지는 데에는 도움이 됐겠지요. 그리고 등용 후에 어떤 관직으로 진출할지는 철저하게 인맥이 작용했습니다. 사림이 갈라진 계기가 이조정랑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되었을 정도니까요. 제가 조상들을 무작정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 시대가 지금보다 정신이 깊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조선 선비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생산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에 진출하는 것 말고는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양반집 자손이라고 해도 4대까지 벼슬을 못하면 잔반이라고 불려서 농민보다 더 천대시 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Updated at 2016-02-04 15:39:23

조상을 무작정 폄하하는게 아니시라는건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조선 선비가 생산활동을 하지 않았음에 대한 부작용 또한 동의 하구요 ^^

저는 쓰신 첫 문장, 실력에 따른 관직의 등용이란 점에서 유사성을 보았고, 말씀하신 부작용은 없애고 괜찮았던 점을 잘 살린다면 현대에도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드린 의견이었습니다.

저도 쓰신 논조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1
2016-02-04 07:19:11

첨언하신 존댓말에 대해서는 정반대 의견인데.


존댓말보다는 반말이 문제입니다. 상호존대는 위계질서 이전에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 예의이자 사회 갈등 봉합에 가장 중요한 상호존중의 시발점이니까요.

반말 강요하는 사회가 사람을 권위주의,위계질서,상명하복,폭력적으로 만들죠. 심지어 반말을 탈권위주의라고 호도하는 지경.
WR
2016-02-04 14:18:24

제가 존대말이라고 한 것은 우리말은 존대말과 반말의 구별이 명확하기 때문에 서열의식이 사라지기 힘들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말이 영어같이 높임말과 내림말의 구별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서열문화는 벌써 많이 희석되었을 겁니다. 존대말이 한국과 일본보다 훨씬 약한 중국의 경우는 한국과 일본보다 서열문화가 훨씬 약합니다.

Updated at 2016-02-04 08:12:46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친일파 정리가 되지않았기 때문에(반민특위 해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오히려 친일파들이 그대로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현재 기득권을 가지고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구요. 그런 사회에서 기득권자들에대한 존경이란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노력해서 바꿔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좋은 생각을 나누고, 잘못을 하면 부끄러운 줄 아는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겠습니다.

WR
2016-02-04 14:34:50

친일청산 실패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우리보다 친일청산에 훨씬 성공한 북한과 우리를 비교해보더라도 이런 단순논리는 그자체로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겁니다. 그 이면에는 너무너무 복잡한 상황과 사정들이 얽혀있어서 전공하는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조차 의견이 크게 엇갈립니다. 우리나라이 보수 진보 이념갈등의 원천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은 초기에 이상주의적 생각으로 일재잔재를 청산하려 했으나 청산대상자들은 이승만에 적극 충성했고, 좌우 이념대립이 심각해진 당시 시점에서 이승만은 그들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친일전력자들은 상황에 충실한 현실주의자들어있고 참여주의자들이었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면 너무 복잡해지고 도 정치이야기로 흐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 상황에서의 당위론만 가지고 그때 이랬어야 되었다고 말하는 건 쉬울 수 있지만 그 시대로 돌아가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 어떻게 했어야 됐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16-02-04 09:27:34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철학의 부재, 사회적 원칙보다는 편법이 융통성으로 

인정받다 보니까 사회적인 신뢰가 없는 게 커보입니다.

좀 어려워도 노력하면 제가 잘 살고, 사회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저는
점점 퇴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희망을 갖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일제 시대부터 현재 학생까지 너무나 다른 스펙트럼이 있다보니 세대 간 단절과 갈등도
커보이구요. 
WR
2016-02-04 14:39:39

세상은 갈수록 다원화되어 복잡해지고, 우리나라는 수십년 동안 숨죽였던 수많은 욕구들이 분출되는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풀어가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여러가지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해소하는가의 여부에 우리 미래가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16-02-04 15:31:35

결국엔 '소통과 협의를 배우지 못한(혹은 국가적으로 컨트롤해서 그 부분을 거세했거나...)' 한국인의 근본성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랑 비교를 해보면 일본은 개개인은 아주 친절하고 나이스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바뀌죠. 반면에 한국은 개개인이 이기주의적이고, 결정적으로 모이지를 못합니다. 다들 개인이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에 대한 잔머리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빠른 일처리를 위해 협의보다는 힘의 불균형을 이용한 통보 + 찍어누름이 가져다주는 필연적 결과라고 봅니다. 이제는 그게 사회 전반적인 면모로 퍼져 있어서 그들만의 리그에서조차 통보식의 말은 공공연히 나와있죠. 나보다 힘 센 사람에게 짓밟힐언정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그거보다 더 잔인하게 행동하는 한국인의 근본습성이 살아있는 한, 이 사태의 해결은 요원하지 않을까 합니다.
WR
2016-02-05 18:03:02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근래는 예전만큼 정부의 힘이 강하지 않아서 공공시설에 대한 지방주민들의 반발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원자력발전소나 고준위방폐장 송변전시설 같은 경우는 물론이고 납골당 화장시설, 요양병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그리고 임대주택에 대한 주민의 반발도 빈번합니다. 공공토론제도가 조속히 도입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 또 문제입니다

Updated at 2016-02-12 02:22:05

솔직히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권위란 부분에 대해서 댓글 남겨주실때부터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흔히 '권위적이다'는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였었는데 좋게 적용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개념이 추상적이라고 생각됬습니다.
그래서 권위를 갖게 되는 경우들을 생각해봤습니다.
기관이 그 분야에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공평한 기준으로 공정해야합니다. 정부, 법원, 대학, 회사 등등(혹은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권위가 있기 위해서는 이뤄놓은 업적, 라이센스, 학위, 사회적 지휘 등이 필요합니다. 그 권위가 해당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으려면 윤리적 도덕적 책임에 대한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합니다. 물론 도덕적 결격이 심할 경우에는 위 필요자격이 다 갖춰져도 해당분야에 대한 권위조차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권위에 의존한 갈등 해결장치는 권위의 악용 여지가 늘어나 역설적으로 권위를 낮아지게 하고,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 당사자간 의견교류와 협의 및 원만한 조정의 가능성을 낮출뿐더러, 많은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이건 권위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개인 고소가 많은 편이라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대중에게서 나오는 권위에 대한 불신과 원만한 협의가 불가능한 소통의 이유는 근본적으로 계층간 윤리 도덕적인 모순과 권위의 악용, 기관의 공정성에서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특정 집단을 위해서는 권위를 강화시키는 장치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계층간 생기는 보편적 윤리와 도덕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는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합리적 판단이라고 보고 보편적인 윤리 기준이 다른 상태에서는 계층이나 집단 간 합의점을 찾기 힘들어집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윤리성을 확보하는게 첫번째 조건이고, 정답을 찾아내고 경쟁에 목숨거는 교육, 사회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답이 없는 문제에서 최선의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는 형태의 그룹별 교육을 강화하고 경쟁 낙오에 대한 안전망을 강화한다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까지 놓고 봤을때 전에 댓글에서도 말씀해주셨듯 DNA에 찍혀 있는듯한 지휘층의 모순이... 잡고있는 갈등의 발목을 절대로 놔줄것 같진 않습니다.

생각을 한다는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매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WR
2016-02-12 20:45:49

긴 댓글을 적어주신 걸 이제야 봤네요. 저는 갈등당사자들 사이에 원만한 해결이 어려울 경우 공정한 중재자의 필요성을 말했던 것이고, 그런 중재자는 존경받을만한 권위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절대 억압하는 권위가 아니라 양측의 타협점을 찾아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존경받을만한 권위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에는 중재자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힉님이 말씀하신 건 아주 장기적인 측면에서 백퍼센트 옳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종합되서 제가 갈등조정 메커니즘의 부재가 걱정된다고 쓴 것입니다. 정말 좋은 말슴 고맙습니다

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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