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위험한 국가부채 그리고 아베노믹스
오늘은 D.Russel 님의 글에 대한 답으로 아베노믹스와 일본 경제에 대한 글을 쓰겠습니다. 원래는 미국와 우리나라에 대해 먼저 쓰려고 했는데, 약간 방향이 바뀌게 되었네요. 그래도 형식적으로 저의 지난 글
(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927176&sca=&sfl=mb_id%2C1&stx=kormhs )에 이어지는 모양새를 갖추겠습니다.
2011년 8월 5일에 세계 금융시장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디스와 함께 세계 신용평가시장을 양분한 절대강자인 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깎아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놀림을 받았던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은 국가별 신용등급이 발표되기 시작한 194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S&P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한 첫 번째 이유로 국가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했습니다. 당시 2011년 8월의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14조 5,800억 달러로 바로 전해인 2010년 미국의 GDP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보다 국가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한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국가부채로 인해 일본의 현재 국가신용등급은 우리나라보다 낮은 상태입니다. (무디스와 피치)
일본의 국가부채의 대부분은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한 국채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심각성은 크지 않지만 정부가 국민의 재산으로 국가부채를 탕감하는데 쓸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재정문제가 갈수록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1970년대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10% 미만이었고, 경기불황이 시작된 1992년에는 GDP의 70%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경제불황 극복을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함으로 인해 재정지출은 대폭 확대된 반면에 기업의 실적 하락 및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해 세수입은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게다가 부실기업의 부채가 은행의 부채로 은행부채가 국가부채로 전환됨으로 인해 1999년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127%에 이르러 이탈리아를 제치고 G7 국가에서 가장 빚이 많은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아베노믹스 이전의 일본
21세기에 이르러 일본은 급격한 고령화 및 정부의 복지부담 증가 등으로 사회보장비가 크게 증가했고 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 실시로 재정지출 규모가 더욱 급증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속적인 세수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의식하여 세금을 올리지 못했고, 경기활성화를 위한 재정지출 및 복지비 지출 등의 급격한 증가로 국가부채가 계속 증가하여 2012년에는 GDP의 200%를 훨씬 상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경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이 저축한 돈을 꺼내 쓰고, 그 돈이 돌아 내수경기가 살아나 경제에 활력이 생기면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 부채를 갚을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일본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막대한 국가부채가 경제를 짓누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로 내수경기가 다소 회복되는가 싶으면 얼마 안가 다시 가라앉았습니다. 이미 제로금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금리를 낮춰서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도 통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거품이 시작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1.14%였고, 그 이후 2001~2012년까지 0.79%로 저성장이 극화되었고, 2000~2012년까지 연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3%로 장기 디플레이션이 고착되었습니다.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디플레이션→ 자산가치 하락 → 소비부진 → 생산둔화 → 물가하락 → 기업 수익감소 → 고용부진 → 소득감소라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안전한 상품인 국채를 매입하거나, 안전하다는 이유로 가계 금융자산의 60%가 우체국 예금 및 보험상품에 집중됨에 따라 우정공사가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이 되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우체국은 예금된 돈을 기업에 대출하지 않고 국공채를 매입하는데 사용하므로 일본 국민들이 우체국에 예금한 돈은 고스란히 국가부채로 전환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2011년 원전사고 이후 무역적자국으로 전환했고, 2012년에는 중국에게 GDP를 추월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국민은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을 지지하면서 일본 경제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베노믹스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극약과도 같은 처방을 내세웠습니다. 이 극약과도 같은 처방은 아베노믹스라고 불립니다. 아베노믹스는 ‘금융정책’, ‘재정정책’ 그리고 ‘성장전략’이라는 3대 핵심정책으로 구성됩니다. 제가 극약과도 같은 처방이라고 말한 이유는 독을 다스리기 위해 더욱 강한 독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국가부채로 인한 장기불황을 무한정 돈을 풀고, 더 많은 적자 공채를 발행해 공공사업에 투자하여 해결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경제학의 논리대로라면 이런 정책은 초 인플레이션 등 커다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베와 관료들은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은 그러한 위험을 이겨낼 만큼 강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베노믹스의 3대 핵심정책 중에서도 핵심은 ‘금융정책’입니다.
1. 대담한 금융정책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으로 촉발한 악순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 양적완화란 잘 알려진 대로 더 이상 금리인하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국채 등 시장성부채를 직접 매입하는 정책으로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FRB도 긴 시간에 거쳐 양적완화정책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는 오바마 정부와는 그 수준이 다른 것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할 때까지 무제한 돈을 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정부가 돈을 풀겠다고 하면 소비자들은 물건 값이 오르기 전에 소비하려는 심리가 생기고 기업들은 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투자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아베 총리의 집권 2년 반 동안에 물가상승률 2%에 근접하긴 했으나, 그 사이 일본 중앙은행이 국채, 상장 투자신탁, 부동산 투자신탁 등을 대량으로 매입함으로 인해서 2012년 말에 138조 엔이던 본원통화량은 2015년 4월에 두 배가 넘는 300조 엔을 돌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일본경제는 정말로 특이한 구조입니다. 이렇게 많이 풀려진 돈은 주로 증권시장과 부동산으로 몰렸습니다. 아베 취임 2년 후 니케이 지수는 2배가 올랐고, 침체했던 부동산 시장도 살아났습니다. 사실 아베 총리가 제시한 물가상승률 2%는 그 자체만으로 경기를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많은 돈을 푸는 가장 큰 원인은 엔저를 유도하여 약해진 수출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더 많았습니다.
아베 취임 초에 1달러당 85엔이던 엔 달러 환율은 현재 1달러당 124엔으로 무려 46%가 상승했습니다. 이 때문에 달러 기준으로는 일본의 주가지수가 크게 오르지 않는 정상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엔고 시대에 제품 경쟁력을 키운 일본의 수출기업들에게는 큰 호재였지만 그 반작용으로 식량 등 수입 물가도 급등했기 때문에, 수출 기업의 이득을 위해 가계가 물가상승을 부담을 떠안아 일본 국민들의 생활을 더 어렵게 했다는 비판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아베노믹스를 비판하는 일본인들은 그 정책이 일본의 부를 증가시키기 보다는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아베 총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초창기에 급등했던 국제 원유 값이 작년에 셰일 가스의 영향으로 크게 하락하여 정권에게 큰 도움을 줬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출국들은 엔저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차와 경쟁하던 현대자동차의 주가가 반 토막 나는 등 피해가 심각하자 우리 정부는 외교를 통해 일본의 양적완화를 막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보다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던 미국은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아베노믹스를 사실상 용인했으며, G20 국가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2014년 1분기까지 효과를 보이던 아베노믹스는 2014년 2분기에 각종 지표가 떨어지면서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2015년 1분기 지표는 매우 호전되었고 일본의 각종 경기가 완연히 살아나는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적이 좋아진 기업의 대부분은 수출 주도의 대기업이고, 늘어난 고용은 비정규직이 많았습니다.
아베노믹스의 대담한 금융정책은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일본의 모든 파이를 더했을 때 플러스의 측면이 많은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제 겨우 시작이므로 앞으로가 훨씬 더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다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런 경우에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목됩니다.
2. 기민한 재정정책
공공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관련 산업의 생산 및 고용 유발 효과를 창출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 고전적인 케인즈 주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규모 면에서 뉴딜 정책을 제외하고는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20조가 넘는 규모의 재정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풀었고, 향후 10년에 걸쳐 100조~200조 엔에 상당하는 재정지출을 공공사업에 투자하여 관련 산업의 생산 및 고용 효과를 유발하겠다는 전략인데, 소비세 인상을 통해 재정건전화 방안도 병행 추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4월부터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했고, 올해에 또다시 8%에서 10%로 인상할 계획입니다. 정치인들에게 자살골과 같은 세금 인상조차 과감히 시행할 정도로 아베 정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최근 안보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걸 보면 자신감이라기보다는 만용과 만행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아베노믹스의 기민한 재정정책은 정부가 적자 공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일본의 막대한 국가부채 규모를 감안하면 국가신용등급의 추가 하락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베 정부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재정정책은 금융정책의 혜택이 주로 자산을 가진 부유층과 수도권에 집중된다는 비판을 감안해 주로 지역경제 활성화, 중소기업 지원, 소외계층 복지대책 등에 집중되지만 소비세 인상으로 인해 서민들의 고통이 늘어난 상황이기도 합니다.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 모두 이론적으로는 극약처방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한 정책입니다. 일본이 아닌 제3세계 국가가 이런 정책을 펼치다가는 머지않아 초 인플레이션을 맞이하기에 딱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아베 총리는 늘어나는 국가부채를 줄이는 데는 당분간은 관심도 없을 겁니다. 장기 불황을 겪다 보면 정치인이 이런 해법을 들고 나오는 걸 국민들이 지지할 수도 있다는 걸 일본이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국가부채가 증가하다가 갑자기 이자율이 크게 오르게 되면 일본정부가 그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할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3. 새로운 성장전략
아베노믹스의 3대 핵심정책의 마지막은 새로운 성장전략입니다. 아베정부는 일본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외국기업의 유치를 위해서 2015 회계연도부터 법인세 실효세율을 단계적으로 낮춰 현행 35%에서 20%대로 대폭 떨어뜨린다는 방침입니다. 그밖에도 각종 성장전략들이 있는데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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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이 잘 읽었습니다.